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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어느 어떤 동네의 음식점 간행본, 요리왕

사내는 프로그래머였다.
그러니까 그는 11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 배고파... "

원룸 건물에 도착해서 계단을 오르던 사내는, 주머니에서 집 열쇠를 꺼내며 집에 먹을 게 무엇이 있었나를 생각했다. 
문 앞에 도착해 열쇠를 돌리려던 사내는, 손잡이에 걸려 있던 동네 음식점 간행본, '요리왕'을 발견했다. 
요즘이야 이런 것들은 배달앱들을 사용하면 간편하다지만, 사내는 광고 책을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어플을 깔고 뒤적거리는 게 그에게는 더 질리는 일이었다.
욕실에서 대충 씻고 나온 사내는, 대충 던져놓았던 요리왕을 집어 들었다. 한데,

" 뭐야 이거? "

인상을 찡그리는 사내. 그가 넘긴 첫 페이지에는 이상한 가게가 소개되어 있었다.

[ 원조 마산 인간찜! ]

" 인간찜이 뭐야?? "

사내는 미간을 좁히며 가게의 메뉴들을 살펴봤다. 

[ 원조 인간찜 小 20,000 中 25,000 大 30,000 ]
[ 해물 인간찜 小 20,000 中 25,000 大 30,000 ]
[ 얼큰 인간탕 小 20,000 中 25,000 大 30,000 ]

" ... "

사내의 얼굴이 기묘하게 씰룩거렸다. 마치 아귀찜처럼 붉게 양념 된 메뉴들의 사진 속 고기들이...무슨 고기인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찜찜한 얼굴로 다음 장을 넘겨보는 사내.

" 이건 또 뭐야?? "

[ 옛맛 안동 찜인간! ]

[ 안동찜인간 中 25,000 大 30,000 특 40,000 ]
[ 홍초찜인간 中 25,000 大 30,000 특 40,000 ]
[ 인간도리탕 中 20,000 大 25,000 특 35,000 ]

사진 속 요리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안동찜닭 그 자체의 모습이었지만...들어간 고기가 닭처럼 보이지 않았다. 왠지 정말로-,

" 사람 고기냐 이거?? "

인간이라는 단어 때문일까, 사내의 눈에 사진 속 고기들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찜찜한 얼굴로 다음 장을 넘겨 보지만,

[ 매울 辛! 불손가락! ]

[ 매운 구이 불손가락(서비스 폭탄 주먹밥2+쿨피스) 16,000 냥 ]
[ 뼈 없는 불손가락(서비스 폭탄 주먹밥2+쿨피스) 18,000 냥 ]
[ 국물 불손가락(서비스 폭탄 주먹밥2+쿨피스) 22,000 냥 ]

" 이...이이...! "

이번 가게의 사진을 보고 확실해졌다. 닭발처럼 보이는 요리들이, 죄다 인간의 손으로 요리되어 있었다. 

" 누가 이런 장난질을 쳐?! "

혐오감으로 일그러진 사내는 신경질을 내며 다음 장. 그 다음 장, 그 다음 장들로 넘겨봤다.

[ 두 마리 인간튀김! 후라이드 인간! 양념 인간! 간장 인간-. . . ]
[ 뉴욕 왕 피자! 인간 토핑 추가 선택 가능-. . . ]
[ 30년 왕십리 곱창! 야채 소장 볶음! 소금 대장! 양념 대장-. . . ]
[ 인간-. . . ]

죄다 인간이었다. 모든 가게가 인간을 취급하고 있었다.

" 어떤 싸이코가 이딴 걸 만든 거야?! "

사내는 기분 나쁜 얼굴로 페이지들을 넘겼다. 한데, 단순한 조작이라기엔 그 퀄리티가 너무 훌륭했다. 

" 이거...뭐야? 진짜 있는 전화번호야 뭐야? "

가게마다 다 다른 그럴듯한 전화번호와 쿠폰들까지 보고나니, 사내는 호기심이 생겼다. 분명 전화를 걸면 없는 번호이거나, 아무 가게나 나올 거라 생각은 했다. 그래도 혹시? 
사내는 핸드폰을 들었다. 전화를 건 가게는 찜닭... 아니, 찜인간집.

평범한 신호음이 이어지다가, '찰칵!'

[ 네~ 옛맛 안동 찜인간 입니다~ ]
" ... "

사내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 찜...인간이요? "
[ 네네~ 주문이신가요~ ]
" 아...그... "

당황한 사내는 말을 더듬다가 얼떨결에,

" 그... 기본...? 기본 하나요. "
[ 네네~, 중자. 대자. 특자요~ ]
" 주, 중자요.. "
[ 주소는요~ ]
" 아... ㅁㅁ동-. . .301호요.. "
[ 네네 감사합니다~ (뚝!) ]
" ... "

사내는 인상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보았다. 

" 뭐야 이거...? 컨셉이야 뭐야? 진짜 인간 찜닭이라도 온다는 거야 뭐야? "

찜찜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있던 사내는, 그냥 '요리왕'을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냉장고로 가서 먹을 게 없나 뒤적거리다가, 바나나 2개를 들고 와 컴퓨터 앞에 앉는 사내. 얼마간 인터넷 기사들이나 뒤적거리던 그때-,

' 부르으응~, 빵빵-! '

바로 옆 창밖에서 배달 오토바이가 정차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찜찜한 얼굴로 창밖을 내려다보는 사내. 배달원이 그대로 본인의 건물로 들어오는 보고 당황했다!

" 뭐야?? 배달 온...거야? 우리 집...? "

사내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현관문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다른 집이겠지. 혹시, 우리 집에 배달이 온 거라면 그냥 안동찜닭이 왔겠지.
문밖으로 귀를 기울이니,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긴장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키는 사내.
발걸음 소리는 정확히 사내의 층에서 멈춰졌고, 곧-

[ 꾸웨엑! 꾸웩-! ]

" !! "

밖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사내의 눈이 커졌다!
조심스럽게 문에 달린 작은 눈구멍으로 밖을 살펴보자, 검은색 후드티를 뒤집어 쓴 남자가 손에 배달통을 든 체로 앞집 문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

" 아, 앞집이 시켰구나... "

사내가 안도하려는 것도 잠시, 문밖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고개를 돌려 '302호' 숫자를 확인하고는 머리를 '탁!'쳤다! 곧장 뒤로 돌아서는 남자-!

" 흐억?! "

눈구멍으로 그의 얼굴을 확인한 사내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후드티 안, 남자의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돼지머리가 꿈틀대고 있었다! 

[ 꾸웨엑! 꾸웩-! ]

" 흐이익! "

바로 문 앞에서 들려오는 괴울음소리에 다리가 풀려버린 사내!

[ 꾸웨엑! 꾸웩-!! ]

주저앉은 사내가 혼이 나간 얼굴로 문을 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곧, 

' 쾅 쾅 쾅! '
[ 꾸웨에엑-! ]
" 으악!! "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기겁하는 사내! 

[ 꾸웨엑 꾸웩? ]

곧, 의문에 찬 울음과 함께 밖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 ... "

침을 꿀꺽 삼키며 사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는 그 순간! 

' 띠리리링- 띠리링-♬ '
" 흐힉! "

거실 쪽에서 울리는 핸드폰! 
사내는 놀라 다시 주저앉았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핸드폰을 돌아보았지만, 무서워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내! 
곧, 

' 쾅쾅쾅-쾅!! '

" 으아악-! "

갑자기 울리는 문소리에 사내는 비명을 질렀다! 바깥은 더 거세어졌다!

' 쾅!! 쾅!! 쾅!! '
[ 꾸웨웨엑-!! 꾸웨에엑-!! ]
" 으아아아아! "
' 쾅쾅쾅쾅쾅-!! '

곧, 문 소잡이가 마구잡이로 돌아갔다!

' 철컥철컥! 철컥철컥철컥! '

새파랗게 질린 사내가 악을 썼다!

" 으아-! 으아악-!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으아악-! "
' 철컥철컥철컥! 쾅쾅쾅-!! '
[ 꾸웨엑! 꾸웨에에엑! ]
" 으아아아아!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용서해주세요! 으아아악-! "

문은 당장에라도 열릴 것마냥 거세게 요동치고! 공황상태의 사내는 울며불며 소리치고, 바깥에선 거친 울음이 계속 울렸다!

' 쾅쾅쾅쾅! 쾅쾅쾅-! '
" 으아! 으아! 으아아악! 잘못했어요-!! "

얼마 뒤, 

[ 꾸웨에엑!! ]

외마디 커다란 울음과 함께, 바깥이 조용해졌다.

" 흐으으..잘못했어요..용서해주세요...흐으... "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감싸 쥐고 우는 사내. 한참을 그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
.
.
.
.
.

어느 어떤 곳에 있는, 어느 어떤 식당.
문이 열리며 배달원이 들어왔다.

" 아~씹! "

배달통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짜증을 내는 그. 곧장 다가온 가게 주인이 짜증스런 얼굴로 물었다.

" 집에 아무도 없어?! "

그도 짜증 난다는 듯, 대답했다.


" 아, 없어요 없어! 아무리 문을 두드리고 불러도 대답도 없고! 무슨, 현관에서 개 짖는 소리만 시끄럽게 들리고 말이야! "  

댓글
  • 복날은간다 2017/01/02 23:02

    동물의 입장에서 인간들이 동물을 시켜먹는 걸 어떻게 생각할까...싶은 생각에 써봤는데;
    이게 결말의 부분을 정말 고민했네요; 그냥 임팩트가 약하더라도, 설정 오류 없는 결말로 끝낼까~
    아니면 설정 오류가 있더라도, 이야기적으로 허용된다 치고 이렇게 마무리 지을까 하고요 ㅎㅎ;
    다른 결말이 나았을까요?
    다음날 아침 일어났더니, 다 꿈인가 싶었고... 그냥 출근 하는데, 출근길에 동네 개가 주인공을 막아서고, 빤히 쳐다보다가 혓바닥을 낼름거리는 모습으로 끝낸다거나...
    앙니면 마지막 '개 짖는 소리'를 '사람 짖는 소리'로 바꾼다거나...
    그게 아니면, 요리왕 책자가 걸려있는 동네 개집, 양계장 닭장, 돼지 사육장 문고리 등을 조명한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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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una7 2017/01/03 00:20

    꾸웨에엑!
    자체가 임팩트 강한걸여.....?
    닉넴 안봤으면 작가님 글인줄 몰랐을 것 같아요
    항상 새로운 도전 응원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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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넌내꺼야 2017/01/03 00:29

    저 남자가 배달 시켜놓고 잠시 잤는데 개로 변했다는 설정이었으면 더 꿀잼이었을듯.
    원래 부터 개였으면 어떻게 배달시킬때 인간말로 주문했는지 오류가 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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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매왔능교 2017/01/03 00:35

    결말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묘하게 안도감(?)이 들어요ㅋㅋㅋㅋㅋㅋ..
    절정부가 약간 짧은 거 같아요. 주인공이 미처 잠그지 못한 문을 돼지 배달원이 여는데 구사일생으로 안전고리가 있어, 약간 열린 문 틈으로 주인공을 빤히 들여다고 갔다던가... 음.. 어떤 게 좋을까요.. 이건 예시이고, 돼지 배달원이 찾아왔을 때 긴장감이 조금만 더 고조됐으면 엄청 무서웠을 거 같아요.
    결말 자체는 저는 지금 버전도 좋고 댓글의 다른 안들도 다 좋네요! 항상 새로운 시도(최근에는 기존 인물 이름들을 피한다든가 문체를 바꾸는 것 등) 하시는 것도 좋아요.
    사실 감상 외의 어떤 조언도 감히 올리기 힘든 훌륭한 작품(과 더할 나위 없는 천재 작가님)인데 항상 독자의 견해를 구하시는 것 같아 한 번 저도 생각해봤습니다.
    하... 그나저나 내일부턴 왠지 채식이 하고 싶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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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은1초 2017/01/03 01:03


    이런 느낌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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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기미 2017/01/03 01:03

    어우 꾸에에에엑이 너무 임팩트있어여ㅋㅋㅋ
    생갈치1호의행방불명에서 센 부모님이 돼지로 변했을 때 장면도 생각나고여ㅋㅋㅋ
    재밌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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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법의성 2017/01/03 02:00

    와 무섭네요~올만에 기묘한이야기이나  환상특급보던 기억도나고 잼있었네요
    결말도 완전 좋은데요?그냥 이해할수없는 도시전설같은 결말  오히려 문이 열렸음 이상할것같은..ㅋㅋ
    애니메이션중에 동물들이 직접 배달오는 사랑은 단백질도 생각나네요 족발집사장 의수낀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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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다렌 2017/01/03 02:00

    음 오늘 저녁을 치킨을 먹은 저로서는 매우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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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ebwbxksk 2017/01/03 04:53

    으아아아아
    돼지가 배달온 부분에서 진짜 소름끼치게 봤네요 ㅎㅎ
    너무나 재밌었습니다 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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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르미그달 2017/01/03 06:00

    프로그래머다. 그러니까 11시 넘어서야 집으로 향할수 있었다. 왜죠?? ㅠㅠ
    -프로그래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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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태타이거즈 2017/01/03 11:10

    남자 술먹음
    배달원 뚱뚱함
    이렇게 생각해도 될듯요ㅎㅎ
    술먹고 취해서 자신은 멀정하다고 생각하는데 모든 글자가 인간 모든 사람이 동물로 보이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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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노잉제스처 2017/01/03 19:41

    음... 도야지가 꾸에엑 거리며 배달을 왔는데 주인공이 말하는걸 멍뭉이 소리로 들었다면 주문 전화는 어떻게 알아들은건가 싶네요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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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끔깨물어요 2017/01/03 23:38

    메뉴가 정말 무서웠어요. 쭉 읽으면서 얼굴 찌푸렸거든요..ㅠㅠㅠ 항상 재밌게 읽고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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