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범
증조부가 정조 시절 영의정을 지낸 명문가의 후손으로
김옥균과 더불어 갑신정변에 참여했다가 실패 후 일본으로 도주
이후 조선 조정에서 역적으로 규정해 몇차례 암살자를 보냈으나 목숨은 건짐
일본은 김옥균을 비롯한 이들 망명자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고
더 있다간 정말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울 것 같아 미국으로 다시 망명
미국 동부 지역에 거주하면서 사탕 수수 농장과 커피 농장, 오렌지 농장에서 잡역부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공부를 해서 학사학위를 취득했고 1892년 정식으로 미국 시민권을 받게 됨
이사람이 조선인 최초의 시민권 취득자였음. 뭐 유진 초이도 불가능한게 아니라는 이야기
이후 갑신정변의 제재가 풀리자 조선으로 돌아와 갑오개혁과 단발령에 참여함
법부대신이 되었다가 주미공사로 임명되어 미국으로 다시 파견..(미국 시민권자를 주미 공사로 파견한 셈)
이후 아관파천 후 친러내각이 들어서자 파직되었다가 다시 중추원에 관직을 하나 받았으나 폐병이 악화되어 1897년 39세의 나이에 미국에서 사망
요절해서 그렇게 유명하진 않은데 조선 최초 타이틀을 4개나 가지고 있었음
조선 최초로 미국 시민권 획득한 사람
조선 최초로 서양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
조선 최초로 양복을 입은 사람
조선 최초로 성경을 번역한 사람
갑신 정변 실패 후 집안과 가족이 몰살을 당했음에도 조선으로 돌아와 나름 열심히 관직 생활을 한 특이한 케이스
비슷한 박영효는 완전히 흑화해서 나라를 팔아먹고 후작 작위까지 땄으니..
서재필도 비슷하게 땄을텐데
1800년대 말에 시민권 취득 ㄷㄷㄷ
1800년대 말에 시민권 취득 ㄷㄷㄷ
서재필도 비슷하게 땄을텐데
유길준이 조선 최초의 유학생이었으나.. 아들래미 둘이는 친일제..
서재필이 더 늦은가벼?
저런거 보면 미국도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