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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을 보고.. 홀로코스트, 그 비극적 아이러니 (스포 포함)


'마크 허만' 감독의 2008년작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을
10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나 다시 보았습니다.
원제는 [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
아일랜드의 작가 '존 보인'의 동명소설이 원작이죠.
'앨런 J. 파큘라' 감독의 [소피의 선택](1982),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1993),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2002)...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이른바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하는 영화들은
수없이 많지만...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묘사가 거의 없으면서도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고발하는 힘에 있어
이 영화를 능가할 작품은 쉽게 떠오르지 않네요.
그런데 이 영화는 그 지점에서
한 걸음을 더 딛여 윤리적 질문을 던집니다.
'삶의 비극적 아이러니를 다룸에 있어
이보다 더 독하고 잔인한 영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엔딩이 강렬한 영화이기에
아직 이 작품을 감상하지 못하신 분들은
먼저 영화를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시점,
독일군 최고 엘리트급 장교의
여덟 살 아들 '브루노(에이사 버터필드)'는
가족과 함께 베를린에서 폴란드로 이사를 갑니다.
새로 이사를 간 집 뒤에 농장으로 보이던 곳은
사실 아우슈비츠 강제 노동 수용소였고,
간절하게 친구를 찾던 브루노가 우연히
수용소의 동갑내기 '슈무엘(잭 스캔로)'을 만나면서
그는 역사와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싸입니다.
"유년기는 이성의 어두운 시간이 자라나기 이전에
소리, 냄새, 시각으로 재단된다."
영국 시인 '존 베처먼'의 말을 자막으로 깔며
브루노의 평화롭고 천진난만한 일상을 보여주면서
이 영화는 시작됩니다.
끔찍한 전쟁의 현실과는 상관없이
마냥 평화롭기만 했던 브루노의 일상은
아버지의 전근으로 폴란드로 이사를 가자마자
곧바로 균열이 가기 시작하죠.
브루노의 시각, 청각, 후각이 차례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세상과 진실을 향해 열리며
여덟 살 소년의 내면은 요동을 치기 시작합니다.
가족보다 직업적 임무를 우선시하는 아버지,
날조된 역사를 강제로 주입시키는 가정교사,
기존의 질서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누나는
브루노의 심리적 동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인간다움과 정의로움을 잃지 않은 엄마는
남편의 각성을 눈물로 호소하지만
역사의 그릇된 흐름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죠.
그 무엇보다 친구가 그리웠던 브루노가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슈무엘을 만나면서
둘의 순수한 우정은 비극을 잉태합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순간적으로 내뱉은 거짓말이
슈무엘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히자
브루노는 연민과 죄책감을 더해
더욱 더 우정에 매달리죠.
아우슈비츠의 실상을 왜곡하고 미화시킨 영화를
몰래 훔쳐본 후 아버지 품에 안기며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던 브루노는
어느 날 갑자기 슈무엘의 아버지가 사라지자
슈무엘을 돕겠다고 자처하고,
그러면서 이 영화는 참혹하디 참혹한 결말을 향해
한 발짝 더 다가섭니다.
공동체의 그릇된 이념과 신념이
한 가족을 어떻게 전염시키고
한 가족을 어떻게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지를
한 아이의 순수하고 맑은 감각을 통해
침착하고 담백한 문법으로 보여줌으로써
이 영화는 비극의 강도를 역설적으로 가중시킵니다.
아버지 역을 맡은 '데이빗 듈리스'도 훌륭하지만
엄마 '엘사' 역의 '베라 파미가'가 매우 돋보입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배우인 그녀를
열 여덟 번째 배우 포스팅의 주인공으로
미리 예고해드립니다.
'에이사 버터필드'...
1997년생, 촬영 당시 11세였던 그는
2011년, '휴고'로 성장하더니
얼마 전 [저니스 엔드]의 '롤리' 소위가 되어
우리들에게 돌아왔죠.
어린 배우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흐뭇함을 느낄 수 있음은
영화팬들의 행복에서 절대 빠질 수 없습니다.
영화역사의 모든 아역들 중에
이 영화 속 '브루노'는 다섯 손가락에 뽑아도
무방할 정도로 인상적입니다.
브루노의 가족이 다시 베를린으로
이사를 가게 되는 바로 그 날,
비극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슈무엘에게 미리 부탁한,
줄무늬 파자마로 부르던 그 옷으로 갈아입고
브루노는 철조망을 지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들어가죠.
슈무엘의 실종된 아버지를 찾으러...
눈 앞에 펼쳐지는 끔찍한 현실을
미처 받아들일 수 있기도 전에
브루노와 슈무엘은 유대인들 무리에 휩쓸린 채
처형장인 가스실로 끌려갑니다.
옷을 벗고 샤워를 기다리고 있었건만...
브루노가 사라졌음을 알고
그제서야 수용소로 달려가는 아버지,
자신이 관리를 책임지던 시설에서
아들의 죽음을 마주한 아비의 망연자실,
남편의 울부짖음을 듣고
브루노와 슈무엘이 우정을 나누던,
그 철조망 앞에서 오열하는 엄마...
가스실 밖에는...
죄수번호로만 구분되던,
누군가의 눈에 줄무늬 파자마를 닮았던 옷들만이
주인을 잃은 채 어질러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극적 아이러니에
관객들은 자기도 모르게 공범이 됩니다.
유대인들의 죽음은 어쩔 수 없다 할 지라도
브루노의 죽음만큼은
막고 싶었던 그 간절한 바람...
그 바람 자체는 분명 선한 의도이겠지만
자신의 저울로 목숨들의 무게를 재면서
누군가의 삶과 누군가의 죽음을 함부로 재단하는,
우리의 끔찍한 오만과 편견...
인종, 민족, 지역, 종교, 성, 나이, 사회적 계급...
어떤 것을 빌미로 해서든
혐오와 증오의 대상을 찾아서는
경멸과 분노를 쏟아내는 데 여념이 없는
우리의 시대, 우리의 세상...
우리에게 죽어도 무방한 유대인들은
지금 누구입니까,
우리가 그렇게 살리고 싶었던 브루노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하여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나치 독일이 패멸한 지 무려 7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시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댓글
  • 헤네스az 2018/12/13 02:04

    이거 뭔지도 모르고 추천받아 봤다가 휴........

    (btdOXN)

  • flythew 2018/12/13 02:06

    또 잘봤습니다.
    베라 파미가 최고!
    다음 포스팅도 기대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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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12/13 02:06

    헤네스az// 심리적 충격이 몹시 큰 영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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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12/13 02:08

    flythew// 베라 파미가, 특이하게 매력적인 배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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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요정 2018/12/13 04:30

    아~~~ㅜㅜ
    정확히 4시 10분에 영화 다 감상했습니다
    사실 연을 쫓는 아이와 줄무늬 파자마는 이상하게 포스터도 비슷한 느낌이고 원작도 유명해서 소설부터 다 읽고 나서 봐야겠다고 생각한 영화였어요..시간이 언제 걸릴지 모르더라도요 ㅎㅎ
    혁명전야님께서 이렇게 추천해주시던 레미제라블을 한시간 정도 본 후 글이 혹시 올라오진 않을까해서 확인 한담에...이 영화가 올라온걸 보고 바로 봤습니다!!
    제가 갠적으로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들은 진짜 별의별 욕을 다하고 그냥 넘 슬퍼서 잘 안보게...ㅜㅜ
    그래서 언급해 주신 영화들 중에선 쉰들러 리스트만 봤고요
    소피의 선택이란 영화도 홀로코스트를 다룬 거였군요...첨 알았습니다..그냥 멜로물인줄..
    삶의 비극적 아이러니함을 다룬 영화들 중 이렇게 잔인하고 독하고..ㅜㅜ
    진짜 제가 이 생각을 다 보면서 바로 들었네요
    그리고 초반부터 나온 유년기엔 청각 시각 후각..이 말을 띄운 이유가...보는 내내 영화의 내용과 연결짓게 되어서 넘나 슬펐습니다
    지금 그냥 눈물 콧물 범벅이네요..
    또한 베라 파미가라는 여배우가 나오는거 보고 반가운 맘에 깜놀했고요
    이 배우의 특집을 다루신다는 말씀에 넘 기대됩니다
    사실 베라라는 배우는 그냥 아무 감흥 없는...음...이뿌다..이정도의 배우였는데..많이 본것도 없고요
    근데 이 한편으로 저에겐 완전 각인된 여배우가 된거 같아요..
    이쁨을 넘어선....마지막 엔딩의 처절함과 슬픔 잊을수가 없습니다
    사실 초반의 유태인 친구와 철조망을 사이로 첫 대면할때부터 눈물 막 흘르는데...
    미치는 줄 알았네요..
    혁명전야님의 리뷰들 중에서 가장 맘 아프고 슬픈 리뷰가 될거 같습니다..
    잠들기 전 다시 한번 읽고 자야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런 좋은 영화 추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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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요정 2018/12/13 04:31

    헤네스az// 하~~저도 그냥 두 소년의 단순한 우정...그리고 당연 슬픔은 있겠지 했는데 이정도 일거라고 생각도 못했네요..
    진짜 너무나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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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요정 2018/12/13 04:37

    flythew// 베라 파미가 정말 완전 빠져버렸네요..이 영화보고서요ㅜㅜ
    flythew님의 영화 추천 목록도 메모장에 엊그제 정리했네요..ㅎㅎ
    항상 좋은 영화 추천 진짜 감사드립니다!!!
    님 말씀대로 시간 나는대로 차분하게 저녁에 볼려고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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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요정 2018/12/13 04:42

    혁명전야//마지막 비극적 아이러니함의 관객들도 공범이 된다는 말씀에 진짜 더더욱 무섭게 다가오기도 하고요..
    갠적으론 독일의 만행에 대한 영화들 보면 저절로 항상 일본이란 나라가 자연스레 분노로 떠오르게 되고요
    하~~며칠전에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의 서로의 손잡음으로 먹먹하게 만들더니
    오늘 이 새벽에 두 소년의 손 맞잡음으로 완전 통곡을 했네요..ㅜㅜㅜ
    이 손 맞잡음과 베라님의 통곡장면이 뇌리에서 떠나가질 않을거 같습니다..
    후유증 정말 오래 갈 거 같아요..
    다시 한번 이런 좋은 영화 추천과 리뷰 넘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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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12/13 04:55

    안녕요정// 아이고... 제 리뷰를 읽자마자 바로 보셨군요. 이런 점에서 확실히 운명적으로 연이 닿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가 있는 것 같네요. 사실 예전에 예전에 보았다가 다시는 안 볼거라 다짐했던 작품인데, 얼마전 에이사 버터필드(아역)가 성인이 되어 출연한 저니스 엔드(1차대전 배경 전쟁영화)를 보고는, 갑자기 찾아서 보게 됐답니다. 후유증이 좀 클 거에요. 가스실, 꼭 마주잡은 두 손... 좋은 영화들, 참 많아요. 먹먹한 심경 잘 추스리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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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회말2아웃 2018/12/13 17:42

    잘 읽었습니다.
    John Boyne, 원작자 이름은 오타인 것 같습니다.
    던칸 존스가 이 영화에 출연했던가요?
    확인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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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12/13 17:55

    9회말2아웃// 실수를 두 번이나 했습니다. ㅠㅠ 지적 감사드리고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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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라악개 2018/12/13 21:10

    우리 영화계는 왜 일본의 전범행위를 소재로 이런 영화들을 만들어내지 못하는걸까요?
    흑백논리에 빠지지 않는 영화 만들었다고 멍멍이 같은 소리를 하질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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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호랑이 2018/12/13 21:14

    이거 보고 3일 밤잠 안온 기억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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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tchy 2018/12/13 21:34

    아버지 벌받았다 하기엔
    그 아이들이 너무 순수했어요
    그래서 마음이 더 아팠던거 같네요
    오래전에 본건데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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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윤RanomA탱율팁] 2018/12/13 23:54

    "유대인들의 죽음은 어쩔 수 없다 할 지라도
    브루노의 죽음만큼은
    막고 싶었던 그 간절한 바람..."
    영화는 안봤지만, 저 구절 때문에 쉽게 다가가기 무서울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내면의 어두운 점을 다시 확인할 거 같아서요. 제 자신을 솔직하게 인정하면 그때 마주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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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12/14 00:08

    유라악개// 일시적 카타르시스, 일회용 감동을 주는 데만 급급한 풍토가 아쉽기는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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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12/14 00:09

    큰호랑이// 한 번 본 순간 가슴 속에 문신처럼 새겨지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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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12/14 00:11

    itchy// 아버지, 나치 독일, 더 나아가 나치즘적인 가치관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서 벌 받게하는 대상으로서, 작가나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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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8/12/14 00:12

    [식윤RanomA탱율팁]// 이 영화 앞에서 한 점 부끄럼없이 떳떳한 사람... 한 명도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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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브우퍼 2018/12/14 10:17

    베라 파미가 에 빠지게 된 계기가 저는 소스코드를 보고나서죠..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여배우였습니다.
    그러고 찾아보니 하정우하고도 영화를 찍었던...베드씬도 있고...하정우 다가진넘...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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