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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언제 결혼을 결심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잠이 들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리는 사람이다. 

한참을 뒤척이고, 자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그러다보면 무서운생각이 스물스물올라오면서 식은땀이 나고 
결국은 못견디고 불을 켜고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교에 와서까지도 엄마랑 같이 자고 싶어했고 나처럼 잠에 예민한 엄마는 뒤척이는 나와 자는게 힘들어서 
매일 밤 쫒고 쫒기는 전쟁이었다. 그 전쟁에서 겨우 이겨서 엄마 옆에 누우면
혹시라도 내가 뒤척이면 엄마가 잠에서 깨서 나갈까봐 아무리 움직이고 싶어도 목석처럼 누워있었다 
어디가 가려워도 긁지도 않고 자세가 불편해도 고치지도 못하고 한참을 뜬눈으로 누워있는 밤도 많았다. 

자는 것은 사는동안 나에게 늘, 먹는 것만큼 힘든 전쟁이었다. 



지금은 내 남편이 된 이 남자는 배게에 머리를 대면 2초만에 잠든다. 
오늘은 잠이 안오는데... 하고도 5분이면 충분하다. 
정말정말 몸살을 앓는 날에도 내가 쓰다듬어 주고 있으면 또 5분이면 된다. 
자고 있는데 쓰다듬거나 뽀뽀해주면 자다가 베시시 웃고 
새벽녘 깊이 잠들때에도 내가 침대에 들어가면 일단 안아주고
(지난번 친정에 가서 내 남동생이랑 셋이 잔적이 있는데 잘못해서 남동생을 안을뻔했단다ㅋㅋ)
차가운 손을 자고있는 등에 쏙 집어넣어도 히힛 하고 잔다. 

연애때 둘이 복층인 펜션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잠은 윗층에서, 화장실은 밑에층이었다. 
밑층이 한쪽 벽이 전면 유리라서 왠지 밖에서 사람이 들어올 것 같고 무서웠는데 
나는 자다가 한번은 꼭 화장실에 가는 타입이다.
새벽 한참 깊이 잘때쯤 나 화장실 가고싶어... 라고 들릴듯 말듯 말했더니 이 남자가
어 그래 하고 마치 아까부터 깨어있던 사람처럼 벌떡 일어났다. 
안넘어지게 손잡고 계단을 같이 내려가주고 내가 화장실에서 나올동안 서서 기다려주었다. 
같이 올라가서 또 포옥 껴안고선 내가 뒤척이던 말던 자긴 2초만에 잠들었다. 

그래서 결혼하고 싶어졌다. 




지금 남편은 내가 아무리 뒤척여도 상관없이 너무 잘자고 나는 옆자리에 누워서 잠이 올때까지 맘껏 뒤척인다. 
남편을 만져보기도 하고 찔러보기도 하고 껴안아보기도 하고 등을 붙여보기도 하면서. 
그러다 혹시 내가 깨우면 또 벌떡 일어나곤 또 누우면 다시 2초만에 잠든다. 
결혼하곤 잠이 좀 더 수월하게 드는거 같아 라고 생각하고 있다가도 
남편이 출근하고 난 후에 아침잠이나 낮잠잘때마다 느낀다 
나는 잠을 잘 못자는 사람이라는걸. 

남편이 옆에 있어야 마음껏 뒤척이고 아무생각없이 자는데 
혼자있으면 지금도 중간중간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깨기도 하고 
도저히 안되겠어서 티비를 틀어놓기도 하고 거실로 나가보기도 하고 그렇다. 
남편이 1박2일로 어디 가기라도 하면 그냥 자는걸 포기하고 혼자 올나잇을 한다. 


오늘 아침에도 방에서 혼자 자기가 무서워서 거실에 나가 번데기처럼 자다가 문득, 
그 전쟁같은 밤들에 평생 나와 자 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남편은 이제, 내 소원을 이루어준 사람이 된 것이다. 









댓글
  • 나라예 2017/02/28 14:29

    아... 여러가지 말이 떠오르지만, 제 표현력이나 어휘력이 약해진 탓인지 .. 정리가 쉽지 않네요.
    작성자님이 작은것에도 감사하실 줄 아는 분이셔서,
    작은것 하나 놓치지 않는 운명같은 부군을 만났다고 생각해요. 행복하신거 같아 참 보기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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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꼽꼬비 2017/02/28 16:48

    불면증이 도진 1인으로써...
    참 부럽고 예뻐요.ㅎㅎ
    평생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나도 그런 사람 만나고싶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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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ebruary 2017/02/28 16:48


    저도 잠에 예민한 사람이라 걱정이었지만 고양이랑같이 자기 시작한 이후로 많이 나아졌어요. 저보다 더 예민한 생물이 제 품에 쏙 안겨서 도로롱 거리며 자는걸 쓰다듬다보면 저도 모르게 꿈나라로 스르륵 가게 되더라고요. 저의 은묘인 루비사진 하나 놓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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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KMU 2017/02/28 16:51

    글을 읽는데 참 예쁜 인연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항상 지금처럼 행복하시길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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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냐옹 2017/02/28 16:53

    아흥 로맨틱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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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뭐다냥 2017/02/28 16:56

    저도 혼자 자는거 무서웠는데
    결혼하고 같이 자니 좋아요.
    다만 그의 코고는 소리는............
    힘들때도 있지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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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잉칰킹 2017/02/28 16:56

    저도 저도!! 몸은 피곤한데 자야지 하고 누운 순간 부터 잠에 빠질 때까지가 너무 힘들었어요. 힘들다 생각하니까 더 잠이 안오고 잠이 안오니까 뭐가 문제지 하면서 또 힘들고 무한반복.. 지금은 잘자요ㅋㅋㅋㅋ 남편이 머리 닿고 5분인 사람인데 같이 자니까 .. 뭐랄까 신뢰하는 사람이 옆에서 푹 자고 있으면 저도 안심할 수 있어서 잠이 오는 것 같아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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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홍틱 2017/02/28 16:58

    난 좋은 사람이 아닌데,  이 아가씨 글들을 읽으면 내가 참 좋은사람이라는 착각을 하게된다.
    그 좋은사람을 현실로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부족한 내가 이사람에게 실망만을 주는것 같아 미안하다.
    오늘도 난 참 행복한사람이고,  이아가씨는 내가 생각한것보다 훨씬 대단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하며 이 아가씨를 행복하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작성자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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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킨무우 2017/02/28 17:03

    어?  난 결혼한적 없는디 뭐지?
    별명도 누우면3초
    이력서 특기란에 수면관리 썼었는데
    운전하다 너무졸려서 15분만 자고 가야지 하고 타이머 맞춰놓으면 14분40~50초 쯤에 눈이 똭 떠짐
    불면증 있는사람 공감 불가능
    사물놀이하고있는데 옆에서 잔적도 있음
    밤샘할때도 정말 졸린 그때만 10분정도 자면 다시 돌아옴
    커피, 고카패인 음료, 잠 안오게하는 음식들에 면역
    (호주 워홀때 집에서 영화보며 몬스터 500짜리 3캔 마시고 잠)
    그런데 잘때 누가 건들이면 잘일어남
    이등병땐 긴장해서 불침번 교대할때마다 나도 깸
    아닌거 확인하고 다시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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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직히 2017/02/28 17:08

    출처로 쓰신 말이 너무 멋지네요..손, 마음, 머리..
    저같은 감정 불구도 글쓴님이 얼마나 진심으로 행복하신지 느껴질 정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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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가가면 2017/02/28 17:10


    너무 달달해서 구라임을 외치고 싶지만 부부이므로 참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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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블리 2017/02/28 17:32

    그런데 그정도 수면 장애면 관련 클리닉 같은 곳을 한번 방문해보시는게 어떨까요?
    수면은 곧 휴식인데 정말 정말 고생하셨을거 같아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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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남자사람 2017/02/28 18:12

    코골고 이가는게 아저씨 급이였던 전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유독 그 친구하고는 편하게 잤음
    타인하고 공간을 공유함에 있어 깨어있을때 만큼 중요한게 깨어있지않을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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