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18일 광주에서 어떤 일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 맥락을 정리했습니다.
12·12사태
12월12일 밤이었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박희도, 장세동 등 이른바 신군부세력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했습니다. 신군부에 의해 군권이 장악된 것입니다.
4월14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취임한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당시 보안사령관,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을 역임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중앙정보부장까지 겸직하겠다는 건 정권을 장악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국민과 재야인사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계엄해제'와 '민주화 이행'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역 회군
대학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계엄령의 지속 아래,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가 거세졌습니다. 5월13일부터 학내에 머무르던 대학생들이 가두로 진출해 시위를 벌였습니다.
5월15일에는 서울역 지상 광장 앞에서 10만여 명 이상의 대학생과 시민이 모였습니다. 시위대는 조속한 시일 내에 계엄을 해제하고 민주화를 이룰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시위를 이끌 던 학생 지도부회의 내 의견 충돌이 있었습니다. '철야농성을 이어가자'는 의견과 '군이 개입할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됐다'는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은 것입니다.
끝내 '해산론'에 힘이 실렸습니다. 지도부는 시위대에 해산을 요구했습니다. 학생들은 각자의 학교로 흩어졌습니다. 1980년 5월15일 '서울역 회군'이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5월18일 계엄군은 학생들의 등교를 막았습니다. 학생들이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계엄군은 진압봉으로 학생들을 구타하고 연행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왜 그러느냐'며 만류하는 시민들도 폭행을 당했습니다.
5·18기념재단
계엄군이 대학생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장면을 목격한 광주시민들이 시위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시위가 확산되자 계엄사는 더 많은 특전사 병력을 광주로 보냈습니다.
광주항쟁은 본래 비무장 평화시위였습니다. 하지만 계엄군은 시민들을 향해 실탄을 발포했습니다. 무장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신군부는 시민들이 먼저 총을 쐈기 때문에 ja위권 차원에서 발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거짓 주장이었습니다.
광주 전투교육사령부 를 보면, 5월21일 오후 1시 35분 전남 화순파출소에서 무기가 피탈됐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제11공수여단은 5월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정문 앞에 애국가 연주가 흘러나오자 사람들을 향해 총을 쐈습니다. 즉, 군인들이 발포한 시기에는 시민들에게 총이 없었던 것입니다.
무기를 확보한 시민들은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고 광주를 지키기 위해 '시민군'이 됐습니다.
신군부는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사태' 또는 '소요'로 규정했습니다. '사태' 진압을 명목으로 특전사 3개 여단 3500여명, 보병 20사단 5000명, 광주 전투교육사령부 소속 병력 1만 2000명 등 2만이 넘는 병력을 광주에 투입했습니다.
시민군은 옛 전남도청을 중심으로 최후의 항전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시민군의 수는 157명뿐이었습니다. 2만이 넘는 병력에 상대가 될 수 없는 수였습니다.
계엄군은 전남도청에서 13명을 사살하고 100여 명을 체포했습니다.
5·18유족회의 집계에 따르면 항쟁 당시 사망자는 166명, 행방불명 65명이었습니다. 부상 후 사망자는 400명이 넘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윗사진은 5·18민주항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진입니다. 죽은 아버지의 사진을 든 어린 아이의 무표정이 가슴 아픈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광주민주항쟁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슬픔만이 아닐 것입니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명료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80년 5월 광주의 투쟁이 있었던 것 아닐까요.
광주와 5월의 가치를 곱씹어 볼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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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이 지났는데도 전두환,노태우,장세동은 아직 호의호식 하며 살아 있는데
모든 한국의 타지 사람들은 광주에 정치적으로 빚을 지고 있는 겁니다.
그들이 그 사실을 인정하건 하지 않건...
그 군인들을 찾아서 죄값을 물어야하는데
자식과 남편의 시신이 담긴 관을 보며
울부짖는 유가족에게 택배니 착불이니
낄낄대고 피가 흥건한 시신을 홍어무침이니
비아냥 대던 일베충 이 시발놈들
앞으로 뭐하나 걸리면 절대 합의니
용서니 해주지 말자.
어설픈 관용은 또다른 화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