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편
1598년 음력 11월19일
노량 해전
1598년 음력 9월부터 실행하여 음력 10월 초까지 진행되었던 대규모 군사작전이었던
조명연합군의 '사로병진작전(四路竝進作戰)'은 처참한 실패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왜군은 조명연합군의 마지막 반격을 무사히 막아내고 별다른 움직임 없이 조용히 철수만을 준비했으며,
조명연합육군 역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조명연합수군을 지휘하는 이순신은 왜군의 철수를 용납할 수 없었고,
명 수군 제독 진린 역시 이순신의 의견에 동조하여 함께 왜군을 공격하기로 계획하였다
음력 11월 18일
이순신은 함대를 이끌고 순천 왜교성에 주둔 중이던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를 공격하였다
조선 수군 전선 60여척과 명 수군 전선 300여척의 대함대였다
음력 10월에 있었던 조명연합군의 공격에 크게 위축되어있었던 고니시는 수군의 공격에 지레 겁을 먹었고,
곧바로 사천에 주둔 중인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고성에 주둔 중인 다치바나 무네시게, 남해의 소 요시토시의 함대와 연합하여
마찬가지로 300여척의 대선단을 이끌고 고니시의 구원에 나섰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이순신의 유인작전이었다
음력 11월19일
이순신은 노량 근해에 일부 조선 함대를 매복시켜두었다
시마즈 함대의 선봉대가 노량에 출몰하자, 조선 매복함대가 기습을 가했다
조명연합 수군이 모두 순천에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왜군은 초기의 기습에 수척의 함선을 잃었지만,
시마즈 요시히로는 차분하게 대응하여 매복함대를 포위섬멸하려고 하였다
이때 진린과 등자룡이 이끄는 명 수군 함대가 위기에 빠진 매복함대의 구원에 나섰으며,
매복함대와 함께 왜군을 상대하였다
이때 등자룡의 활약이 매우 대단하였다
잠시 후,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 본대도 전투에 참가하여 첨자찰진을 펼쳐
명 수군이 정면, 이순신의 본대가 좌측, 매복함대가 우측을 담당하여
어린진을 펼치고 있던 왜군을 삼면에서 압박하기 시작했다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무의공 이순신의 경상우수군이 왜군 선봉의 중앙을 돌파하는데 성공하며
전황이 매우 유리해졌으나,
시마즈 요시히로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였으므로 곧바로 상대적으로 함선이 취약한 명 수군을 향해 집중공격을 개시했다
명 수군은 장수 등자룡의 지휘아래 열심히 대응하였으나,
등자룡의 함선이 아군의 오폭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고 곧바로 왜군의 백병전에 걸려 등자룡이 전사하고 말았다
여세를 몰아 왜군은 진린의 대장선을 집중 공격하였다
하지만 이순신의 조선 수군 본대가 명 수군의 구원에 나서자 왜군은 더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때마침 물길이 바뀌어 왜군 함대는 관음포로 몰리게 되었고,
조명 연합수군은 관음포를 틀어막고 왜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오전 8시경,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총탄에 맞았다
"戰方急愼勿言我死"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적에게는 당연히 알리면 안되는 것이고, 아마 아군의 사기를 염려하여 명한 것으로 추측되는 그의 마지막 명령은
충실히 지켜졌다
하지만 이 소식은 조금씩 조금씩 아군 사이에 퍼져 이에 분개한
가리포첨사 이영남, 낙안군수 방덕룡, 홍양현감 홍득장, 초계군수 이언량 등의 많은 조선군 장수가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시마즈 요시히로의 왜군 함대는 더이상의 전투는 무익하다 판단하여
조명연합수군의 포위망을 간신히 돌파하여 후퇴하는데 성공하였다
순천 왜교성의 고니시 유키나가 역시 노량 해전으로 조명연합군의 시선이 몰린 것을 틈타
자신의 함대를 모두 부산으로 철수시키는데 성공하였다
명 수군 제독 진린은 충무공 이순신의 죽음에 통곡을 하며 슬퍼하였지만
왜군에게서 뇌물을 받고 그들의 퇴각을 용인하였으며
이를 이용하여 고니시 유키나가와 시마즈 요시히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왜국 본토로의 탈출을 성공하였다
그리고 이 노량 해전은 임진년부터의 7년 전쟁의 마지막 대규모 전투로 남았고,
며칠간 소소한 소탕전이 벌어지다 왜군의 전면 철수로 전쟁은 막을 내렸다
그 와중에 뇌물을 받아 쳐먹네 대단;;
결국 진리 ㄱㅆㄲ
그 와중에 뇌물을 받아 쳐먹네 대단;;
그 진린 후손이 나중에 조선으로 망명옴 ㅋㅋ
역시 중궉섹
실질적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
충무공 이순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로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도 그렇고 시마즈 가문은 죄다 부하들 희생시키고 돌파? 도망? 가는 게 특기인가 보네;; 그래도 가문의 근간이 부하들일건데 죄다 희생시키면 무슨 소용인가 싶어도 노량 때 그렇게 말아먹고도 세키가하라 때 주요 전력으로 참전하고, 또 그 후 10년 뒤에 류큐를 점령한 거 보면 가고시마 지역의 정력, 아니 저력이 대단한 건지 아니면 노량 때 그닥 희생이 없었던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