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라이카M을 처음 잡았을 때, RF 촛점 맞추는 게 참 불안했다.
아마도 SLR과 Rolleiflex의 TLR에 오래 익숙해진 탓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심도를 깊게 하기 위해 조리개를 f11로 촬영했는데,
역광 혹은 비 오는 날, 어두운 곳 촬영을 선호했던 탓에 속도가 느려져
흔들리는 사진이 많았다. 그래서 선택한 렌즈가 21mm 슈퍼 앙굴론이었다.
21mm 슈퍼 앙굴론을 사용하기 전에는 28mm summaron이 주력 렌즈였다.
광각 렌즈는 f5.6 정도로도 심도가 깊어서 촛점 불안을 해소할 수 있었다.
M3 위에 장착한 밝은 뷰 화인더로 어두운 곳에서도 쉽게 프레임을 할 수가
있고, 특히 Red 2 필터나, PL 필터를 사용할 때는, SLR 사진기보다
훨씬 편리하게 촬영할 수가 있었다.
프랑스 파리에서의 전시 사진도 21mm가 주기종이었다.
그러나 부친의 병 때문에 급히 귀국, 급전이 필요해서 라이카를 전부 처분해야 했다.
거의 반값으로, 당시 시세를 알아볼 겨를도 없이 팔아 치웠다. 롤라이플렉스 세트와 같이.
그 후로 라이카를 잊고 살았다.
***
작년 약간의 돈이 생겨 팔아버렸던 라이카가 그리워 시간만 나면 충무로 샵을 기웃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과 오랜 친분이 있는 중고 클레식 사진기 샵을 방문,
주인과 이런 저런 옛 추억을 이야기하던 중에 공장에서 방금 나온 M3 리페인팅 된 불랙 바디를
수리점 사장이 들고 들어왔다. 주문한 물건이 방금 도착했다고 하며.
그 녀석과 내가 눈이 딱 마추쳤다. 그 순간 '이건 내 꺼다!' 하고 충동적으로
그 사진기를 빼앗다시피 이리 저리 살피는 주인 손으로 넘겨지는 M3를 가로챘다.
인연이 되는 물건은 보자마자 서로를 알아본다.
렌즈도 없이 바디만 들고 귀가해서 시간만 나면 품에 안고 셔터를 눌러주었다.
그러다가 돈이 모아 렌즈를 사기 시작했다. 현행이 아닌 올드 렌즈. 우선 21mm. 28mm.
우선 21mm부터 구하려고 여러 샵에 나와있는 21mm S.A을 구경하다가
화인더 없는 21mm S.A과 같은 값으로 팔고 있는 엘마릿 21mm f2.8과 21mm 불랙 화인더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오자마자 M3와 짝 지었다. 오! 제법 멋진 걸!
이 렌즈는 사용해보지 않았다. 왠지 날카롭고 콘트라스트가 강할 것 같아서 구입 직전 고민했다.
그런데 샵 주인이 망설이는 걸 눈치채고 '꽤 괜찮다고들 하던데요? 찍어보시고 마음에 안들면 가져오세요'
라는 감언이설에 구입을 했다. M3와 꽤 잘 어울리는 걸 보니 잘 산 것도 같지만, 사진이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그래서 사용하던 sony 7r2에 물려 테스트 촬영을 나갔다.
개성이 있다. 그리고 내 정서에 맞는다.
S.A 21 표현이 젠틀멘 사진이라면 엘마릿은 나 같은 언더그라운드 방랑자 스타일이다.
약간은 거칠고, 약간은 강하고, 어느 땐 약함이 들어 나고. 맛이 좋다.
조리게 f4로도 심도가 충분 했다. 디지탈 센서와도 꽤 잘 어울렸다.
내가 변하긴 변했다. 아니 진정한 내 모습이 이런 건지도 모르겠다.
단정하고 매끈하고, 정리된 것보다 조금은 거칠고, 어둡고 강한 이미지를 선호한다.
20년 전 사진을 보면 아닌데...... 파리 방랑이 내 본 모습을 들어내게 만든 것인지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이카 렌즈가 좋다는 말도, 선전하기 위한 글도 아닙니다.
나를 되돌아보는 글입니다.
코로나로 답답해진 마음을 이렇게 달래고 있습니다.
https://cohabe.com/sisa/2276982
라이카 21mm 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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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열정을 되살리는 글 정말 좋습니다.
좋은 사진 글 잘 보았습니다.
21mm S.A.는 왜곡이 없고, 독특한 발색이 일품입니다. 후옥이 길어 내장 노출계를 사용할 수 없는 점, 디지탈에서 주변부 마젠타 캐스트가 심한 게 단점이나 그 모든 단점을 커버하고도 남을만큼의 Soul을 보여주는 명렌즈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