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명성황후가 사치를 부려서 샀다고 알려져 있는 유물인 표범 양탄자.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 명성황후가 샀던 것일까?
사진에 보이는 양탄자 귀퉁이의 하얀 꽃 문양은 이화문, 즉 대한제국의 정식 문양이다.
근데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뀐 건 1897년. 즉 저 문양은 1897년부터 쓰인 문장인데,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을미사변은 1895년. 즉 저 양탄자는 명성황후와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52&aid=0000307694
물론 이걸 빼도 깔건 무지하게 많으니 다른 걸로 까도록 하자.
근데
여기도 야사는 정식 기록 아니니 걸르자면서
명성황후 까때는 매천야록 잘만 믿음
이화문이야 그냥 문양인데
구매자가 죽든 살든
'야 이거 명성황후가 샀던건데, 황실 물건이니까 이화문 박자' 해서 박을 수도 있는거지
매국모에게 명성황후라는 이름은 너무 과하다. 그냥 민자영이라고 해라
문양을 지정한 황실에서는 당연히 잘 박을 수 있지.
국장으로서 이화문이 공식 사용된 건 대한제국이지만 이전까지 없던 문양을 발명한 것도 아니고, 같은 이화문이래도 바리에이션이 여러 개 있으니까.
그리고 내 의견이 아니라 링크 참조하면 알듯이 국립중앙박물관 측의 공식적인 의견발표인데
본인이 저기서 근무하는 사람들보다 더 권위있는 학계의 중진이라면 인정하겠는데 그런것도 아니자너?
가설은 가설로만
근데
여기도 야사는 정식 기록 아니니 걸르자면서
명성황후 까때는 매천야록 잘만 믿음
야사의 가치는 당시 사람들이 그걸 믿을정도로 이미지가 좋았다or안좋았다 정도로 봐야할덧
당장 야사에선 청백리인 황희 정승도 상당히 구린 기록많고..
황희의 사위 살인사건 은폐 및 뇌물수수 비리 등등은 정사에요.
야사에서는 청백리 이미지지만 정사에서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다는 말 아님?
음, 다시 보니까 그런 의미였던 거 같네요. 전
당장 야사에선 / 청백리인 황희 정승도 / 상당히 구린 기록많고
이런 식으로 읽었거든요;
매천야록은 당대 루머나 소문 모음집이라 의미있는거
루머 모움집이고 굉장히 정파적이고 펴향된 문서인데
그걸 사실 근거로 쓰고 있음
수백년 뒤에 나온 황희 청백리설 같은 잡설과 달리 당대 기록이라 의미있는거야
이화문이야 그냥 문양인데
구매자가 죽든 살든
'야 이거 명성황후가 샀던건데, 황실 물건이니까 이화문 박자' 해서 박을 수도 있는거지
그래서 가능성이 낮다라고 한거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만들자마자 공식적으로 쓰이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문양을 저렇게 잘 박을 수 있다고 생각함?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공식 마크를 바로 확인할 수 있던 시절도 아닌데.
문양을 지정한 황실에서는 당연히 잘 박을 수 있지.
국장으로서 이화문이 공식 사용된 건 대한제국이지만 이전까지 없던 문양을 발명한 것도 아니고, 같은 이화문이래도 바리에이션이 여러 개 있으니까.
그런식으로 가정하면 역사 개박살남.
공부할 필요없다.
그렇게 가설을 단정지으면 역사 공부할 필요가 있나?
기자조선 믿는거랑 별다를거 있나.
그리고 내 의견이 아니라 링크 참조하면 알듯이 국립중앙박물관 측의 공식적인 의견발표인데
본인이 저기서 근무하는 사람들보다 더 권위있는 학계의 중진이라면 인정하겠는데 그런것도 아니자너?
가설은 가설로만
황실 에서 박는건데 자들이 만든문양인데 잘박을수도 있지.
전문가들이 말하면 어지간하면 걍 믿자 좀.
그당시 저런 사치품을 만들 공업력이 부족했던 조선에서 직접 저걸 박는다고?
그당시에 저걸 다시 하려면 저게 만들어진 곳으로 추정되는 청나라로 다시 보내서 주문해야하는데 새걸 사는게 더 싸겠다.
링크 들어가보고 얘기하자.
국립중앙박물관 공식 의견임.
그럼 막 민씨가 죽은 뒤에는 갑자기 공업이 막 발전해서 저걸 박았냐. 공업력이랑은 상관없지. 저 문장을 박고 안박고는.
아니 그냥 다들 조선이 능력이 없어서 저걸 저렇게 깔끔하게 못박는다느니, 문양 통일이 어렵다느니 해서 한말임 민씨가 사용했든 안했든. 왕족이 좀 비싼 카펫 쓸수도 있다고 생각함 그거 말고도 외척으로 깔게 산더미니
가설은 무슨, 상상이지. 최소한 해당 문제에 대해 하루이상 고민했다 하면 그때 가설로 치자.
저게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게 아닐 확률이 높다니까. 그당시 조선 기술력은 저런 사치품을 만들 수가 없었어.
대한제국 측에서 외국(아마 청)에 주문했을 가능성이 높아. 그건 당연히 을미사변 이후고.
기사 본문을 봐도
양탄자 네 귀퉁이의 이화문이 너무 잘 정돈되어있으니
이것은 민비가 죽은 이후의 물건이다.
라고 하는거잖아?
양탄자의 제작과 동시에 이화문을 박아야만 하는 법이 있었느냐, 그런 법이 없다면 양탄자 먼저 사고 나중에라도 이화문 박을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게 내 생각임.
관련 기록이나 증인이 있으면 좋겠지마는 단지 이화문을 이유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저 양탄자 자체가 가짜라고 단정하는 것이 오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역사라는 게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정설로 굳어진 게 없다면 당연히 이런 의견 저런 의견 나올 수 있는거지,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없다느니 하는 건 기분이 나쁘다. 가설이든 의견이든 권위있는 사람만 생산하고 표현할 수 있는거였냐
그리고 문양 만들어서 오바로크 치는게 뭔 공업력 씩이나 들먹일 일이냐
뭐 저거 말고도 깔거리야 많으니
첨보는군
매국모에게 명성황후라는 이름은 너무 과하다. 그냥 민자영이라고 해라
민씨 면 충분
명성황후 ㄴㄴ 띵성핳후
민비가 사고, 그후에 그냥 보관하다가 박은걸수도있지.
저걸로는 뭐 증거가 안되고...
황실에 남품된걸 다시 가져가서 안감 분리하고 저 문양 새로 박았다고?
증거가 안되는게 아니라 저걸 증거로 삼아야지. 일본애들이 주작하는거랑 뭔차이임? '유물은 증거가 안된다! 실제로는 이랬을 것이다!'라고 말하는거잖아.
뭘 황후야 민비노비년이지
황후는 무슨 민비라고 해라
틀렸음. 명확히 민비가 구매했다는 증거자료가 없을 뿐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걸 민비가 구매했다고 보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음.
근거 1. 대한제국이 되기 전에도 이화문은 왕실 문양으로 쓰였음. 양탄자가 대한제국 이전에 구매한 물건이라도 조선 왕실에서 구매한 물건에 왕실의 이화문이 찍혀있는건 아무 이상할 것이 없음.
근거 2. 게다가 민비를 제외하면 저 양탄자를 구매할만한 사람이 없음. 저게 민비가 구매한 것이 아니라고 치고, 그럼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에서 저만한 물건을 구매할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하면 후보로 나올만한 사람이 없음. 민씨 일파나 을사오적같은 놈들이 떼부자였고 사치도 했지만, 국고가 휘청할 정도의 사치품을 사서 황실에 진상할 이유가 없음. 자기가 쓰면 모를까.
얼핏 보기에 25마리 정도 들어간거 같은데 ㄷㄷ
그년은 우리 손에 뒤졌어야 하는데 뭔 국모야 시발....
레알 임오군란때 맞아죽었어야되는데
당시 조정에 저만한 사치를 부릴수있는사람이 누가있는가-
고종
민비에 가려서 그렇지 고종도 사치부린인물임
어느 "황후"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자국민을 학살하냐? 명성황후 좋아하네.. 퉷
한민족 역사상 가장 성공한 실장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