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개전 당시 육본 직속부대인 기갑연대 산하 기병대대장이었던 장철부 중령.
블로그 정리하다가 예전에 소설 쓰려고 모아 놓은 자료 일부를 발견했는데,
위키백과와 나무위키를 뒤져보니 없는 내용들이 많아서 올려봄.
참고로 김병원이라는 이름이 종종 나오는데, 장철부는 다수의 독립운동가들이 그랬듯이
본명이 아니라 독립운동에 투신했을 때 개명한 이름임.
1940년대 초, 지금도 일본의 유명 사립대인 주오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음.
1학년 당시 경찰서에 끌려가 구류를 산 적이 있었는데, 당시 불온서적으로 분류된 공산주의 서적을
조선인 유학생들이 몰래 읽었다는 정보를 보고 받은 고등경찰 애들이 색출했기 때문..
다행히 일본인 지도교수의 신원보증으로 곧장 풀러날 수 있었는데,
마지막 기병대장 장철부의 저자 김선덕은 한때의 김병원 역시 다른 또래들처럼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했던 것으로 보고 있음.
일본군에 끌려 온 후 임정에 합류하기 위해 탈출을 감행했었는데, 첫번째는 동기들과 친일괴뢰군에게 붙잡혔지만 두번째 탈영은 성공함.
미리 이야기를 해놓은 중국인 아이가 준비해 준 옷으로 갈아입고 민가에서 수수죽을 얻어먹고 노숙을 하며
3일간의 이동 끝에 중국군 부대를 만날 수가 있었다는데, 본인이 기대하던 국부군이 아니라 팔로군이라 실망했었다고 함.
이후 팔로군에서 김병원의 신병을 조선의용군에게 넘겼음.
학교 교육시간에 배운 사람들도 있지만, 설명을 덧붙이자면 김원봉의 조선의용대에서 내부적 갈등으로 분리된
무장투쟁 단체들이었는데, 이들이 나중에 북한으로 편입되면서 팔로군 출신들과 함께 연안파를 구성하는 인원들로,
한때 김구가 지도했던 한국국민당 당원으로도 활동했었던, 1군단장 김웅, 4사단장 이권무, 6사단장 방호산,
12사단장 전우, 포병사령관 김무정 등이 대표적인 조선의용군-팔로군 출신들임.
아무튼 김병원 본인은 임정으로 가기를 강력히 희망했었다는데, 조선의용군 인원들은 당연히 만류함.
이때 가장 적극적으로 만류했던 인물도 훗날 6.25전쟁 때 5사단장이었던 마상철이었음.
당사자는 "우리는 같은 피가 흐르는 동족인데, 왜놈들과 싸우는데, 있어서 이념 차이가 그리 중요하겠냐?
당신들은 여기서 싸우고, 내가 임정에 가서 싸우면 훗날 서로 협력해서 한반도에서 왜놈들을 쫒아낼 수 있지 않겠느냐."
일단은 바로 보낼 수 있는 사정도 아니었던 지라 몇개월간 조선의용군 인원들과 같이 일본군 초소도 습격하고,
철도에 폭탄을 설치하고 했었는데, 이 때의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은 나중에 본인에게 북한군을 막는데 쓰이는 귀중한 실전 경험이 됨.
이후 상황도 호전되었고, 당사자의 임정으로 가는 희망을 꺾지 않자 어렵사리 구한 돼지고기를 안주 삼아서 배갈을 마시며
송별회를 열었고, 다음날 아직도 미련이 남았는지 아쉬운 표정을 지우던 마상철이 머나먼 충칭으로 가면서 먹을 수수떡과 지도를 쥐어주며,
"동지, 임시정부 사람들과 뜻이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돌아오시오, 우리는 언제나 동지를 환영할 것이오."
서로 그렇게 손을 굳게 잡으며 입별을 아쉬워했다고 함. 그리 길지도 않았던 기간 동안 이념의 차이가 있어도 서로에 대한 굳은 신뢰가 형성되었다고.
김병원과 당시 함께 지내던 조선의용군들은 불과 6년 뒤,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적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이나 했었을까?
훗날 청송에서 장철부가 지휘하던 기병대대 잔여 병력들과 교전하던 상대가 다름 아닌 마상철이 사단장으로 지내던 5사단 예하 11연대
3천여명과 역시 당시 안면을 튼 조선의용군들이 간부로 있었던 12사단 766유격부대* 1천 4백여명이었음.
* 자료에 따라선 독립연대 혹은 여단으로 표기
11연대는 보급부대 산하 차량 30대와 우마차 6대가 파괴 당했고, 766부대는 이전에도 기병대대에게 여러 차례 당하다 못해
아예 여단 지휘소도 털렸던 적이 있었던 터라 독이 단단히 든 상태였던 터라 결국 숫적 열세로 기병대대는 괴멸 직전에
장철부 본인조차 부상을 입어 당장의 이동조차 힘들게 되자, 포로가 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권총으로 자결하여 향연 29세의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하심.
이때 아이러니하게도 항일투쟁 시절 같이 지냈던 조선의용군 출신들이 투항을 권고하는 방송을 내보냈다는데
양측 당사자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는 알길이 없겠으나, 개개인의 삶으로 보면 비극도 이런 비극이 아닐 수가 없더라....
P.S 어제 저녁에 우연히 발견했는데, 지난달에 한국판 무다구치 렌야라며 유재흥에 대한 글이 베스트로 올라갔던데, 관련 글 한번 써 봄?
봉완미 2022/02/11 11:30
솔직히 유재흥은 렌야랑 비교하면 모욕이라고 생각함.
봉완미 2022/02/11 11:31
옜날에 디코 아재들이 625의 원균이라고 조온나게 욕해대고 거기서도 키배 엄청 벌어져서 원균급인줄 알았는데 관련 자료 파보니까. 여러모로 묘한 양반이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