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천국 코하비닷컴
https://cohabe.com/sisa/461789

강O하고 또 강O하고1947 인도와 파키스탄의 지옥열차

1947년 8월 15일, 인도는 델리에서 독립을 선언했다. 24시간 전, 파키스탄은 카라치에서 독립을 선포했다. 분리 독립, 분단 건국이었다. 그러나 델리에도 카라치에도 '인도 독립의 아버지' 간디는 없었다. 그는 콜카타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었다. 


당시 벵골에서 자행되고 있던 힌두와 이슬람교도 간 폭력과 학살을 멈추라며 절절하게 호소했다.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만 갈라졌던 것이 아니다. 벵골도 동/서로 찢어졌다. 서벵골은 인도가 되었고, 동벵골은 파키스탄이 되었다. 그래서 신생 국가 파키스탄의 모양새는 기형적인 것이었다. 


인도 아대륙의 서북에는 서파키스탄이 들어섰고, 동북에는 동파키스탄(현재 방글라데시)이 세워졌다. 한 나라라고 했건만 서로 15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적성국이 된 인도를 통해서는 왕래도 할 수 없었다. 서파키스탄의 카라치에서 동파키스탄의 치타공까지 배편을 이용하면 꼬박 닷새가 걸렸다. 


적지 않은 이들이 잘못된 장소에서 독립을 맞이했다. 인도의 깃발 한복판에는 법륜(法輪)이 있다. 업보와 윤회의 상징을 국기에 새겨 넣은 것이다. 파키스탄의 국기는 녹색 바탕에 초승달이 그려졌다. 이슬람 국가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에는 여전히 힌두교들이 있었다. 인도에도 적지 않은 이슬람교도들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독립이 곧 해방을 뜻하지 않았다. 숨죽인 채 낯선 국가의 탄생을 지켜보았다. '국경 마을'에서는 양국의 깃발이 번갈아 게양되기도 했다. 어떤 이는 두 번의 독립 행사에 모두 참여했다. 델리와 카라치에서는 폭죽이 터졌지만, 더 많은 곳에서는 약탈과 방화와 학살이 일어났다. 환호보다는 비명이 더 자주, 더 크게 들렸다. 특히 펀자브가 그랬다. 8월과 9월, 60일 사이에 60만 명이 죽었다. 


펀자브에서 자행된 힌두, 이슬람교도, 시크 간 삼파전은 유난히 치열하고 격렬했다. 우연하고 우발적인 범죄보다는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인종 학살에 가까웠다. 유럽의 홀로코스트와 아시아의 킬링필드가 동시에 펼쳐진 것이다. 흥건한 핏물이 다섯 개의 강을 붉게 적셨다.


죽음의 기차 


결국, 10월 14일, 양국 정부는 동/서 펀자브의 '소수자'들을 교환하기로 합의한다. 건국 이전보다 이후에 더 많은 인구 이동이 발생했다. 피난민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웃 마을이었던 곳이 돌아갈 수 없는 타국이 되었다.


펀자브에서만 약 1000만 명이 이동했다. 동펀자브에서 서펀자브로 이주한 인구는 435만, 서펀자브에서 동펀자브로 이주한 인구는 429만을 헤아린다. 인도/파키스탄 전체로는 1500만 명이 이동했다. 20세기를 통틀어 최단 기간 내 최다 인구의 교환이었을 것이다. 1951년 통계로 파키스탄 인구의 10%가 난민이었고, 델리 인구의 3분의 1이 난민이었다. 인도는 한때 수도 이전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펀자브와 가까운 델리가 안보상 취약한 지역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은 결국 이슬라마바드라는 별도의 행정 수도를 지었다.


방향은 달라도 피난 경로는 겹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기차가 복병이었다. 기차역 곳곳에서 습격과 폭동이 일어났다. 떠나는 자들은 곧 적을 의미했다.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살아남은 자들은 다음 기차역에서 보복을 가했다. 그들에게는 남은 이들이 적이었다. 마을에 불을 지르고 여성들을 강O했다. 


델리에서 요가 인맥으로 초대받은 한국분의 남편이 펀자브 출신이었다. 그의 할머니가 피난민이었다. 평생을 악몽에 시달리셨다고 한다.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이 산 채로 불에 타서 죽어가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꿈에 나왔다는 것이다. 


남편의 죽음에도 모성은 질겼다. 두 아이를 데리고 델리로 피신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라호르에서는 집 안에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언제 이슬람교도들이 망치와 낫을 들고 와 강O하고 살해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밤마다 지붕 위에 올라가 아이들을 품에서 재우고 할머니는 밤을 꼬박 새웠다고 한다. 


겨우 기차를 타고 나서도 괴한들이 침입하며 식칼을 들이밀고 힌두 국가를 원하느냐, 이슬람교도 국가를 원하느냐 심문받기도 했다. '호신용'으로 준비해둔 코란을 보여주고서야 살아남을 수 있었단다. 

댓글
  • 케리그마 2017/12/17 15:04

    그깟 종교가 뭐라고 그냥 개종해버리고 말지 피난까지 가야하나....

    (SXLt2C)

  • 공룡코딱지 2017/12/17 21:40

    인도 신들의 나라라면서...
    신들이 서로 죽이라고 했나봐요

    (SXLt2C)

  • 愛憎 2017/12/18 01:01

    참 종교가 뭔지...무섭네요...

    (SXLt2C)

  • B와당신 2017/12/18 01:17

    후세들은 혀를 차며 미개한 것들이라고 할테지요. 우리가 샤머니즘을 그리 보듯이...

    (SXLt2C)

  • 팩트폭력배 2017/12/18 01:46

    남의 종교에 무지한 영국놈들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요.

    (SXLt2C)

  • 대머리아님 2017/12/18 01:47

    한때 인도와 파키스탄, 한국의 독립기념일이 같은날이라(우리나란 광복절) - 파키스탄은 14일..
    그냥 의아한 마음에 알아봤었는데..
    저게 단순히 종교 문제가 아닙니다
    신사의 나라 영국이 뿌리고 간 씨앗이에요
    다들 아시다시피 인도는 가장 많은 종교가 한 나라 안에 뒤섞여 있습니다
    흔히 알고 있는 힌두교가 가장 많고
    머리에 두건 둘둘 두르고 다니는 시크교도는 판자비 라고 불리며 중부지방에 많죠..
    그외에도 정말 많은 종교가 있으니.. 그건 인도 영화 P.K 한번 보시면 정리 될 것 같습니다(짱잼)
    이렇게 많은 종교가 뒤섞여 살다가 갑자기 못살겠다고 죽이고 강O하고 전쟁??
    아닙니다
    영국의 식민지 였던 인도에서 당연히 독립운동이 있었겠죠
    그걸 잠재우려고 인도 영토를 분할을 하는데
    기준점은? 당연히 종교 입니다
    원래 저항운동은 구심점이 있고 하나로 굴러가면 막기 힘드니
    영국은 열심히 가르는거죠
    뭐 그렇게 해서 완전 갈라진건 아니지만
    인도 사람들의 마음은 갈라져 버렸죠
    다른 종교 이지만 한마을에 같이 살면서 하하호호 웃으면 서로 이해하고 살아가지만
    무슬림은 여기! 힌두교는 여기! 시크교는 여기! 불교? 절루 가!
    이렇게 해 버리면 다른종교, 다른 문화
    결국 다른나라 되어버리는거죠
    파키스탄에서 주로 쓰는 우르두어와
    인도에서 주로 쓰는 힌두어는
    거의 비슷한 언어에요
    그래서 파키스탄 사람 인도(북부, 중부) 사람 만나면 얼추 말이 통해요
    근데 글씨는 완전 달라요 ㅎㅎ
    그리고 사이는 겁나 안좋아요
    이게.. 아주 개같은 상황인데..
    막상 파키스탄, 인도 그리고 방글라데시는 서로를 싫어하고 싸우지
    희안하게 영국에 대한 증오는 별로 없어요
    맨체스터 사람들 우스갯 소리로.. 맨체스터는 파키스탄 식민지라고 하죠.. 그만큼 많이 건너가서 산다고..
    하긴.. 종교 분쟁 막으려하던 간디도 죽여버린 사람들이 무슨 분별력이 있겠습니까 마는..
    암튼 단순 종교 전쟁, 분쟁으로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습니다

    (SXLt2C)

(SXLt2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