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좌수영 부산진성 수군첨철제사 정발
일부 서적이나 사극에선 준비조차 제대로 안하고 놀고먹고 있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실상은 준비할거 다 하고다닌 인물 중 한사람. 애초에 그가 부산진에 부임한 이유부터가 전쟁대비를 위함이었음
큰 기록은 없지만 북방에서 여진족도 상대한 기록이 있고,
당시 국방총괄기구이던 비변사(아주 권력이 막강한 국방부라고 생각하면 됨. 나름 엘리트인 자들이 주로 근무할수 있었음)에서도 재직한 적이 있는,
꽤나 유능한 장수가 아니었나 싶음
임진왜란 발발하기전 왜관에 있던 일본인들이 급히 피신하는걸 보고 수상하게 여겨
부산 앞바다 절영도에 주둔하여 군사훈련과 사냥을 실시함
어떻게 보면 개인취미 삼아 사냥하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유해조수 구제 및 민심 안정의 일환이였다고 하며
당시 사냥은 기동훈련도 겸했음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나 징비록에서 보면 사냥 끝나고 바베큐파티 하는 장면 나오는데
딱히 큰 문제로 볼만한 사항은 아니였을 것으로 보임
대규모 훈련 끝나고 병사들에게 특식 먹이는 것으로 생각하면 됨
여러 기록에선 겨우 반나절만에 무너졌다고 나오지만 방위병력이 500여명 정도임을 감안하고,
2만에 가까운 왜군이 정면에서는 가망이 없어서 양면 공격으로 성을 함락시킴
왜군의 기록에서도 부산진전투에서 절망을 느꼈다고 기록된 것을 보면
진짜 미친듯이 저항했다고 봐야 할 정도
경상좌수영 다대포진성 수군첨절제사 윤흥신
중종시절 을사사화로 양반 신분에서 노비 신분으로 떨어졌다가
훗날 선조에 의해 양반으로 다시 복권된 장군
노비로 살다보니 글공부를 하나도 못해서 몸을 단련해 무과에서 급제했는데
교육을 제대로 받아보질 못해서 양반 주류사회에 편입되지 못하였고,
문자해독을 못한다고 파직되는 수난을 겪음
당시 다대포 첨사로 발령났는데 하필 임진왜란이 터져버림
부산진 전투 직후 일본군 일부는 동래성으로 향했고, 일부는 다대포와 서평포로 공격해왔는데
800의 급조된 병력만으로 왜군에 맞서싸움
1차전에선 어떻게든 막아냈지만 이후 탈영병과 전사자 수가 너무 많아 2차전에서 점령당함
1차 방어 이후에 주위에선 후퇴하고 후일을 도모하자고 했지만 윤흥신은 이를 거부했다고함
결국 자기 이복동생 윤흥제와 같이 전사했지만 여기서 놀라운점은 하루 넘게 버텼다는 점임
조선에서도 사실상 기록이 없다싶이했고, 현대 교과서에선 아예 설명조차 거의 없을 정도 수준
참고로 정조때 일본사 읽고나서 진상파악하기 시작했다고함
동래 도호부사 송상현
정발과 윤흥신과 다르게 원래는 문관 출신이며, 외교관 경력도 있음. 한마디로 엘리트 출신
동래성에 부임오자마자 한 일은 성벽과 성문 보수였으며, 전쟁준비를 계속 해왔음
당시 왜군측의 기록에서도 동래성은 상당히 방비가 잘되어 튼튼해 보이며,
주둔병들도 정예병들로 보인다는 기록이 있음
주둔병력은 약 3,000여명. 백성들까지 합하면 3만에 가까운 수였다고 함
병력 3,000이 적어보일지는 몰라도 이후 한양 함락때까지 있었던 전투들에서 조선군 병력들이
탄금대 전투를 제외하면 많아야 1천, 대부분 수백은 커녕 수십명 단위들이었던 것을 보면
당시 상황으로써는 상당한 대병력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음
조선의 주요 분쟁지역을 기준으로 최후방인 곳에 이 정도 병력이 배치된 것은
조선이 나름 전쟁대비를 했다는 증거 중에 하나임
의외로 군역에 대한 반발이 없었던거 보면 인망이 두터웠지 않았나 싶음
고니시와 맞붙을때 가장 유명한 말이 있으니 '전사이 가도난'이다
뜻은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비켜주는건 어렵다' 인데 오늘날로 해석하면
법↗규↘로 볼수 있다
생각외로 준비를 철저히 해왔기에 초기에는 어느정도 막아냈지만 결국 머릿수 앞에서 무너지고 패배함
위 부산진 전투처럼 쉽게 점령당했다는 식으로 인식이 박혀있는데 진주성처럼 지형빨 받는 성도 아니고
아군의 수가 왜군들보다 우세에 있었던 것도 아니였다는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오래 버텼다고 봐야함
심지어 왜군도 전면에서 감당이 안되니까 병력 쪼개고 양동작전으로 점령함
그 외에도 위의 윤흥신 장군 설명때 언급한
경상좌수영 소속의 서평포진에서도 전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와 관련된 기록이 현대에도 찾을 수가 없어서 서평포진전투의 경과과정은 물론
누가 장수였고 몇 명이 주둔하다가 얼마나 전사했는지도 알 수가 없음
어찌됐든 이 전투 네 번으로 왜군은 약 3일의 시간을 허비했는데,
개전 이후 한양 함락까지 20일이 걸렸음
즉 20일 중 3일을 현재의 부산시 전역에서 허비한 것.
한양 함락까지 있었던 대부분의 전투가 하루는 커녕 몇 시간도 걸리지 않았던 것을 보면
위에 언급된 전투 세 번이 얼마나 치열했으며, 얼마나 전쟁에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음
??: ㅎㅎ...ㅈㅅ...ㅋㅋ(경상좌수영의 구원을 나섰다가 지레 겁을 먹고 철수하여 70~100여척의 대함대를 불태우며)
개인적으로 칠천량도 칠천량이지만, 이때의 자침이 더 큰 오판이라고 생각함
말그대로 전쟁의 조기종결 기회를 날려먹음
애미 터진새끼 원균
좇병1신 새끼
천년만년 병1신 새끼
지구 망할때까지 계속 이어질 병1신 새끼
마지막은 왜의 명장이잖어
원균이 더빨리죽었어야 원u철같은사람이 아세상에 없었을텐데
진건 졌다 쳐도 자기배는 왜날리는건데 ㅅㅂ
??? : 이순신을 백의종군 시킬 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원새끼 뿅뿅
애미 터진새끼 원균
좇병1신 새끼
천년만년 병1신 새끼
지구 망할때까지 계속 이어질 병1신 새끼
'그 당 ' 의 후손분에게 고소드실듯
친구 이름이 원균이랍니다.
마지막은 왜의 명장이잖어
진건 졌다 쳐도 자기배는 왜날리는건데 ㅅㅂ
원균이 더빨리죽었어야 원u철같은사람이 아세상에 없었을텐데
송탄 IC에 나오면 "원균장군묘" 방향표가 방문자들을 맞아줌 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
원흉 개 새....
비겁한 왜놈들! 닌자를 조선의 장수로 위장잠입시키다니! 크읏!
원균이 날린 배만 이순신 장군이 지휘했다면 경상도에서 전쟁이 끝났을텐데...
신립: 나는?
부산사람들은 왠만하면 송상헌님이나 정발장군님은 잘 안다..
그 균이랑 신립 아니었음 충청도에서 끝났을 것을...
원래 조선시대땐 부산보단 동래가 더 큰 지역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