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이 해 도쿄 대학은 입시를 중지했다. 비틀스는 화이트 앨범, 옐로서브마린, 아일 비 로드를 발표했고, 롤링스톤스는 최고의 싱글 홍키 통키 우먼을 히트시켰고, 히피라 불리는 머리카락이 긴 사람들이 사랑과 평화를 부르짖고 있었다. 파리에서는 드골이 정권에서 물러났다. 베트남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이 때부터 여학생들은 생리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969년은 그런 해였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으로 진급했다.
-무라카미 류. '69' 중에서-
무라카미 류의 소설 '69'를 읽으면서, 위에 적은 저 부분을 도입부에서 읽으면서 나는 엄청난 질투를 느꼈었습니다.
그런 멋진 해에 자신의 가장 감수성 예민한 시기를 보냈던 사람들에 대한 질투였죠.
유년기를 마치고 청소년기에 진입하면서 나름 머리에 먹물이 좀 들어가기 시작한 이래로 언제나 그렇게 앞선 세대들을 질투했었던 것 같습니다.
우드스탁에 있었던 이들이 부러웠고
68혁명기의 프랑스 젊은이들이 부러웠고
조금 더 올라가면 19세기말 데카당스의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부러웠고
우연한 기회에 잭 캐루악의 책을 읽게 되면서 비트 제너레이션이니 앵그리영맨이니 하는,
그 뭐랄까.
대 격변기, 대 혼란기 그러나 한편으로는 열정이 넘치던 시대에 청춘을 보낸 이들을 부러워 했었습니다.
내가 고른 것도 아닌데 태어나 보니 나는 박정희 시대에 살고 있었고 ,
내 청소년기는 내내 전두환의 시대였던 겁니다.
남자애들은 하나같이 빡빡머리를 강요당하고 교련복을 입고 먼지 날리는 운동장을 구르고
여자인 나는 뭐만 좀 할라치면 '계집애가 조신하지 못하게'를 듣던 그 시절의 내 청소년기가 너무도 억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탈로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야간 자율학습시간이면 아버지가 사주신 워크맨으로 미치도록 음악을 들었습니다.
대학생이 되기도 전에 남자라면 군면제를 받을 수 있는 시력에 도달하도록 미친듯이 책을 읽었습니다.
그 때는 몰랐습니다.
내 청소년기와 청년기도 지나고 보면 뜨겁고 뜨거운 멋진 시대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낮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왔습니다.
보면서 여러 장면에서 가슴이 쿵쿵 뛰고
나도 모르게 입을 뻐끔거리며 소리없는 싱어롱을 하고
몇몇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지극히 '혼모노'스러운 모습으로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빠져나오면서 나는 깨달았습니다.
아, 그렇구나.
나는 무라카미 류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었구나.
나는 저 뜨거웠던 라이브 에이드의 해에 중3, 열여섯 살이었구나.
나는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마잭과 마돈나와 프린스와 퀸과 레젭과 딥퍼플과 들국화와 신촌블루스와 조동진을 들으며
그리고 왕가위의 영화를 보고
기형도와 이성복과 황동규의 시를 읽으며 보낸 황금세대구나.
젊은 친구들이 나의 세대를 꿀빤 세대라고 할 때마다 발끈했었는데 이제는 그냥 수긍해야겠다, 나는 행운아였구나.
연인과 헤어지고 우리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헤어진 상대가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하던 순간들의 자신의 빛나고 행복하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하듯이
오늘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며 제가 내내 흘린 그 창피할만큼의 많은 눈물은 어쩌면 프레디 머큐리와 브라이언 메이를 위시한 퀸의 음악들 때문이 아니라 그 음악들과 함께 뜨겁고 용감하고 순수했던 시절의 내 모습이 너무도 그리워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라이브 에이드의 해에 열여섯이었던 나보다는 열살쯤 더 많았던 언니오빠들이 더 제대로 그 시대를 누렸을지도 모르겠으나 이제 그들 세대를 질투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들은 내년이면 환갑인데 저는 이제 겨우 파릇파릇한 지천명이 될 뿐인 것을요. ㅎㅎㅎ
이 영화를 관람할 때 놀라웠던 점이 몇가지 있습니다.
일단 제 옆에 앉았던 혼자 보러왔던 이십대로 보이던 젊은이.
영화 보면서 우는 내 모습이 창피했는데 그 젊은이도 나 못지않게 많이도 우는 겁니다.
아들뻘인 그 젊은이의 나 못지않은 감동을 보며, 역시 좋은 음악은 세대를 뛰어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아니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그 흔한 영화관 진상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제 앞줄에는 지긋한 나이의 중년들이 많으셨는데 그 세대만 알 수 있는 유머들이 나올 때 많이들 웃어줘서 제가 어색하지 않았고
제 뒷줄은 젊은 친구들이 단체로 왔었는데 나가면서 그러더군요.
와, 버릴 곡이 하나도 없네, 노래들 다 쩐다.
아마도 퀸의 음악을 원래 좋아하고 그런 친구들은 아닌 모양인데 프레디 머큐리는 오늘 또 팬수를 늘렸지 싶습니다.
커트 코베인이 그렇게 프레디 머큐리를 부러워하고 질투했다고 하죠.
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카리스마, 무대 장악력, 관중 장악력을요.
이제 락의 시대는 갔고, 어쩌면 영원히 다시 안 올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소위 락 좀 들었다는 왕년의 '혼모노'들 사이에서 퀸의 음악성이 어쩌고 업적이 어쩌고 하는 그들만의 논란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무대에 섰을 때의 그 카리스마만큼은 프레디를 능가할 이를 쉬이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것 몇가지를 더 적자면.
그의 집에 걸려있던 마를렌 디트리히,
제가 너무도 좋아하는 고전배우라서 반가웠고, 프레디의 바이섹슈얼적인 면모와 또한 잘 어우러지는 배우이며, 그녀 또한 노래를 잘했죠.
제가 아주 고생해서 그녀가 노래한 '릴리 마를렌'이 수록된 음반을 구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반가웠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싱글로 내자고 제작자와 싸울 때 그 유명한 핑플의 음반을 언급할 때 진짜 반갑고 재밌었습니다.
공연할 때 피아노 위에 쭉 늘어놓은 맥주잔들.
라이브 에이드 공연 장면에서 33년 전에 느꼈던 감정을 또 느꼈습니다.
세상에 물빠진 청바지에 난닝구만 입고도 저렇게 멋있는 사람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가기 전에
저는 어떻게든 다시 시간을 내서
싱어롱 상영을 보러갈 겁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