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12월, 진주만 공습 직후-
저 Jap들이 우리 진주만을 조져놨는데 우리도 복수해야하지않겄냐?
일본 본토쪽으로 최대한 빨리 보복하면서 우리쪽 사기도 증대시키자고
넵 알겠습니다
아니 근데 생각해보니까 무슨 수로 타격하지?
저놈들 해군력도 막강해서 본토 접근하기도 힘든데
우리 함재기가 폭격하기 힘들면 육군항공 폭격기를 쓰면 되지않아요?
항속거리 덕분에 우리 항모전단이 위협받지 않고 폭격할만 한데?
이야 존1나 기발한 발상일세
근데 육항 폭격기는 항모 활주로에 뜨기 부적합하니깐 최대한 유능한 비행사를 투입하자
둘리틀 중령!
예?
니가 애들 이끌고 항모에서 발진해서 쪽발이 본토 폭격하고 와라
?????
야 B-25
넹?
이제부터 항모에 올라탈꺼라 최대한 무게 줄여야하니까 다빼
무전기고 기관총이고 뭐고 최소한만 남기고 다 빼버리라고.
그리고 어차피 폭격후에 불시착시키고 이탈할꺼니깐 폭격용 조준기도 빼고 간이용 조준기만 달아!
(씨1발)
42년 4월 1일
으잉? 뭐야 시1발 당신들 누구세요
거 잠시 실례 좀 하겠수다 ㅎㅎ
(씨1발)
4월 18일
출격
총 16대의 B-25 폭격기 출격.
당시 일본은 접근해오는 미군함대의 존재는 인지하고있었으나
들어온 보고를 '미 해군은 쌍발기를 운용하지않는다'며 묵살해버리거나 자국의 폭격기로 오인하여 초기에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한다.
둘리틀 특공대는 도쿄를 간이 폭격 조준기만을 이용하여 폭격 개시.
폭격 후 각각 중국쪽을 향해 최대한 비행하다가 불시착 후 이탈한다.
16대 중 3대가 바다에 불시착. 1대가 소련에 억류(...)
나머지는 중국에 잘 도착하여 중국인들의 엄호를 받으며 대부분 본국으로 귀환했으나
8명이 포로로 잡혀 4명은 구출, 3명 처형, 1명은 병으로 사망해 귀국하지못한다.
이 폭격의 성과
50명 사망 / 400명 부상 / 적기 3대 격추(???)
+
먼 후방이라 안전할 줄 알았던 제국의 심장이 폭격당했다는 일본인들의 충격 & 일본을 엿먹임으로써 미군 전체의 사기진작
이상하게 이건 잘 안 언급되더라
노몬한 전투도 '사건'이고
이상하게 이건 잘 안 언급되더라
노몬한 전투도 '사건'이고
폭격기가 3대를 어떻게 격추한거야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