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야기는 삼국연의를 기초로 했습니다!
주유와 제갈량은 『삼국지연의』 제40회에서 처음 만난 이후로 두 사람의 지혜 겨루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57회에 이르면 마침내 주유가 세상을 하직하는 장면이 나온다. 『삼국지연의』에 묘사된 주유는 그릇이 작고 도량이 좁은 인물이었다.
제갈량의 재주와 능력을 시기하여 수차에 걸쳐 사지에 몰아넣으려 했으나 그때마다 번번이 제갈량에게 간파 당한다. 뿐만 아니라 제갈량에게 세 번씩이나 곤욕을 치른 후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는 바람에 죽고 만다. 그렇다면 과연 역사상의 주유도 제갈량에게 당하는 바람에 분통이 터져 죽었단 말인가? 정말 그토록 그릇이 작고 도량이 좁으며 고집불통에다 질투장이였을까?
『삼국지ㆍ주유전』의 기록에는 ‘주유는 강릉으로 돌아와 행장을 꾸려 길을 가다가 파구(巴丘)에서 병사했다. 그 때 나이는 36세였다.’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주유는 병으로 인해 일찍 죽은 것일 뿐, 그의 죽음이 제갈량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더욱이 세 번씩이나 울화가 터지는 바람에 죽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사서의 기록으로 보면 주유가 결코 마음이 좁고 포용력이 없는 소인배가 아닌데, 어째서 분통이 터져서 죽는단 말인가?
『삼국지ㆍ주유전』에는 ‘주유는 덕과 신용으로 여강(盧江)에서 그 명성이 자자했다.’라거나, ‘성정이 너그럽고 도량이 넓어 대체로 인심을 얻었다.’고 적고 있다. 또 일찍이 노장 정보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고 하는데, 배송지 주에서 인용된 『강표전』에 의하면, ‘정보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수차에 걸쳐 주유를 능멸하고 모욕했다.
그러나 주유가 태도를 바꾸고 관용을 베풀어 나가자 결국엔 견주지 않았다. 정보는 훗날 주유에게 경복하고 그를 중하게 여겼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주공근(公謹)과 사귀는 일은 좋은 술을 마시는 것과 같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취한다고 할 정도였다. 당시 사람들은 그가 겸손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또 『강표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유비가 주유를 평한 말을 적어놓았는데, ‘공근은 문무를 겸비하고 지략이 뛰어나 만인 가운데 영걸이며, 도량이 넓고 컸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도량이 좁고 포용력이 부족한 인물로 표현한 것은 본래의 진면목과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 말이다.
나관중이 주유를 일컬어 도량이 좁고 고집불통이며 사람을 포용할 줄 모른다는 식으로 묘사한 까닭은 각자 그 주인을 섬기는 충성심을 고려한 때문이다. 역사상의 주유는 유비가 지나치게 강대해지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고 유비 세력을 억제하기 위한 책략을 쓰기도 했다. 존한(尊漢)이라는 기본 관념에서 출발한 나관중은 이런 책략을 이단으로 간주한 것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나관중 특유의 인물 묘사 수법이다.
즉 제갈량의 이미지의 창조를 위해 툭하면 다른 인물을 조연으로 등장시키던 그는 이번에도 제갈량과 필적할만한 재주를 가진 주유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언제나 한 걸음 정도 뒤떨어지고 별의별 궁리를 다하여 해치려다가 도리어 자신이 당하는 식으로 몰고 감으로써 결국 걸출한 재능을 가졌던 주유를 기품이 낮고 도량이 좁은 청년 장령으로 개조하여, “이미 주유를 세상에 내시고, 어찌 다시 제갈량을 내셨느냐!”는 탄식과 함께 울화통이 터져 죽고 마는 억울한 인물로 재창조한 것이다.
적벽대전이 일어난 시기에 주유의 나이는 34세였고, 제갈량의 나이는 28세였다. 그러나 독자들의 인식 속에는 마치 제갈량의 나이가 주유보다 훨씬 많은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 역시 『삼국지연의』의 영향을 받은 까닭이다. 장서조(蔣瑞藻)의 『소설고증(小說考證)』 제1권에 인용된 『수원시화(隨園詩話)』에서는, ‘하기첨(何屺瞻)이 ‘주유를 세상에 내고 다시 공명을 내다.’라는 말을 서찰에 사용했다가 모서하(毛西河)로부터 황당무계하다는 비웃음을 받고는 평생토록 부끄러워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주유를 세상에 내고 다시 공명을 내다.’란 말은 소설가가 지어낸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옛사람들은 종종 역사의 진실을 곡해하곤 했던 것이다.
원문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주유는 울화통이 터져 죽었는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지 상식 백가지, 2005. 12. 30., 서전무, 정원기, 최계량)
연의 위주네요 잘 봤습니다
선추후감.
선감상 후추천입니다용 ㅋㅋㅋ
다른별// 나관중이 지금 태어났다면, 책 팔아서 빌딩주가 되었을 겁니다. 연의는 너무 재밌어요...정사위주로 쓰고 싶어도 재미때문이라도 연의 이야기를 포기할 수 없네요.ㅜ.ㅜ 감사합니다!
hampstead// 항상 고맙습니다!
베레타//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리플수정]개인적으로 주유가 더 오래 살았음 오나라의 운명이 어찌될지 궁금하긴 합니다. 정사기준일때 주유처럼 위나라에 안끓리고 맞붙은 대도독이 없어서요. 노숙은 유비와 유화적이었고 여몽은 잘했지만 형주공방전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육손은 수비는 잘했지만 공격은 그닥이어서
qweruuu// 주유가 좀더 오래살았다면, 방어책보다는 적극적인 팽창정책을 취하지 않았을까요? 그랬다면 제갈량도 무척 고전했을 듯합니다.북벌도 감행하지 못했으리라 봐요 사실, 주유가 세상을 떠나 가장 득본 사람이 제갈량이었다고 생각해서요.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야구가조아// 야구가 조아님...항상 감사합니다!!!
今春花如雪// 금춘화여춘 님!!! 항상 고마워용~~
선추천 후감상! 애독자입니다. 사인회 하시면 갈게요~~
잘봤습니다
나관중이 현대인이면 조안 롤랭 따위는
재밌게 잘봤습니다.
나관중 아니었으면 유비 조조 등은 이름없는 중국 역사속 장수였겠죠
대교 소교가 빠졌네요 ㅜㅜ
근데 조조한테 배 묶자고 한거는 황개 아니었나요? 이거 때문에 고육지책 이라는 사자성어도 남은걸로 알고 있어서요
재밌게 봤습니다. ㅊㅊ
잘 봤습니다~
[리플수정]벼에서쌀을// 그건 연의고 정사에서는 그냥 조조군 지들끼리 굳아이디어라고 좋아라 하면서 묶었고 황개는 거짓항복을 한적도 없고 그냥 주유군에서 항복하는 척 화공선을 보내니까 조조군 자들끼리 좋아하다가 불에 탄 겁니다.
아니 애초에 연의에서도 황개가 아니라 방통이 연환계를 건의하죠.
[리플수정]아다링// 황개가 거짓항복을 했는디유? 황개전에 황개가 심부름꾼을 보냈던 것은 맞음. 다만 배를 묶으라고 한 것이 황개가 언급을 한 것은 아님. 그럼에도 화계는 황개가 언급을 한 것이 맞음.
벼에서쌀을// 연환이 아니라 화계를 쓰자고 했어요.
건안(建安) 중엽에, 주유를 따라 적벽(赤壁)에서 조공을 막을 때, 화공(火攻)의 계책을 세웠는데, 이에 관한 말이 『주유전』에 있다.
주유한테 화공을 쓰자고 한 건 황개가 맞죠
벼에서쌀을//고육지계는 오나라 원로인 황개가 뜬금 위에 투항하는 상황에 설득력을 주기 위한 거고 연환계는 방통이 조조한테 임관한 척 일부러 조조군을 엿 먹이기 위해 제안합니다
주유 와드
작가님 삼국지연의 시리즈물로 어떠신지여?
ㅎㅎ 보고싶어요 !!!
잘보았습니다
다만 중간에 조조의 성이 오타 아닌가요?
조조의 조는 창녕조가 아니라 무리조로 알고있는데..
아토마우스// 정말 감사합니다! ㅜ.ㅜ
기아RockFe// 헤헤...재밌게 보셨으면 좋겠어요
SS반다인// 아... 당시엔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니깐요. 찾아보니 저작권이라는 게 조안 롤랭의 나라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네요...하하 감사합니다!
야구로보트// 감사합니다!
뉴스농장// 네네 맞습니다. 나관중이야말로 후한 시대 인물들을 끌어올렸지요! 감사합니다...
안책임님// 다음에 대교 소교 에피 한번 그려볼려구요...감사합니다!
벼에서쌀을// 방통으로 알고 있어서 그렇게 그렸습니다! 감사합니다..
박명은// 정말 고맙습니다...
코리시거5// 항상 감사합니다...
임창용// 읽어주셔서 감사해용
그앤다잊어// 정말 예리한 지적이십니다. 曺=曹는 같은 글자입니다. 이를 전문용어로 이형자라고 부르는데요. 창녕조씨들도 두 글자를 혼용해 쓰기도 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성씨는 曺로 통일하고, 관청,관직인 경우엔 曹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저는 아무 생각없이 쓰긴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엄밀하게 말하면 중국에서는 曺(한국에서만 쓰는 글자)를 쓰지 않으니깐, 曹로 쓰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Vajra// Vajra님 안녕하셔요? 매번 감사드려요! 안그래도 삼국지 연의를 인물중심으로 여러 에피들을 그릴까 생각중이에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삼국지에서 형주가 중요한땅이였나여??
양성우// 우선 강남개발 이전에 남방은 시골이나 다름없는데요. 그나마 강릉,양양이 소재한 형주가 물자와 인구가 풍부한 지역이라고 하더군요. 춘추전국시대엔 형주가 초나라의 중심지였는데요. 초나라는 전국칠웅,춘추오패 중 하나였습니다. 전차 천승과 기병 1만을 상시 유지할 정도였는데, 그 경제력이 형주에서 나온 것이나 다름없지요. 남방정권이 중원을 도모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장수들이 많이 나왔고,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이곳에서 치열한 다툼이 많았다고 합니다.
장수찬// 작가님 근데 이미삼국지는 관도대전이후를 위나라아닌가여?? 오나라하고 촉은 쩌리으고 물론 저는 조조좋아합니다. 서주대학살은 실드치고싶은마음없지만. 솔직히 조조도보면 안타깝더라거여 적벽대전에서 욕심때문에.
양성우// 옛날 중화,중원이라는 개념은 주나라 그리고 춘추시대의 진(晉)나라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진나라는 위나라,조나라,한나라로 분열하는데요.이 세나라를 제외하고는 모두 오랑캐였습니다. 그러니깐, 초나라, 진(秦), 오나라, 월나라, 연나라는 중원의 화족이 아니라 모두 변방 오랑캐 족속이죠...조조가 중원의 중심인 화북지역을 평정했을때 중국의 패권은 조조에게 넘어온 것이나 다름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조조를 위공, 위왕이라고 칭하는 것 역시, 옛날 위나라가 중화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이런 칭호를 부여한 것이죠.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리플수정]장수찬// 솔직히 조조가문도 불쌍하더라고여 주유처럼 조조는 통일보기전에 죽고. 조비도 일찍죽고 조예도 조방은 사마의꼭두각시가되고. 그리고 최종승자는 사마의의 진나라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