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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은 자존심이 상했고, 유성현은 죄책감을 덜었다.
유성현에게 한수진은 여신 같았다. 애써 비교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한수진에게 수도 없이 송민아에 대한 이야기들을 꺼냈었다.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았던 송민아에 대한 마음을, 한수진에게 만큼은 꺼내어 이야기 했었다. 여신과 비교했다.
한수진 덕분에, 이미 남자친구가 있는 송민아에게 쓸 마음을 덜어냈다. 한수진 같은 여자와 대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고, 스스로의 바보 같은 마음을 납득할 수 있었으며,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현실에 후회하지 않았다.
유성현이 성인이 되고 맞이한 첫 봄날의 첫 경험이 한수진이었다. 그건 망/상이나 꿈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었다. 도무지 현실이 될 리 없었던 복권에 당첨 된다든가, 천사의 강림을 마주한다든가, 하늘을 나는 초인이 되는 것과 달랐다.
상상만 했던 일이 현실 되었을 때, 유성현은 한수진을 갖고 싶었다.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유성현은 한수진으로밖에 채울 수 없는 마음의 구멍을 내버려 두지 못했고,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현실들을 후회하기 시작했었다.
유성현은 송민아와 민효정을 그런 식으로 대한 걸, 한수진을 탓했다. 한수진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그런 선택들을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주어지면 또 한수진과 이어질 수 있다는 현실에 만족했었다.
결국 유성현에게 한수진은 절대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한수진이 자신과의 만남이 정치적인 관계였다고 했다.
“선생님과 저는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관계였겠네요.”
“세상의 많은 정치인들과 비슷하지.”
“단순히 O스 파트너라고 부르는 것보단 낫네요.”
“그렇게 말하는 건 너무 가혹하잖아.”
유성현은 죄책감을 덜었지만, 한수진은 자존심이 상했다.
아무리 아니었다고 말해봤자, 한수진은 유성현을 사랑했다. 누군가 물어봐 줄 사람도 없겠고 한수진의 태도를 지켜본 사람도 없겠지만, 한수진은 스스로에게 유성현을 사랑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이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차준호로 겪은 상처를 아물게 해준 것도 유성현이었고, 학생주임과 계속 어울리게 한 것도 유성현이었으며, 송민아와 민효정을 견제하게 한 것도 유성현이었다. 그 수많은 욕구불만의 이유가 유성현이었는데 그걸 말해줄 수는 없었다.
유성현 때문에 그렇게 계속 나이 많은 남자들을 만났다.
후회 대신 스스로를 용납할만한 이유를 애써 만들어 냈는데, 유성현이 만족한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유성현이 단 한마디라도 그게 아니었다고 말해줬더라면 좋겠다는 게 더 자존심 상했고, 우리가 사랑했더라면 어땠을지 지금도 궁금하다는 게 마음 아팠다.
“우리가 사랑은 하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말하는 건 가혹해”
“사랑이 그렇게 어려웠을까요.”
“우리라면 충분히 그랬잖아.”
“다행이에요. 선생님이 이제라도 그분을 만나서”
“넌 지금 강보람을 만나고 있다며?”
“대체 선생님이 모르는 건 뭐예요?”
“나를 잘 모르겠는데”
한수진은 너를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하려다 마음을 바꿨다. 어쨌든 사실이었고, 솔직한 대답이라 후련했다. 한수진이 고갤 돌려 유성현을 바라보니, 유성현이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성현은 항상 어른스러웠던 한수진이 오늘따라 소녀처럼 보인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렸다. 그런 한수진이 자신을 돌아보자 어쩐지 마음에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곁에 있는 한수진이 매우 멀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성현이 아쉬움에 애써 웃어보였고, 한수진은 씁쓸한 미소를 피해 유성현의 어깨에 기댔다.
“마지막으로.......”
“그래 마지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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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었지.”
“.......다행이네”
“오빠를 사랑했으니까 만났지. 당연한 거잖아. 그렇게 바람을 피우는 남자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다시 만날 수 있었겠어?”
“미안해”
“됐어 이제 와서 할 말이 아니야.”
사실, 더 미안한 건 송민아였고, 박해진은 후회하고 있었다.
송민아는 그날의 일들을 모두 생생히 기억했다. 그토록 여러 번 헤어지길 반복했던 박해진이 평생 내 곁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던 날이었다. 군대 가기 직전의 박해진은 전에 알던 박해진과 달라져 있었다.
어쩌면 이런 박해진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언제 다시 헤어질지 모를 박해진이 아니었다. 박해진과 함께 할 현실적인 미래들을 떠올리게 되면서, 마음에 남은 유성현의 흔적이 드러났다.
여러모로 곤란했던 상황들이나 유성현이 처했던 문제들에 대한 연민이 아니었다. 그런 건 모두 핑계라는 걸 송민아 스스로 알고 있었다. 평생을 함께 해야 할지도 모를 남자를 선택하기에 앞서 생긴 갈등이었다. 그렇게 한 남자의 여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그 모든 감정의 이유들을 박해진의 탓으로 돌린 게 미안했다.
“오빠. 우리가 처음 헤어졌을 때 기억나?”
“그런 걸 지금 얘기하고 싶냐?”
“그때 말이야. 다른 보통의 연인들처럼 그냥 헤어졌더라면 어땠을까?”
“......그냥 끝났겠지”
“아니. 곧바로 다시 만나는 게 아니라 이만큼의 시간이 지나서 우리가 다시 만났다면 말이야. 난 나쁘지 않았을 것 같아.”
“그냥 오래된 추억처럼 느껴졌겠지 뭐”
“오빠도 나를 계속 다시 만나온 게 후회되지?”
박해진은 계속 헤어지게 되었던 모든 일들을 후회했고, 송민아는 박해진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게 또 미안했다. 송민아는 아직도 모든 걸 박해진의 탓으로 돌리고 싶었다.
식탁에 팔을 괴고 기댄 박해진이 송민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송민아는 그런 박해진의 눈을 마주보다 시선을 돌리며 다시 말했다.
“오빠가 날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알아.”
“너도 날 좋아했었잖아. 좋았던 날들은 없었냐?”
박해진도 세상의 많은 남자들처럼, 그녀 같은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후회하는 것처럼, 송민아와 있었던 모든 순간들을 아쉬워했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그 시간들을 후회했다. 한 순간도 놓치지 말아야 했을 그 시간들을 낭비했던 걸 후회했다.
단 한 순간이라도 송민아가 행복했던 시간이 있길 바랐다.
“그런 걸 기억해서 뭐해”
“하긴 그러네. 이 마당에 그런 걸 기억한다는 게 웃기지.”
“......내 방에서 처음으로 키스했던 날.”
“나도 그 순간은.......”
“내 방이었잖아. 그러니 잊을 수 없지. 내 방에 들어갈 때마다 오빠가 있는 것 같았으니까. 침대에 앉아 있으면 오빠랑 키스하던 게 떠올랐거든.”
“우리 그땐 참 순수했지”
“그 순수함이 별로 오래 가진 못했지?”
“그랬지?”
박해진이 바보처럼 웃으니, 송민아가 지겹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순수한 걸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수녀님은 어떻게 꼬신 거야?”
“넌 순수한 걸 좋아해서 유명한 바람둥이를 만나냐?”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난 계속 오빠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아.”
“그럼 또 헤어질 계획이야?”
“이별하면 행복해지겠어? 그런 걸 미리 생각하고 누굴 만나”
“이번엔 잘 됐으면 좋겠다.”
“그래....... 오빠는 나하고 언제가 제일 좋았어?”
“나는 너랑 있었던 모든 시간들이 좋았던 것 같아. 정말 그랬어.”
“그랬겠지. 만나면 하기만 했으니, 하는 게 좋았다는 얘기잖아. 지겨워”
다시 박해진이 바보처럼 웃었다. 송민아는 넌더리가 난다는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작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오빠. 이제 우리 그만 미안해하자.”
박해진이 뭔가 대답하려는데, 인터폰이 울려서 일어나 받았다. 작업이 늦어져서 미안하다는 얘기였고, 이제 곧 식당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란다. 이런저런 상황을 설명했지만, 박해진의 귀에는 별로 들리지 않았다. 그저 알았다며 대답하는 박해진을 뒤에서 송민아가 안았다.
“마지막으로 우리 오빠 한 번 안아보자”
“이미 안았잖아.”
“미안해서 그래.”
“그만 미안해하자며”
“사랑했었다는 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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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내가 했지.”
“저도 사랑했어요. 차 과장님이 아니었을 뿐이죠.”
“가슴 아픈 얘기네”
“그렇지 않아요. 덕분에 제가 견디고 차 과장님이 견디고 있으니까요.”
“신앙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어. 주님께는 내가 따로 용서를 구할게”
“차 과장님을 위로하고 싶어요.”
차준호는 짜증이 났고, 민효정은 슬펐다. 여전히 차준호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었지만, 정작 슬픈 건 민효정이었다. 차준호는 자신의 사랑들을 형 때문에 포기한 것들에 화가 났다. 민효정은 사랑했던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해준 사람을 사랑하지 못해서 슬펐다.
위로라는 말에 차준호가 넌더리를 냈다. 차준호가 위로를 구하지도 않았고, 끝내 얻지 못한 사랑에 후회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사랑은 본능의 연장이다. 사랑이라고 그럴싸하게 말해야 짐승과 조금 달라진다.
사랑은 결국 이별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평생을 사랑해온 부부도 마지막 순간에는 결국 이별을 맞이한다. 이번엔 다르다고 스스로를 속여 봤자. 이별 없는 사랑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민효정은 그런 차준호를 알기에 슬펐다. 사랑해도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받아도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에 익숙한 민효정이었다. 당장 사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차준호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차준호가 간신히 짜증을 억누르며 말했다.
“효정 씨가 날 위로할 필요도 없고, 미안해 할 필요도 없어. 사랑은 나 혼자 했으니까.”
“사랑은 언제나 혼자 하는 거잖아요.”
“주님은 서로 사랑하라지 않았어?”
“사랑받는 건 내가 결정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러니, 결국 서로 사랑하더라도 내가 사랑을 해야죠.”
“그래. 난 이제 다른 사랑을 하고 있어. 효정 씨는 그 선교사를 사랑하는 거야?”
“네.”
“하긴. 그러니까 선교활동까지 같이 떠날 생각을 하겠지.”
“그래서 조금 두려워요.”
“스스로 선택할 문제잖아. 두려움을 이겨내든가, 포기하든가”
“제가 알던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그만 보고 따라 나서는 일이잖아요. 문명세계를 떠나게 되는 거예요. 두려운 게 당연한 일이잖아요.”
“두려운 게 당연하니까 괜찮다는 얘기로 들리는군.”
“아니요. 사랑처럼, 두려움도 당연한 건 없어요. 위로 받을 수 있으면 좋은 거예요.”
“그래서 날 위로할 생각이었어?”
“위로받고 싶어요.”
민효정이 일어나 차준호의 곁에 다가와 앉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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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적당히 비겁하지만, 때론 정의로운 사내가 이 시간 즈음부터 있기 시작한 날입니다. 별 대단한 날은 아니지만, 이런 날 제가 소설을 쓰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선추천 후정독~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추천해 놓고 일 좀 하다 올께요 ㅋㅋㅋ
항상 고마워요 ㅎㅎ
전 북풍님이 국내 네임드 작가님이실거라고 믿고있습니다
이렇게 미미한 사이트에서 재능을 뽐내주시니 영광이네요
음.. 생일이신가요? 축하드립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생일이시라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생일 축하 드립니다~ 늘 잘 읽고 있습니다^^
생일이긴 한데, 평소와 다를 건 별로 없네요. 아침에 잡채를 먹긴 했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내년 생일에는 좀 더 좋은 글을 쓰고 있다면 좋겠네요.
축하드려요! 잘 읽었습니다.
생일 축하드립니다! 공교롭게도 저에겐 특별한 사람과 같은 생일을 공유하고 계시군요. 자주 댓글은 남기고 있지 못 하지만 항상 정말 잘 읽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시차 때문에 자기 전에 읽게 되는데, 덕분에 침대에 누워서 종종 사랑, 인연 등에 대해서 곱씹게 되네요. 아무튼 이 연재글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유종의 미 잘 거두시고, 좋은 하루 보내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제 친구랑 생일이 똑같으시네요~ 생일 축하드립니다~! ^^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생일 축하 드립니다. ^^
생일 축하 드립니다. 오늘도 잘 보았습니다. 점점 마지막으로 가는 것으로 보니 아쉬워지네요.
그동안없던사랑을오늘한꺼번에다쏟아붓네요. 생일축하드립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당신의 생일을~ 해피벌쓰데이 투유~
결자해지라고 다들 서로의 짐들을 덜어내고 있네요. 살면서 느끼는 거지만 금이간 관계는 계속 붙이며 이어봤자 결국...
미련일 뿐이더라구요
다들 새로운 사람 만나 각자의 사랑에 빠졌으면 좋겠어요
늦었지만 Happy birthday to you~
이젠 뭔가 생일 축하 받는 게 부끄럽네요. 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