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발은 수양대군의 심복으로 행동하다, 계유정난을 통해 벼락출세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민발이란 인물은 좀 무식했던 모양이다.
정난당시,수양대군이 기습하여 안평대군, 김종서, 황보인 등 정적들을 제거하고자 했다. 민발이 수양을 말리면서 임금에게 계(啓)를 올린 다음, 처치하자고 조언했다 하니 용력은 담대했지만, 머리는 부족한 듯싶다.
아무튼, 수양대군의 수족으로 벼락출세한 민발은 여러 사건들을 일으키는데 이 가운데서 충격적인 사건은 '이석산 사건'이다. 때는 수양대군(세조)이 왕이 된 지 6개월 뒤였다.
음력으로는 세조 1년 12월 16일, 양력으로는 1456년 1월 23일이다. 장소는 한성 서대문 밖 모화관 근처에 있는 반송정이라는 정자였다. 모화관은 중국 사신들의 숙소였다.
위 날짜의 에 따르면, 이 날 반송정 밑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의 변사체가 발견됐다. 시신 여기저기가 무언가에 의해 깊이 찔려 있었다. 시신에는 눈알도 없었다. 남성의 주요 부위마저 없었다. 그리고 발에는 털신이 한 짝밖에 없었다.
승지 이휘가 이 사건을 맡아 조사해보니, 피해자는 이석산이란 사람으로 밝혀졌고 사건의 범인은 석산이 자신의 첩과 간통한 것을 알아챈 민발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조는 민발은 보호했고 사건은 흐지부지 넘어갔다. 오히려, 이휘가 단종복위사건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민발은 호랑이 사냥에도 일가견이 있어, 착호갑사의 수장인 착호장이 되어 서울과 지방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범을 민가에서 몰아내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엔 민발의 무식함을 기록한 일화도 실려 있는데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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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민발(閔發)에게 이르기를,
“너는 글[書]을 아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모릅니다.”
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네가 글을 알지 못하고서 어찌 뭇 것[衆]을 다스림이 적은 것[寡]과 같음을 알겠느냐? 《오자(吳子)》를 읽었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숙독(熟讀)한 곳은 대강 압니다.”
하니, 〈묻기를〉
“《대학(大學)》을 읽었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못읽었습니다.”
하였다. 신숙주가 말하기를,
“민발은 시위(侍衛)하여 서울에 올 때에 《대학》을 시복(矢服)에 꽂고, 또 읽었습니다.”
하니, 민발이 말하기를,
“익히지 아니하여 읽는 대로 잊었습니다.”
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네가 무거(武擧:무과시험) 때에 강(講)한 것은 무슨 글이냐?”
하니, 대답하기를,
“신(臣)의 등제(登第)는 명령이었습니다.”
하므로, 신숙주가 말하기를,
“민발(閔發)이 무거(武擧) 때에 《대학》을 잘못 읽어 시관(試官) 등이 불통(不通)이라 하니, 민발이 크게 말하기를,
‘성상(세조)께서 일찍이 나한데 이와 같이 가르쳤고 신숙주도 나에게 또한 이와 같이 가르쳤는데, 시관(試官)은 도리어 의심하여 조통(粗通)으로 두는가?’ 하여, 이로 인하여 등제(登第)하였으니, 과연 민발이 말한 것처럼 명령이었습니다.”
하니, 임금이 크게 웃었다.
세조실록 14년 무자(1468,성화 4) 2월4일 (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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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 재상인 민발(閔發)·최적(崔適)이 일찍이 세조(世祖)에게 입시(入侍)하였을 적에 세조가 최적에게 묻기를,
"민발이 글을 아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민발이 어렸을 때에 그 집의 종이 밖으로 도망하여, 포망(捕亡)을 써 주기를 청하였는데, 민발이 쓰지 못하므로 속여서 말하기를, ‘오늘은 기일(忌日)이니, 포망을 쓸 수 없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세조가 민발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
"최적에게도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최적이 일찍이 사재감(司宰監) 을 거쳐서 내려가다가 선공감(繕工監) 앞길에 이르렀을 적에,
한 사람이 작은 쪽지를 말머리[馬首]에 내며 말하기를, ‘이것이 어떠한 글이냐?’고 하였는데,
최적이 펴 보고 한참 만에 말하기를, ‘이것은 숯을 받아들인 자문[尺文]이다.’ 하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아니다. 이것은 어포[魚腊]를 받아들인 자문이다.’ 하니,
최적이 말하기를, ‘내가 선공감 앞길에 있으므로 숯을 받아들인 자문인 줄 알았다. 너는 어찌하여 사재감을 지날 때에 내게 보이지 않았느냐? 그랬더라면 어포를 받아들인 자문이라고 말하였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하니, 좌우에서 실소(失笑)하였다.
예종실록 7권, 예종 1년 8월 16일 정묘 4번째기사 1469년 명 성화(成化) 5년
ㅊㅊ 후 감상. 감사합니다
댓글보다 빠른 추천
선 추천 후 감상.. 그러기 위해 로그인 .. 고맙습니다. ! ㅋ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읽겠습니다
모호릅니다~~~
선 추천 후 감상~
선추천
잘 읽었습니다.
세조 어그로 쩌네요 ㅋㅋ
세조가 은근 츤데레네요 ㅋㅋㅋㅋㅋㅋㅋ
늘 잘 읽습니다 ㅎㅎ
ㅋㅋㅋㅋ 코믹드라마가 따로 없네요
너무재밌다 ㅋㅋ 전 사림보다 훈구가 너무 호감임
저딴 놈들이 권력의 중심부에 있었으니..
수양은 정말 조선의 품격을 말아먹은 인간입니다..
덕분에 잘 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생 자체가 부정이라니... 명박이랑 똑같네여 ㅋㅋㅋ
진짜 수양같은 소시오패스가 권력을 잡은게 지옥조선의 출발점
거의 쓰레기급이네여....
이런 인물도 이런거겠쥬
보면 볼 수록 조선은 임금의 나라가 아닌 신하의 나라인 것 같네요.
잘봤습니다 ㅎ
그런데 수양대군 주변에 있던 측근들이 대부분 신분만 양반인 깡패 양아치들이었습니다.
권람, 신숙주 같은 이들이 소수였고 한명회, 홍달손, 홍윤성, 양정, 유수, 민발, 이흥상 같은 비주류들이 다수
계유정난때 직접 영의정 황보인을 살해하고 정난공신에 책록된 홍윤성은 자기 삼촌이 땅을 내놓지 않는다며 직접 때려죽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수양의 비호를 받았고 영의정까지 승진합니다.
# 간단정리
세조 이유(李瑈) -> 오야붕(親分). 쌩.양아치.
민발(閔發) 등등 -> 코붕(子分). 새뀌 양아치.
hampstead// 감사합니다!
베니토// 감사합니다!
Def_Chino// 넵넵 감사해요!
Dreamstone// 감사합니다!
야구가조아// 읽어주셔서 감사해용
뚫갉뗍칡// 넵..감사합니다
영표지성빠// 감사합니다!
액션52// 감사합니다!
푸른탄환// 세조에 관한 일화도 넘나 많죠! 감사합니다!
냄비의 요정~// 감사합니다!
슬픈독수리// ㅋㅋ 정말 웃기죠? 감사합니다!
무적자// 훈구파들이 놀기도 잘놀고 사고도 많이 치고 그랬던 거 같아요.감사합니다!
붉은꽃바리// 감사합니다!
아래위옆// 감사합니다!
28.김윤동// 감사합니다!
RegTeddy// 감사합니다!
치킨맨// 감사합니다!
히페르// 유식한 말로 군신공치의 나라였다고 하는 데 저역시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였던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Vajra// 감사합니다!
[리플수정]제레미코빈// 네 맞습니다. 조선 전기 사대부 가운데, 현직관료나 관학유생들 제외하고 글을 못한 무식한 양반자제들은 사족 충군법에 의해 오위(五衛) 소속 군관으로 임관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사족충군법이 폐지되는 인조이전까지는 상무적 기풍이 컸던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FourTries// 감사합니다!
ㅋㅋㅋㅋ 재밌네요
꿀잼입니다!
재밌습니다!
재밌습니다 ㅎ
공주의남자 보면 김영철(수양) 따라다니는 심복이 있던게 저분일까요?ㅋㅋ
잘봤습니다~
민발이 최적의 에피를 설명하는 부분 보충설명을 부탁드리옵니다.
ㅋㅋ 잘봤습니다~ 재밌어요~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짜 세조 이생퀴가 아버지가 이뤄놓은 모든걸 망침
지가 합격시켜놓고 그거 가지고 괴롭히는 세조 인성 ㄷㄷㄷ
항상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윗분말대로 홍윤성에 비하면 저정도는 애교수준ㅋ
늘 잼나게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