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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또래들에 비해서 어눌해."

여섯살 아들과 한시간 정도 놀이터에 다녀온 후
남편이 제게 한 얘기입니다.
걱정과 애정을 반씩 담아 웃으면서 한 얘기였지요.
저희 아들 출생시에는 키도 독보적으로 크고
신생아실에서 잘 먹는 애로 뽑혀서 수유 교육 시간에 조교(?)도 하고
별명은 "잘 생긴 애" 였던 그런 녀석이었는데 (잘 생긴 게 최고야!!)
크면서는 발달이 또래보단 빠르지 않더라구요.
처음에는 저도 그러려니 하고
힘들지만 마냥 예뻐만 하며 키웠지만
"얘는 왜 아직 못 뒤집냐, 얘는 왜 살이 안찌냐, 얘는 왜 아직 못걷냐, 얘는 왜 말을 못하냐, 얘는 왜 아직도 기저귀를 안뗐냐..." 등등등등등
주변 지인들과 어르신들의 참견에 조바심이 난 적도 많았어요.
말을 왜 못하냐며 병원 가봐야 되는 거 아니냐는 분도 계셨어요ㅠㅠ
그럴때마다 한번씩
"내가 아이를 잘 못키워서 그러나..내가 자극을 못줘서 말을 못하나..내가 해준 밥에 영양이 부족해서 살이 안찌나." 하는 생각들로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다행히 그런 걱정보다도 내 아이에 대한 믿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느리지만 언젠간 알아서 하겠지!"
정말로
아이는 조금 늦었지만 한방에 뒤집기를 성공하고,
용기가 생길때쯤 첫 발을 떼서 넘어져 다치는 일 없이 조심성 있게 걷고 있고 (6세가 된 지금까지 딱 한번 넘어짐;;),
말도 하고..기저귀도 떼고..살도 찌고..
뭐 때 되니깐 다 하더라고요.
지금도 또래 아이들은
한글을 읽고 쓰고
말도 유창하게 하고
학원을 다니며 다양한 기술(?)을 습득하는데
우리 아들은 그냥 어린이집이나 설렁설렁 다니면서 놀아요. ㅋㅋㅋ
(일주일에 1-2번은 어린이집도 안가고 저랑 놀거나 쉽니다.)
저 스스로도 공부나 학습을 억지로 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다가, 아이도 하고 싶어하지 않아서요.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애가 야무지지 않고 겁도 많고 하니
좀 어눌해보이고 애기같아 보이기도 하거든요.
남편도 아마 그런 부분 때문에 저한테 저렇게 얘기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전 그게 좋아요!
아이가 아이다운거잖아요.
그래도 인사만큼은 이 동네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잘하고,
누가 기뻐하면 축하해 줄 줄 알고,
누가 슬퍼하면 위로해 줄 줄 알고..
학습 능력보다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난 그런 아이로 키우고 싶어요.
조금 느리더라도,
행복한 순간들로 이 아이의 인생이 채워졌으면 좋겠어요!
며칠 전,
저와 패스트푸드점에서 간식을 먹다가
옆자리 교복 입은 누나들을 가자미눈으로 힐끗힐끗 보더니
"엄마, 저 누나들 정말 귀엽다♥.♥ 나 저 누나들하고 결혼하고싶다^-^" 하더라고요 ㅋㅋㅋ
뭐 그렇게 어눌한 것 같지도 않아요 ㅋㅋㅋㅋ
아, 결론을 어떻게 지어야하지!
남편에게 묵직한 팩폭 하나 선사해 드리면서 마무리 할게요.
"여보! 당신 아들은 당신 닮았어! 확실히 또래들에 비해서 어눌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
  • 갈색머리앤 2017/05/21 11:46

    아 귀엽다ㅜ
    쓰니님 대단하셔ㅜ
    저는 아기가 남들과 달리 너무울고 잠을 안자서 막 화내게 되는데ㅜ
    부모란 기다려줄줄 알아야는데 저는 이렇네요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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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unatica 2017/05/22 10:35

    크게 문제가 있더라도 제 아이는 제 아이입니다!
    다른아이와 비교하는일은 너 나 우리에게 좋을게 없다고 생각하고 키우고있는 사람으로서 멋지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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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방울소리 2017/05/22 10:43

    막줄이 핵심인가요 ㅋㅋㅋㅋ
    저도 큰애가 엄청 크게! 태어났는데 또래에 비해서 많이 느려요. 지금 5살이에요. ㅎㅎ
    안그래도 느린데 12월 생이라 ㅋㅋ
    어린이집에 같은 반에서 아주...음 ㅋㅋㅋ
    근데 진짜 글쓴분 말처럼 지가 할때 되면 다 하더라고요.
    저도 아직은 노는게 맞는 나이라 생각해서
    특별히 더 시키는건 없는데.
    주변에 보면 3살때부터 어린이집 끝나면 영어 수학학원을 보내더라고요.
    애들이 좀..안타까웠어요. 한참 놀나인데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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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yler_Durden 2017/05/22 10:46

    일찍 결혼한 친구 하나가 그런 얘길 하더군요.
    '다른 아이들은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는데 내 딸만 네모밖에 못 그리니 결국 나한테서 문제를 찾게 된다.'
    그런데 사실 아이들 발달 상황은 다 다르고, 결국엔 늦고 빠르고의 문제이지 전부 하게 되더군요. :) 마치 지금의 제가 어렸을 때 지진아였어도 문제 없이 살고 있는 것 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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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프 2017/05/22 11:04

    대국적으로 성장할 겁니다 너무 걱정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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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잡미묘 2017/05/22 11:14

    천천히 멋진아이로 성장해 갈 것 같아요. 사랑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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