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4&no=221859
김자점은 도성 내 모든 백성들의 가옥에 온돌을 설치하면 사람들이 주변 산에 가득한 솔잎을 가져다가 불을 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면 산에는 골칫거리인 솔잎이 없어지고, 자연스럽게 산불도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왕명으로 온돌이 널리 퍼지자 뜻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한겨울을 춥게만 지내던 백성들이 온돌의 따뜻한 맛을 본 뒤로는 집 밖으로 안 나오는 것이었다. 한창 일을 해야 하는 젊은이들까지 따스한 방 안에만 있다 보니 다들 게을러지고, 더구나 사람들이 솔잎을 가져가는 정도가 아니라 산에 있는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가서 산은 민둥산이 돼버렸다. 나무 값과 숯 값 역시 갈수록 올랐다. 좋기만 할 줄 알았던 온돌이 산을 황폐화하고, 백성들의 강인한 근성을 없애버린 것이다.
최근 입춘이 지났음에도 한기가 가득하고 강원도에는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한여름과 마찬가지로 한겨울에도 전력 공급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이런 때일수록 무조건 난방기구를 찾기보다는 추위를 두려워하지 말고 전기를 절약하고, 주위의 이웃을 돌아보며 겨울을 극복하는 자세를 가져보면 어떨까. 몸보다 마음이 더 따뜻해질 것이다.
병맛칼럼이네.
수수께끼의호랭이가면2018/12/08 13:01
글 자체가 병맛을 퍼온거였네.
호이라아아아2018/12/08 13:02
인조때라는데 인조때는 경신대기근보다 보다 이전 아닌가
도치식러시아법2018/12/08 13:02
생각해보니까 그러네ㅋㅋ 한겨울에 뭔 밖에나가서 농사야 내년 농사 준비같은거나하지
호이라아아아2018/12/08 13:03
근데 칼럼 마지막 문단
최근 입춘이 지났음에도 한기가 가득하고 강원도에는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한여름과 마찬가지로 한겨울에도 전력 공급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이런 때일수록 무조건 난방기구를 찾기보다는 추위를 두려워하지 말고 전기를 절약하고, 주위의 이웃을 돌아보며 겨울을 극복하는 자세를 가져보면 어떨까. 몸보다 마음이 더 따뜻해질 것이다.
추워도 난방세 아끼면서 버티자 ㅋㅋ 이게 무슨 저세상 칼럼이냐
아크나이츠2018/12/08 13:03
막문단만 봐도 개 씹 노답 인데 이걸 좋다고 들고와서 경신대기근하고 연결
도대체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되냐
최근 입춘이 지났음에도 한기가 가득하고 강원도에는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한여름과 마찬가지로 한겨울에도 전력 공급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이런 때일수록 무조건 난방기구를 찾기보다는 추위를 두려워하지 말고 전기를 절약하고, 주위의 이웃을 돌아보며 겨울을 극복하는 자세를 가져보면 어떨까. 몸보다 마음이 더 따뜻해질 것이다.
이게 온돌하고 뭔 개소리인데 지금시대랑
루리웹-53440565152018/12/08 13:04
누구지 겨울에 하인이 좀 따뜻하게 날려고 움막인가 흙집 만들었더니 지랄한 꼰대선비 생각난다
작은해2018/12/08 13:04
다들 게을러지고 방안에만 있으면
산에 가서 나무 해오는 건 귀신이 해왔냐ㄷㄷ
차르마흔2018/12/08 13:05
김자점 1651년 사망 경신대기근 1670년
뒷북폭탄ㆁ2018/12/08 13:05
그게 위에있는 김자점
트루먼쇼2018/12/08 13:07
저 김자점이 보급했고 그때문에 게을러졌다는 내용은
저 칼럼에서 쓴게 아니고 청성잡기라는 고서에 나온 ㅇ내용임
근데 그것도 믿기 어려운게 김자점 이전에도 온돌은 이미 널리 퍼져있었다고함
뒷북폭탄ㆁ2018/12/08 12:54
경신대기근하고 온돌문화하고 어떤 상관관계가 있음?
중복ㅠㅠ2018/12/08 12:55
배고픈데 추워서 서러워가지고 온돌 만들엇나봥
indora88882018/12/08 12:56
배고프면 더 많이 먹어서?
정신세상2018/12/08 12:59
경신대기근이 소빙하기가 와가지고 흉년이 든거라 그래
샤아Waaagh팝콘팔이2018/12/08 13:00
배고프고추우면 서럽잖아
둘중하나라도 덜해야지
불꽃저그2018/12/08 13:00
그냥 시기적으로 그 즈음부터 많이 보이기 시작한거라고 봐야지.
꼭 경신대기근 때문이라고 보기는 힘들듯.
그냥 숙종이후 시기부터가 사회,경제,문화 등에서
진짜 조선후기라고 불릴정도로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들뢰즈-가타리2018/12/08 13:00
경신 대기근 = 소빙하기가 원인
소빙하기 = 춥다 -> 난방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 -> 온돌 보급 ㅇㅋ?
N에이브이ySeals2018/12/08 13:00
그냥 배고파도 서러워
지금 내가 그렇거든
들뢰즈-가타리2018/12/08 13:04
비추 박는 새끼들은 뭐 반박할 근거라도 있어서 박는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마이셔렵2018/12/08 13:11
여긴 유게다. 물타기가 진리지.
밀리아2018/12/08 12:55
숲에서 자급자족하는 양남이 재현해봤는데 연비가 매우 나쁘긴 하다더라
로리웹-827482822018/12/08 13:04
그거 보니까 우리나라식 온돌이 아니라 중국식이더만 우리나라껀 연기가 최대한 고래내에서 도는구조라 연비 쩜
케익칼2018/12/08 13:06
ㄴㄴ 그거 고래를 잘못만들어서 그래
고래를 잘 만드는 온돌 잘까는 사람이 와서 깔아주면 한번 장작 넣으면 열기가 이틀을 가고
잘 못까는 사람이 깔면 불꺼지고 한두시간만에 다시 추워진대
울 할머니가 그러셨음. 구들장으로 가져온 돌이 좋아야되고 고래에 토대작업을 잘해야 진짜 온돌이 된다고
식완2018/12/08 12:56
온돌이 딱 누울 자리만 만들면 연비가 좋은데, 사람이란 것이 욕심이 한도 끝도 없어서 그럼.
풍야42018/12/08 12:56
그 전에는 온돌 없었음? 몰랏네
🔥헬마블🔥2018/12/08 12:59
온돌은 백제전부터쓰던거야....
연중무휴2018/12/08 13:01
삼국시대부터 상류층이 쓰다가
조선시대에 하층민까지 퍼짐
차르마흔2018/12/08 13:01
고구려때까지 올라간다네
딩동딩동2018/12/08 13:05
온돌은 삼국시대 고구려에서 발명된걸로 추정하는중임 그리고 청동기시대의 유적에서 온돌의 원형이 되는 형태도 발견됬음
불꽃저그2018/12/08 13:05
저기서 말하는건, '보급' 문제임.
설비가 만만치 않은 문제라서 일반 백성들한테 까지 보급은 잘 안되었다고
주시자의 눈2018/12/08 12:59
화전농이 많아진것도 한 몫함
내 땅이 없으니 산에 들어가서 불질러서 밭으로 쓰는거지 타고 남은 재는 거름이 되는거고
문제는 일회용이라 한번 짓고 다른 산 또 불질러야 함
로리웹-827482822018/12/08 12:59
고려시대부터 있던게 온돌아니냐?
딩동딩동2018/12/08 13:07
고구려에서 발명한걸로 추정되고 신석기랑 청동기 시대의 유적에도 온돌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형태가 발견됬다고 함
아크나이츠2018/12/08 13:00
조선후기 산에 나무가 적어진건 화전으로 농민들이 도망간게 제일큰 이유일텐데 왜 온돌드립이 나오냐
수수께끼의호랭이가면2018/12/08 13:00
옛날에 도덕교과서에서는 고구려시대부터 내려오던 전통이라는건 구라인건가
연중무휴2018/12/08 13:03
삼국시대에는 상류층이 쓰다가
조선시대에 하층민까지 보급됨
삼국시대 온돌은 방의 일부만 데우는 식이었지만
조선시대 온돌은 방 전체를 데우는 쪽으로 개량되기도 했고
수수께끼의호랭이가면2018/12/08 13:05
아 하층민은 못쓴거구나. 지배층만 쓰던게 퍼진거네.
딩동딩동2018/12/08 13:10
그 시대의엔 단열이 안되니깐 온돌로 집안을 따뜻하게 할려면 땔감을 퍼부어 줘야되는데 하층민이 그 정도의 땔감을 모을려면... 농사도 해야되는데 땔감모을려고 하면 힘들지 않았을까?
수수께끼의호랭이가면2018/12/08 13:13
납득납득.
댓글들보니까 요즘같은 구조가 아니면 존나 많이 필요했겠네.
딩동딩동2018/12/08 13:15
글 잘못적어서 지우던 도중에 덜 지워서 오타가...
스텐레스쟁반2018/12/08 13:01
현대기술을 통해서 단열을 철저하게 한 주택에 온돌을 적용하면 열효율도 좋고 쾌적감도 좋아요.
다만, 옛날 한옥의 단열성능을 생각하면... 진짜 그냥 나무를 퍼붓는거임.
이게날씨냐열돔아2018/12/08 13:02
17세기 소빙기 가지고 경심대기근 분석한 논문도 있으니 명확한 인과관계는 없을지언정 일단 온돌이 느는건 개연성이 있긴 하네
화전이 가장 쎌 거 같긴 한데
카롤린2018/12/08 13:02
돈많은 양반들이랑 타락한관리들이 나무값으로 장난질하는걸 책에서본듯
히라테 유리나2018/12/08 13:03
민둥산 문제는 광해군때부터 언급됨
인구가 늘어나니 문제가 더더 심각해졌음
히라테 유리나2018/12/08 13:03
온돌보급의 폐해는 박지원도 지적함
히라테 유리나2018/12/08 13:07
지금은 사방의 산이 씻은듯이 벗겨져서 서울 안의 장작이 계수나무처럼 귀하다..
이런 언급이 성호사설에 나올 정도
Dragonic2018/12/08 13:03
단순히 온돌때문이 아니라 주력연료, 화전, 일제의 수탈 및 식량난 다 겹쳐서 초토화 된거라 하나만이 이유 안됨
불꽃저그2018/12/08 13:04
이건 그냥 작성자가 글을 좀 잘못쓴거 같은게,
그냥 저 시기즈음으로 해서 상류문화가 하류로 보급이 많이 이루어지는 시기이고
온돌역시 그 기간 즈음으로 해서 일반 백성들에게 보급이 이루어지던
즉, 시기를 구분하는 큰사건 쯤 되겠지.
경신대기근-온돌보급이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성립되기는 힘들듯.
불꽃저그2018/12/08 13:09
위에 소빙하기 이야기 많이하는데,
저 이야기는 뭐냐면
1. 일반 백성들이 온돌 설비를 알고는 있었다.
2. 너무 추워져서 중앙정부나 향촌 수령 및 재지사족 차원에서 보급해줬다.
둘 중에 하나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2번은 뭐 있으면 실록에 실려있었을 거니까.... 실록에 있었으면 위키에서도 긁어왔겠지.
그때그새끼2018/12/08 13:06
증언이나 칼럼, 기사 하나로 어떤 현상의 원인이 이거다!
하면서 믿는게 바보임.
조선 후기 산림 초토화가 온돌 때문이 맞다면, 수 많은 증거가 있어야되는데..
정작 온돌에 대한 언급 비중은 더 낮음.
그때그새끼2018/12/08 13:09
특히 산림자원의 부족이 지적되면 관리가 들어가는게 옛 시대인데..
멀쩡한 나무까지 베어다가 민둥산 만들면서 대다수 백성들이 쓴다?
그거 끌려가서 뒤질 수 있는 시대에요.
I.Kant2018/12/08 13:11
화전민 영향이 더 클거 같은데 아님말고
로리웹-827482822018/12/08 13:11
누가보면 산이 다 민둥산됬는줄 알겠네 그러면 조선후기까지있던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사람나오는건 어찌 설명할껀데?
경신대기근하고 온돌문화하고 어떤 상관관계가 있음?
배고픈데 추워서 서러워가지고 온돌 만들엇나봥
출처나 좀 들고와바 중간 뚝 떼서 들고오지말고
ㅈㄹ시나이데 짤
숲에서 자급자족하는 양남이 재현해봤는데 연비가 매우 나쁘긴 하다더라
난다 고래?
ㅈㄹ시나이데 짤
이게 왜 ㅈㄹ임?
뭐가 ㅈㄹ시나인데 인데?
출처나 좀 들고와바 중간 뚝 떼서 들고오지말고
경신대기근과 온돌의 상관관계에 대한 해명이 없으니 ㅈㄹ시나이데지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09&aid=0003135388
편하니까 게을러진다니 이 무슨...
경신대기근이랑 뭔 상관임?
근성론 개뿅뿅같네 ㅋㅋ 어차피 농경사회겨울은 농한기인데.ㅋㅋ
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4&no=221859
김자점은 도성 내 모든 백성들의 가옥에 온돌을 설치하면 사람들이 주변 산에 가득한 솔잎을 가져다가 불을 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면 산에는 골칫거리인 솔잎이 없어지고, 자연스럽게 산불도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왕명으로 온돌이 널리 퍼지자 뜻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한겨울을 춥게만 지내던 백성들이 온돌의 따뜻한 맛을 본 뒤로는 집 밖으로 안 나오는 것이었다. 한창 일을 해야 하는 젊은이들까지 따스한 방 안에만 있다 보니 다들 게을러지고, 더구나 사람들이 솔잎을 가져가는 정도가 아니라 산에 있는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가서 산은 민둥산이 돼버렸다. 나무 값과 숯 값 역시 갈수록 올랐다. 좋기만 할 줄 알았던 온돌이 산을 황폐화하고, 백성들의 강인한 근성을 없애버린 것이다.
최근 입춘이 지났음에도 한기가 가득하고 강원도에는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한여름과 마찬가지로 한겨울에도 전력 공급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이런 때일수록 무조건 난방기구를 찾기보다는 추위를 두려워하지 말고 전기를 절약하고, 주위의 이웃을 돌아보며 겨울을 극복하는 자세를 가져보면 어떨까. 몸보다 마음이 더 따뜻해질 것이다.
병맛칼럼이네.
글 자체가 병맛을 퍼온거였네.
인조때라는데 인조때는 경신대기근보다 보다 이전 아닌가
생각해보니까 그러네ㅋㅋ 한겨울에 뭔 밖에나가서 농사야 내년 농사 준비같은거나하지
근데 칼럼 마지막 문단
최근 입춘이 지났음에도 한기가 가득하고 강원도에는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한여름과 마찬가지로 한겨울에도 전력 공급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이런 때일수록 무조건 난방기구를 찾기보다는 추위를 두려워하지 말고 전기를 절약하고, 주위의 이웃을 돌아보며 겨울을 극복하는 자세를 가져보면 어떨까. 몸보다 마음이 더 따뜻해질 것이다.
추워도 난방세 아끼면서 버티자 ㅋㅋ 이게 무슨 저세상 칼럼이냐
막문단만 봐도 개 씹 노답 인데 이걸 좋다고 들고와서 경신대기근하고 연결
도대체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되냐
최근 입춘이 지났음에도 한기가 가득하고 강원도에는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한여름과 마찬가지로 한겨울에도 전력 공급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이런 때일수록 무조건 난방기구를 찾기보다는 추위를 두려워하지 말고 전기를 절약하고, 주위의 이웃을 돌아보며 겨울을 극복하는 자세를 가져보면 어떨까. 몸보다 마음이 더 따뜻해질 것이다.
이게 온돌하고 뭔 개소리인데 지금시대랑
누구지 겨울에 하인이 좀 따뜻하게 날려고 움막인가 흙집 만들었더니 지랄한 꼰대선비 생각난다
다들 게을러지고 방안에만 있으면
산에 가서 나무 해오는 건 귀신이 해왔냐ㄷㄷ
김자점 1651년 사망 경신대기근 1670년
그게 위에있는 김자점
저 김자점이 보급했고 그때문에 게을러졌다는 내용은
저 칼럼에서 쓴게 아니고 청성잡기라는 고서에 나온 ㅇ내용임
근데 그것도 믿기 어려운게 김자점 이전에도 온돌은 이미 널리 퍼져있었다고함
경신대기근하고 온돌문화하고 어떤 상관관계가 있음?
배고픈데 추워서 서러워가지고 온돌 만들엇나봥
배고프면 더 많이 먹어서?
경신대기근이 소빙하기가 와가지고 흉년이 든거라 그래
배고프고추우면 서럽잖아
둘중하나라도 덜해야지
그냥 시기적으로 그 즈음부터 많이 보이기 시작한거라고 봐야지.
꼭 경신대기근 때문이라고 보기는 힘들듯.
그냥 숙종이후 시기부터가 사회,경제,문화 등에서
진짜 조선후기라고 불릴정도로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경신 대기근 = 소빙하기가 원인
소빙하기 = 춥다 -> 난방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 -> 온돌 보급 ㅇㅋ?
그냥 배고파도 서러워
지금 내가 그렇거든
비추 박는 새끼들은 뭐 반박할 근거라도 있어서 박는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긴 유게다. 물타기가 진리지.
숲에서 자급자족하는 양남이 재현해봤는데 연비가 매우 나쁘긴 하다더라
그거 보니까 우리나라식 온돌이 아니라 중국식이더만 우리나라껀 연기가 최대한 고래내에서 도는구조라 연비 쩜
ㄴㄴ 그거 고래를 잘못만들어서 그래
고래를 잘 만드는 온돌 잘까는 사람이 와서 깔아주면 한번 장작 넣으면 열기가 이틀을 가고
잘 못까는 사람이 깔면 불꺼지고 한두시간만에 다시 추워진대
울 할머니가 그러셨음. 구들장으로 가져온 돌이 좋아야되고 고래에 토대작업을 잘해야 진짜 온돌이 된다고
온돌이 딱 누울 자리만 만들면 연비가 좋은데, 사람이란 것이 욕심이 한도 끝도 없어서 그럼.
그 전에는 온돌 없었음? 몰랏네
온돌은 백제전부터쓰던거야....
삼국시대부터 상류층이 쓰다가
조선시대에 하층민까지 퍼짐
고구려때까지 올라간다네
온돌은 삼국시대 고구려에서 발명된걸로 추정하는중임 그리고 청동기시대의 유적에서 온돌의 원형이 되는 형태도 발견됬음
저기서 말하는건, '보급' 문제임.
설비가 만만치 않은 문제라서 일반 백성들한테 까지 보급은 잘 안되었다고
화전농이 많아진것도 한 몫함
내 땅이 없으니 산에 들어가서 불질러서 밭으로 쓰는거지 타고 남은 재는 거름이 되는거고
문제는 일회용이라 한번 짓고 다른 산 또 불질러야 함
고려시대부터 있던게 온돌아니냐?
고구려에서 발명한걸로 추정되고 신석기랑 청동기 시대의 유적에도 온돌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형태가 발견됬다고 함
조선후기 산에 나무가 적어진건 화전으로 농민들이 도망간게 제일큰 이유일텐데 왜 온돌드립이 나오냐
옛날에 도덕교과서에서는 고구려시대부터 내려오던 전통이라는건 구라인건가
삼국시대에는 상류층이 쓰다가
조선시대에 하층민까지 보급됨
삼국시대 온돌은 방의 일부만 데우는 식이었지만
조선시대 온돌은 방 전체를 데우는 쪽으로 개량되기도 했고
아 하층민은 못쓴거구나. 지배층만 쓰던게 퍼진거네.
그 시대의엔 단열이 안되니깐 온돌로 집안을 따뜻하게 할려면 땔감을 퍼부어 줘야되는데 하층민이 그 정도의 땔감을 모을려면... 농사도 해야되는데 땔감모을려고 하면 힘들지 않았을까?
납득납득.
댓글들보니까 요즘같은 구조가 아니면 존나 많이 필요했겠네.
글 잘못적어서 지우던 도중에 덜 지워서 오타가...
현대기술을 통해서 단열을 철저하게 한 주택에 온돌을 적용하면 열효율도 좋고 쾌적감도 좋아요.
다만, 옛날 한옥의 단열성능을 생각하면... 진짜 그냥 나무를 퍼붓는거임.
17세기 소빙기 가지고 경심대기근 분석한 논문도 있으니 명확한 인과관계는 없을지언정 일단 온돌이 느는건 개연성이 있긴 하네
화전이 가장 쎌 거 같긴 한데
돈많은 양반들이랑 타락한관리들이 나무값으로 장난질하는걸 책에서본듯
민둥산 문제는 광해군때부터 언급됨
인구가 늘어나니 문제가 더더 심각해졌음
온돌보급의 폐해는 박지원도 지적함
지금은 사방의 산이 씻은듯이 벗겨져서 서울 안의 장작이 계수나무처럼 귀하다..
이런 언급이 성호사설에 나올 정도
단순히 온돌때문이 아니라 주력연료, 화전, 일제의 수탈 및 식량난 다 겹쳐서 초토화 된거라 하나만이 이유 안됨
이건 그냥 작성자가 글을 좀 잘못쓴거 같은게,
그냥 저 시기즈음으로 해서 상류문화가 하류로 보급이 많이 이루어지는 시기이고
온돌역시 그 기간 즈음으로 해서 일반 백성들에게 보급이 이루어지던
즉, 시기를 구분하는 큰사건 쯤 되겠지.
경신대기근-온돌보급이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성립되기는 힘들듯.
위에 소빙하기 이야기 많이하는데,
저 이야기는 뭐냐면
1. 일반 백성들이 온돌 설비를 알고는 있었다.
2. 너무 추워져서 중앙정부나 향촌 수령 및 재지사족 차원에서 보급해줬다.
둘 중에 하나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2번은 뭐 있으면 실록에 실려있었을 거니까.... 실록에 있었으면 위키에서도 긁어왔겠지.
증언이나 칼럼, 기사 하나로 어떤 현상의 원인이 이거다!
하면서 믿는게 바보임.
조선 후기 산림 초토화가 온돌 때문이 맞다면, 수 많은 증거가 있어야되는데..
정작 온돌에 대한 언급 비중은 더 낮음.
특히 산림자원의 부족이 지적되면 관리가 들어가는게 옛 시대인데..
멀쩡한 나무까지 베어다가 민둥산 만들면서 대다수 백성들이 쓴다?
그거 끌려가서 뒤질 수 있는 시대에요.
화전민 영향이 더 클거 같은데 아님말고
누가보면 산이 다 민둥산됬는줄 알겠네 그러면 조선후기까지있던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사람나오는건 어찌 설명할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