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여명이란 옛날 사극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사람이 시대를 이끌어간다고 믿는 것보다 큰 오만함은 없다. 시대가 사람을 쓰는 것이 역사이고 소명받은 사람이 버림받는 것으로 소임을 다하는 것이 역사의 한 부분"
문재인이 바로 생각났는데요. 남들도 다 하고 싶어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죠. 사람들이 기겁을 하면서 피하는 것이 주로 몫으로 돌아왔어요. 주저 없이 받아들였고 그 덕이 쌓이고 쌓여가며 노무현에 의해 발탁되었고 그가 급작스럽게 서거하면서 얼떨결에 대선후보로 밀어올려졌다 한 번 실패한 끝에 우여곡절 대통령이 되었죠.
이해찬도 비슷한데요. 이해찬도 의원들과의 소통에는 영 젬병이었습니다. 의원들이 매우 싫어했어요. 소위 말해서 끼워 넣기. 겉으로는 개혁 법안 서민 법안 처리하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형님동생 술판 벌리면서 수구들 로비 받은 법안들 처리하는 국개의원 나리들 모습. 굳이 꼭 거기 끼어들어서 산통을 깼죠. 의원들 사이에서는 유능하지만 큰 일을 함께 못할 사람으로 낙인찍혔습니다. 원내대표 나가는 족족 떨어졌죠.
그럼 이해찬이 소통을 안하는 사람이었냐. 전혀 아니었죠. 주먹구구식 여론측정이 판을 치던 시기에 사비를 들여서 과학적인 여론조사 기법을 수립했고 그걸로 측정하기 어려운 사안에서는 "역사와 국민" 이라는 측정기를 사용했어요. 역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본거죠. 길게 봐서 이걸 하는것이 맞느냐. 길게 봐서 국민에게 이로우냐. 그의 소통은 의원과의 소통이 아니라 역사와 국민과의 소통이었던겁니다.
이걸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인물이 바로 김대중. 김대중은 이해찬이 원내대표에서 떨어지면 곧바로 정책위의장에 앉혀버렸습니다. 의원들은 충격을 받았지만 저항할수가 없었죠. 김대중이니까. 그렇게 이해찬은 정치판에서 살아남게 되고 이후 한국야권사 곳곳을 관통합니다. 문레스트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말이죠.
문재인이 처음으로 부린 욕심. 재선국면에서였죠. 내가 또 나서는 것이 맞는가. 번민의 시간을 보냈을겁니다. 정당민주주의의 발전이 정체되고 있다고 보았고 결국 나섰습니다. 욕 얻어먹었죠. 김대중이 네 번 나섰을때만큼은 아니었지만 무지하게 얻어먹었죠. 그럼에도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꼭 나서야하는가 다른 낮은 곳에서 기여할 방법은 없겠는가에 관한 나름의 치열한 고민을 국민들로부터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소통하는 방식에서 고스란히 드러나죠. 20만명 안돼도 관심사안은 답변하라. 어제인가 어느 사이트를 가봤어요. 중증질환자들이 매일 자살하고 싶다고 하소연을 하는 곳이에요. 참여해달라고 하소연을 하는데 500명도 참여하지 않았더군요. 글을 쓰던 사람이 갑자기 안보이면 죽은것일수도 있고 그렇지않은 사람은 건강하지 못해서 글을 잘 쓰지못하는 그런 곳은 우리 사회에 넘치도록 많습니다.
문재인이 바라보는 곳과 것은 그런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거들떠도 보지않는 주절거림. 돈 많고 권력있는 사람에게 억울한 일을 당해서 모든 것을 잃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술 먹는 것 밖에는 없는 불쌍한 사람들. 배우지도 못해서 언변도 없고 그래서 한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는 그들의 손을 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주는 것.
그런 소수를 위한 행보로 다수에 의해 대통령이 되었지만 여전히 시선은 소수를 향해 꼿혀 있다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내 뒤의 사람이 할 수 있는 것, 내 뒤의 사람이 너무나 할려고 달려드는 것. 그런 것 말고 그들이 하고 싶어도 손 대기 힘든 것, 입으로는 하겠다고 하지만 하기 싫은 것. 문재인은 그런 것이 하고 싶을겁니다. 그런 마음이 느껴져요. 예컨데 통일이 있겠죠. 천문학적 통일비용과 사회화합비용을 낮추기 위해 무엇인가 급하게 해야 하지만 북한권력층이나 국민정서의 괴리가 심각합니다. 부동산보유세도 그 중 하나겠죠.
꼭 해야하지만 하면 욕 먹는 것. 이걸 역사라고 합니다. 버림받는 것으로 끝나지만 역사속에서 살아나죠. 그래서 국민을 바라보고 묻는 것이 바로 소통이죠. 가짜소통 말고 진짜소통.
문재인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은 김대중이 하고 싶어했던 것이고 노무현이 하고 싶어했던것입니다. 권력을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것말이죠. 국민의 머리 위에 서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도구로 사용되다 버려지는 것입니다. 국민대다수가 교육받고 똑똑합니다.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죠. 그렇다면 역대급 진보가 일어나야합니다.
서민이 세금을 내서 왕족과 귀족을 위해 쓰여지던 시대에서 모두가 벌어서 모두가 세금을 내는 시대로 바뀌었죠. 강자가 더 내서 약자를 위해 쓰여져야 합니다. 어떤 명목으로 치장하던 증세반대는 이 고통의 시대에 그 명분이 약합니다. 정치인에게 어려운 길을 강요하려면 주권자인 시민들부터 어려운 길을 솔선해서 갈 수 있어야합니다. 재능도 노력도 가정환경도 결국 본인 아닌것에 의하여 크게 좌우되고 있는 것이 밝혀지고 있는 만큼 사후적평등의 길도 강화되어야겠죠. 물론 힘듭니다. 사람이 힘든것을 피하려는 것은 욕을 얻어먹어야할 행동이라기보다는 유전적본능에 가까운것이긴합니다.
그 모든것들을 문재인은 조용히 지켜보고 있겠죠. 왜냐하면 김대중역에서 노무현역을 거쳐 자신이 내려야할 문재인역은 역사의 어느즈음이 될런지 궁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정치 칼럼니스트가 쓴 글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명문이었습니다 추천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늘 좋은 글, 감사히 접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