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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이한 체험 - 노무현입니다.

 개봉일 조조를 예매해 관람한 건 왠지 모를 부채감 때문이었다.


...라고 하면 의식있는 것처럼 보일 거 같지만 사실은 그냥 마음놓고 울어보고 싶어서 보러 갔다.


예고편 영상만 봐도 이건 목욕수건 정도는 필요한 영화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에.


관객들이 기대했던 바, 목적했던 바를 완벽 그 이상으로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잘 만들었고 흥행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많이도 울었다. 


슬픈 장면이 아닌 부분에서부터 눈물이 터져나오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말소리만 들어도, 인터뷰이들의 발언과 표정만 봐도 눈물이 흐르더라.



2002년은 월드컵 4강 신화를 썼던 해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군생활이 한창이었다. 예비군 조교로서 복무했고 월드컵 기간에 하필 동원훈련이 있어 


장기간 산속에서 먹고 잤다. 한달을 준비한 훈련이 1주일만에 끝났고 한국은 월드컵 4강까지 올랐다. 


내가 파악하는 사회 동향은 월드컵이 끝이었다. 


언론을 흔들었던 2002년 더불어민주당 국민경선도, 노사모도, 노무현 돌풍도, 대선도 나완 관계없는 일이었고 


그런 일이 있는지도 몰랐다.



전역해 보니 대통령의 얼굴이 바뀌어 있었고 복학하자마자 첫학기에 탄핵이 터졌다. 


사회 적응에 여념이 없었던 나는 고향에서 어머니가 보내준 분노의 글을 읽었지만 


글솜씨에 감탄했을 뿐 그 내용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별로 공감하지 못했다. 


심지어 왜 탄핵이 벌어졌는지도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을 정도로 무관심했다. 


하도 언론에 자주 나오는데다 볼 때마다 참 쉬운 말을 골라서 의사소통을 잘한다 정도의 느낌만 있었을 뿐, 


세상 모두가 노무현을 탓했기에 '그만큼 못하고 있나 보구나.' 정도로만 파악하고 있었다.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역시 팟캐스트 나꼼수였던 거 같다. 


정치라는 어렵고 딱딱한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재미있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김어준은 탁월한 콘텐츠 제작자였고 짐승같은 감을 가지고 있었다. 


본인 스스로도 '무학의 통찰'로 포장하듯, 단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사안들을 엮어내고 정리해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깔끔하게 정리한 후 우리 삶의 이야기로 치환시키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 부분에서 김어준을 능가하는 콘텐츠 제작자를 알지 못한다.


비록 음모론 수준의 의혹들 때문에 언론인으로서 약점도 지적받지만, 


김어준이야말로 21세기 언론 콘텐츠의 방향성을 틀어버린 진정한 혁신가에 가깝다. 


아직까지도 구시대 언론인으로서의 지적 허세만 가득하고 세상 변한 걸 애써 부정하는 조중동, 


한경오들은 결국 김어준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무현 퇴임 이후 국가가 9년간 과거로 회귀하고 쇠퇴하기만 하는 걸 인식하게 되자, 


노무현이라는 인물, 노무현이 전달하려고 했던 가치의 의의와 중요성이 크게 다가오게 되었다. 


노사모도 모르고 친노나 친문에 대해서도 유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나는 한국 역사에서 노무현이 가지게 될 비중이 점점 커지게 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국가 패러다임의 전환은 결국 노무현의 당선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 사건을 통해 촉발된 것이 아닐까.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그 두 가지 사건을 다룬 영화다. 


노무현은 어떻게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될 수 있었는가, 


노무현의 죽음은 한국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이를 종합하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결국 하나로 정리된다. 


한국 사회의 변혁을 이끄는 에너지, 원동력은 노무현의 등장과 퇴장이었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실화영화 노무현입니다는 노무현의 행적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연출은 대부분 노무현 옆에 있었던 사람들의 회고 인터뷰로 이루어진다.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 친노 정치인 유시민, 안희정, 이광재뿐만 아니라 참여정부 인사들, 


노사모 핵심 인물과 일반 회원, 노무현의 운전 기사, 심지어 노무현을 오랫동안 마크해 온 전직 국정원 직원까지 포함된다. 


이들 각각의 시선을 통해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몰입을 유도하고, 


개개인에 따라 다를지라도 관객들은 어느새 자신이 영화 안에서 또 하나의 인터뷰 대상자가 된 듯한 일체감을 가지게 된다. 


이는 기이한 체험이었다. 


노무현이라는 매개를 토대로 콘텐츠 소비자들이 그 시대 자신에 대해 떠올리고 정리하고 동감하여, 


콘텐츠 소비가 끝난 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노무현입니다는 결국 영화를 보는 관객 자신의 이야기를 끌어내게 하는 콘텐츠였다. 


왜냐하면 노무현은 영화 속의 가상인물이 아닌 실제 우리들의 대통령이었기 때문이고, 


우리 손으로 뽑았으며, 우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행보 하나하나가 절망과 도전, 극복과 좌절, 슬픔과 자조, 미안함과 고마움을 자아내는 


영웅과 소시민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꾸며낸 이야기로는 닿을 수조차 없는 드라마성을 현실에서 겪은 발생시킨 캐릭터였다.



노무현의 서거를 정리하고 엔딩 장면을 보면서, 


나는 이 영화가 500만 관객 이상의 흥행작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나쁘게 보면 흔한 감성팔이 정치적 편파에 불과한 신파극으로 폄훼될 수 있는 콘텐츠를, 


담백함과 참신함으로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신의 한수가 마지막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바쁘게 지나가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계면쩍음을 무릅쓰고 다가가 악사를 청하고 


'노무현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를 반복하며 홀로 걸어가는 노무현의 뒷모습을 롱테이크로 찍어 보여준다. 


이 장면의 백미는 노무현의 흥얼거리는 노래소리다. 무슨 곡인지는 모르나, 


해당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 꺽꺽대며 울음을 삼키던 관객들을 빙그레 웃게 만들어 주는 어설픈 가락. 


그래, 저런 캐릭터였지. 많이 미안하고, 많이 고마우면서도 굳이 말로 전하지 않아도 


노무현은 알고 있을 거라는 확신. 그래서 마지막에는 웃을 수 있었다. 



치열하게, 또한 흥겹게.
그렇게 살다가 사라진 노무현에게 감사를.


https://blog.naver.com/armdecoy/221014440717

댓글
  • 킹민식 2017/05/26 01:55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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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나가리네 2017/05/26 02:08

    선봉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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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해프너 2017/05/26 02:09

    [리플수정]실시간으로 노무현의 태동부터 봐왔던 사람으로 말하자면 그를 직접 느끼지 못한 시대의 후대에게도
    이 정도 영향을 미쳤다면 노무현은 성공한 정치인임에 확실합니다.
    노무현이 이렇게 말했었죠
    "물을 가르며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물은 그대로였다" 고
    강물을 무엇으로 가르고 나아가도 새로운 물결이 덮어버려 그대로라는 비유를 통해
    자신이 개혁하고자 했던 모든 과정이 싸그리 물거품이 된다는 자조적 표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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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해프너 2017/05/26 02:18

    왜 당선이 확실한 종로를 두고 부산엘 가서 번번히 깨지느냐는
    지지자들의 울분에 찬 질문에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는 명언을 하는 등 참으로 언어가 예술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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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일기어 2017/05/26 02:27

    문재인은 안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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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jdkdjd 2017/05/26 21:03

    글 잘읽었습니다. 저도 어제 조조로 보고왔는데
    정말 여러분 울고 웃고 했습니다. 내일은 가족들 예매해주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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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슬두유 2017/05/26 21:35

    저도 방금 보고왔는데 아직도 울림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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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묠코 2017/05/26 22:50

    노무현의 유지를 이어받은 사람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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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배는멘솔 2017/05/26 23:07

    노무현으로 시작한 것임을 그때는 잘 모르고 무관심했었음을 참 반성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그냥 투표만 잘!!! 하면 세상이 조금은 바뀔지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걸 이제는 국민들이 알았지만 그때는 왜 지금처럼 깨닿지 못했을까? 자책과 안타까움이 한이 없지만 두번의 실수는 저 스스로도 용서가 안될것같습니다. 투표가 서문이고 지금부터가 본문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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