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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효명세자가 시집간 공주에게 보낸 글.jpg


누이에게 보냄(寄妹氏)

 

여자의 도리(여기선 왕녀를 말함)는 한가로움 사이에 있다고 하니,

그 말은 옛 책에도 실려 있습니다. /

 

남편 섬기기를 조심하여

서로 손님처럼 공경히 대하세요. /

 

충효(忠孝)는 우리 집안(조선 왕조)의 가법이라,

이를 본받아 시부모님을 잘 모시길 바랍니다 /

 

두 분 전하(순조와 순조비 김씨)의 가르침이 매우 중하니

어찌 잠시라도 잊을 수 있겠습니까? /

 

검소함을 좇아 마땅히 복을 아껴야 하는 법이요,

쓰임은 아껴서 남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

 

길쌈하는 것은 그대의 직분이며,

몸소 부엌에 들어가 음식과 술도 장만하셔야 합니다. /

 

여자의 성품은 본래 현명한 법이니,

틀림없이 선심(善心)을 낳았을 겁니다. /

 

아름다운 행실은 앞선 역사에서 배우는 법이고,

어진 성품은 맑은 구슬과 같지요. /

 

한결 같이 그대의 만수무강을 빌며, /

다시 한번 봉육구추(鳳育九雛, 자식을 많이 낳음)를 기원합니다.




효명세자 이영이 시집간 누이에게 준 칠언 율시입니다.


시문에는 남편 섬기기를 잘하고, 


시부모님을 잘 모시라는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데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임금은 나라를 다스리고, 


왕비는 내명부를 다스리고 


사대부는 왕과 함께 정사를 다스려야 했고, 


사농공상은 각각 자신의 계급에 맞는 의무를 수행해야 했지만, 


왕녀들은 권리만 있었지 어떠한 의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녀(공, 옹주)는 역사적으로 보아도


아무런 직분 없이 놀고 먹으며 한가함을 즐기던 사람들이었지요. 


왕녀가 시집을 가면 시집에서는


며느리라고 하지만, 


시부모들이 왕실의 공, 옹주는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엄연히 신분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며느리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마저 하지 않는 경우가 


의외로 조선 시대에 많았습니다. 


효명세자는 이를 경계하여, 


누이들에게 보통 사람들처럼 


며느리로서의 직분을 지키라고 조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자의 시를 보면, 


왕실을 우리 집안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치 평범한 일개 가문이라는 어조와 비슷합니다. 


이 시는 명온공주에게 준 것인지 복온공주에게 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정황상, 명온 공주에게 보낸 시로 생각됩니다. 


효명세자는 명온공주와 소울메이트였기 때문입니다.


효명세자가 죽고난 뒤 2년 뒤에 명온 공주와 복온 공주가 죽고,


명온 공주와 복온 공주가 죽은 2년 뒤에 순조 임금이 죽습니다.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시름하며 


죽는 기간이 2년이라고 하는데 딱 맞아 떨어집니다.





사진은 순조 임금의 딸이던 복온공주의 12살 때 친필 한글 글씨이다. 


순조 임금은 옥화당에서 어린 공주와 노닐면서


공주가 쓴 글과 시문을 읽고 한문으로 차상이라는 성적을 매겼다.


그리고 백면지(종이) 2권, 붓 5개(지), 묵 3개(정)를 상으로 주었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댓글
  • 라드그리드 2019/09/15 03:08

    아니 이 좋은 글에 왜 리플이 없나요. 추천합니다

    (Xw1lHN)

  • 장수찬 2019/09/15 03:13

    라드그리드// 감사합니다!

    (Xw1lHN)

  • plu.rock 2019/09/15 07:31

    스크랩합니다 나중에도 좋은글 올려주세요^^

    (Xw1lHN)

  • wd40 2019/09/15 08:44

    좋은글 추천 1

    (Xw1lHN)

  • 今春花如雪 2019/09/15 09:33

    좋은글 감사합니다

    (Xw1lHN)

  • OPS1000 2019/09/16 12:28

    효명세자가 역사의 흐름을 바꿀 미미하지만 마지막 기회였다고 봅니다.
    20대 초에 요절하고 5년 후 부왕도 승하하고
    효명세자의 어린아들이 보위를 이어, 거뜩이나 위세가 당당한 안동김씨가 또 수렴청정 그후에 강화도령 철종 고종 순종 이렇게 망국의 길을 걷죠.

    (Xw1l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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