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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구경

제목을 뭐라 해야할지 몰라서 대충 쓰고;;
약 30년전에 친정엄니와 뒷집 굿판에서 겪은 경험 써봅니다.
저는 현재 반백살이고 당시는 고3 수험생, 학력고사를 한두달 앞두고 있을 때였어요.
100퍼 실화.
주말 초저녁이었는데, 공부하다가 쉬고있을때
엄마가 뒷집에서 굿을 한다며 구경가자 하시는 말씀에
마침 환기도 필요하다 싶어 따라갔습니다.
뒷집은 그동네 유지로 쌀집과 정육점을 같이 하고있는 상당한 부잣집이었어요. (정원 크기만도 우리집 두 배 평수..)
서대문구 북가좌동 삼거리에 있는 집이었고, 그집 정원과 우리집 담벼락이 붙어있었습니다.
지금은 다 밀어버리고 아파트들이 들어섰던데,
제 어린시절 동안 저 동네에서 좀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도 많았었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하면 너무 길어지니 캇뜨!!)
여튼 굿을 하는 이유는
그집 주인아저씨의 막내동생이던가 노총각이 하나 있는데
이유없이 몇달동안 시름시름 아프고 병원에 입원해있는데 병명도 모른다 해서 굿이라도 해 보자- 였습니다.
엄마랑 제가 그집 거실에 들어갔을때는 무당아주머니랑 악사들이 굿채비를 다 하고 상도 다 차릴 무렵이었어요.
여느 젯상과는 조금 다른 굿상차림과 무당 복색들을 동네 사람들 사이에 서서 구경하고있는데,
만신님이 신을 불러와야 한다며
쌀바가지에 쌀을 한됫박 담고 마당에서 팔뚝만한 길이의 사철나뭇가지를 꺾어오라고 시켰습니다.
주인아주머니가 나뭇가지를 꺾어오자
쌀바가지에 꽂아서(그냥은 세워지지 않는 쌀의 양) 아무나 잡으라고 시켰습니다.
이걸 '대 잡는다'라고 하던데
동네 사람들이 돌아가며 한번씩 잡고 있고 만신님이 춤을추며 신을 부르는 주문? 을 하는데
몇 번을 반복해도 아무 변화가 없으니
만신님이 우리 엄마를 지목하며 대를 잡아보라고 했습니다.
좀 무섭다며 뒤로 빠져있던 울 엄니, 주저하면서 대를 잡고 다시 굿음악이 울리는데
웬걸,  
채 1분도 되지 않아 대 끝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잡았었으면
무당이랑 짜고 한거겠지- 했을텐데,
우리 엄마 잖아요 ㅜ
안 믿을 수가 없더군요.
신발을 받았는지 만신이 더 겅중겅중 뛰며 굿음악이 고조 되어가고..
엄마가 잡고 있는 대가 더 격렬하게 떨리더니..
쌀바가지에서 대가 둥- 띄워졌습니다.
말 그대로, 누군가 잡아당기듯.
-울엄니는 두눈을 꽉 감고 계셨고, 마치 나뭇가지가 엄니 팔을 강제로 당기는 듯 한 형상이었어요..;;;
그리곤 만신이랑 주인집 식구들이 계속 빌면서 뭔가 주문을 하니 대가 계속 떨리면서 방향을 바꿔 그집 안방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곤 안방에 있는 서랍장을 탁탁탁탁 두드렸습니다.
만신은 이집 총각한테 시집 못간 이 집안 처녀가 한풀이 하려고 붙었으니 저고리 한벌 내주라고 주인아주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서랍을 열고 좀 허름한  저고리 하나를 꺼냈는데,
그 와중에 대는 더 세게 서랍장을 치고 있었어요.
그리고 다시 만신이
"그거 아니래.  좀 고운 색 꺼내 봐." 라고하자
아주머니가 아래칸 서랍에서 자주색 동정깃 달린 분홍 저고리를 꺼냈어요.
(요 시점에서  혼자 풋- 했는데,. 이집 내외,  부잣집이면서 참 인색했거든요. 아까워서 버릴만한 거 꺼내주려 했던 속셈이 보여서 좀 웃겼어요.)
분홍저고리가 나오자,  대가 서랍장에서 떨어져 아주머니가 들고있는 저고리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만신이 그대로 들고 나오라 시키고
아주머니가 받들고 나오는 저고리를 때리는 대에 딸려 울엄니도 함께 마당으로 끌려나가
저고리를 불에 태우고
만신의 이끌림으로 다시 거실에 입장해서
좌정굿을 하고
서서히 대의 떨림이 잦아들고
대가 완전히 멈추자
울엄니는 그자리에 풀석 주저 앉으셨습니다.
꽉 감고 있던 눈도 그제서야 뜨이더군요.
기진한 엄니가 집에 가자고하셔서 굿판은 더 구경못하고 왔는데 우리가 집에 온 이후에도 몇시간동안 더 북 장구 소리가 울렸습니다.
놀라운건
집에 와서 엄니께 '그거 엄마가 흔든거 아냐?'고 물어보니
울엄니,..
" 대 잡으라고 해서 붙잡을 때 부터
하~나도 기억이 안 나. 무슨 일이 있었는데?"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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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경험때문에
지금도 저는 뭔가 다른 존재가 있기는 있구나- 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그 존재가 힘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뒷집 총각의 병도 아마 당시에 알려지지 않은 병이었겠죠.
울엄니 저 때 나이가 지금의 제 나이와 큰 차이 없었겠네요.
현재 요양병원에서 코마상태로 계신지 1년이 넘어갑니다.
당신도 가족들도 모두 힘든시간이죠.
작별 할 때까지 편안하시길 바랄뿐입니다.

댓글
  • 같이걸어요 2017/07/04 16:09

    마지막 말에 숙연해졌어요..
    마지막에 가족들도 어머님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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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잼러 2017/07/04 18:16

    두분 두줄 축하드립니다
    행복하게 사시길

    (EaiQfB)

  • 디독 2017/07/04 18:33

    중학교때인가 뒷집에서 굿하는 소리들려서 엄니랑 같이 구경갔는데 대나무 가지가 우리쪽으로 중력 무시하고 쑥 들어왔었다는 ㅋ
    태벡산인가 어딘가에서 무당 세명이 왔었는데 굿 다 끝나고 우리집 찾아와서 한참 이야기 하다가 갔는데 울 엄니 하시는 말씀이 거기 오늘 굿이
    힘들었던 이유는 남한산성 줄기자락에 왔으면 먼저 남한산성에 가서 인사하고 왔어야지 그 기초도 모르는걸 가지고 사람들 고민을 어찌 풀어주냐고
    난 그때 울 엄니가 그런 사람인줄 첨 알음  무당도 아니고 그냥 주부인데 가끔 스님들도 집에 찾아오고 목사님도 찾아와서 인생 이야기 하고...
    아가들 아프면 와서 손따고 가고 정말 신기한게 손따주면 울 엄니가 꺽꺽....트림을 많이 하심
    지금은 쫌 귀염넘치는  할머니가 되셨음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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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을걸었지 2017/07/04 19:00

    글을 재미있게 쓸 줄 몰라서 기억을 써 내려가다 보니 딱딱한 리포트 같이 돼 버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오베 감사합니다. 꾸벅.
    조만간 친정엄니와의 기억들도 차츰 멀어지는 추억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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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rp 2017/07/04 19:12

    어머님이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1디독님 어머님은 신침이셨네요. 저희 할아버지도 신침이셨는데...
    동네 아이들과 사람들 많이 살리셨죠.
    지금도 남한산성 계시면 찾아뵙고 싶네요. 하남 살아서요. ㅎㅎ
    귀염 넘치는 할머니가 되셨지만, 살아오신 생활이 편하시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신에 치이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귀여운 어머님과 행복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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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onlightou 2017/07/04 19:15

    허걱 나도 분명 어릴때 굿판에서 아주 얌전 하시던  둘재찝 작은 할머니 갑자기 신기를 보이며 춤을 추신후 나중에 기억 못하는거 보고 어린 기억으로 굉장히 신비 스럽게 기억하고 있습니다,장난 사기만은 아닌 뭔가 있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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