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의 영정사진을 재미삼아 찍는 사람들.
저승바다에 발목을 담그고 살아도 오늘 할 밭일은 해야한다는 내 할머니.
우리는 모두 시한부.
정말 영원할 것 같은 이 순간이 끝나는 날이 올까? 아직은 믿기지 않는 일이다.
나중에 희자이모에게 물었다.
늙은 모습이 싫다며, 왜 화장도 안 하고 사진을 찍었냐고.
희자 이모가 말했다. 친구들 사진 찍을 때 보니, 오늘 지금 이 순간이 자신들에게는 가장 젊은 한 때더라고.
민호는 솜사탕을 들고 자는 희자 이모를 보며
문득 이모가 제 입 안의 솜사탕처럼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그 날 민호는 만화 영화가 두 번, 세 번 반복해 나올 때까지 오래도록 이모를 안았단다.
언젠간 엄마를 이렇게 안고 싶어도 안지 못할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테니까.
이모들은 뻔뻔하지 않았다.
감히 칠십 평생을 죽어라 힘들게 버텨온 이모들을 어린 내가 다 안다고 함부로 잔인하게 지껄이다니.
후회했다. 내가 몰라 그랬다고, 정말 잘못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만약 저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차 한 잔이 아니라
희자 이모에겐 붉은 와인 한 잔, 정아 이모에겐 쓰디쓴 흑맥주 한 병을 사줬을텐데.
어떤 사람의 인생도 한 두마디로 정의하면 모두 우스꽝스러운 코미디가 되고 만다.
내 인생을 그렇게 한 줄로 정리해 버린다면 나는 정말 외로울 것 같다.
내 인생을 그렇게 한 줄로 정리해 버린다면 나는 정말 외로울 것 같다.
누군가 그랬다. 우리는 다 인생이라는 길 위의 쓸쓸한 방랑자라고.
그리고 그 길은 되돌아갈 수 있는 길과 절대 되돌아갈 수 없는 두 갈래 길로 분명히 나누어져 있다고.
어떤 길은 이미 지나쳐왔어도 마음만 있으면 되돌아갈 수 있어서 즐거운 설렘이 되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싶은 찬란한 희망이나 기대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길은 이미 너무 멀리 와서, 혹은 이미 돌아가는 길이 가로막혀 되돌아 가려야 갈 수 없는 길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아저씨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렇게 딸을 보냈다.
그렇게 아저씨의 진실이 묻혔다. 나중에, 나중에 술취한 아저씨가 나에게 해 준 얘기다.
나는 물었다. 그렇게 직장까지 잘렸으면서, 아버지로서 도리를 다 했으면서 왜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못했느냐고.
그리고 그 때 그 진실을 왜 말 안했냐고.
아저씨 대답은 간단했다. 자신은 그 시대 남자들이 다 그랬듯 자식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고
진실이고 뭐고 무슨 말을 할 게 있냐고... 딸을 성추행한 놈보다 자신의 가난이 더 미웠는데...
바보같은 아저씨.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순영언니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인생이란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다는 걸, 죽어서도 뜨거운 화해는 가능하다는 걸 나는 그 때 알았다.
어쩔 수 없는 모든 것을 순리라고 받아들일 때 난 어른들이 산처럼 거대하고 위대하고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살면서 아무리 경험 많은 어른이어도 이 세상에 내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경험은 그 누구에게나 한 번뿐.
그래서 슬픈 건 어쩔 수 없이 슬픈 것.
늙은 딸이 늙은 엄마를 그렇게 보냈다.
엄마도 엄마가 있었어?
- 그럼 있었지. 네 할머니. 일찍 돌아가셔서 네가 못 봐 그렇지.
이상하다. 엄마가 엄마가 있었다는 게.
- 나도 있었어, 엄마.
경험이란 그런 것인가. 충남이모처럼 가보지 않아도 그 끝을 훤히 아는 것.
그렇다면 지금의 내 혼란은 다만 경험이 없어서인가.
나이들고 싶었다. 그래서 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이 혼란을 이겨내고 싶었다.
나 이런 데 데려와줘서 고마워요.
- 나도 지금껏 네가 살아줘서 고맙다.
나중에 또.. 아니다. 안 와도 되겠다. 지금만으로도 좋다.
- 그래. 지금만이라도 좋다.
막장 드라마잖아요, 막장. 이모들이 하는 얘기는 다 막장이잖아.
- 인생은 막장이야.
나는 내 소설에 나오는 어른들이 예뻤으면 좋겠어요. 읽기 편하게. 얼마나 좋아. 내가 왜 구질구질하게 그런 얘기를 다 써야돼.
신세한탄 이모들, 잔혹동화 같은 인생사, 짠하고 슬프고 비참하고 들을 수도 없는 그런 얘기. 재미없게.
- 그게 진실이니까. 그게 우리 늙은이들의 삶이니까.
까짓 복수 좀 하면 어떠랴.
구차한 육십 칠십 평생이 한 순간 만이라도 가슴 뚫리게 시원해진다면.
그래서 칠팔십 힘든 인생이 조금이라도 위로받는다면, 보상이 된다면 이들에게 복수가 뭐 그리 나쁜 거겠는가.
곧 죽을 인생이니 곧 끝낼 인생이니 그냥 살던 대로 조용히 살라는, 어른들에 대한 젊은 우리들의 바람은 또 얼마나 잔인한가.
누군가 그랬다. 우리는 살면서 세상에 잘한 일보다 잘 못한 일이 훨씬 더 많다고.
그러니 우리의 삶은 남는 장사이며 넘치는 축복이라고.
그러니 지나고 나서 후회말고, 살아있는 이 순간을 감사하라고.
정말 삶은 축복이고 감사일까?
- 엄마가 너무 무섭고, 억울하고, 너무 살고 싶고... 엄마 무서워.
그 밤, 산 같은 엄마가 끝까지 엄마답게, 바다 같은 엄마가 끝까지 투사처럼 버텨내지 못하고,
참으로 미덥지 않은 자식 앞에서 아이처럼 무너져 내렸다.
너는 왜 맨날 그렇게 사는 게 힘들어.
사는 게 왜 맨날 힘들어서 내가 필요할 땐 없어.
너는 왜 맨날 그렇게 힘들어서 내가 맘 놓고 기대지도 못하게 해.
엄마의 암 소식을 처음으로 영원 이모에게 전해들으며, 나는 그 때 분명 내 이기심을 보았다.
엄마 걱정은 나중이고, 나는 이제 어떻게 사나. 그리고 연하는.. 어쩌나.
나는 오직 내 걱정뿐이었다.
그러니까, 장난희 딸, 나 박완은..
그러니까, 우리 세상 모든 자식들은 눈물을 흘릴 자격도 없다.
우리 다 너무나 염치없으므로.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부모가 자식을 더 사랑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아마 그 말은 부모된 입장에 선 사람이 한 말일 것이다.
우리 자식을의 잘못은 단 하나.
당신들을 덜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영원히, 아니 아주 오래 우리 곁에 있어 줄 거라는 어리석은 착각.
인생이란 게 참 잔인하단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날은 그렇게 모든 걸 하나라도 더 가지라고, 놓치지 말라고, 악착같이 살라고
내 어머니의 등을 떠밀더니 이제는 늙어선 자신이 부여잡은 모든 걸, 그게 목숨보다 귀한 자식이라 해도 결국 다 놓고 가라고...
미련도, 기대도 다 놓고 훌훌 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으니 인생은 그들에게 얼마나 잔인한가?
게다가 인생은 언제 끝날지 그 끝도 알려주지 않지 않는가.
올 때도 갈 때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 인생에게 어른들을 대신해 묻고 싶었다.
인생아, 너 대체 우리 보고 어쩌라고 그러느냐고.
나는 늙은 나의 친구들이 또 다시 길을 떠난다 할 때
그 말이 농담이거나 그저 이룰 수 없는 꿈을 말하는 거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그 날 이후로 그들은 정말 번번이 길을 나서고 있었다.
그리고 여행길이 아무리 험난해도 결코 멈출 줄을 몰랐다.
어차피 살아온 삶도 힘들었던 그들에게 길 위의 여행의 고단함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할머니, 인생을 딱 한마디로 정의하라 그러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 별 거 없지 뭐.
그럼 삶이 너무 슬프지 않나?
- 별 거 없는데 슬플 게 뭐 있어? 별 거 없는 인생 이만하면 괜찮지. 그렇게 생각해야지.
구십평생 살아온 인생이 별 거 없다는 할머니 말씀.
어쩌면 그게 정답이리라.
별 거 없는 인생에 남겨진 거라곤 고작 이기적인 우리 자식들이 전부.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왜 나는 지금껏 그들이 끝없이 죽음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고 생각했을까.
그들은 다만 자신들이 지난 날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살아 온 것처럼
어차피 처음에 왔던 그 곳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거라면
그 길도 초라하게 가지 않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너무도 치열하고 당당하게 살아내고 있는데.
다만 소원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 좀 더 오래가길.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게 조금 더 오래 가길.
이 드라마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정말 제발 꼭 보세요.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디마프 정말 따뜻한 드라마에요
한 회마다 몽글몽글해지는 가슴하며 시큰해지는 코라니..ㅜㅜㅜ
ost도 정말 좋습니다!!
디마프 진짜 인생드라마에요.
혜자쌤이 치매 걸려서 등에 배게짊어지고 다른분들이 혜자쌤 찾아다닌 그 에피소드가 가장 슬펐어요. 눈물콧물다뺀 에피...
엉엉 울면서 봤는데
또 울어요 . . .
진짜 대사 너무 좋은데 감동
근데 고현정씨랑 조인성씨 사이의 대사가 좀
붕 뜨는 느낌이에요!
.
드라마는 안 봤는데 읽고 있으니 눈이 그렁그렁 해졌어요.
본작품의 작가 노희경 작가의 21년전 작품 리메이크가
다음주 토요일 방송..
아마도 디마프보다 더 눈물 콧물 다 뽑아낼듯요..
인생드라마 중 하나ㅠㅠㅠㅠㅠㅠㅠ
엄마의 암 소식을 처음으로 영원 이모에게 전해들으며, 나는 그 때 분명 내 이기심을 보았다.
엄마 걱정은 나중이고, 나는 이제 어떻게 사나. 그리고 연하는.. 어쩌나.
나는 오직 내 걱정뿐이었다.
그러니까, 장난희 딸, 나 박완은..
그러니까, 우리 세상 모든 자식들은 눈물을 흘릴 자격도 없다.
우리 다 너무나 염치없으므로.
이 장면에서 진짜 통곡했는데..
고현정이 자기 뺨 때릴때 ㅠㅠ
광수도 정극연기너무 좋았고 걍 모든 배우들 인생연기..김혜자 선생님이랑 나문희선생님은 그 캐릭터 자체였음.한회 한회마다 눈물콧물 범벅 ㅠ ㅠ
진짜 제 인생드라마중에 하나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 추천하는 드라마에요
매 회 마다 감정이입이 되서 진짜로 많이 울었던거 같아요
제인생드라마 ㅠㅠ
언제나 주인공 엄마,아버지,할머니,할아버지로 나오던 배우들이 주연이 되고 주연 아니면 볼 수 도 없는 조인성은 휠체어탄 조연으로 등장.
그리고 그 관록있는 배우들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의 힘. 거기에 더해지는 노희경 작가의 필력.
(김은숙 작가의 "나 너 사랑하냐?" 이런 명대사가 아닌 철학이 담뿍담긴 소설을 읽는듯한...)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공감하면서 봤던 드라마네요. 어마어마하게 시집살이 했던 엄마의 첫째 딸로 태어나 커가면서 보고 들어왔던 많은 것들이 떠올랐었어요. 아예 같을 수는 없지만 그냥... 비슷한 것들이 많아서 보기 힘들었음에도 자꾸 보게되던 드라마요. 그래도 두번은 못 보겠더라구요. 마음이 힘들어서ㅠㅠ
집에 티비도 없는데 이거 찾아서 볼때 정말 행복했었는데...
벌써 1년도 더 넘었네.
덕분에 작년에는 엄마한테 전화 많이 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