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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을 보고.. 푸석푸석한 사랑, 겉도는 음악... (스포 포함)


'정지우' 감독의 신작 [유열의 음악앨범]을
개봉과 동시에 보았습니다.
[해피 엔드], [사랑니], [은교],
[4등]으로 이어진 그의 필모그래피는
멜로장르로 귀환한 감독의 신작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렸습니다.
영화 속에 사용된 음악들의 저작권료로만
6억 이상의 돈을 투자했다는 소식,
시사회에서의 호의적인 평가들도
[건축학개론]이후 그 맥이 끊겨진 것 같은,
멜로장르 실종의 시대를 살고있는 관객들에게
제법 기다리는 설렘을 주었구요.
그러나...
꽤 긴 러닝타임을 간신히 버틴 후
가장 먼저 검색한 건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작가입니다.
'이숙연' 작가...
대한민국 멜로영화를 대표하는
[봄날은 간다], [행복]의 각본을 썼더군요.
그런데 왜? 하면서 더 찾아보니
위의 두 작품은 공동각본에 참여한 경우였네요.
각본에 대해서 먼저 언급한 이유는,
예술영화들의 숨겨진 메시지를 해석하는 데도
나름 이골이 나있고
스릴러 영화들의 반전을 알아채는 데도
나름 재주가 있다고 자부하는 제게
이 영화는 너무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해석본이 있다면 참조하고 싶을 정도네요.
미수(김고은)와 현우(정해인),
두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버겁습니다.
유열의 음악앨범이 전파를 타기 시작한
1994년 10월 1일을 시작으로
1997년, 2000년, 2005년의 네 시점에서의
두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을 그린 이 영화에서
우연한 만남의 작위성에 대한 지적은
그래도 어느 정도 용인가능한 수준입니다.
영화도 기적과 운명이란 단어 자체를
굳이 숨기지 않습니다.
이해가 안가는 건 미수와 현우의 만남이 아니라
그들이 만나기를 마치 미리 기다리기라도 했듯
냉큼 찾아오는 갈등과 불행들입니다.
과거의 잘못에 양심이 붙들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우의 비극은
현우의 인간적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지만
그가 저지른 죄에 비해
벌은 과해도 너무 과합니다.
미수와 현우의 대사들도 마음에 안듭니다.
오글거림을 걱정했지만
오글거리기보다 부자연스럽고 경직돼 있네요.
주어진 상황에서 절대 할 것 같지 않을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고
막상 가장 진지하게 주고받았어야 할 말들은
일체 나누지 않음으로써
갈등의 원인을 제공합니다.
미수와 현우의 주변인물들도 많이 아쉽습니다.
두 사람을 위한 도구처럼 쓰입니다.
미수와 친자매 이상의 우애를 나누는
은자(김국희)가 감당하는 삶의 짐이 왜 무거운지,
미수와 현우의 사랑을 방해하는 종우(박해준)는
대체 어떤 마음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종우를 향한 미수의 마음은
아예 읽어내기가 불가능하구요.
감독은 이 부분을 분위기와 정서를 축적하기 위한,
일종의 '여백'이라고 생각했을 지 모르겠네요.
그러나 제겐 서사의 흐름을 끊고
그럼으로써 관객들의 감정선을 끊는,
이야기의 '공백'으로 느껴집니다.
핑클, 신승훈, 이소라, 토이에서부터
루시드폴, 콜드플레이로 이어지는 명곡들은
참 신기하고 기이하게도 별 감흥이 없습니다.
[건축학개론] 속 '기억의 습작' 정도의 임팩트를 기대하고
얼마든지 울어 줄 마음의 준비를 했건만
마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더 쉽게 말하자면,
음악이 극에 온전히 섞이지를 못합니다.
특히, 미수의 최종적 결단은
너무도 급작스럽고 뜬금없기에
콜드플레이의 노래는 그저 공허할 뿐입니다.
두 주인공의 조금도 변하지 않는 미모와
생색내기에 그쳐보이는 미술과 소품들도
아날로그적 감성을 소환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처음부터 레트로 감성을 공략하겠단 목표와
인기있었던 프로그램을 이용하겠다는 계획 속에
[은교]에서 감독 자신을 매료시킨 여배우와
시대의 대세인 미모의 남배우를 앞세운 후
공산품처럼 만들어진 멜로...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은근히, 아니 가장 만들기 힘든 장르는
오히려 멜로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이란 누구나 알고있고 경험하는 감정이기에
두 시간의 길이에
시공간을 초월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사랑이야기를 설득하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죠.
어느 시점부터 영화는 사랑이란 주제를
TV에게 완전히 내어준 것 같습니다.
[접속](1997), [미술관 옆 동물원](1998),
[8월의 크리스마스](1998), [파이란](2001),
[번지 점프를 하다](2001), [봄날은 간다](2001),
[그해 여름](2006), [행복](2007),
[건축학개론](2012).....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멜로 영화의 계보입니다.
이제 영화에서
누구도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 시대가
곧 올 것만 같아 두렵습니다.
영화가 사랑이야기를 멈출 때
사람들 역시 사랑을 멈출 것 같아 두렵습니다.
영화는 시대를 반영한다죠?
반대로, 영화는 사람들의 삶으로 스며들어
그들의 삶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영화관계자들이 깨달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느낀 실망은
그렇기에 더욱 아쉽습니다...
댓글
  • 티벳여우 2019/08/29 03:19

    그냥 두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하나도 안되더군요.
    특히나 유열의 음악앨범이 왜 제목인지 납득도 안될정도고요.
    정지우 감독의 전작들은 재미있게 봤는데 유열은 클리쉐 덩어리의 두 배우 화보밖에 안되어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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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8/29 03:21

    티벳여우// 사실, 이 리뷰 올리면서 걱정했답니다. 시사회 반응도 좋았고 평론가들 평도 칭찬쪽이라 내 감정이 메마르고 내가 유별난게 아닌가... 최소한 한 분은 같은 생각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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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벳여우 2019/08/29 03:27

    혁명전야// 저도 지난글에 영화를 보자마자 비판글을 쓰긴 했는데 이게 집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아쉬운 부분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더라고요. 정지우 감독이 복귀작이라 너무 안일하게 찍은건지 스토리 작가가 문제인건지 모르겠지만 너무 화가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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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벳여우 2019/08/29 03:28

    근데 같이 본 여자친구는 재미있다 하고 그러니 확실히 여성관람객들만 잡겠다는 방향으로 간거면 성공한거 같기도 하고요.. 한참 00년대에 유행하던 귀여니 소설 느낌을 2019년에 다시 받을 줄은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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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레 2019/08/29 03:29

    방금 보고 왔는데 이게 뭔가 싶네요 그냥 화보를 보고 온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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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8/29 03:29

    티벳여우// 쓰신 글 방금 읽었답니다(극공감). 이미 수십 번 이야기했지만 대한민국 영화계에 가장 부족하고 아쉬운 건 제대로 된 각본과 각본가의 실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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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8/29 03:30

    알레// 한 분 더 추가됐네요. 참 많이 아쉽고 안타깝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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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충최준우 2019/08/29 04:13

    개연성이 없다해서 걱정햇는데 오히려 개연성은 딱히문제가 아니고 뚝뚝 끊기는 느낌에 스토리 설명을 따로 해줘야 될정도로 무성의한 대사들. 연도만 바꼇지 시간이 지낫는지 전혀 모르겟는 소품들과 주인공의 외모 고증에 한숨나왓네요. 정해인 머리스타일 보자말자 처름부터 계속 거슬리다가 비밀번호 도어락 나오는 순간 걍 두손두발 다들엇습니다. 친구 죽음이 여자친구가 알면 헤어질만큼 큰 아픔인지도 모르겟고. 굳이 떠나서 외제차 타놓고 사장이랑 제대로 진전도 없이 그냥 방송국달려가는 모습... 그냥 기본이 안된영화라고 생각돱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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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8/29 04:23

    장충최준우// 댓글에 추천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음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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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캥형 2019/08/29 06:39

    제가 느낀 감상 그대로 적어주셔서 반가워 댓글 남깁니다
    음악만으로도 추억에 잠길 수 있을거라 기대했는데 여운이 전혀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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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8/29 08:27

    캥형// 좋은 쪽의 감상이 일치해서 반가웠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요... 댓글, 추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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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군무빙 2019/08/29 08:46

    제가 느꼈는데 표현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잘 표현해주신거 같습니다. 스토리는 끊기고 음악은 겉도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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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Mus 2019/08/29 10:19

    [리플수정]저도 각본이 엉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특히 후반부). 그러니 감독이 연출을 잘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듯했고요. 우연한 만남들이야 '인연'이니 그렇다 쳐도 헤어지는 계기 한두 번은 작위적인 느낌마저 들었고요. 그 좋은 노래들도 영화에 제대로 스며들지 못하는 느낌... 단, 주인공 배우들은 참 매력있고 서로 잘 어울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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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우찬찬찬 2019/08/29 11:25

    감독의 한국의 첨밀밀을 꿈 꾼 것 같은데
    영화는 영상 화보집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중요한 남주의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가 결국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해소되는 것 보고 실소를 짓다 극장을 나왔습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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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리한유리 2019/08/29 12:00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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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요정 2019/08/29 21:51

    오~~4등을 만든 감독의 작품이었군요...그 감독이 은교까지 만들었다라는거 짐 알았네요
    스포만 빼고 다 읽었는데 항상 느끼지만 혁명전야님의 기대에 못미치는 영화에 대한 리뷰도 정말이지 가슴을 후벼팝니다!! 넘넘 좋은 문장들이 많아서요
    어느 시점부터 사랑이란 주제를 tv에 내어준거 같다라는 말씀과 한국영화의 자랑스런 멜로 계보..
    그리고 특히나 맨마지막 문단은...정말이지 넘넘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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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드베드 2019/08/30 00:26

    홍보만 무쟈게 하더니 흥행실패할듯하네요,,
    잘봤습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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