김남우 선생님의 과외는 재미있다.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나서 그런가, 정말로 친구 같은 과외 선생님이었다.
솔직히 나 같은 꼴통이 과외 시간을 괴로워하지 않는단 것만으로도 김남우 선생님은 칭찬받아 마땅했다.
공부 도중에도 이런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 으~ 덥다! 쌤! 여름인데 무서운 이야기 하나만 해주세요. "
" 무서운 이야기? 흠. "
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공부나 하자는 말 대신, 생각에 잠기는 선생님의 얼굴이 좋았다.
김남우 선생님은 "음-" 무언가를 떠올린 듯하더니, 펜을 내려놓았다.
나 역시 펜을 내려놓고 자세를 달리했다. 선생님과 과외를 하면서 공부뿐만 아니라 리액션도 많이 배운 나였다.
" 이거 진짜 우리 집 실화야.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실화. "
" 네! "
" 선생님이 고등학생일 때 아파트 7층에 살았었거든? 근데 그 아파트가 층간소음이 좀 심했어. 특히 위층 애들이 너무 많이 뛰어다니니까 이게 장난이 아닌 거야. "
" 예 "
" 참다 참다가 엄마가 8층에 항의하러 올라갔어. 8층 아줌마는 죄송하다고 주의하겠다고 말을 하는데, 그게 딱 그때뿐인 거지. 며칠 지나면 또 금세 쿵쿵거리는 거야. 그래서 엄마가 몇 번을 더 올라갔어. 그 집도 처음에는 좀 미안한 척이라도 하더니, 나중에 가서는 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이해를 강요하는 느낌으로 말을 하는 거야! '우리가 미안하긴 한데, 이해를 좀...' 뭔지 알겠지? "
" 예 알죠. "
" 결국, 욕설까지 오갈 정도로 윗집이랑 사이가 나빠졌어. 우리 가족은 9층으로 이사하자는 말까지 진지하게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
말꼬리를 늦춘 김남우 선생님은 목소리를 낮추었고, 나도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 밤에 야자를 마치고 왔더니, 엄마가 또 8층에 올라갈 채비를 하고 있더라고. 며칠 좀 조용하다 했더니 위층 애들이 또 뛰어다녔구나 싶었지. 나도 힘 좀 실어주려고 함께 따라갔어. 엄마는 8층에 도착하자마자 벨을 신경질적으로 마구 두드리더라. "
[ 띵동! 띵동 띵동 띵동! ]
" 조금 뒤에 문이 열리자마자, 엄마가 그 아줌마한테 막 쏘아붙였어. "
[ 아니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이 밤에 애들이 자꾸 뛰어다니면 어쩌자는 거예요?! 낮에 애들 안 재워요?! 제발 애들 좀 못 뛰게 하라고요! ]
" 그런데 그 아줌마 얼굴이 사색이 되더니, 갑자기 우리 엄마 팔을 붙잡고 매달려서 이러는 거야! "
[ 저, 정말 우리 애들 뛰는 소리가 들렸어요? 우리 애들이 지금 여기서 뛰었어요? 정말 그랬어요? 우리 애들 있어요? 정말이에요?? ]
" 아줌마 표정이 혼이 나간 듯한 얼굴이었는데, 자세히 보니까 머리도 산발이고 상태가 이상하더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짜증이 나서 소리쳤어. "
[ 그래요! 그러니까 애들 좀 뛰지 말게 하라고요! 어찌나 쿵쿵 뛰어다니는지, 야밤에 시끄러워서 못 살겠네 진짜! ]
" 그랬더니 아줌마가 갑자기 눈물을 줄줄 흘리더라고? 막 애들 이름 부르면서 뛰어들어가고...알고봤더니, 그집 애들이 며칠 전에 교통 사고로 다 죽어버렸던 거야. 그 집에는 지금 쿵쿵 거리며 뛰어놀 아이들이 없었던 거지. "
" 흐힉! "
나는 순간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 그 집 아저씨가 나와서 사정을 설명하는데, 안쪽에서 아줌마는 애들 이름 부르면서 울고...엄마랑 난 완전 소름 돋아서 바로 집으로 내려갔잖아. "
[ 어, 엄마! 진짜 애들이 쿵쿵 뛰었어? ]
[ 그래.. ]
" 진짜 무섭더라. 집에 들어갔다가 혹시 또 애들 뛰는 소리 들리면 어쩔까 겁날 정도였어. "
" 와아... "
나도 정말 무서워져서 팔뚝을 쓰다듬었다.
그런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김남우 선생님의 얼굴이 무표정해졌다.
" 그런데 말이야... 내가 더 소름 돋았던 게 뭔지 알아? "
" 예? 뭔데요? "
" 집에 들어와서 엄마는 바로 화장실에 가고, 나는 거실에 아빠한테 가서 호들갑을 떨었거든. "
[ 아빠! 진짜 소름 돋아! 세상에, 윗집 얘기 들었어? ]
" 그랬더니, 그때 아빠가 그러더라. "
[ 어, 낮에 네 엄마가 말해줬어. 윗집 애들 죽었다면서? 쯧... ]
" 네?? "
" 엄마는 낮에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었던 거야. 알면서도 모른 척 올라가서 그 여자에게 그렇게 거짓말을 한 거지. 지금 댁에 애들이 쿵쿵거려서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시켜달라고... 그게 우리 엄마의 복수였나 봐. 소름 돋지? "
" ... "
나는 일순간 멍해질 정도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선생님은 담담하게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 그때 화장실에 들어가서 엄마의 얼굴이 어떤 표정이었을지, 난 상상할 수 없어. 하지만 그날 나는 그것을 깨달았지. "
선생님은 내 눈을 잠잠히 바라보았다.
"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반드시 좋은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가족 콩깍지를 벗기고 보면,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거... "
" ... "
무덤덤한 선생님의 표정 앞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핸드폰 시계를 힐끔 확인한 선생님은, 내친김에 책을 정리했다.
나는 아직 시간이 좀 더 남아서 의아했지만, 선생님은 충격적인 말을 했다.
" 오늘이 선생님 마지막 수업이야. "
" 네?? "
처음 듣는 이야기에 난 정말 깜짝 놀랐다!
" 예 쌤? 갑자기 왜요?! 싫어요 쌤! 아 왜요?! "
선생님은 그저 웃을 뿐, 설명하지 않고 가방을 정리했다. 그리고, 내 머리를 한번 쓰다듬더니 우리 집을 나섰다.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당장 엄마에게 달려가 따지듯 물었고, 엄마는 말했다.
" 응~ 선생님이 너무 바쁘시다네? 어쩔 수 없지. 대신에 엄마가 K대 나온 선생님을 새로 구했거든? K대라 더 잘 가르쳐주실 거야~ 잘됐지? "
" ... "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하는 엄마의 얼굴을, 나는 복잡한 얼굴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마지막에 했던 그 말을 곱씹으면서.
처음 쓰려고 마음 먹었을 때의 마무리 방식이 문장으로 좀 표현이 안 된 것 같아요. 머릿속에서 까먹어서; 으~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드디어 김남우가 타이틀까지 등장하는군요!
그러니까 과외선생님에서 잘린 김남우 선생님이 그 복수로 그 가족에게 "불신" 을 남겨준거로군요.
대박..
....그렇게 과외에서 돌아가던 길에 김남우 선생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음...
사실..층간소음 이야기는 꾸며낸걸지도..
그리고 이 이야기 직후 김남우 선생은.... (하략)
김남우 엄마 얘기가 너무 소름돋았어요 ㄷㄷ 층간소음에 살인까지 나는 세상이니 한편으론 이해도 된다는것도 무서움...
모든글 정주행 2번은 했거든여 넘나 좋아여 첨으로 댓남기네유
이 적당한 친절함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저는 이글이 탑 5안에 들어요
우와...
김남우 타이틀 시리즈 넘나 좋아요ㅠㅠ
늘 재밌게 잘 읽고 있어요! 그런데 중간에.. 사고 이후 엄마가 윗층 올라가 화내는 부분에서, '낮에 애들 안재워요?' 이부분 낮이 아니라 밤인 것 같아요 ㅎㅎㅎ
애들 낮에 30분이라도 자고 나면 밤에 에너지 풀 충전돼요....애들 낮에 재우면 그날 야근해야돼요..큰일나요..ㅠㅠ
우와..이 분 글이 점점...
-_ -)乃
사람은 악하죠. 선악의 정의가 애초에 사람이 만든거지만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 잔인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레 정의된거라고 생각함. 법을 비롯한 다양한 도덕규범, 종교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구요. 이런얘기하면 친구들은 싫어하긴하지만.. 복날님 소설이 종종 그런면을 자극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것 같아서 잘 보고 있습니다ㅋ
와 소름돋았어요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