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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귀책사유로 이혼 위기에 서 계신 분들께(자녀 有)

*** 스크롤 압박 ***



안녕하세요. 
평소에도 이혼 위기 가정의 "자식 된" 입장에서 댓글을 많이 달곤 했던 회원인데,
오늘은 큰 마음 먹고 글쓰기 버튼을 눌러 보았습니다.
제가 어머니 쪽에서 자랐기 때문에, 다분히 어머니 쪽에 편향적인 서술이 예상됩니다.
어머니들께서 참고하시기 더욱 편하겠네요.



혼자서 아이 기르는 건 정말 엄청나게 어려운 일

이혼을 고민하실 때 가장 걱정이 되시는 것은 당연히 자녀분들이죠.
이혼을 고민하시는 분께서 양육을 맡기로 결심하셨다고 가정할게요.


내가 혼자서 아이들을 기를 수 있을까... 불안한 게 당연합니다. 엄청 힘들고 괴로운 일이니까요. 당연히 부작용도 크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 정말 솔직하게 가감없이 서술해보겠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이혼하시면... 아이들이 10대에 접어들었을 때가 상상이 되실까 모르겠어요.
장담하건데, 10대 후반이 되면 더욱 지옥처럼 힘들어집니다(...)


제 어머니는 저와 동생 남매를 홀로 양육하셨습니다. 학력도 좋지 않으시고 직업도 주기적으로 바뀌셨어요. 
대부분 흔히 말하는 3D 직종에 종사하셨습니다. 복지도 형편 없고, 주6일제 근무가 당연한 그런 노동 환경이었죠.
정보 부족으로 한부모 혜택도 거의 누리지 못하셨고요.
월 100만원~200만원 언저리 월급으로 항상 쪼들리며 살았죠.
종자돈을 만들지 못하니 목돈 모을 생각은 꿈에도 못 꾸셨고, 
어쩌다 아이들 학원이라도 한 두달 보내거나, 여름 휴가를 한번 갔다 오거나, 무직인 상태일 때는 카드빚만 불어났습니다.
친정과 전 시댁 어디에서도 도움을 요청할 형편도 아니었어요.
아이들 아버지란 작자는 양육비도 제대로 주지 않죠.
어쩌다 친척 모임에 가면 우리집 애들만 덜렁 아버지 없이 오도카니 앉아있고요.
친구 모임이나 회사 사교 모임에서는 왜 그렇게 부부동반 모임을 자주 하는지.
가끔 보는 지인 대부분은 만나면 남편 얘기 뿐입니다.
할 말이 없어서 우리 남편은 지방 출장 갔다 거짓말을 꾸며내기도 하고요.
남편 없는 여자 홀대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버티기 위해 남편 있다 거짓말 하기도 하고요.


이처럼 이혼 후 한부모 양육시, 이처럼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예정되어있습니다.
정말 웬만한 각오로는 견디기 힘듭니다.


게다가 아이들이라도 예쁘고 바르게, 착하게 자라주면 모르겠는데.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듭니다.
의식주를 간신히 해결해주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엄마.
술에 취해 가끔 전화하거나 던져주듯 용돈을 적선하며 꼬장을 부리는 아빠.
아이들이 비뚤어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을 특히 힘들게 하는 건 한 집에 함께 사는 엄마입니다.
지나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저렴하게 괴로움을 잊을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술먹고 토하고 주정하고, 때로는 속이 망가져 입원하고, 어쩔 때는 집을 찾아오지도 못해 길거리에 쓰러지면
아이들이 새벽 2시에 엄마를 찾으러 길거리를 헤맵니다.
엄마는 줄줄 울면서 내 인생 망친 새끼를 욕하고, 가끔은 자식들을 원망하고, 집안을 원망하죠.


그 와중에 아이들은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합니다.
엄마는 눈에 불을 켜고 아이를 잡습니다.
아이들이 나쁜 길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호랑이처럼 엄하고 독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아빠 역할까지 해야하니까요.
엄해지다보니 아이들을 때리기도 하고, 훈수가 지나쳐 욕도 하게 됩니다.
다정한 엄마 역할은 현실 앞에서 너무나 판타지 같습니다. 
당장 가족이 먹고 살 길이 급하고, 집안 가장인 내가 일을 못하면 가족 전체가 길바닥에 나앉게 생긴 걸요.
이 엉망진창인 상황 중에 못된 망아지처럼 날뛰는 아이들을 잡으려면
아이들을 사정없이 몰아치는 방법밖엔 수가 없습니다. 그 밖의 방법을 쓰기엔 시간도, 돈도, 여유도 없으니까요. 
요새 아이들은 어찌나 거짓말도 잘하고 영악한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불만입니다. 
정서적인 충족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야단만 맞으니까요.
엄마다운 역할은 하나도 해주지 못하면서 이래라 저래라 요구만 많습니다.
엄마는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회사 스케쥴 때문에 운동회도 못 오고 졸업식도 못 옵니다.
엄마는 그럽니다. 이건 중학교 졸업식이니까. 고등학교 졸업식엔 꼭 갈게.
소풍갈 때 도시락은 언강생심이고요. 하다못해 학교에서 진행하는 부모 면담회도 3년 내내 한 번도 못 올 정도입니다.
이 마당에 휴가는 무슨 휴가요, 가족끼리 여행다운 여행도 못하고요.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사교육은 꿈도 못 꿉니다.
그런데도 성적이 낮으면 엄마는 매섭게 회초리를 들고 왜 이렇고 공부를 못 하느냐며 무섭게 혼을 냅니다.  
문제집 한 권 살 돈도 제 때 주지 않으면서요.
좋은 대학교를 못 가면 차라리 내가 죽겠다, 
혼자서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너희들이 공부도 못하면 이게 무슨 망신이며, 나는 무슨 낙으로 사냐,
으름장을 놓기도 합니다.
생활비로 쓴 카드빚을 갚기 위해 점점 작은 평수로 이사하면서... 


이렇게 엄마와 아이들 사이가 점점 멀어집니다...




네.
아무런 대책 없이 이혼 후 한부모 양육을 해내간다는 건,
당연코 지옥을 맨 몸으로 헤쳐나가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이혼 고민하는 수많은 글들에 아이들을 생각해서 이혼을 다시 생각해보라는 댓글들.
쉽게 이혼, 이혼 하지 말라는 댓글들.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혼을 참아라(X)
제대로 각잡고 이혼을 준비해라(O)




왜냐하면 저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엄마 아빠 둘 모두랑 같이 살 때보다는 비교적 더 행복했거든요.

비유하자면

전쟁터 한복판에서 사는 것과
전쟁 후 난민으로 사는 것의 차이였던 것 같아요.



이혼 위기의 가정은 보이지 않는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을 끝내려면 승리하거나, 패배하거나, 혹은 분단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저 중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채로 17년을 살았습니다.
긴 시간 휴전과 전쟁을 반복했죠.
다른 말로 지긋지긋한 소모전이라고 하죠.


저희 어머니는 아버지의 불륜을 두 번 눈 감아주고,
세 번 째는 경찰을 대동해서 현장을 덮쳤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한동안 지지부진했다가 제가 중학생일 때 드디어 이혼을 하셨는데.
이혼하기까지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그 모든 드라마틱한 경우를 대부분 겪으셨죠.

참으라.
변할 수 있다.

이 얘기를 가장 못 박히게 들으셨다고 해요.

하지만 만약 상대방의 귀책사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거나, 발생할 여지가 있을 때...
특히나 일평생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이라면...


변화의 가능성을 점치기 전,
저부터 돌아봅니다.
솔직히 저부터가 제 습관을 끊어본 전적이 없어요.

절대 운동 안 하고
절대 게임 못 끊고
절대 새벽에 못 일어나고
절대 저염식 식사 못하고
절대 핸드폰 못 끊고
절대 술 못 끊고


물론 상황에 따라 잠시 충동을 참아본 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평생 다이어트 한다는 말처럼,

습관을 절대로 망각하는 일은 없었어요.
말 그대로 참는 거죠. 심리적 억압 기제나 물리적 제한이 풀리면 곧장 원래의 습관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저희 어머니의 이혼 사유였던 불륜을 예로 들자면.
상대방은 불륜을 그만 두는 게 아니라, 일평생을 불륜을 참고 살아가야 한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참기 위해선 어떠한 제한이 필요하죠.
끊임없이 감시 아래 살거나, 스스로 불륜을 다시는 하면 안 된다는 강한 심리적 억압 기제를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저부터가 제 습관을 고친 적이 없습니다.
몇 년간 참아본 적은 있지만요.



이혼은 아주 위험한 선택이 맞습니다.
이혼 전 백 번, 천 번 심사숙고하시는 게 맞고요.
특히나 본인에게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다면 더더군다나.

나만 참고 살면 내 아이들은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자랄 수 있겠죠.

하지만 이것은 종전이 아니라 휴전입니다.
그리고 휴전 협상에서 아주 불리한 위치에 처하는 겁니다.
상대방에게 "나는 가진 패가 없다" 들통나지 않으려면 아주 신중하게 밀당을 하셔야 할 겁니다.

또한 아이들에게 티를 내지 않으시려면 
부처보다 더한 인내심과 자애심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으로는 불가능해보이는 마음가짐이.

그러나 아이들을 감쪽 같이 속이실 수 있다면,
이혼 대신 경제적 이득을 취하시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의 대가는 당신의 썩어문드러질 마음이고요.


한부모는 이혼 전도 이혼 후도 전쟁터를 헤멜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현실은 냉혹합니다.

무턱대고 이혼하지 마세요.
아이들과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혹여 이혼을 염두해두시는 분께 
성공적인 이혼 준비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


댓글
  • 만화보는사람 2017/03/31 18:18

    두고두고 잘 생각할게요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4jhg1x)

  • 싸쑨 2017/03/31 20:36

    눈물나요 제길 염x할 눈물이나요

    (4jhg1x)

  • Melodie 2017/03/31 20:54

    전쟁터 한복판에 살거나
    전쟁 후 난민으로 살거나...
    이 비유가 마음에 아프게 와닿네요

    (4jhg1x)

  • 마리테레즈 2017/03/31 21:35

    저는 재혼가정에서 자라서 아버지하고 성이 달라요. 친부라는 작자는 양육비는 커녕 연락도 안힌지 10년도 더 됐구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가족인 우리지만... 20대 후반인 지금도 꼬리표는 따라 다녀요. 이력서에 가족 사항은 왜 자꾸 적어내라는건지  아버지 성을 억지로 고쳐냈어야  했고... 언니 결혼식 주례하시던 분이 아버지와 저희가 성이 다르다는걸 미처 파악을 못한건지 그저 헷갈린건지 이름 번복해서 부르고 어버버 거렸던 일(예를들어 김태희양...아니 박태희양... 이런 식)은 지금도 저희 가족에게 악몽으로 남아있습니다. 곧 제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데 이번엔 그래서 아예 주례 전문 선생님을 섭외하고 이름 부분 신경써달라고 거듭 부탁했죠. 청첩장도 마찬가지... 뭐 요새는 장동건 고소영의 차녀 점순 이런식으로 자녀 성은 기재하지 않는 형식도 많아서 그나마 다행인데... 딱히 재혼 사실에 대해 알지 못하던 지인들도 청첩장 보면 이제 대충 알게 되겠구나 싶기도 하고 상관없다고 생각하긴 해도 뭔가 뒷맛이 씁쓸한건 어쩔 수 없네요... 아버지랑 처음 같이 살기 시작했을때 성을 바꾸는 것도 고려해보았으나 저희 돌림자와 잘 맞지 않아서 이름 자체를 바꿔야하는 상황이라 여의치 않아 그냥 포기했던 부분인데... 이렇게 오래 쫓아다니는 일이 될 줄은 몰랐네요. 저희가 형제도 많아서 앞으로 동생 둘도 결혼을 할텐데... 그때마다 같은 고민을 하게 될게 참 씁쓸하네요. 물론 이런 고충이 있다한둘 친부랑 사는것보가 훨씬 행복하게 잘 살아왔지만... 아직까진 보수적이고 오지랖도 많은 지금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이혼이라는게 본인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크다는걸 부정하진 못하겠네요...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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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켓단GO 2017/03/31 21:37

    현실적이라서 더 마음 아픈 글입니다.
    아버지는 같이 있어줄 시간이 없어 양육권을 덥썩 가져오기 어렵고..
    어머니는 이미 경력이 단절되어 풍족하게 키워낼 여력이 없기에 양육권만 덥썩 가져오기 어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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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구리굴 2017/04/01 00:13

    굉장히 현실적인 글이네요.. ㅠ ㅠ
    무조건 참으라는건 당연히 아닙니다만 이혼후에 어떻게 될지도 잘 생각해야만 하죠.
    특히 귀책사유자가 뻔뻔하고 무책임할 경우엔 더욱더 법을 꼼꼼히 이용해서 준비해야하고요..
    애초에 최소한 필요한 자녀의 양육비를 성실하게 주기만 해도 덜 할텐데..그러지 않는 상대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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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멋있는언니 2017/04/01 00:14

    참 묘하네요. 글쓰신 논지 보니까 제가 평소 생각하는 거랑 크게 다르지 않으신데 뭐에 꽂히셔서 그렇게 저한테 각을 세우셨던 건지.. 글에 ㅋㅋ 좀 쓰면 뭐 빵터져서 웃고 있는 거 같나요? 제가 불륜을 쉽게 생각했으면 미쳤다고 글쓴님 위로하는 댓글을 달고 있겠나고요. 참..... 희안하네요. 얼굴보고 얘기했음 되려 안 그랬을 것도 같은데. 암튼 좋은 글 잘 읽고 추천 누르고 갑니다. 행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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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랑 2017/04/01 00:20

    전문가들이 말하는 틀에 박힌 상투적인
    조언에 대해 전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서로 터놓고 대화하는게 가능한 환경의
    가정이면 애초에 그 지경까지 가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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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생먹거리 2017/04/01 00:25

    자식이 있다면 이혼은 참는게 좋다 생각합니다. 제 아내가 이혼가정에서 자랐는데 그 피해의식이 엄청나게 큽니다.. 혹여나 주위에서 이혼가정에서 자라서 그래 라는 말을 들을까봐 착한척하고 사는게 몸에 배었어요... 잘못은 장인어른이 했는데 이혼하자 했던 장모님 탓을하고 삽니다..처제도 그러고 살아요.. 좀만 참지..하면서.. 격주로 장인 장모님을 따로 뵙긴하지만.. 아무튼 룸싸롱을 갔네 바람을 피웠네 하며 이혼하자는거 일단은 말리고 싶어요.. 저말 미친xx들이야 어쩔 수 없지만 한번의 실수라면.. 자식이 있다면...자신의 인생을 자식에게 발목잡히고 싶지 않다지만 자식은 아무 잘못도 없이 평생 죄의식을 가지고 살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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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양남 2017/04/01 01:58

    힘을내시구요 저또한 이런 가정인데 결혼하려고 하니 만가지 생각이 다듭니다. 허나 부정할수 없는거 진짜 피를 토하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이 상황이 반전이 됩니다. 세상에 나오면 이런일뿐만 아니고 별 거지같은 상황이 연출되는데 쫌만 노력햇더라면.....생각이들때가 잇어요 너가 어려워서 지금은 잘됏네 너가어려워서 이모양이 꼴이지~ 별의별말이 많아요 왜냐면 이런 상황을 겪은분들이 얼마없어서예요 홈런친다고하죠! 인생에 홈런한방치시고 어머님 벤츠한대사드리고 얼마나 좋습니까! 다해결은 안되지만 어렵다고 비굴할필요도 없어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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