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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잭더리퍼가 거닐던 화이트채플의 밤거리-장문주의보

 


지금은 절판되어 구하기 어려운 책 중에 콜린 윌슨의 '살인의 철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혹시나 해서 지금 알라딘으로 검색해보니 '살인의 심리'라는 제목으로 재출간 되어 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한 권 더 주문을 ㅋㅋ)


저로 하여금 연쇄살인이나 범죄심리학, 프로파일링 등에 관심을 갖게한 책입니다.






시대별 살인의 유형과 변화에 대한 연구서라고 할 수 있는데 가장 관심있게 읽었던 부분이 잭더리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그 밖에 파리 교외에 살면서 납치, 약탈, 살해, 인육섭취로 살아간 일가족 이야기 같은 것도 엽기적)


잭더리퍼는 이제 그 자체가 하나의 대명사 내지는 브랜드화 될 정도로 유명한 살인자라서 미드, 영드, 영화, 소설 등으로 수없이 다뤄진 이야기죠.


제가 흥미를 느꼈던 것은 잭더리퍼의 범죄의 흉악성이나 엽기성 보다도 그 시대에 대한 작가의 고찰이었습니다.


자본주의가 광기어린 속도로 발전하면서 수많은 저소득 노동자가 살게된 대도시 런던을 들여다 본 작가의 시점이 저에겐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달까요.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 속에 놓인 그들이 가장 쉽게 그 고통을 잊는 방법이 싸구려 진을 마시고 화이트채플의 집창촌을 찾는 것이었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그리고 싸구려 술과 성매매로 견디는 교육 수준이 낮은 노동자들과 그들을 상대하여 살아가는 성매매 여성들과 포주들이 엉켜 돌아가는 화이트채플 거리의 복마전이 얼마나 잭더리퍼가 활동하기 좋은 무대였나를 이야기합니다.






젊은 시절 중학교를 중퇴하고 노동으로 연명하면서 독학을 하고 마르크스에 경도되고 그러면서 일생에 걸쳐 다양한 분야의 노작을 써낸 작가의 개인적 이력이 아마도 그런 시야를 갖게 해주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비대한 자본주의, 거대지표상으로 보면 경천동지할 경제발전, 그러나 원하는 만큼의 부와 쾌락이 고루 분배되지 않고, 거기에 고도로 집중된 인구가 과도한 스트레스 속에 함께 살아가는 대도시가 낳은 새로운 범죄형태에 대해 콜린 윌슨은 '필연'으로 해석을 합니다.


91년도에 처음 국내에 출간된 책이고 제가 거의 30년 가까운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다 기억은 못하지만 저는 그 책에 담긴 작가의 관점이 우리사회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그때도 지금도 합니다.






지난 주에 방송된 '그알'에서도 우리나라의 연쇄살인범이 나타난 시기와 그 연쇄살인범들의 세대에 대한 언급이 나왔습니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다같이 가난하던 시대에서 나만 가난한 듯한 시대'로 변화된 시기의 뒤처진 자들의 열패감과 스트레스를 그 원인 중 하나로 보는 것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요즘이 두 번째로 맞는 그런 '대열패감의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 시절 열패감을 안겨주었던 칼라티비로 바라본 가진 자들의 총천연색의 화려한 삶과 여전히 흑백인 내 삶의 극명한 대비와 그 쓰라림.


지금은 sns로 보이는 타인들의 그 화려하기 짝이 없는 '콰레스마 스페셜'같은 삶과 비루한 내 삶.


거기에 수도권을 비롯한 대도시의 유례없는 집중과 부동산 폭등, 연일 뉴스에 나오는 가진 자들의 부패.


정년없는 직장, 취업의 어려움, 미래에 대한 공포와 그보다 빠른 현실의 좌절.


그래서 우리는 기가 죽거나 아니면 인터넷 여포가 되거나 심하면 현실 조커가 되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일까요.


저는 영화 '조커'의 유래없는 R등급 영화 대흥행이 영화 만듦새로 보아 타당하다 싶으면서도 이면에 전지구적 좌절과 분노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도 해봅니다.






불펜만 보아도 따뜻하고 좋은 글에 좋은 댓글도 많은데 무시하기에는 상당수의 분노에 가득찬 글, 좌절과 혐오의 글, 글 내용을 읽었나 싶은 악플이 느는 것만 같고 자꾸 걱정이 됩니다.


불펜에서 특유의 웃긴 글, 따뜻한 글, 스포츠 글을 읽다가 그런 글과 댓글을 보면 맛난 청어구이를 먹다가 생선이 목에 콱 박히는 느낌을 받습니다.


다들 삶에 치여 단체로 앵그리버드가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개인도, 사회지도자들도 한 번쯤 생각해볼 때가 아닌가 합니다.






* 덧붙임 : 콜린 윌슨의 책들은 상당히 읽어볼만 하다고 생각됩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까지 인기는 없습니다만 아직 구할 수 있는 번역서들이 많고 영어판은 상당히 쉽게 구하실 수 있습니다.






* 덧붙임 2 : 그 시절 런던 노동자계급의 처절한 삶을 가장 잘 그린 작품은 디킨즈의 '올리버 트위스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내용 중에 주인공이 디킨즈와 램을 언급한 부분도 상당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 LILLARD 2019/11/02 03:11

    오 이런 주제 좋아하는데 책 추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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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11/02 03:12

    LILLARD// 그간 불펜에서 본 바로는 아마도 님은 영어실력이 상당하실 것으로 생각되어 아마 책을 구하기가 더 쉬우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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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11/02 03:13

    [리플수정]본문의 책과 더불어 제가 추천하는 책은 '잔혹'인데 두 권짜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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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oFlamingo 2019/11/02 03:13

    화이트채플... 보드게임 재미있는데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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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cofi 2019/11/02 03:13

    책소개로 시작해서 사회분석으로 가네요
    좋은글 추천합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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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트 2019/11/02 03:14

    저도 이런 류의 책들을 즐겨 보는 편인데, 자칫 잘못하면 글의 흐름이 '그들의 죄는 사회 탓임' 으로 흐르기 쉬워, 이 쪽의 밸런스를 어떻게 잡았을지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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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역의탄생 2019/11/02 03:15

    콰레스마 혐오를 멈춰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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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11/02 03:16

    엘트// 그렇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회상의 변화가 범죄의 양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정도의 관점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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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11/02 03:17

    번역의탄생// 아웃프런트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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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y  2019/11/02 03:17

    알라딘 가서 봤더니 본문의 책과 잔혹을 함께 언급한 괜찮은 리뷰글이 있는데 이거 형님이 쓰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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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11/02 03:17

    Shy // 기억이 안나는데 제가 썼었나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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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트 2019/11/02 03:18

    사실 분노를 줄이려면 엘지야구와 리버풀축구를 끊으면 됩니.... (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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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y  2019/11/02 03:19

    혹시 알라딘닉이 로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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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11/02 03:19

    엘트// 음..요즘 리버풀은 잘해서 그간의 제 고통을 보상받는 느낌인데 트윈스도 언젠가는 보상을 해주려나요.
    심지어 요새는 여배 기름집도 잘하고 바르샤도 폼 찾아가는데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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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니밀크티 2019/11/02 03:20

    Shy // 로쟈는 남자분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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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11/02 03:20

    아, 역시 저같은 장문주의자는 새벽에 글을 써야됩니다.
    아까 오후에 쓴 글은 장렬히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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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니밀크티 2019/11/02 03:21

    장문주의자 ㅋㅋㅋ 좋은 글은 추천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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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lythew 2019/11/02 03:21

    화이트채플 영드도 추천드립니다.
    다소 잔인주의!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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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역의탄생 2019/11/02 03:21

    엘지 + 리버풀 = 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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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11/02 03:22

    번역의탄생// 어흑...싸늘하다.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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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11/02 03:23

    flythew// 거 혹시 잭더리퍼 다룬 영드인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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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ybridMan 2019/11/02 03:24

    오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춪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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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VERMIND 2019/11/02 03:30

    [리플수정]선생님 필력은 읽을 때마다 경탄스럽네요. 장문이 장문처럼 안느껴지는 글솜씨가 너무 부럽습니다. 그나저나 자리에 눕기 전에 쿠즈네츠의 성장분배론에서 절대빈곤상태의 소득분배도는 오히려 고르다 이 구절 읽다가 누웠는데 본문에 딱 그게 연상되는 구절이 보이니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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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lythew 2019/11/02 03:31

    베레타// 리퍼 관련...입죠.
    요기까지 말씀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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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11/02 03:32

    NEVERMIND// 아우 이런 과찬은...고맙습니다. 히힛.
    불펜질하다 저도 가끔 깜놀할 때가 있어요.
    막 머 검색하다 왔는데 불펜에 딱 그거 글 올라오고 그러면요.
    사실 원시공산제가 절대빈곤 상태의 고른 소득분배로 인해 가능했었던 아이러니가 있죠.ㅎㅎ
    말씀하신 내용도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이런 것이 불펜의 순기능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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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VERMIND 2019/11/02 03:38

    베레타// 맞습니다. 저에게는 이런 좋은 글 읽을 수 있는게 불펜의 순기능이지요.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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