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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재산이 많은 것을 숨길 수 없는 세상

[ 지구의 문명은 왜 이렇게 야만적인가? 재산이 많은 것을 숨겨선 안 된다! ]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은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었고, 자신들 별의 선진 문명을 지구에도 흩뿌리고 떠났다.
그 결과,

" 어어어어? "
" 우아아악! 거인이다! "

사람들이 거대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재산이 많은 사람들이 거대해졌다. 
세계적인 대부호들은 커다란 아파트만큼 거대해졌고, 웬만한 연예인들도 빌라 하나 만큼씩은 거대해졌다. 

거인이 된 부자들 때문에 건물들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다치고 죽고, 세계가 대혼란에 빠졌다.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도 않았던 사람이 어마어마한 크기로 나타나는가 하면, 거인이 된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에 귀를 틀어막아야 하기도 했다.

겨우 혼란을 정리한 사람들은, 부자들이 재산의 크기만큼 거대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인 중상층 이상까지는 괜찮았지만, 부자라 부를 만한 정도가 되면 단계적으로 거대해졌던 것이다.

거대해진 크기가 크면 클수록 부자들은 당황했다. 
당장 몸 둘 곳조차 마땅치 않았던 그들은 노숙을 해야 했고, 밥 한 끼를 먹으려면 창고 하나는 털어야만 했다. 소변을 보면 강물처럼 흘렀고, 대변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혐오스러웠다. 평범한 사람들과의 소통도 불편했고, 옷이든 신발이든 스마트폰이든, 현대 문명의 그 어떤 것도 누릴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그들이 괴롭게 느꼈던 것은, 사람들의 구경거리 신세가 됐다는 점이었다. 

" 재산이 얼마나 많았으면 저렇게 거대해졌을까? "
" 와 저 콧구멍 좀 봐봐! 동굴이네! "
" 야! 너희들 xx 노출됐을 때 사진 봤냐? 완전 빅xx다! 크크큭! "
" 으~ 모공 너무 징그럽다! "

절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부자들을 신기하게 구경했다. 10m만 넘어도 괴물처럼 보였다. 실제로, 괴물 같은 사고가 많았다.
거인들은 단지 누워서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일대를 초토화했고, 그들의 배설물은 주변을 오염시켰다. 
입이라도 열면 그 울림에 고막이 아플 지경이고, 그들이 짜증을 못 이겨 흔든 손짓 한 번에 건물이 초토화됐다. 
말 그대로 숨만 쉬어도 민폐인 그들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웬만한 연예인들은 모두 거대해져서 미디어 출연이 불가능해졌고, 기업인들도 업무를 볼 상황이 되지 않았다. 
돈은 많으니, 그 재력을 이용해 빠르게 천막을 쌓고 옷과 신발을 만드는 등의 노력을 했지만, 턱도 없는 일이었다. 절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 와중에 특이한 것은, 2~3m 정도로 애매하게 커진 사람들이 스웨그를 뽐내게 됐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불편하기는 해도 문명권 생활이 가능했는데, 실제 그들을 마주한 사람들은 엄청난 위압감을 느꼈다. 아예 비현실적인 먼 거인들 보다는 현실적인 그들의 모습이 더 강렬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자체만으로도 부자라는 증거이지 않은가?
그래서 적당한 부자들은, 그나마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반면, 10m가 넘어가는 큰 부자들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의식주는 물론이고, 취미와 일, 사람들과의 교류나 성생활까지. 가능한 게 없었다. 
사람들은 왜 외계인의 문명이 이랬는지, 그 이유를 얼핏 알 것 같았다.

"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회에서 소외되는구나! "

아닌 게 아니라,

[ 제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습니다! ]

아파트만큼 거대했던 부자가 기부로 재산을 줄이자, 곧바로 작아졌다. 그 기부금이 빼돌려지는 일도 없었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간 순식간에 거대해져서 티가 날 테니까.
거인 생활을 견디지 못한 부자들이 줄줄이 재산의 사회환원을 시작했다. 그래도 2~3m를 유지한 그들은 아직 부자였다. 
2~3m가 그들의 기준점이 되었고, 부자들은 그 정도의 재산을 남기고는 나머지를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
물론, 모든 부자가 그렇진 않았다.

[ 흥! 어차피 이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건 없어! 소외된다고? 거인들끼리 모이면 될 것 아닌가! ]

그들은 어마어마한 재력을 바탕으로 거인 전용 집을 쌓아 올리고, 거인 전용 요리와 옷가지, 생활용품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도중에 포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시내에 나갈 수 없이 감옥 같은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괴로운 일이었다. 
미식, 드라이브, 스포츠, 술자리, 문화생활, 성생활 등등, 포기해야 할 것도 너무 많았다. 
거인들끼리 모여서 산다는 것도 현실성이 없는 얘기였다. 이동수단도 없었고, 모인다 한들 서로 간에도 수십 미터씩 크기 차이가 났다.

결국, 극소수의 부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재산의 사회환원을 시행했다.
그러자, 사회에 돈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 액수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놀라웠다.
약사 빠른 수작 없이 모든 기부는 진짜 기부였고, 그 돈으로 자신의 배를 불리려는 사람들도 없었다. 그랬다간 단박에 티가 나니까.
그 돈은 모두 옳은 일에 쓰였고, 전 인류에게 그 혜택이 고르게 돌아갔다. 그 혜택 중에는 2~3m 부자들을 위한 것들이 많았다.
도로나 문, 시스템을 2~3m에 맞추는 정도라면 사회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실제, 2~3m 거인들은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TV에 출연하는 연예인들 대부분이 2~3m였고, 사람들의 꿈도 2~3m 정도의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 이상은 욕을 먹었다. 5m만 넘어가도 손가락질당하는 풍조가 생겼다. 사람들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스스로 재산을 조절했다.
분명하게 전체적으로 세상은 좋아졌지만, 이야기는 나왔다.

"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당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입니까?! "
" 어차피 다 뺏길 돈이라면, 누가 열심히 살겠는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
" 명백한 불평등입니다! "

그들의 말은 옳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외계인의 짓이라 어쩔 수 없기도 했고, 실제로 거인을 유지하는 부자들도 있었으니까. 

" 그동안 우리는 인간관계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사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드는 비용이 그만큼이나 크다고 생각합시다. 재산이라는 것도 무인도가 아닌 사회 속에서나 그 의미가 있는 겁니다. "

이러니저러니 해도, 부의 균형은 이루어졌다. 1%가 90%의 부를 소유하던 세상은 더 이상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사람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이 5m까지 올라갈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을 때.
낯선 외계인들이 지구를 방문했다.


[ 지구는 정말 훌륭한 사회가 됐군요! 저희는 지구로의 이민을 신청합니다. ]

" 엥?? "

우주선에서 내린 외계인들의 크기는 하나같이 3m였다. 
그리고 지구는 3m 크기의 사람들이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모든 제반 시설이 갖추어져있었다.
댓글
  • 복날은간다 2017/05/10 17:53

    보너스 트랙 - '거인의 난동'
    " 꺄아아악-! "
    술에 취한 미친 거인의 난동으로 도심은 아수라장이었다.
    [ 이 크기야말로 내가 우월하다는 증거다! 이 버러지같은 것들! 왜 내가 너희들의 눈치를 봐야 하나! ]
    ' 쾅! 쾅쾅! 쾅! '
    [ 난 내 마음대로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이 버러지들아! ]
    그는 자신의 거대함을 만끽하며 거침없이 팔다리를 휘둘러댔다. 타워만큼 거대한 그를 제압할 수단이 없었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해도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들과 자신은 급이 다르니까. 그는 날뛸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 크하하하! 그래! 거대함이 곧 힘이다! 이건 내 권력이라고! 너희 가난한 쓰레기들과 다르다! 죽기 싫으면 다 비켜라!! ]
    ' 콰쾅!! '
    " 꺄아아악-! "
    군대라도 도착해야지만 그의 난동을 멈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출동한 경찰도, 소방관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를 자극해서 큰 피해를 보기만 했다.
    괴수 영화마냥 도심에 미사일을 쏠 수도 없었고, 히어로들이 나타나서 물리쳐주지도 않았다.
    [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다! 크하하하! ]
    그 말대로 누구도 그의 난동을 멈출 수 없을 것 같은 그때.
    양복 차림의 왜소한 사내가 그를 막아섰다. 권총 하나 들고 있지 않았지만, 대신 그의 손에는 서류가 있었다.
    " 두 석규 회장! 도심을 파괴하고 수많은 피해를 준 당신을 긴급체포합니다! "
    [ 개소리! ]
    거인이 비웃으며 그를 향해 발을 내지르려던 그때,
    " 당신의 모든 재산은 지금 막 국가에 압류되었음을 선포하오! "
    거인의 몸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 어어어?! "
    평범하게 작아진 그는 당황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에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자신을 죽일듯이 노려보며 다가오는 이들의 시선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외쳤다.
    " 내, 내 돈! 내 돈! 내 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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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풍의라빈 2017/05/10 18:09

    특수한 설정들이 재미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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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나루 2017/05/10 18:21

    이 사람은 진짜 거인이다... 창의력 거인...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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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ebwbxksk 2017/05/10 18:56

    자연스럽게 중산층이 늘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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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IutterShy 2017/05/10 19:49

    재미있게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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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verror 2017/05/10 19:57

    외계인: 애초에 화폐제도는 불합리하게 나랏사람을 얽매고 생존권을 위협하는 야만적인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으로써, 득보다는 실이 많습니다.
    위 외계인 친구 외계인: 맞아요. 잘 판단해 보세요. 이걸 유지하다보면 만족조차없는 불평등은 물론이고 결국 우리 생명마저 잣대를 따라 저울 위에 제어올리는 멍청한 꼴을 만끽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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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베라 2017/05/10 20:06

    돈이 많은 나라의 국방부는 엄청 강력해지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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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verror 2017/05/10 20:18

    이 다음으로는 사형에 관한 이야기를 써 주실 수 있나요?
    사람들이 분노에 차서 정확한 판단 이후에는 해도 괜찮다. 진짜 죽이는 것도 아니고 재워서 미래로 보내면 어떠냐 어쩌고 저쩌고 할 수는 있는데, 진짜 도입하면 억울한 사람이 안 나온단 보장도 없거든요. 언제나 (심지어는 미시계에서 확률적으로도)예외는 있으니까요. 물론 시대마다 사고관과 법리가 다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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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편적인진리 2017/05/10 21:14

    굉장히 흥미롭네요
    잘읽었습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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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세라 2017/05/10 21:15

    엌 외계인의 빅픽쳐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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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생기면다오빠 2017/05/10 22:36

    항상 잘 읽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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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고파파 2017/05/10 23:55

    근데 재산이란게 어떻게 측정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금전적인 액수로서의 재산이라면
    끊임없는 인플레이션으로 평균신장은 점점 커지기만 할듯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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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붙여놔 2017/05/11 01:08

    외계인 겁나 패기ㅋㅋ 저희는 지구로의 이민을 신청합니다 하더니 대답도 안 기다리고 우주선에서 바로 내려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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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IutterShy 2017/05/11 01:18

    생각해보니까 적대 국가가 있다 -> 사람을 보낸다 -> 목표국가의 중요 시설에 도착 -> 계좌에 돈을 엄청 들이붓는다 -> 쿵쾅쿵쾅
    이러면 당하는입장에서는 아무것도 못할듯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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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엽신욕슬기 2017/05/11 01:20

    와...아이디어 정말 죽이네요 ㄷㄷㄷ
    창의력이 대단하신분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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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로시오 2017/05/11 01:54

    좋은시스템....도입이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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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m 2017/05/11 01:54

    이와 비슷하게... 영국인들의 재산을 키로 환산하여 제시한 동영상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영국의 전 국민들이 6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동안, 재산이 적은 순서부터 많은 순서대로... 화면 왼쪽에서 입장하여 오른쪽으로 퇴장하는 영상입니다.
    성인남성 평균 키를 약 170cm 라고 치고, 평균소득자 = 170cm 로 기준을 잡고 환산한 자료입니다.
    동영상이 시작되자마자, 화면 왼쪽에서 키가 10cm 가량도 안 되는 사람들이 바닥에 딱 붙은 채로 지나갑니다. 사회 극빈층을 묘사한 단계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등장하는 사람들의 키가 점점 커지는데, 우습게도 평균 키인 170cm를 넘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서는 동영상이 거의 끝나는 시점인 59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평균소득이라는 개념의 함정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59분이 넘으면 사람들이 키가 갑자기 기형적으로 커지게 되고, 59분 30초 즈음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미 머리가 구름을 뚫고 있어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신장의 급격한 상승은 멈추지 않습니다.
    59분 59초 즈음 등장하는 최상위 자산가(ex: 영국의 부동산 재벌 제럴드 캐번디시)들은 이미 상반신이 열권을 돌파한 형상입니다.
    상당히 인상깊게 봤던 동영상이었는데...이렇게 공포 단편 소재로도 쓰일 수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사실 저는 평소에도 이 분의 글을 즐겨 읽는 독자입니다.
    헌데, 글쓴이 본인께서 지금까지 스스로 책 등을 많이 접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재의 다양성과 신선함 부분에서 번뜩이는 탁월함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은 타고난 것이겠죠???
    그래서인지 새 글이 올라오면 믿고 읽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매일 눈팅만 하다가 댓글 한번 남겨보았구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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