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주나라 성왕은 아우와 함께 장난하며 놀기를 좋아했다.
하루는 제후 책봉의식을 흉내내어 오동잎을 오려 동생에게 건네며
“이것으로 너를 제후에 봉한다”고 했다.
물론 장난이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삼촌 주공이 하례를 드리자
난처해진 성왕은 재미삼아 한 말이라고 발뺌하였지만
“천자는 농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마침내 아우를 당나라 제후로 봉한 일이 있었다.
장서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한산이씨의 고문서 중에도
아버지와 딸 사이에 얽힌 유사한 사례가 담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분재기(分財記:재산을 나눠주는 기록)의 일종인
‘이경검부부 별급문기’(李景儉夫婦別給文記·1596)가 그것이다.
성종의 현손 중에 순녕군 이경검이란 사람이 있었다.
왕손으로서 학식과 교양이 있었던 그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피난길을 도와
공신에 책봉된 충신이기도 했다.
그에게는 효숙(1588~1668)이라는 딸이 하나 있었다.
금지옥엽의 외동딸에 대한 애정이 더욱 각별했던 이경검은
난리통에 파손된 가옥을 수리할 때에도
늘 효숙을 등에 업고 다니며 공사를 감독하곤 했다.
바로 이 무렵 이경검은 딸에게 무심코 실언을 하게 된다.
지금 수리하고 있는 이 집을 효숙에게 주겠다는 말이었는데,
물론 이 또한 농담삼아 한 말이었다.
그러나 정작 효숙은 아버지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날 이후로는 자신이 이 집의 주인이라 굳게 믿었다.
그만큼 아버지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이경검은 성왕의 고사를 떠올리며
자신의 무책임한 언설을 크게 뉘우치게 된다.
원래 큰 믿음은 문서로서 증명을 남기지 않는 법.
옛 사람들에게 있어 군신간의 신의, 부모와 자식간의 믿음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딸을 향한 은연중의 실언이라 할지라도
상대가 약속으로 받아들였다면 그 약속은 이행되어야 한다.
상황을 직감한 이경검은 먼저 딸이 받을 마음의 상처를 우려하고,
또 아버지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
약속을 지키기로 결심하게 된다.
서울 남쪽 명례방에 위치한 반듯한 기와집 한 채를 따로 구입하여
부부 공동명의로 이를 효숙에게 양도하게 된 것이다.
분재기의 말미에는 다른 자식들이
여기에 대해 불평하지 말라는 단서조항이 명시되었고,
효숙의 오빠 이안국은 증인으로서 이날의 양도를 흔쾌히 공증해 주었다.
이 때 효숙의 나이 겨우 아홉살이었다.
이후 현숙한 규수로 자란 효숙은
열여덟에 영의정 이산해의 손자며느리가 된다.
이때 효숙이 친정 부모로부터 받아둔 가옥을
가지고 왔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효숙의 남편 이구(李久)는 진사시와 문과에 장원한 엘리트 문신이었지만
그녀의 결혼생활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신혼의 단꿈이 채 가시기도 전인 스물둘에 청상의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고난 여장부였던 효숙은
시련 속에서도 시댁 어른들을 지성으로 봉양하였고
아들, 손자, 증손자를 줄줄이 과거에 합격시키며 명가의 전통을 지켜나갔다.
글: 〈김학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전문위원〉
이경검이 딸 효숙이에게 명례방 집을 증여한 별급문기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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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력 24년(1596년, 선조29년) 3월 초 女 효숙에게 별도로 주는 증여문서
"오른쪽 문서의 일을 말할 거 같으면,
효숙이 너는 나의 외동딸로서 사랑하는 정이 어느 자식보다도 컸다.
왜란이후 재물을 주고 산 집을 수리하던 때에
내가 너를 등에 업고 일을 감독하면서,
'이 집은 효숙이 너에게 주겠다'라고 말했었다.
너는 본디 천성이 총명한 까닭에
그날 이후, 항상 그 집은 나의 집이라 말하고 다녔으니,
어린 자식을 어찌 속일 수야 있겠느냐?
주나라 성왕께서 오동잎을 잘라, 그동생을 제후로 봉한 옛 고사를 생각해본다면
진실로 이러한 까닭일 수밖에 없다.
충의위 이종규에게 남부 명례방 가옥 일좌를 사서 영구히 너에게 별급하니,
이후 다른 자식놈들에게서 여타 불평불만의 말이 나오거든
장차 이 문서를 가지고 관아로 가서 바로 잡거라."
재주(財主) 아버지(父) 정의대부 전 순녕군 (서명)
어머니 (母) 평양 현부인 김씨 (인장)
증인 자(子) 이안국 (서명)
선댓글 후감상
감사히잘보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팬입니다.
amanoai//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agles fly// 네네..제가 더 감사합니당!
erich// 고맙습니다!!
베레타// 감사합니다!!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당시에 딸에게 저 큰재산을 물려준다라 대단하네요
무조건 추천후 정독이옵니다
역사툰 열렬한 독자입니다 자주 연재 부탁드립니다
인터넷에 해당 인물들 찾아보니...
이구(李久)
1586년(선조 19)~1609년(광해군 1). 조선 중기 학자. 자는 정견(庭堅)이고, 호는 후곡(後谷)이다.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증조부는 이지번(李之蕃)이고, 조부는 이산해(李山海)이며, 부친은 이경전(李慶全)이다. 외조부는 김첨(金瞻)이고, 부인은 순흥군(順興君) 이경검(李景儉)의 딸이다.
1603년(선조 36)에 식년시 진사 1등으로 합격하였고, 1605년(선조 38)에 증광시 갑과 2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아들은 이상빈(李尙賓)이고, 손자는 이운근(李雲根)이다.
유묵첩으로 『한림선조유묵(翰林先祖遺墨)』이 있다.
예산 수당고택 (禮山 修堂古宅)
수당고택은 아계 이산해(1539~1609)의 손자 이구(1586~1609)의 부인 전주 이씨(1588~1668)가 아계의 묘소 근처인 현재의 곳에 1637년 창건하였으며, 1846년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17세기 이후 생성된 다량의 고문서와 집안 유물들은 수당가의 변화와 조선후기 사회경제 상황의 실제를 잘 보여주는 등 사회문화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출처 - 문화재청)
또 잘 보았습니다^^ 저도 나중에 딸에게 물려줄게 있기를 바랍니다 ㅎㅎ
진짜 윤승운 화백이랑 무슨 관계신가요??
잘봤습니다~
소소한 듯 결코 소소하지 않은 귀한 이야기네요 오늘도 아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재미도 있지만 유익함이랄까 이야기 속에서 얻어가는 게 많네요
나이래// 정말 감사합니다!!
야구가조아// 아. 야구조아님..감사합니다. 딸도 재산을 나누어 주긴 했지만, 저렇게 큰 가옥을 넘겨주는 경우는 무남독녀 외동딸이 아니면 거의없었죠. 아버지 이경검의 결단이 아주 이채롭습니다. 고맙습니다!!
리베이트// 감사하옵니당!
야구가조아//넵..정말 감사해요~
3할타자 딩요// 감사합니다!!
추천하려고 로그인했습니다.
불펜이 미섹사이지만, 그래도 이런 좋은 글들이 올라와서 끊을 수가 없네요.
앞으로도 꾸준히 올려 주세요. 재미있고 또 유익하게 잘 보고 있습니다.
큰새트윈스// 윤선생님도 좋아하지만, 신문수 길창덕 박수동 선생님도 좋아합니다. 그분들 그림체를 많이 좋아했어요!!
Fearl// 고맙습니당
teatime// 네네...말씀을 잘해주신거 같아요... 정말 감사드립니당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톰글래빈47//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육성팬// 넹넹..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이런 이야기들 너무 잘 보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
너무 잘 보고 있어요 ^^
대단한 아버님 이셨네요..
훌륭한 부모님 밑에 훌륭한 자녀가 나는군요..
잘 봤습니다
그나저나 효숙이라는 이름은
정말 천상 우리나라 여자 이름이네요.
팬입니다
우와...전 맹꽁이서당에서 나온 내용인줄 알았어요.
잘봤습니다.
역시... 오이덩굴에 가지는 나지 않는군요
나중에 모아서 책으로 내시거나 웹툰 연재하세요
늘 감상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진짜 무료봉사하시기엔 너무 아까운 정성과 솜씨이네요. 포털같은데 연재해서 수익이 좀 생기시고 그 수익 덕에 양질의 만화가 계속 나올 수 있음 좋겠어요.
동아닷컴은 뭐 하느냐!!! 원고료를 못주겠거든 별도의 연재공간이라도 하나 마련해주지 않고!!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9살에 집이 생긴건 부럽지만 거의 일평생 과부로 산거는 ㅠㅠ
그림도 다 직접 그리신거죠? 그림체가 어디서 많이 본 그림체라 헷갈렸음.
집은 친정에서 받아묵고 충성은 시가에다 하네
맹꽁이서당 그림체 같아용~ 잘 보구 갑니다!
항상 잘 보고 갑니다. 글 구독하기 버튼 같은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ㅋㅋㅋ 늘 감사합니다
캬, 너무 잘 읽었습니다. 항상 감사드려요~
어린딸에게 무심코 건넨 실언(?)이었지만 약속으로 지켰네요 ㅎㅎ
와 진짜 정기구독하고 싶네용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리플수정]명문가 금수저라서 가능한 얘기겠지만(그러고 보니 나중에 시집간 시가 집안도 ㄷㄷㄷ하네요), 부모와 오빠들이 막내 고명딸 이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게 보이는 것 같아 미소지어지네요. ^^ 말 그대로 금지옥엽이었을 것 같습니다.
잘 보고 있습니다.
볼때마다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잘보고 갑니다...자주 올려주세요~ㅎㅎ
찍먹 부먹 깨알잼입니다 ㅋㅋㅋ
70->25 ㅎㅎ
항상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재밌는 내용, 잘 봤습니다.
미생지신에 대해 한마디 보태자면, 물이 불어나서 사람들이 피하라고 하는데도, 약속을 어길 수 없다며 다리 기둥을 껴안고 매달려 있다가 결국 물에 빠져 죽었다는, 더더욱 절절한 사연이 있었지요.
선추천합니다. 항상 고맙게.잘 보고 있습니다.
재밌는 일화네요 ㅎㅎㅎ 조선딸바보 ㅎㅎㅎ
근데 남편 사후 시댁 집안을 일으킨걸 보면 그냥 무턱대고 이쁘다 이쁘다만 한게 아니라 집안 교육도 제대로 된 경우라고 봐야겠네요.
드릴건 추천 뿐!!
너무 잘 보고 있어요. 고퀄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식윤RanomA탱율팁]//와 시집도 엄청 좋은 집안에갔네요ㅎ 이산해에 이경전 집안이면 당시 최고명문가인데ㄷㄷㄷ
정성글은 추천이야!
ㅜ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퍼온글인줄 알았는대 직접 그리신거였군요 .
멋지십니다 .
재미있게 잘 읽고 추천드립니다!!
증여세는 없었겠죠? 저때는? ㅎ
지금으로치면
반포자이 하나 막내딸한테 증여한건데 ㅎ
멋진 내용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진짜 맹꽁이서당 보는거 같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항상 잘보고있습니다~~
너무 재미있습니다.
재미도 있고 교훈도 있고..
근데 원래 주왕실의 방계형제는 거의 대부분 제후로 봉해지지요. 게다가 2대왕인데 봉지가 많이 남아 있을듯
[리플수정]장수찬님 가능하시면 고려의 원종, 충렬왕, 충선왕에 대해서도 만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저 부탁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