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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Jazz :: 간만에 듣는 진짜 발라드

 





::::: 1997년,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재즈 레이블 'Venus'에서 발매된 아치 셉 쿼텟의 발라드 앨범 :::::







전 이 앨범을 홍대 '레코드 포럼'에 음반사냥하러 갔다가 존 콜트레인의 '임프레션' 앨범과 함께 충동구입 했는데요. 그 당시 일본 재즈 리서너들의 취향(나긋나긋하고 유려한 멜로디가 중심이 된 발라드 위주의 재즈)이 적극 반영된 재즈앨범을 집중해서 발매했던 '비너스' 표 앨범들은 제가 즐겨 듣는 Jazz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인 코드가 멋들어지게 표현된 'Iruka Design'의 커버아트(커버 포토는 엘리엇 어윗의 작품입니다)와 레이블의 수석 프로듀서였던 테츠오 하라의 깔끔한 기획력, 무엇보다도 70년대 프리재즈의 최전선에서 격렬히 싸우던 전사 '아치 셉'의 테너 섹서폰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에 덥썩 집어들었죠. 24bit 하이퍼 매그넘 사운드 마스터링으로 덧칠된, 2만원이 넘던 이 고가의 수입 CD를 말입니다.



사실, 아치 셉은 이 앨범 이전에 '블루 발라드'란 앨범을, '블루 발라드' 앨범 이전엔 '블랙 발라드'란 발라드 앨범을 발매했어요. 앨범의 완성도는 호레이스 파란의 피아노 지원을 받은 '블랙 발라드'가 으뜸이지만 앨범을 지배하고 있는 어두운 톤의 검은 그림자 분위기가 너무 짙었다는 점, 그리고 '타임리스' 레이블이 가지는 소규모 배급의 한계로 인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죠. 쿼텟 멤버를 존 힉스(피아노), 조지 므라즈(베이스), 아이드리스 무하마드(드럼)로 교체하고 메이저(?) 레이블인 '비너스'로 옮기고 낸 '블루 발라드'와 이 앨범 '트루 발라드'는 미국의 다운비트와 더불어 재즈전문지 분야 탑으로 꼽히는 일본의 '스윙저널'에서 골든디스크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



1960년대 후반, 찬란하게 꽃피운 존 콜트레인과 혁명적 동지였던 'Impulse!'를 좋아하시는 재즈팬이라면, 아마도 이 당시 아치 셉이 들었던 비웃음의 별명인 '검은 양'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잘 아실 겁니다. 흑인으로 태어날 때 부터 갖게되는 원초적인 비애를 자양분 삼아 그 불타오르는 분노와 구조적인 모순을 깨뜨리고자 했던 사상을 'Free'의 형식을 빌려서 재즈로 격렬하게 표현했던 격동기의 프리재즈 시대, 선두에 섰던 '거인' 콜트레인 사후에 당연히 그 자리를 물려받아 훌륭히 임무를 수행할 줄 알았던 아치 셉과 그의 동료들은 아쉽게도 팬들의 기대를 처절히 깨뜨려 버립니다. 멘토이자 스승이었던 콜트레인의 빈자리가 너무 컸던 걸까요? 아니면 혁명의 동지이자 아방가르드 최전선에 섰던 - 아치 셉과 파로아 샌더스를 위시한 - 프리재즈 뮤지션들의 역량이 부족해서? 답이 어디에 있던 간에, 대중들은 이 재미없고 심각하며 도무지 흥미를 갖기에 힘들었던 장르인 '프리 재즈'를 버리고 새롭게 태어난 마일스 데이비스의 본능적이고도 영악(?)한 시도, '퓨전'으로 관심을 급전환하게 되죠(아, 진짜 지미 헨드릭스 때문에 재즈가 작살났다? 아니다?). 안타깝지만 이 때 '프리 재즈'는 사실상 종말을 고하게 되고야 맙니다.





_ Archie Shepp - The Girl from Ipanema,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의 그 아름다운 낭만이 이렇듯 괴기하게 변했습니다. 프리재즈 시절의 아치 셉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앨범 중 하나인 'Fire Music', 하나만 더하자면 존 콜트레인에게 바치는 충성심으로 가득한 앨범 'Four For Trane'을 권합니다.




그렇게 처참히 잊혀졌던 테너 섹서포니스트 '아치 셉'을 극적으로 복귀시켜 성공시킨 이 발라드 삼연작은, 비유하자면 과거 100마일 이상의 포심 패스트볼로 리그를 호령했던 파워 피처가 강력했던 구속을 잃어버린 후, 예술적인 컨트롤로 재기에 성공한 케이스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겁니다. 이 앨범은 템포가 느려요. 느려도 '지극히' 느립니다. 전성기의 아치 셉의 테너를 기대했던 팬들에겐 발라드 앨범의 한계를 인정한다고 쳐도 정말 실망스러울 정도로 여유롭습니다. 힉스와 므라즈, 무하마드로 구성된 리듬섹션의 백업연주 역시도 다운템포에 치중하는 넉넉함을 러닝타임 내내 유지합니다. 이 느린 템포를 바탕으로 아치셉의 테너는 마초적이고 호방한 톤에 치중, 새로운 형식의 스탠더드 발라드 해석을 보여주죠. 이 느릿한 발라드 앨범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서 나옵니다. 격렬했던 프리재즈 전성기의 중심이었으나, 변모를 강요했던(?) 시대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행한 배반에 대한 스스로의 회한이랄까요? '에브리씽 머스트 체인지'나 '예스터데이', '더 새도우 오브 유어 스마일' 등 앨범의 선곡 역시도 이 추측이 틀리지 않다고 보여지네요.



일본 재즈 특유의 나긋나긋한 발라드 앨범을 거부하는 재즈팬들이라도, 이 앨범만큼은 믿고 들으셔도 괜찮다고 장담합니다. 이 앨범과 같은 시기에 발매되어(같은 비너스 레이블) 커다란 성공을 거둔 '에디 히긴스 트리오' 같이 세일즈를 염두에 두고 만든 발라드 앨범과는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자부심일지 자만심일지는 모르겠으나 끝까지 듣다보면 '진짜 발라드'란 앨범 타이틀 역시도 허세가 아님을 인정하게 되실 겁니다. 멤버들과의 호흡도 무척이나 좋았는지, 단 하루만에 레코딩이 완성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인지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느린 템포를 유지하지만 4명의 연주는 직선적이고 스트레이트하며, 재즈 레코딩에 필수적으로 발생하는 얼터너티브 테이크가 없죠. '트루 발라드' 앨범이 맘에 드시는 분은 '블루 발라드' 앨범 또한 맘에 드실 겁니다. '스윙 저널'의 재즈앨범 추천과 일본 재즈 특유의 조미료 섞인 가공되고 인공적인 맛을 완연히 거부하는 제가 적극 추천하는 '진짜 발라드' 앨범입니다.



올려드린 곡은 레이 헨더슨의 스탠더드인 'The thrill is gone', 아치 셉의 과거를 생각해보자면 참으로 의미심장한 첫트랙이 아닐까 합니다. 아치 셉의 발라드를 듣는데 한 곡만으로 만족하기엔 좀 아쉽죠. 덧붙여서 '블루 발라드' 앨범 중 페보릿 넘버인 'Cry me a river'도 감상해보시길 바라면서…






댓글
  • ursa 2017/07/23 02:04

    매번 글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

    (rao4GZ)

  • remember 2017/07/23 02:07

    ㄴ 아잉~♥ ㅋㅋ

    (rao4GZ)

  • vlrhsgkrns 2017/07/23 14:40

    올리신 시간에 들었으면 술 한잔 곁들이면서 취했을 것 같네요.

    (rao4GZ)

  • remember 2017/07/23 18:40

    vlrhsgkrns// 캬, 언제 술한잔 콜? ㅋ

    (rao4GZ)

  • ASURADA 2017/07/23 22:25

    gooooood
    듣기 좋네요

    (rao4GZ)

  • remember 2017/07/24 15:37

    ASURADA// 반갑습니다. 즐겁게 들으셨길 ㅎ

    (rao4GZ)

  • F.Botero 2017/07/24 21:47

    감사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곡에 이렇게 넉놓고 밤이랑 같이 걸어가네요...

    (rao4G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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