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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성공을 위해 조강지처를 버린 사내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데릴사위로 들어와서 내 병원을 이어받게. "
" ! "

병원장의 제안을 받은 최무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초대형 병원을, 자신이 물려받는다? 믿을 수 없는 꿈같은 일이었다. 

" 자네는 내 딸이 마음에 안 들지 몰라도, 내 딸은 자네가 아니면 안 된다는군... "
" 아... "
" 나는 자네를 잘 아네. 욕망이 강하고 악착같은 면모도 있고... 내 병원을 물려받더라도 잘할 사람인 걸 알아. 어떤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나? "
" ... "

최무정에게는 동거녀 '임여우'가 있었다.
하지만 원장의 말대로, 그는 욕망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고아 출신이었다. 어릴 적부터 각종 장학금을 타면서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자각했지만, 보통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했단 이유만으로 불리한 시작점을 가져야 한다는 게 항상 불만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공을 바랐다. 편하게 올라온 남들을 다 제치고 성공하기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바랐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임여우를 잊은 채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 그렇게 하겠습니다. "
" 그래. 그럴 줄 알았네. 조만간 날을 잡도록 하지. "

최무정은 뒤늦게 임여우를 떠올렸지만, 그가 떠올린 내용은 죄책감이 아니었다. 어떻게 임여우를 떼어내느냐는 고민이었다.

.
.
.

최무정은 오늘 새로 발급한 부원장 명패를 뿌듯한 얼굴로 어루만졌다.

지난 1년간 불쾌한 소문들이 나돌았지만, 그는 상관없었다. 주변에서 손가락질받는 것이든, 성격 더러운 아내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것이든, 뭐든지. 
그에게 중요한 건 자신이 꿈을 이뤘다는 사실이었다. 
깔끔한 인테리어의 사무실 의자에 앉아, '부원장 최무정' 명패를 닦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녀가 찾아오기 전까진 말이다.

" 오랜만이네. 오빠. "

임여우. 최무정이 성공을 위해 가차 없이 버렸던 옛 동거녀가 1년 만에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
벌떡 일어나며 놀란 최무정을 더 놀라게 한 건, 그녀가 안고 있는 '갓난아기'였다.

" 너..너...! "
" 뭘 그리 놀라?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

흔들리는 눈의 최무정은, 갓난아기를 보며 빠르게 생각했다. 
저 아기는 뭐지? 나를 협박하기 위해서 남의 애를 데리고 왔다고? 내 아이일 리는 없잖아? 

" 너...지금 뭐하자는 짓이야?! 그 아이는-! "
" 응? 얘? 오빠 아들이지. 당연하잖아? "
" 헛소리! "

최무정은 단호하게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임여우가 임신했던 아이는 유산하지 않았던가?
자신이 심부름센터를 시켜 임여우에게 폭력을 행사했었고, 확실하게 유산을 확인했었다.

" 내 아이일 리가 없잖아! 무슨 목적이야?! 갑자기 찾아와서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거야?! "

최무정은 강하게 나갔다. 어차피 지금의 아내도 옛 동거녀 이야기는 대충 알고 있었으니, 임여우가 자신을 협박할 건더기는 없었다. 만약에 자신의 아이라도 있었으면 몰라.

" 수작? 복수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
" 큭... "

임여우의 서늘한 눈빛에, 최무정은 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결코 좋지 않은 끝맺음이었을 테니까.
최무정은 잠깐 인상을 찌푸리다가, 호흡을 가라앉히며 자리에 앉았다. 임여우가 맞은편에 앉자마자,

" 우리 관계는 이미 다 지난 일이야. 이제 와서 뭘 할 수 있겠어? 이제 그만 다 잊고, 너도 새출발을 생각해.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 "

최무정은 뻔뻔하게 조언했지만, 임여우는 입술을 비틀어 비웃었다.

" 새출발? 너 때문에 임신도 못 하는 몸이 되었는데, 새출발을 하라고? "
" ...그건 내가 한 게 아니야. "
" 웃기고 있네. 내가 모를 줄 알고?! "
" 으음... "

최무정은 서슬 퍼런 임여우의 눈빛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인정하진 않았다.
임여우는 됐다는 듯, 피식 웃고서 본론을 꺼냈다.

" 어차피 나도 너 같은 쓰레기에게 미련 따위 남아 있지 않아. 나는 단지 이 애의 양육비가 필요해. 한 달에 오백씩, 네가 내줘야겠어. "
" 뭐? "

최무정의 얼굴이 단박에 일그러졌다. 결국, 협박이란 말인가?
그는 차분하게 대처했다.

" 그만 가라. 경찰을 부르기 전에. "
" 자기 아들을 외면할 생각이야? "
" 헛소리하지 말라고! 그래, 좋아. 원한다면 옛정을 생각해서 한 삼백 쥐여주마. 그거 받고 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

최무정의 말에 임여우는 깔깔 소리 내 웃더니, 안고 있던 아기를 앞으로 내밀었다.

" 잘 봐. 너랑 똑같지 않아? "
" 무슨! "
" 부정할 필요 없어. 확실하게 닮았으니까. 아니, 이건 너야. 너랑 똑같아. 자세히 봐봐. "
" 너 진짜, 어디까지 가려는 거냐! "

최무정이 버럭 소리 지르자, 아기가 울음을 터트렸다.
얼른 아기를 품에 안고 달래는 임여우가 최무정을 노려보았다.

" 내 말을 못 알아듣나 본데, 이 아이는 너라고. "
" 너 진짜-! "
" 아이를 유산하고, 너에게 버림받고, 나는 자살하려고 했어. "
" ...! "

소리 지르려던 최무정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자살하려 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닐 테니까.
임여우는 품에 안긴 아이를 어르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 그때 그분을 만났어. 그분이 그러더라고. 아이를 낳는 방법이 있다고. "
" 그 무슨...! "
" 믿지 않았지. 이미 죽어버린 아이를 어떻게 낳을 수 있겠어? 그런데 그분이 그러더라. 생명을 빌려오면 된다고. 아이 아빠의 생명을 빌려서,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
" 너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

최무정의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임여우는 무시하고 할 말만 했다.

" 아이 아빠의 생명을 빌린다? 내가 뭐라고 대답했을 것 같아? '얼마든지요! 아이만 살릴 수 있다면 저는 그 새끼를 죽일 수도 있어요!' "
" ... "
" 그분은 알겠다고 했고, 내 배는 다시 불러오기 시작했어. 죽었던 아이가 다시 살아난 거야. "
" 그럴.. "
" 나는 예정일에 아이를 낳았고, 그분은 말했어. 이 아이는 너와 생명을 공유하기 때문에,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
" 뭐? "

최무정의 얼굴이 황당해졌지만, 임여우는 진지했다.

" 내가 그 말을 어떻게 안 믿을 수 있겠어? 죽었던 아이가 살아났는데! "
" ... '

최무정은 한심하단 얼굴로 임여우를 바라보았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 도대체 지금 뭐하자는 건진 모르겠는데-, "

' 카드득- '

" ?! "

말을 하던 최무정의 눈이 놀라 커지며 임여우의 손으로 향했다! 
그녀는 커터칼을 꺼내어 들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아기의 허벅지를 그었다!

" 으앵~! "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트렸지만, 임여우는 최무정만 노려보았다.

" 너, 너-! 큭?! "

놀라 소리를 지르려던 최무정의 고개가, 순간적으로 아래로 내려갔다!

" ?! "

그의 허벅지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 이..이..?! 이...?! "

경악한 최무정의 벌어진 입이 떨릴 때, 임여우가 말했다.

" 나는 너를 증오해. 이대로 돌아가서 이 아이를 죽여버릴 수도 있을 정도로 말이야. "
" ... "

최무정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녀는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랠 생각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이젠 알겠지? 내가 이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려면 양육비가 필요하단 걸. 내일까지야. 안 그러면, 내일은 아이의 손가락에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 "

그녀는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 하나를 내려놓았다.

" 자, 잠깐만! "

당황한 최무정이 어정쩡하게 일어났지만, 그녀는 상대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
남겨진 최무정은, 지금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허벅지만 쳐다보았다.

.
.
.

" 돈은 부쳤다...우리 만나서 얘기 좀 하자. "

최무정은 홀로 차 안에 앉아, 심각한 얼굴로 임여우와 통화 중이었다.

[ 무슨 얘기를? 나는 할 얘기 다 했어. ]

" 아니 일단-, "

[ 갓난아기를 키우는 게 얼마나 바쁜 일인지 알아? 내가 이 아이를 잘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

" 그러니까, 그 아이에 대해서 대화를 좀 하자는- "

[ 필요 없어. 내 아들이야. 너는 그냥 양육비만 부쳐주면 돼. 부원장님에겐 무리한 요구도 아니었잖아? 일부러 생각해서 오백을 부른 거야. 앞으로 평생 네가 책임져야 할 돈이니까. ]

" 이익...! "

[ 끊을게. 내가 먼저 연락하기 전엔 연락하지 마. 네 짜증 나는 목소리를 듣고서, 홧김에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누가 알겠어? ]

" 아니 그...! "

일방적으로 통화가 끊어지고, "이런 씨!" 최무정은 핸드폰을 옆자리로 내팽개쳤다.
그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평생이라는 단어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평생 족쇄처럼 따라다닌단 말인가?
지금이야 한 달에 오백이겠지. 순순히 줄 수밖에 없다면, 상대가 어디까지 요구해올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정말 임여우가 술이라도 먹고 홧김에 해코지라도 한다면? 지금도 허벅지가 욱신거리는데, 불안해서 잠도 잘 수 없다.

최무정은 입술을 뜯으며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이 없을까? 이렇게 평생 휘둘리며 살아야 하는가? 이러려고 지난 1년간 그렇게 노력했는가?

" ... "

문득, 최무정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
.
.

[ 애 이름은 뭐야? 적어도 이름은 알아야지. ]
[ 내 아들 사진이라도 좀 보내줘.. 내 아들인데 그 정도는 되잖아. ]
[ 아무거나 먹이지 말고 비싼 거 먹여. 이번 달 돈도 더 보냈으니까 옷도 잘 입히고. ]
[ 영어 유치원 같은데 한 번 알아봐. 조기교육이 중요한 거 알지? ]

최무정은 최선을 다해 부성애를 가장했다.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임여우는 아기의 사진을 보내주었고, 물어보면 간단한 근황도 알려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적의는 약해졌고, 습관처럼 말하던 아이를 해코지한다던 협박도 쏙 들어갔다.
며칠 전에는 갑자기 팔뚝에 화상이 일어나서 깜짝 놀랐더니, 임여우가 실수였다며 미안하단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그때도 최무정은 문자를 보냈다.

[ 나는 괜찮아. 아이는? 아이는 괜찮아? ]

물론, 입으로는 쌍욕을 하면서.
이 정도만으로도 사실상 임여우가 아이에게 일부러 해코지할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그의 최종 목표는 이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평생 그렇게 살 생각이 없었다.
일단 임여우의 경계심을 충분히 무너뜨린 다음, 계획이 있었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 자네가 개인적으로 쓰는 돈을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야... 좋지 않은 소문이 돌더군? "
" ... "

장인에게 불려간 최무정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져있었다.
병원장 딸과의 결혼으로 부원장이 된 그가 옛 여자에게 돈을 퍼주고 있다는 소문은, 너무나도 퍼지기 좋은 가십거리였다.

" 나는 자네를 잘 알아. 옛사랑에 대한 미련? 하! 자넨 성공을 눈앞에 두고 그따위에 한눈 팔 인간이 아니야. 최소한, 내가 죽기 전에는 말이지. "
" ... "
" 어떻게 된 일인지, 솔직하게 설명해주겠나? "

입술을 깨문 최무정은 갈등했다. 어디까지 말해야 한단 말인가? 말하더라도 믿을 수나 있는 얘기란 말인가?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미 고정적으로 나가고 있던 지출을 들켰고, 소문도 돌만큼 돌았다.
지금 말하지 않는다 해도 병원장은 모든 걸 알아볼 능력이 있었고, 그럼 자신은 숨겨둔 자식을 위해서 돈을 빼돌린 인간이 된다. 
그건 아니었다. 차라리, 숨겨둔 자식 따위는 상관도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돈을 뜯기던 인간이 나았다. 

" 믿으실지 모르겠지만...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

최무정은 사정을 설명했고, 역시나 병원장의 반응은 황당했다.

" ...지금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말인가? "
" 저도 압니다. 이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걸...하지만 믿어주십쇼! 저는 협박을 당해서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겁니다. 추호도 그 여자와 그 아이에게 미련 따위는 없습니다! 차라리, 세상에서 사라지길 바랄 뿐입니다! "
" ... "

병원장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최무정의 얼굴이 워낙 절절했다.

" 좋네. 그 말을 믿는다 치지. 그럼 어쩐단 말인가? 앞으로도 영원히 자네는 노예처럼 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 자네를 내가 후계자로 만들 이유가 있나? "
" 저는 따님을 사랑합니다! "
" 사랑은 하등 가치가 없어. 그럼... 이제 내가 자네를 버리더라도, 할 말은 없는 게로군? "
" 그런...! "

최무정은 다급해졌다. 병원장의 마음에서 자신이 사라지고 있다 느꼈다.

" 해결할 겁니다! 이미 계획도 다 세웠습니다! "
" 어떻게? "
" 그건...! 말씀드릴 순 없지만...조만간 확실히 해결하겠습니다! "

병원장은 손을 내저어 버렸다.

" 자네는 믿을 수 없는 얘기만 하는군. 내가 아는 자네의 모습이 아닌데...쩝. 나가보게. "
" 아... "

어쩔 수 없이 방을 나서는 최무정. 그의 주먹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 임여우...! "

자신의 창창하던 인생이 고작, 그런 여자, 그런 아이 하나 때문에 망쳐진다면... 그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어 계획을 앞당겼다.


[ 여우야...내 아들이 너무 보고 싶다... 한 번만 만나면 안 되겠니? ]

.
.
.

운전대를 잡은 최무정이 인적 드문 둔치에 차를 세운 뒤, 옆자리의 임여우에게 말했다.

" 이해하지? 공개적으로 만날 수 없는 입장인 거... "
" ... "

임여우는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에서는 벽이 느껴졌다. 
최무정은 억지로 웃으며,

" 내 아들 좀...안아봐도 될까? "
" ... "

임여우의 품에 안긴 아기를 간절히 바라보는 최무정.
잠깐 미간을 좁히던 임여우는, 말없이 아이를 내밀었다.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든 최무정. 복잡한 얼굴로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 정말 나랑 똑같구나...내 분신이 맞구나... "
" ... "

최무정은 환하게 웃으며 아이를 어루만졌고, 임여우가 그 모습을 힐끔거렸다.
아이의 얼굴을 보며 우르르 거리던 최무정은 곧, 한 손을 가방으로 뻗었다.

" 아들! 아빠가 우리 아들 선물 가져왔어! "

가방을 뒤적거리며 무언가를 찾던 최무정. 다음 순간!

" 컥?! "

번개처럼 빠져나온 최무정의 손이, 임여우의 목덜미를 찔렀다! 
그의 손이 떼어진 임여우의 목덜미에 주사기가 남았다.

" 너 이 씹새...?! "

임여우가 부릅뜬 눈으로 목에 꽂힌 주사기를 빼 들고 돌아서자, 최무정이 얼른 그녀의 양 손목을 제압하며 차갑게 말했다.

" 신경독이다. 고통은 길지 않을 거야.. 내가 언제 까지고 너에게 발목 잡혀 살 순 없잖아? "
" 이 씹...! "

부들부들 떨리는 임여우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갔다. 그것이 주사기의 독 때문인지, 두 번이나 배신당한 한인지.

" 걱정하지 마. 아이는 내가 잘 키울게. 누구보다도 더 온 힘을 다해서 소중하게 키울 거야. 그건 네가 더 잘 알겠지? "
" 이...이...! "

피눈물을 흘리며 점점 몸에 힘이 빠져가는 임여우. 끝내 힘을 잃고 고꾸라지며 숨이 멎었다.
최무정은 그제야 붙잡고 있던 임여우의 팔을 놓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 다 네가 자초한 일이다...여우야. "

조금은 씁쓸한 표정을 잠깐이나마 지어보는 최무정. 한데-,


" 이 씹새꺄-!! "

" ?! "

벌떡 일어난 임여우가 손을 들어 올려 찍었다!

" 응애-!! "

정확히, 아기의 몸에 내려꽂히는 주삿바늘!

" 아, 안돼!! "

경악한 최무정이 임여우를 내팽개치지만, 이미 상황은 늦어 있었다. 
빠르게 심장이 뛰는 최무정!

" 안돼안돼안돼안돼!! "

절망적인 외침을 지르며 아이를 안아 올리지만! 부들부들 떨던 아이는 머지않아 어미의 뒤를 따랐다.

" 으아아-! "

아이를 놓치며 움츠러든 채 눈을 감는 최무정!
한데,

" ......? "

그는 살아 있었다. 아이는 죽었지만, 그는 멀쩡했다.

" 이, 이게...? "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자신의 몸을 더듬거리던 최무정은, 아이의 생사를 다시 한번 확인해본 뒤 서서히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 안 죽잖아...! 안 죽어! 안 죽는다고! 죽음까지는 공유하지 않는 거였어! 으하하하! "

최무정은 평생의 걱정거리가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는 환희에 차서 웃었다.
아이 엄마와 아이의 주검을 곁에 두고서.

.
.
.

최무정은 그날 밤 곧바로 병원장의 저택을 방문했다. 한시라도 빨리 자신에 대한 병원장의 생각을 돌려놓아야 했다.

" 제가 다 해결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저를 24시간 감시하셔도 좋습니다. 한 번만 더 저를 믿고 기회를 주십시오 장인어른! "

무릎 꿇고 빌고 있는 최무정을 바라보며 병원장이 물었다.

" 난 자네를 믿을 수 없네. 어떻게 해결했다는 말인가? "
" 그건... "

망설이던 최무정은,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 여기서 말씀드리기가 곤란한 내용인데... "
" 괜찮네. 지금 집에는 아무도 없네. "
" ... "

최무정은 크게 갈등했지만, 솔직하게 털어놓는 도박을 하기로 했다. 
어차피 자신의 욕망을 알고서도 사위로 받아들인 사람이 아닌가? 그간 곁에서 지켜본 바로도, 병원장은 냉혈한 구석이 있었다. 수단과 방법보다는 결과가 더 중요한 그런 사람.
게다가 지금, 자신은 믿음을 잃은 상태였다.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없겠지만,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라면 믿을 수밖에 없다. 누가 살인을 했다고 변명을 하겠는가?

" 실은...제 손으로 그들을 죽여버렸습니다. "
" ... "

병원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최무정은 아차 싶었다. 설마, 그 정도까지 허용하는 사람은 아니었던가? 내가 병원장을 잘못 보았던가?

" 그게 정말인가? "
" 예...예에.. "
" ... "

떨리는 최무정이 눈치를 살필 때, 병원장은 생각에 잠겼다. 
최무정은 간절히 기도했다. 통과냐, 실패냐? 통과냐, 실패냐? 

" ...정말로 죽였단 말이지? "

최무정은 병원장의 뉘앙스에 책망이 없다는 것을 읽어냈다. 그는 다급히 말했다!

" 예! 증명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아직 시체도 처리하기 전입니다. "
" 으음... "

볼을 긁적이며 생각에 잠기는 병원장을 보며, 최무정은 안도했다. 사람을 죽였다는 데도 태연하구나!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맞았구나!
오히려 잘됐을 수도 있었다. 병원장이 시체 처리를 도와준다면 더 완벽하지 않겠는가?
한데,

" 억울하군. "
" 네? "

억울하다? 최무정은 불안해지는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무슨 말일까? 죽은 사람들이 억울하단 말일까? 실패인가? 끝인가?

" 그래도 괜찮다는 걸 진작 알았다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는 건데. "

최무정의 얼굴이 물음표를 띄울 때, 병원장이 서랍을 열어, 권총을 꺼냈다-

' 탕-! '

" ?! "

머리가 꿰뚫리며 뒤로 넘어가는 최무정! 

" 뭣 하러 이런 걸 여태 보살폈는지 원... "

의식이 사라져가는 최무정의 눈에, 병원장의 팔뚝이 보였다. 자신과 똑같은 위치에 새 화상 자국이 나 있는 그 팔뚝이. 
댓글
  • 복날은간다 2017/04/21 01:08

    이 이야기는, 다 읽고나서 '아~ 어쩐지~!' 싶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항상 봐주시고, 댓글 남겨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B9JEFD)

  • snebwbxksk 2017/04/21 01:25

    선추천! 재밌게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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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샷건걸 2017/04/21 01:40

    항상 너무 재미있게 보다가 이제야 겨우 댓글을 남기네요.
    창의적인 발상으로 섬뜩한 문체를 선물해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응원하고 기대할께요.

    (B9JEFD)

  • 바다돌이 2017/04/21 01:42

    와... 이전 이야기도 그렇고 예상치 못하는 반전의 연속입니다! 항상 잘 보구 있습니다. 화이팅^^

    (B9JEFD)

  • 당신을위해서 2017/04/21 02:20

    항상 느끼지만 복날님 글은
    오? 하는 부분을 위로 올려서 다시 한번 읽으면서
    아! 하는 재미가 있어서 참 좋아요ㅋㅋㅋ
    글 써주신 덕분에 자기전에 재밌게 읽고 갑니다
    회사가기 싫어서 자기 싫었었는데ㅠㅠ 기분 좋게 잠들수있겠네요
    항상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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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드발군 2017/04/21 02:25

    기묘한 이야기 같은 느낌이네요.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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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둥근언덕 2017/04/21 02:26

    와.. 소름;;;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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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않되! 2017/04/21 03:12

    그럼 병원장은 자기 아들이랑 딸을 결혼시킨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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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ne0422 2017/04/21 09:27

    소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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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달02 2017/04/21 09:40

    이런 상상력 좋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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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슨닉무슨닉 2017/04/21 09:55

    이야 복날님 신작이다 ㅎㅎ
    재밌습니다!
    늘 짜릿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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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이피르 2017/04/21 10:01

    이야기를 정신없이 따라가느라 다음 내용은 상상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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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ague 2017/04/21 10:04

    최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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