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오남매 이야기를 궁금해 하시는 분이 계셔서
어떤 일화를 써야 하나 고민했는데요, 생각해보니 저희 오남매는 워낙 개인주의적이고 형제간일지라도 서로에게 전혀 간섭하지 않아
모두가 접점이 있던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 한명. 늦둥이이자 막내인 삼남이가 태어나고 자라며 저희 형제들은 비로소 접점이 생기고 얽히게 되어
막내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 우리 오남매의 이야기를 모두 담을 수 있을 것 같아 삼남이를 중심으로 오남매 이야기를 쓰면 될 것 같습니다.
재혼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는 가에 대한 하나의 케이스로 봐주시면 될 것 같아 일단 첫 글을 썼던 결게에 글을 쓰지만,
행여 게시판을 잘못 찾은 거 같다면 가야 할 게시판을 알려주세요....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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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남매의 장남입니다. '요즘 세상에 오남매?!' 하며 신기해 하시겠지만
사실 제 형제들은 모두 같은 성(姓)을 지닌게 아닙니다.
성이 다른 형제 셋과 성이 같은 형제 둘이 합쳐져 오남매가 된 재혼가정의 장남이거든요.
잘 이해가 되질 않으실까봐 더 상세히 저희 가족관계를 설명드리자면,
아버지 / 어머니
30세 장남 > 어머니
28세 장녀 > 어머니
27세 차남 > 어머니
27세 차녀 > 아버지
16세 막내 > 아버지+어머니
이렇게 구성되어 저와 장녀,차남은 어머니쪽에서, 차녀는 아버지쪽에서 합쳐져 4남매가 되었으며,
그로부터 얼마지나지 않아 막내가 뜨거운 부모님의 사랑의 결실(!)로 탄생되어 오남매가 되었습니다.
재혼 가정이란 점에서 눈치채셨겠지만 저희 가족이 처음 합쳐졌을 때는 굉장히 고통스럽고 힘든 시절이였습니다.
종갓집의 장남이면서 끊임없이 폭력을 휘두르다 결국엔 바람으로 어머니과 삼남매를 버리고 떠난 쓰레기 같은 친부에게서 상처 받고
방황하는 삼남매를 단칸방에서 홀로 키우며 공장, 식당을 가리지 않고 일하던 어머니와,
정신건강적인 문제로 양육을 포기한 친모로부터 방치되고 학대받아 중학생이 될때까지도 말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 딸을
보다못해 이혼을 택한 아버지가 방통대에서 만나 재혼을 하셔 우리 가족은 사남매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과묵하시지만 온화하고 자상한 아버지와 억척스럽지만 올바름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생각하시는 어머니는 사실 이렇게 천생연분이
있나 싶을정도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잘 어울리는 한쌍이셨지만 문제는 그 자식들이였지요.
유아기 때부터 운동을 시작한 장남은 자라면서 거듭되는 친부의 폭력으로 인해 '내가 강해져야 누구도 날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는 생각이 박혀
끊임없이 각종 무술을 배우고 익히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집으로 거의 들어오질 않고 체육관에서 숙식하다시피 하였으며,
가야금과 국악을 전공하던 장녀는 결국 탈선하여 양아치로 학교 생활을 거칠게 보내고 있던 상황이였고,
조용하고 점잖은 성격이였던 차남마저 방황을 시작하여 학교에선 잠만 자고 좋지 못한 친구들과 노는데에만 빠져있었습니다.
거기에 아무리 어머니가 맛있는 음식을 해줘도, 말을 걸고 안아주어도 아무런 반응 없이 혼이 나간 인형처럼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는 차녀까지...
그야말로 부모님은 악몽 같았던 상황이였을 겁니다.
상황이 이러니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에게 위안이라고는 서로 단 둘 밖에 없었고,
그렇게 서로를 너무 위로하다보니 (*-ㅅ-*) 어이쿠, 다 늦은 나이에 늦둥이 아들이 태어나게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이 갓난 아이의 울음소리가 집 안에서 울려퍼지기 시작 할 때부터, 우리 형제들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가장 먼저 변화한 건 바로 장녀입니다.
장녀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는 장녀에게 막내를 맡기고 오후에 일을 나가셔 새벽에 돌아오시게 되었고,
갓난 아이를 봐야하니 밖엘 나갈 수 없는 장녀는 자연스레 못된 무리와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는 아이를 달래고,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타먹이며 하루종일 붙어 있자 어린 나이지만 장녀에게도 책임감과 모성애가 생겼는 지,
아니면 이 아이만큼은 자신처럼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에서인지 방황을 끝내고
자신을 어머니와 다름 없이 따르는 막내를 돌보며 어느덧 동네에서 유명했던 양아치 노는 일진에서
막내가 졸려하면 가야금을 꺼내 자장가를 불러주는 소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녀와 같은 방을 쓰고 있던 차녀 역시 자신보다 작고 가녀린 생명이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단 것을 느끼기 시작했는 지,
조금씩 언니를 도와 같이 육아를 하며 점점 표정을 짓고,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이젠 조금씩 어머니의 말에 대답을 하여
어머니가 차녀를 감싸안고 감격해 눈물 지을 정도로 점점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막내가 걸음마를 시작하고 아장아장 걸으며 '뚕아(형아), 따끈 뚕아(작은 형아)'라며 자기를 졸졸 쫒아다니는 동생이 생긴
이전의 막내 차남이는 어느덧 막내의 목욕을 도맡아 시켜주고 거실에서 자며 막내가 '뚕아 쉬~' 하면 새벽에도 벌떡 일어나 화장실을 봐주는
예전 착하고 점잖은 아이로 돌아왔으며,
집에 거의 들어오질 않았던 장남은 집에 올 때마다 쪼그마한 생명체가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다 자기를 발견하면 '큰 횽아! 싸우자!' 라며 덤벼드는
막내로 인해 매번 드러누으며 '아이고 졌다~! 삼남이 못 이기겠다~'를 반복하다보니 거칠고, 폭팔하면 친부와도 같은 혐오스런 모습을 하게 되는
자신에게 유전된 굴레 같던 폭력성을 비로소 버릴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사남매, 아니 오남매는 막내의 탄생에서부터 그제야 형제가 되었고,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개성이 강하고 너무나도 다른 모습의 우리 가족은 막내라는 연결고리로 인해 뭉쳐지게 되었으니,
저희 가족에게 막내가 받는 사랑은 정말 엄청 났습니다.
오전에는 어머니와 함께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낮잠을 자 에너지를 충전한 막내는 학교가 끝나면 쏜쌀같이 집으로 튀어오는 형,누나들로
인해 매일 같이 함께 형제들끼리 놀이동산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며, 공원에서 형들과 야구도 하고, 누나들과 놀이터에서 소꿉놀이도 하며
그야말로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꺄르르 웃으며 보냈습니다. 이런 막내의 유아시절은 정말 바람처럼 지나
우리 가족의 얼굴에서 더이상 이전처럼 그늘을 찾을 수 없게 행복하게 되었을 때, 어느덧 막내는 어린이집(유치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 막내가 너무 행복해서였을까요, 이젠 오전에 다시 일하게 된 어머니가 어린이집으로 막내를 데려다줄때마다 삼남이는 발작하듯이
가기 싫어했습니다. 저희는 그저 그게 가족들이 너무 잘 놀아주니 어린이집이 덜 재밌어서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만 그게 아니였습니다.
뉴스에도 때때로 나오며 아이를 때리고 폭언하고 학대하는 어린이집 교사...하필 그런 교사를 우리 사랑스런 막내가 만나게 된 것이였습니다.
막내는 부모님이 40대에 생긴 아이라서 그런지, 말이 또래보다 많이 늦었습니다. 그로인해 끊임없이 다른 아이들과 비교당하며
밥도 혼자 떨어져 먹게 하고....아... 죄송합니다 더 쓸려니 다시 또 너무 분노가 치밀어서 차마 다른 학대들을 쓰질 못하겠네요...욕 나올 것 같아서..
여튼, 어린이집을 졸업할 때가 되서야 다른 아이들처럼 말을 잘 하기 시작했는데, 그땐 이미 막내에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가 생긴 상태였고,
말이 트이고 어머니께 막내가 당한 일들을 삼남이가 이야기하자 그때 어머니는 또다시 자신의 자식이 고통 받았단 사실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어머니는 제게 아직도 많은 미안함을 가지고 가끔 제 과거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눈물 지으며 통곡하십니다.
저는 기억 못하지만 친부는 제가 갓난아이 일때 우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집어 던진 적도 있다더군요. 그 아기의 귀에서 피가 흐르는 데,
병원에 데려갈 돈도 없고 아기한테 그러지 말라고 해봐야 어머니는 얻어맞고 행여 제게 더욱 해코지 할까봐 저를 껴안고 벌벌 떨고만 계셨던
그 시절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신 듯 합니다.
이후로도 수없이 가정폭력이 많았지만 다행이 장녀와 차남이는 그 정도로 학대 받진 않아 유일하게 온전히
친부의 폭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감내해야 했던 제게 많은 미안함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막내에겐 저와 같은 아픔을 절대 만들지 않겠다고 생각하시기도 했구요.
어머니의 그런 노력이, 우리 형제들의 사랑으로 항상 방실방실 웃던
막내에게 또다시 상처가 생겼으니 어머니는 제게 가지셨던 미안함과 안쓰러움, 상처가 다시 돋아나셨겠지요.
우리가 그 학대를 알아챘을 땐 곧 막내의 초등학교 입학이 코 앞이였던 터라, 해줄 수 있는 건 이전보다 더욱 큰 사랑을 주는 방법밖엔 없었지만
안타깝게도 저와 장녀는 사회생활로 인해, 그리고 차남과 차녀는 학업으로 인해 예전만큼 막내와 보내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막내는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그 트라우마로 인해 또래 아이들의 괴롭힘에도 반항 한번 못하고 당하기만 해,
오남매가 총 출동하여 삼남이를 그 누구도 건들지 못하게 만든 기억이 저희 오남매가 총 출동한 첫번째 일화네요.
일단 장남인 저는 삼남이가 어린이집 다닐 시기와 거의 같은 나이때 우연히 만나게 된
조선족 아저씨한테 중국무술을 배우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고향에 두고 온 아들이 생각나셨는 지
밤낮 없이 동네에서 빨빨 거리며 뛰어다니던 제가 이 아저씨가 매일 저녁 인적 드문 곳에서 하시는 체조가 궁금해 물어본 것을
환하게 웃으며 이게 무슨 운동인지 가리쳐주신 것을 계기로 그 분에게 팔괘장, 벽괘장, 태극권 등등의 중국무술을 배우게 되었고,
그 어린시절 유일하게 행복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자란 저는 어느덧 우리나라에서 배울 수 있는
대부분의 무술을 체험한 격투기 선수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수생활 유지를 위해 남들보다 빠르게 간 군대에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완전히 망가져버리고 선수생활을 포기한 뒤,
전역 후 사회에 던져져 닥치는 대로 이리저리 구르다보니 어느덧 불같은 성격은 잠잠해지고,
유들유들해져 이제는 옷을 벗기 전까진-ㅅ- 아무도 운동 선수였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그런 흔한 소심한 아재가 되어버린 저,
장남은 '니가 약하니 맞고 다니는 거야!' 하면서 그제껏 막내가 다니던 동네 태권도장을 그만두게 하고
링 밖에서 사용되는 입식과 그라운드 격투기술을 매일 같이 스파링과 함께 막내에게 훈련시켰습니다.
이런 막내 자체를 강화시키려는 장남의 방식과는 반대로,
껌 좀 씹었던 과거가 있는 꽤 유명인사였던 장녀는
그 길로 삼남이의 학교에 찾아가 삼남이를 괴롭힌 아이들과
면담(?)을 했었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면담인지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대충 기억하기로는
'내가 삼남이 누나인데, 나는 니들한테 삼남이랑 친하게 지내라고 얘기 할려고 온 게 아니야~
그냥 니들이 어떻게 생겼나, 어디에 앉았나 보러 온거야~이번엔 학교로 왔지만 다음엔 너희 집에 찾아갈려구~'
라고 했다던 것 같습니다.....-ㅅ-이 가시나...그때도 아직 날라리 티를 다 벗지 못했었나봐요....물론 지금도 가끔...?
직접적인 행동에 나선 장남과 장녀와는 다르게 차남과 차녀는 삼남이의 멘탈 케어에 온 힘을 쏟아주었습니다.
차남은 장남의 격투훈련(?)이 끝나면 곧바로 자신의 컴퓨터 앞에 삼남이를 앉혀 게임을 같이 즐기며 삼남이와 놀아주었고,
차녀는 삼남이가 잠들기 전까지 자기 방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놀아주며 곤히 잠들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형, 누나들의 집중 케어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삼남이는 어느덧 아무도 괴롭히는 아이가 없게 되었고
큰 형(장남)의 훈련이 끝나면 늘 다짐하는 말인 '나는 강하다', '나는 나보다 약한 사람에겐 힘을 쓰지 않는다',
'나는 나보다 약한 사람이 괴롭힘 당하면 반드시 도와준다'를 충실히 수행하여
어느덧 이전의 자신처럼 괴롭힘 당하던 아이들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못된 무리 몇 명을 혼자 상대하여 무찌를 만큼
강한 신체와 멘탈을 가지게 되어버린 부작용으로
어머니가 학교에 몇 번이나 불려가게 만들었습니다....-ㅅ-......
다만 학교에서 자초지정을 들은 어머니가 항상 막내가 싸운 이유가 괴롭힘 당한 아이들을 도와주느라 그랬다는 이야기에 장남인 저는 흐뭇해하였지만
너무 건강해진 삼남이의 훈련은 더이상 학교에 불려가기 힘들다는 어머니의 만류로 중단되었습니다.
(+이제 좀 쎄졌다고 운동 안한다고 징징대는 막내의 칭얼거림...못된 놈-ㅅ-...내가 얼마나 열심히 가리쳐줬는뎅...)
이후 시간이 흘러 장남, 장녀, 차남이 독립하게 되고
아버지, 어머니와 차녀, 삼남이가 김포로 이사하게 되어 옹기종기 모여살던 가족들은 뿔뿔히 흩어져버렸지만
간간히 들려오는 막내의 소식은
큰 형과 같이 스파링 하던 영향으로 아버지에게도 스파링 하자며 덤비는 데, 얇고 부실한 하체를 지니신 아버지가 고통 받고 있다는(....) 이야기,
막내를 업어 키운 큰 누나는 김포에 올때마다 '우쮸쮸쥬 우리 막내'를 시전하고 싸고돌아 점점 버릇이 없어지고 있다는(.......) 이야기,
오타쿠 게임 덕후 작은형과 게임하던 습관으로 학교가 끝나면 게임만 주구장창 한다는(........-ㅅ-) 이야기,
거기에 같이 살고 있는 자신의 친구 같았던 작은 누나의 바쁜 사회생활과 연애생활로 말 수가 확 줄고 삐뚤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며 장남인 제 불안감을 증폭시켰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항상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요. 막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며, 뿔뿔히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기에 바빴던 우리 형제들을
다시 모이게 만든 시작점이 되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뿅!
넘나 사랑스러운 이야기네요 : >
2편!!!!!
삼남이는 16세 그래서 요즘은요???????
밝고 유쾌하게 쓰셔서 재미있게 읽었지만
사실은 너무나 고된 나날을 걸어오셨음이 분명하지요.
그래서인지 읽는데 웃으면서도 눈시울이 붉어졌어요ㅜ.ㅜ
업어 키우는 늦둥이가 절대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과 남매분들이
지극한 정성으로 키우셨네요. 진심 존경합니다
앞으로도 가족분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만 가득하시길 온 마음으로 빌게요. 행쇼!♡
너무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덕분에 많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막내가 어린이집에서 고통받았던걸 아셨을때 얼마나 억장이 무너져ㅛ을까ㅠㅠ
그래도 너무 행복한 이야기였어요
다음편도 기대합니다
결제는 어디서 하면 되죠?
결제 후 이어보기 버튼이 안보여요...
작성자님..? 작성자님...?!
글을 정말 잘 쓰시네요!
이렇게 글 쓰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ㅎㅎ
앞으로도 더 행복한 가족이 되길 바라며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주세요
연애
안하는 겁니꽈 못하는 겁니꽈?
가족끼리 너무 행복하신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더보기 더보기 더보기 버튼이 없다!!!!
기다리겠습니다..
잘자라준 작성자님과 동생분들이 너무 보기좋고
무엇보다 서로 힘든부분 껴안고 합치신
부모님이 대단하시네요 멋지십니다.
저도 기다려요
튼튼한 육체는 건강한 정신을 낳는다는 제 신념을 뒷받침 해 주는 작성자님의 삶 이야기 네요
입금할수 있어요
나중에 묶어서 책으로 내셔도 이혼 재혼가정이 많아지는 우리 사회에 좋은 일 될것 같아요
보면서 눙물 쫌 흘리고 깔깔 웃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하고.. 그래서 결제는 어디서 하죠?
내가 지금 말이여... 디아블로 서버 재부팅 때문에 이거 읽고 있는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얼른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