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바람을 피웠다.
청소를 하던 중 일기장을 발견했다.
그에 대한 감정
그의 여자친구에 대한 분노와 질투
그리고 둘의 관계가 끝이 정해져있음에 대한 슬픔. 먹먹함.
읽어내려가며
생각보다 화가 나지 않았다.
내 예상보다 그저 담담했다.
나는 감정에 서툰 사람이다.
이제껏 남에 대한 이해가 얕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나는 감정에 서툰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성적인 사람이냐하면 그건 아니다.
난 유쾌한 사람이다.
그저 감정에 굉장히 서툰 사람이었을 뿐이다.
장례식장에 가면 나는 뭔가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때의 감정은 장례식장의 그것과 비슷했다.
어떤감정을가져야하는거지.
어떻게표현해야하는거지.
다치우고어떤말을어떤행동을해야하는거지.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못하는 상태.
내가 어떤 감정을 가져야하는 지 알지 못하는 상태.
그것이 나의 상태였다.
어쩌면 이런 나와 함께 산다는 것은
감정이 깊고 풍부한 너에게 힘든 일이었을 수 있겠다.
그와 음악 이야기를 했다는 너.
결혼을 준비하며 바쁜 가운데 그와의 감정이 생겨났다는 너.
그리고 지속된 비밀스러운 만남.
1년 반이란 시간동안
이제는 그만하자고 우리는 끝이 정해져있다고
서로 힘들어했을 너와 그를 생각하며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가 그에게 어떤 노래를 추천할지 고민할 때
나는 그때 내가 무엇을 할까 고민했었다.
너가 그와 어떤 감정을 나눌지 고민할 때
나는 그때 우리가 무엇을 할까 고민했었다.
너는 어떤 감정을 나눌지 기대할때
나는 무슨 일을 같이 할지 생각했다.
우리는 이렇게 다르다.
우리가 이렇게 다른 것이 너를 힘들게 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우리가 만난지 10년을 앞둔 이 지점에서야 들었다.
이 글도 보통의 나라면 절대 쓰지 않을 그런 이야기.
글를 쓴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다.
아무도 알지 않는 곳에
자신의 마음을 써내려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나에게 내 마음이란 상대방이 알아차려줬으면 하는 것인데
너에게 네 마음이란 너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어떤 무엇인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너의 비밀.
너의 비밀스러운 감정과 생각들.
그걸 나눌 수 있는 너의 마음. 일기장. 그리고 그.
나는 너가 답답했다.
우울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생각이 많다고 여겼다.
그런데 내 진짜 감정이
무언가 엄청 큰 감정의 파도가 밀려오는 그 순간에
나는 어떤 감정을 가져야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어쩌면 이렇게 지나가기로 결정할 수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나는 그냥 이렇게 지나가기로했다.
너가 나에게 미안해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런데 어제밤
나는 또 내 감정앞에 마주섰다.
너에게 안겨 엉엉 울던 그 날.
사실 나는 슬프지도, 화가 나지도, 너가 밉지도 않았다.
그냥 감정이 몰려와서 울었다.
그게 어떤 감정인지 모르겠다.
사실은 그게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너가 나를 속였으니까.
바람 피운 아내를 두고 남편들은 다들 슬퍼하니까.
그래서 나는 이 감정이 슬픔이라고 단정지은 것은 아닐까.
이게 슬픔일까.
너에 대한 미움일까.
실제로 가슴 쪽에 어떤 촉각, 느낌이 있다.
서늘하다고 해야할까.
이 느낌은 내가 굉장히 큰 실수를 하거나
큰 거짓말을 들키거나 했을 때 느껴지는 촉각인데.
아마 나는 그런 류의 상황과 지금의 나의 상황을 동일시 하고 있나보다.
당황스러움.
그래 나는 당황스럽다.
사실 무언가 일기장을 기억하는 내내 야설을 보는 느낌이었다.
야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라는 전제하에 읽는 이야기.
그래 이 이야기는 나에게 현실감이 없다.
현실감이 없기에 이렇게 지나간다.
여전히 나는 나의 감정을 정확히
정의할 수 없다.
육체적 관계의 유, 무가 중요할듯 합니다.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요. 어떤 감정일지 예상밖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는 거에요. 그 촉각이 나에게 일러주는 무언가가가 있겠지요.
글쓴이 님의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어 오는 느낌입니다...
얼마나 힘드실지 제가 가늠조차 할수 없겠지만 제가 경험한 1년 연애한 전여친이 2개월동안 바람피우고 동영상 까지 촬영한걸 봤을때
그 기분이 잠시나마 떠올랐네요...
10년이면 자녀분이 있으실것 같아 자녀분 부터 챙겨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저는 1년 반전 파혼했을때 감정처리를 제대로 하지못해
약 8개월 정도 공황장해를 겪었습니다... 글쓴이 님처럼 감정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제 성격 이 컷었습니다...
어떤말도 해드릴 수 없네요...
이 글을 아내분께 보여드리는건 어떠신가요?
이 사건(?)을 얘기하려고 하기보다는 이 사건으로 인해 작성자분의 감정과 작성자분이 아내분께 드는 미안한 마음 등에 대해
지금이라도 대화를 해보시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선택은 본인이 하시겠지만요.
이건 제 생각인데, 의외로 화(또는 감정)를 잘 못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내가 화를 냄으로써 타인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느라 감추고, 웃어넘기고...
근데 그게 오래되면 병이되거든요.
나한테든, 타인에게든.
제가 그렇기도 하구요.
후회없는 선택 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깨닫지 못하는 감정이 나중에 나비효과처럼 찾아와요.
뭔지 모르고 울다가 문득 깨닫겠죠. 아 내가 이래서 울었고 아팠구나.
글만 읽어도 되게 먹먹하네요..
슬프다..
폐허..
너무 멋진글이에요....이런말실례일수도있지만 머리속에서 완벽하게 감정이 그려지네요.....
저랑 거의 같은 스타일이라서 엄청나게 공감이 갑니다.
감정표현이 서툰사람이 풍부한 사람 옆에 있으면 상대방이 항상 불만을 느낍니다.
자신은 괜찮다고 느끼고 아무렇지ㅜ않은 것 같지만 속은 곯아 터지고 있죠. 그러다 갑자기 생기는 나도 모르는 감정 폭발...
남들은 대화로 풀어라 라는 말을 하지만 사실 그게 되지 않아요. 그냥 참고 있다보면 무뎌지던가 폭발 후 전환점이 생겨 둘 중 하나가 바뀌던가... 아니면 ... 뭐... 말을 않겠습니다.
제 경우는 마지막이라...
하여간 힘내십시오. 자존감 잃지 마시고
조금은 알것같아요 제 감정을 모른다는 것..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를 지나오며 작고 외소한 저는 가끔은 강해보이는 척을 연기해야하는 필요가 있을때가 있어서
3년동안 한두번정도 일부러 화낸적이 있어요.
사실은 화가 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화를 내야하는 타이밍이었단것만 알고, 가끔은 일부러 화를 일부러 냈죠.
군대시절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제 후임들의 행동에 크게 화나지 않았음에도
혼내야하는 일 인것을, 그리고 혼내야하는 타이밍인것을 머리는 알아서
전역할때까지 딱 두번. 불같이 화낸적이 있어요.
그리고.. 지금 당장은 감정이 와닿지 않더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와닿는 슬픔도 많더군요. 고등학교 시절 가족중 누군가를 떠나보냈고 당시에 슬펏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다가오는 후폭풍같은 파도들은, 제가 생각했던 슬픔보다 훨씬 크더군요.
아내분과 이별하거나. 그런건 아니지만. 비슷한 의미에서..점점 더 슬픔이 와닿으시는게 되는건 아닐까 걱정이네요
좋은 글입니다.
있는 그대로 토로할 수 있는 정도만 되어도 저런 감정인가?라는 질문이 없었겠지요
힘내세요(그게 어떤형태건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