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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어떤 쿨가이.jpg

 

박항섭-연안성싸움(이정암)-1975s.jpg

 

 때는

 1592년 음력 5월18일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질때,

당시 개성 유수였던 이정형과

그의 형인 이조참의 이정암은

선조의 몽진을 따라 피란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사유로 인해

낙오되어 개성을 수비하려 하였지만

이내 가망이 없다 생각하여

두 형제는 각각 몸을 숨겼다

 

이후 개성 유수 이정형은 백척에서 의병대를 만들었고,

이조참의 이정암은 당시 분조를 이끌던 광해군에 의해

황해도 초토사로 임명되어

황해도의 방위를 맡게 되었다

그는 예전 자신이 부사로 지냈던 연안성에 주둔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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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암 李廷馣

1558년 진사가 되고, 1561년에 급제하여 출사하였다

내직과 외직을 두루 거쳤던 그는

전국 곳곳에 부임하였으나

부임하는 곳마다 민심을 거두며

여느 탐관오리들과는 다른 선정을 펼쳤었다

 

이정암이 연안성으로 들어가자 예전 그의 선정을 기억하던 백성들은

그를 환영해주었고,

이정암은

"내가 드디어 죽을 곳을 찾았다."

라고 말하며 연안성을 수비하기로 결심하였다

 

한편,

호남과 남해에서 조선군의 활약으로

왜1군의 진군이 평양성에서 멈추게 되자,

전쟁의 조기 종결을 기대하고 황해도의 완전 점령을 등한시하였던

왜군이 점령지의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황해도의 점령을 본격적으로 계획하였다

황해도의 점령은 구로다 나가마사가 이끄는 왜3군이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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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성에 이정암이 주둔하자 인근의 의병대들이

이정암의 조선군에 속속 합류하였다

그 군세는 약 1400여명

 

음력 8월28일

왜3군의 선봉대 1000명이 연안성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왜군의 모습에 지레 겁을 먹은 부하들이 이정암에게 철수를 건의하였으나 

"백성들과 생사를 같이하기로 했으니 죽음이 두려우면 떠나라"

 라고 말하자 휘하 장수들이 감격하여 이를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

사기를 드높였다

 

왜군은 연안성에 주둔한 조선군이 그 수가 적음을 파악하고 

사신을 보내어 항복할 것을 종용하였다

허나 이정암은

"너희는 병(兵)으로 싸우지만 우리는 의(義)로써 싸운다"

라고 답하며 거절하였다

 

그러자 한 왜군 장수가 백마를 타고 동문 앞에서 도발을 하였으나

수문장 장응기의 활에 전사하며

조선군의 사기를 높여 주었다

 

왜군은 이날 공성탑을 이용해

불화살을 쏘아 화공을 시도하였으나

역풍으로 인해 실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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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8월 29일

왜군은 판자를 이용하여 성벽을 기어오르는 등

종일 공세를 가했다

이정암은 성벽을 오르는 왜병만 공격할 것을 명령하여

화살을 아꼈다

 

음력 8월30일

이 날의 공세 역시 매서웠으나

서문 수문장 이대춘이 철전을 쏘아

판자를 넘어뜨려 왜군들을 압사시키고,

다른 조선군들도 끓는 물을 뿌리거나 불붙인 짚단을 던지는 등

수비에 박차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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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9월 1일

구로다 나가마사가 이끄는 왜3군 주력이 연안성에 도달하였다

왜군의 수는 5천이 넘었으며

이에 조선군은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이정암은 자신의 지휘석에 마른 장작을 쌓게하여

자신의 아들 이준에게 

"이 성이 함락되면 여기에 불을 질러라. 내가 적에게 모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여기서 죽을 것이다"

 라고 말하며 사기를 높였다

 

또한 이 날 공세 중에

왜군에 포로로 잡혀 있던 역관이 탈출하여 연안성 조선군에게 도주해왔다

이 역관은 하루만 버티면 왜군이 철수할 것이란 정보를 알려주었다

이 날 밤 왜군이 총공세를 가해왔으나

조선군이 화공을 가하자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음력 9월2일

아침이 밝자 역관의 말대로

왜3군이 철수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이정암은 서문 수문장 이대춘에게 왜군을 추격할 것을 명했으며

왜군은 마소 90필과 군량미 130석을 빼앗겼다

 

이 전투로 왜3군의 황해도 점령은 큰 타격을 받았으며,

이후로도 연안성은 왜군이 평양성을 버리고 패주를 하는 순간까지

삼남지방과 의주의 조정 사이의 중계지로써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연안성 전투는 조선군의 첫 수성전 승리로 기록되었다

 


 

 

한편 이정암은 이 전투 직후 한줄짜리 장계

 

以二十八日圍城 以二日解去(이이십팔일위성, 이이일해거)

28일에 성을 포위했다가 2일에 포위를 풀고 물러갔습니다.

 

를 올려 조정을 당황시킨다

 

물론 이후 전투의 상세를 알게된 선조는

'공을 세우기는 쉽지만 이를 자랑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

라고 칭찬하며 이정암에게 정2품의 벼슬을 내리고

황해도 관찰사 겸 순찰사로 임명하였다


 

 

 

댓글
  • 루리웹-222722216 2018/08/15 13:54

    긴 보고서를 쓰는게 귀찮았던게 아닐까…

  • 루리웹-222722216 2018/08/15 13:54

    긴 보고서를 쓰는게 귀찮았던게 아닐까…

    (NuAlmR)

  • J.J.Sakurai 2018/08/15 13:54

    공을 세우기도 어려웠던거 가튼데여 ㄷㄷㄷ

    (NuAlmR)

(NuAlm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