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냉전이 한창이었습니다. 소련과 미국은 더더욱 체제경쟁에 열을 올렸고 여러 분야에서 자신들의 체제가 우월하다며 서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 즉 "냉전"을 하고 있던 시기죠. 한발 앞서나간 것은 소련이었습니다. 소련은 스푸트니크를 미국보다 앞서서 우주로 보냈고, 이에 미국은 질새라 "뱅가드"를 발사시켰는데 뜨자마자 폭파해버렸죠(머쓱머쓱) 그렇게 미국은 냉전시대에 두고두고 회고되는 굴욕인 "스푸트니크 쇼크"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스크바. 1958년 모스크바에서는 소련이 문화예술 관련하여 체제선전을 하기 위해 기획한 콩쿨
"차이코프스키 콩쿨" 1회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차이코프스키 콩쿨에 참가한 인물중에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은 바로 적국 미국의 텍사스 촌구석에서 왔다는 "반 클라이번"에게 모두 시선이 쏠려있었습니다. 말도 더듬고, 내성적인 성격이 이 미국 촌놈이 역설적이게도 가장 완벽한 "러시아 피아니즘"을 구사하고 있었죠.게다가 결선곡으로 택한 곡이 바로 소련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반동 예술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연주. 그 연주를 듣고있는 심사위원의 면면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클래식 작곡가 중 한명인 "쇼스타코비치"
역대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8위 "에밀 길렐스"
역대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4위 "리히터"
자본주의의 카라얀, 공산주의의 "므라빈스키"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다비트 오이스트라흐"
등등 공산주의 소련에서 동원할수 있는 최대한의 재능들이 모두 모여있었습니다.
저 5명이 다 도이체 그라모폰 "명예의전당" 입성자들입니다....;;
그렇게 반클라이번의 연주가 끝나고 심사위원들의 심사....
리히터는 반클라이번만 100점을 주고 나머지 모두에게 0점을 주었습니다.
이걸 흐루쇼프에게 보고하고 미국인을 1등으로 결정했다는걸 말해야하는 임무를 맡은 에밀 길렐스는 자기가 말하면서도 아 나는 이걸 말하고 굴라그(노동 수용소)행이겠구나 생각했다고 하네요. 흐루쇼프는 전화를 받고 "그 미국인이 정말 제일 잘하냐?"라고 되물은 뒤에, 결국 반클라이번을 1등으로 결정했다는 심사위원들의 말에 그의 수상을 허가해줍니다.
그렇게 반클라이번은 미국으로 돌아와서 최고의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후에 죽기 전까지 모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후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선정 등등 여러모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죠. 그리고 그가 차이코프스키 콩쿨 결승에서 연주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클래식 음반 역사상 최초로 100만장을 돌파했고,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클래식 역사상 최초이자 최장기간 집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내성적인 반클라이번에게는 축복이자 저주였습니다.(그는 차이코프스키 콩쿨 우승 이후부터 쏟아진 너무나 큰 관심에 내부에서부터 정신적으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우울증과 편집증세를 겪기 시작했고, 무대공포증이 생겨나기 시작했죠.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결국 1970년대에 가서는 피아니스트로 은퇴를 하게 됩니다.)
그러부터 4년이 지나 때는 1962년, 냉전은 그야말로 절정이었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로 대표되는 냉전이 최절정으로 달하던 시기였죠. 소련은 4년동안 성공적으로 스푸트니크 계획을 끝마치고 1961년 처음으로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간을 우주로 보내는데 성공합니다(유리 가가린). 또 다시 서방세계, 자본주의 세계가 냉전에서 대패를 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것도 스푸트니크에 이은 2연패였습니다.
이때 벌어진 2회 차이코프스키 콩쿨. 소련은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를 앞세워 완벽하게 서방세계에 예술로써도 압승하는데 성공합니다.
더 격해진 냉전과, 정신적으로 무너져가는 피아니스트는 전회 우승자의 자격으로 모스크바에 방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펼쳐진 그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러한 정치적 긴장 속에 이 피아니스트는 어떤 생각으로 연주에 임했을까요?
정치적인 긴장 속에 모스크바의 시민들과 미국 시민들은 어떻게 이 연주를 지켜보았을까요? 이러한 상황에서 이 피아니스트는 결국 모든 것을 초월한 예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역사상 최고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연주로 불리기도 하죠. 정치와 전쟁의 위협을 넘어 이 예술가가 들려준 위대한 연주를 한번 감상해보시죠.
(1962년, 모스크바 크렘린궁, 반클라이번 연주, 키릴 콘드라신 지휘, 모스크바 필하모닉)
30초경의 흐루쇼프의 표정과 연주가 끝난 뒤 흐루쇼프의 표정을 비교해보면 너무나 재밌네요
PS 저 위에 제가 쓴 피아니스트 순위는 BBC에서 피아니스트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투표에서 인용한 순위입니다^^
추천입니다. 👏👏👏👏
피알못이지만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스탈린 시절이었으면 진짜 굴라그 행이었겠지만 흐루쇼프는 확실히 소련을 변화시킨 인물이긴 함.
초기에 유진 올먼디와 수많은 레코딩을 하면서 미국에서 팝가수 같은 인기를 얻었던 클라이번..
짧은 커리어를 남기고 사라져서 많은 미국인들이 아쉬워했죠.
이런 글 좋네요. 흐루시초프가 대인배였군요. 클래식 음악을 통해 당시 정치, 사회 상황까지 한눈에 읽히네요.
전혀 모르는 영역인데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런거 또 있으면 올려주세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너무 아름답죠... 저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더 좋아하지만 ㅎㅎㅎ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재미있습니다.
길렐스 8위 리히터 4위는 무슨기준이죠??
반 클라이번 초기 명반 대부분은 라이너가 지휘한거죠 오먼디가 지휘한 협주곡반들은 상대적으로 평가를 받지 못함
사단칠정//BBC에서 피아니스트 100명을 대상으로 1인당 3명을 뽑게해서 종합적으로 나온 순위입니다. 참고로 1위는 라흐마니노프, 2위는 호로비츠가 랭크되었습니다
Karkar // 그 순위 알고 있습니다만 무슨 공식순위인것처럼 인용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다른 조사결과는 또 다른데요?
아무래도 올먼디와 필리와 함께한 음반은 녹음시기가 70년대 초라서 차콩 직후 녹음한 콘드라신과의 음반이나 라이너와의 음반보다은 평가가 떨어지긴 하죠. 이미 70년대 초면 반클라이번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던 시기니까요. 무엇보다도 반크라이번 인생에 음반 하나만 꼽으라면 차콩 이후 키릴 콘드라신과 녹음한 차피협이 아닐까요. 클래식 역사상 최초의 100만장이라는 상징성이 크니까요
사단칠정// 제가 언제 공식적인 순위라고 했나요.... 저 앞에 적힌 것들은 다 비유적인 수식어인데 그중에 하나가 BBC에서 조사한 순위일 뿐인거죠.
물론 콘드라신과 녹음한 차1/라흐3이 제일 명반이죠.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다비트 오이스트라흐” 이것도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죠. 제가 비유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 앞에 수식하기 위해 가져온 수식어일 뿐입니다
Karkar// 비유적 수식어라도 BBC 출처를 밝혀주시는게 어떨지. 잘모르시는분들이 기정사실화할까봐 그럽니다
[리플수정]20세기말까지만해도 일반적 평가는 하이페츠>오이스트라흐였죠. 최근평가가 여러모로 오이스트라흐가 근소 우위로 가지만요.
1974년 차이콥스키 콩클에서 피아노 2위를 차지한 한국 신동이 바로 미국 시민권자 정명훈이었습니다
그때 소련은 북한과 다름없는 적국이었죠
유신치하 일간지에서는 한국을 빛낸 두 젊은이라고 해서
정명훈과 남아공에서 세계 챔피언 벨트를 따온 홍수환의 사진을 거하게 실었죠
두 사람 다 김포공항에서 시청앞까지 카퍼레이드를 했습니다
요즘 차이코프스키 콩글을 우리나라 한예종 출신들이 휘젓고 있으니 금석지감을 느낍니다
[리플수정]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이분 그 KBS교향악단 연주회할때 지휘하시던 그분인지요? 이름이 무지 낯익은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디 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음알못이라 예전부터 참 궁금한게 하나 있는데요. (물론 이 질문이 얼마나 무식하고 어처구니 없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저런 콩쿠르 대회에서 잘 친다는 것과 못 친다는 건 어떻게 갈리게 되는 건가요? 기본적으로 음을 잘 못 친다거나 박자를 놓친다는 건 상상 못할 일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악보를 치는 데 있어서, 단지 종이 한장 차이가 아니라 위대한 연주와 평범한 연주의 차이를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반 클라번 일직 은퇴한 사연 처음 알았네요. 근데 보통 역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리흐테르를 역대 4위로 놓은 bbc 조사는 진짜 뜸금 없네요.
저에게 최고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하이펫츠이긴 하지만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오이스트라흐에 대한 평가가 더 넓은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 이걸 레코드 시장의 편향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미국의 레이블들과 계약을 하고 미국에서 활동을 많이 한 하이펫츠는 미국에서 인기가 높았고
유럽의 레이블로 음반을 많이 낸 오이스트라흐는 유럽에서 평가가 높았죠.
게다가 하이펫츠는 현란한 기교파로서의 평가가 있었고 오이스트라흐는 울림의 깊이가 있는 연주라는
평가가 많았죠.
Yo-Yo// 저런 연주자 순위는 객관성과는 거리가 있으니 그냥 흥미로만 보면 될 것 같아요. 미국에서는 루빈쉬타인과 호로비츠를 1.2위로 주로 랭크했었고 유럽에서는 리히테르, 제르킨 등등이 언급되었었으니 다 제각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글 좋아요.. 추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연주도 잘 들었고요 감사합니다!
예술가들한테 1위, 2위 서열이 무슨 의미라고 쌈질인지
와 정말 멋진 연주네요 피알못인데도 정말 대단한 연주라는게 느껴짐
근데 피알못이지만 피아니스트 하면 쇼팽을 먼저 떠올리는데
쇼팽은 저 순위에 안들어가나요? 아니면 쇼팽은 리히터 라흐마니노프 길렐스 와는 시대가 달라서 그런건가요? 쇼팽이 더 옛날사람이라
연주자 순위가 무슨의미라고 ㅋㅋ
ilikeom// 쇼팽연주는 안남아있잖아요 라흐마니노프는 유명한 작곡가임에도 연주 녹음이 남아 있구요
땡보// 네 맞습니다. 아슈케나지는 몇번 방한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소련을 망명해서 영국쪽에 정착하고 나서는 피아니스트이면서도 지휘자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필하모니아, 로열필하모닉 같은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마에스트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 그리고 피아니스트로써 퀸엘리자베스 콩쿨과 차이코프스키 콩쿨 우승, 쇼팽콩쿠르 2위 소위 “3대”콩쿨을 휩쓴 천재 피아니스트죠.
그리고 저 영상에서 지휘하고 있는 키릴 콘드라신도 70년대에 서방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망명하고 나서 베를린필 빈필에 버금가는 로열콘서트헤보우 속칭 “RCO”의 지휘자가 됩니다.
동대문구장// 최근엔 아마 2011년에 손열음과 조성진 두 젊은 피아니스트가 2,3위로 나란히 입상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최근에 피아노 부문에서는 한국인 수상자가 더 나왔는지는 제가 알지 못하네요^^
풋콜패러티// 긴 협주곡을 연주하다 보면 미묘하게 박자나 미스터치가 나곤 합니다. 그 미묘한 차이를 심사위원들은 캐치해 내는것이죠. 그리고 단순히 악보를 외워서 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곡의 해석을 잘 했느냐에 따라서도 갈린다고 봅니다. 일례로 쇼팽콩쿠르 우승자 피아니스트들은 개성파들이 많죠.
Fatman, 아시엘// 네 맞습니다. 연주자 순위야 개개인마다도 다르고 어느것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갈리겠고 예술에 있어서 순위를 매긴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기 거론된 피아니스트 모두 위대한 거장들인데요^^ 그냥 재미로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Ilikeom//저 조사는 BBC에서 피아니스트들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인데요. 아무래도 쇼팽이나 리스트, 알캉 같은 피아니스트들도 대단했지만 레코딩이 남아있지 않아서 아마 많은 표를 받지 못했나 봅니다. 라흐마니노프부터 레코딩이 남아있기도 하구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아니스트들에게 있어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의 상징성이 너무너무 크다 보니까 아마 라흐마니노프가 가장 많은 표를 받았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이런글 너무 좋습니다.
음악도 좋고!!
감사해요
음악은 연주자보다는 창작자가 우선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