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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을 보고.. 욕망, 제도, 그 어떤 선택도 고통을 준다면...(스포 포함)


거장 중의 거장, 영화감독들의 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16번째 작품이자 유작(遺作),
[아이즈 와이드 셧 (Eyes Wide Shut)](1999)을
다시 보았습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1928~1999)에 대해서는
별개의 포스팅에서 다루는 것이 적절할 것 같고
이 리뷰에서는 이 영화에만 집중하겠습니다.
다만, [풀 메탈 자켓] 이후 12년 만의 작품이고
촬영에만 400여일의 시간을 투자해 완성했으며
이 영화의 최종 편집을 한 후 공식 개봉 전,
1999년 3월 7일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했음은
말씀드려야 하겠네요.
큐브릭 감독 스스로 자신의 최고작이라 언급했죠.
더할 나위 없이 관능적, 몽환적이고
냉소적, 심지어 염세적 분위기가 가득하며
고급지고 세련된 스타일, 완벽한 미장센까지 갖춘,
개인적으로 별 다섯 개 만점을 부여한 걸작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 영감을 받아 완성한
[꿈의 노벨레]가 이 영화의 원작소설입니다.
영화의 제목 'eyes wide shut'은
사실 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표현이죠.
눈을 크게 뜨고 정신을 바짝 차린다는 뜻의
'eyes wide open'은 있지만.
굳이 해석하자면 '눈을 질끈 감다' 정도겠네요.
대체 무엇에 대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눈을 질끈 감고 싶었을까요...
뉴욕의 젊은 의사 '빌 하포드(톰 크루즈)'와
아내 '앨리스(니콜 키드먼)', 결혼 9년차 부부는
빌의 환자인 억만장자 '지글러(시드니 폴락)'가 주최한
호사스러운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합니다.
빌은 두 명의 요염한 모델로부터 유혹을 받지만
지글러가 데리고 놀던 여자가
약물과용으로 실신하자 급하게 불려가죠.
샴페인에 취한 앨리스 역시
헝가리 노신사의 유혹을 힘들게 물리칩니다.
다음 날 밤,
엘리스는 마리화나에 취한 채
성적인 욕구, 남녀 간의 차이,
결혼에 대한 신의를 주제로 빌과 대화를 하다가
과거에 한 번, 젊고 잘생긴 해군장교에게
성적인 욕망을 느꼈음을 고백합니다.
상황만 허락했다면 모든 걸 버릴 수 있었다 말하죠.
엘리스의 고백은 빌에게 충격으로 다가오고,
빌은 아내의 정숙함에 회의를 품은 채, 동시에
애써 감추어 왔던 자신의 성적 욕망에 눈을 뜬 채
한 환자의 부음을 받고 그의 집으로 향합니다.
이동하는 택시 안에서 닉은
아내와 해군장교와의 O스를 상상하며 고뇌하죠.
죽은 환자의 딸 '매리언(마리 리차드슨)'은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빌에게 구애를 합니다.
그 집을 나선 빌은 뉴욕의 밤거리를 배회하다가
거리의 여자 '도미노(바네사 쇼)'의 제안에 이끌려
그녀의 집으로 들어가죠.
하지만 때마침 걸려 온 아내의 전화에
관계를 하지 못하고 화대만 지급하고 떠납니다.
다시 밤거리를 헤매다 소나타 카페에서 우연히
피아니스트인 친구 '닉(토드 필드)'을 만나죠.
닉이 어떤 비밀 파티에  주기적으로 초청받아
눈을 가린 채 피아노를 연주하며,
어느 날 허술한 눈가리개 덕분에
그 파티를 몰래 엿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빌은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을 느낍니다.
닉이 전화를 받으면서 메모한 '피델리오(Fidelio)'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제목)라는 문구가
입장을 위한 패스워드라는 사실을 알아낸 빌은
급하게 의상 대여점에 가서 웃돈까지 얹어주며
필요한 가면과 의상을 빌린 후
문제의 파티가 열리는 은밀한 공간으로 향합니다.
마침내 입장한 파티는...
최상류층 남성들이 가면을 쓰고 망토를 두른 채
미모의 여성들을 불러서 행하는 혼음, 난교가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지는,
비밀스럽고 폐쇄적이며 컬트적인 모임이었고
신분이 노출된 빌은 위험에 노출됩니다.
그러나 빌에게 위험을 경고했던 한 여성이
대신 벌을 받겠다고 나서며
빌은 다행히 그 공간에서 추방당하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합니다. 그러나...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은
이 영화 촬영 당시 실제 부부였죠.
이 영화가 개봉된 후 둘은 이혼을 하지만
이 영화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라고 부정합니다.
[파 앤드 어웨이](1992)와 더불어
둘이 함께 출연한 두 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이죠.
37세의 톰 크루즈, 32세의 니콜 키드먼의
눈부실 정도로 푸른 젊음과 욕망,
감춰진 불안, 우울, 어둠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보석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톰 크루즈의 지금까지 최고 배역은
[매그놀리아]에서의 '프랭크'와 이 영화의 '빌',
니콜 키드먼의 커리어 최고 배역은
[디 아워스]에서의 '버지니아 울프'와
이 영화의 '앨리스'라고 믿습니다.
'빅터 지글러' 역의 '시드니 폴락'은
[투씨](1982),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를
연출한 감독이자 배우로서 10년 전 작고했습니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비밀 모임의 정체에 대해서는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등 여러 설이 있지만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평생을 각종 음모설에 시달렸던 큐브릭 감독은
어떠한 언급도 회피하고 유명을 달리했지만,
인간 내면에 잠재된 욕망을 강압적으로 제약하는
권위, 계급, 관습, 제도의 모순을
극단적으로 시각화한 모습으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현실에서도 그와 유사한 일들이
은밀하고도 역겹게 벌어졌고 벌어짐을 압니다.)
가면을 써야지만 비로소 솔직해지는 아이러니,
가면 뒤에 진실을 감춘 육체적 욕망...
미학적인 측면에서도 이 영화의 성취는 눈부시죠.
비밀 모임이 이루어지는 공간에서의
의상, 미장센과 조명의 완벽한 활용,
빌이 그 공간을 떠나 집으로 귀가했을 때의
푸른 여명과 붉은 조명으로 보여지는
현실과 환상의 대조,
대부분의 절망과 약간의 희망의 대조는
너무도 훌륭합니다.
영화의 배경은 뉴욕이지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말년에 칩거한 런던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음악 이야기도 빠질 수 없겠죠
오프닝 시퀀스를 장식하는 음악은
러시아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Waltz No.2, Jazz No.2'이며,
(https://youtu.be/J_o3mSUW7mI)
빌의 고뇌와 번민에 동반하는 음악은
헝가리의 작곡가 '죄르지 리게'의
'Musica Ricercata' 피아노곡 2번입니다.
건반음 몇 개를 신경질적으로 단조롭게 반복하면서
빌의 내면적 혼란과 갈등을 절묘하게 담아내죠.
(https://youtu.be/Bu5RVUibcwM)
160분의 긴 러닝타임 속에서
느린 호흡으로 서서히 다가와
끝내 심연까지 요동치게 하는 서스펜스,
그 서스펜스가 뒤에 남겨두는 진한 여운이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다음 날,
닉이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인대회 전(前)우승자가 호텔에서
약물과용으로 사망했다는 신문기사를 접하는 빌.
(그 기사가 실린 신문 1면의 헤드라인은,
Lucky To Be Alive...)
죽은 여자가 전날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며
자신의 환자들 중 한 명임을 알아내죠.
자신을 급하게 호출한 지글러에게서
감당하기 힘든 추악한 진실을 듣고 귀가한 빌.
잠든 아내 옆에 놓여있는 전날의 그 가면...
빌이 결국 오열합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했죠.
"그대가 오랫동안 심연(深淵)을 들여다보면
심연 역시 그대를 들여다본다."라고...
본능, 욕망, 의심, 질투의 심연을 들여다보다
결국 자신의 양심과 죄책감까지 집어삼킨 심연.
아내의 품에 안겨 오열합니다.
"모든 걸 다 말해줄게..."
영화의 엔딩...
크리스마스 쇼핑에 나선 빌, 앨리스 부부는
여전히 가시지 않은 의심,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욕망,
여전히 불안한 관계와 미래 속에서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선 채 대화를 나누죠.
이제 어떡하냐고 묻는 빌에게 앨리스가 답합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지금 깨어있는 것이라고. 희망컨대 오랫동안.
'영원히'를 말하는 빌에게
앨리스는 그 단어는 무서우니 쓰지 말자고 하죠.
그러면서 말합니다.
"There is something very important
that we need to as soon as possible."
"What's that?"
"Fxxx"
쇼스타코비치의 아름다운 왈츠가 다시 연주되며
엔딩 크레딧이 흐릅니다...
성(性)윤리, 결혼제도, 더 나아가
사회의 관습과 질서의 모순적 억압에 대한
거장의 냉소적이며 몽환적인 유언,
본능과 제도 사이에서 끊임없이 시험을 당하는,
인간들의 불안하고 처연한 삶에 대한
거장의 씁쓸한 위로와도 같은 작품...
[완벽한 타인] 리뷰 마지막에서 던졌던 질문과
비슷한 질문으로 리뷰를 마칩니다.
당신의 가면은 무사합니까?
당신의 결혼은 무사합니까?
당신의 욕망은 무사합니까?...
https://m.blog.naver.com/hixxhim/221450485043
댓글
  • HandG 2019/01/25 04:22

    아직 안봐서 즁간은 스킵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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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1/25 04:25

    HandG// 눈... 삽니다.^^;;; 참고로 제가 본 모든 영화들중 가장 야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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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벼룩 2019/01/25 04:29

    아이즈 와이드 셧 명작이죠 ㅎㅎ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 있는듯한 연출이 굿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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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1/25 04:32

    개벼룩// 당시 평단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렸지만...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은 걸작이라는 평가가 우세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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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dradio 2019/01/25 04:41

    [리플수정]제 기억은 오로지 니콜 키드먼 전라의 뒷태만 생생하네요. 아.. 그렇게 눈부신, 하얀, 아름다운 엉덩이가 또 있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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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1/25 04:43

    sadradio// 인정을 안 할 수가 없... 이 영화에 나오는 여배우들 한결같이 ㄷㄷ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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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라이온 2019/01/25 04:47

    [리플수정]항상 좋은 영화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저도 이영화는 개봉당시엔 뭔 느낌인지 정리가 안됐는데, 볼수록 새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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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1/25 04:49

    울산라이온// 아이고... 부족한 글들 기쁘게 읽어주셔서 넘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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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lythew 2019/01/25 17:09

    본지 벌써 20년이 됐군요.
    저도 다시 한번 봐야겠어요.
    음악부터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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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요정 2019/01/25 20:12

    큐브릭 영화 리뷰는 아마 첨일거 같은데요...
    그래서 더더욱 반갑고 기분 좋네요
    이상하리만치 이 영화는 잘 안땡겨서 아직까지 안보고 있는데요 ㅋㅋ
    안땡기는 이유는 그냥 잼없어서일까봐가 아니라 뭔가 공포스럽고 무서울거 같아서요..찝찝한 이런 느낌들까봐서요..ㅎㅎ
    스포제외한 서두와 마지막 단락만 읽었는데요
    맨마지막 완벽한 타인의 인용구때문에라도 봐야될 것 같습니다
    영화 목록에 한편한편 새롭게 추가될때마다 넘나 그냥 마구마구 행복해지네요 ㅎㅎ
    금욜밤 행복한 굿밤되시고 주말 즐겁게 보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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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1/25 21:18

    flythew// 걸작들의 공통점 = 시간이 지나 다시 보았을 때 더 좋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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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1/25 21:22

    안녕요정// 맞습니다. 큐브릭옹 영화 리뷰는 처음이네요. 개봉작들 가운데 리뷰를 쓰고싶은 영화가 한 편도 없어(요즘 국내외 영화 모두 왜 이 모양일까요?ㅠㅠ) 자꾸 예전 영화 우려먹네요. 이 영화, '최우선적'으로 보시길 권합니다. (왓챠 플레이로 보시는게 좋을 거구요) 요정님 취향 맞으시걸구, 긴장감은 있으나 끔찍하고 무서운 건 없어요. 또 잠깐이지만 [투 러버스] 여주, 비네사 쇼도 나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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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요정 2019/01/26 00:43

    혁명전야//아~~글쿤요!!! ㅜㅜㅜ
    이 영화도 사실 오래전부터 제 유플 찜목록에 있었던거였는데...글 보고 확인해보니 유료전환됐네요 ㅋㅋ
    오~~바네사 쇼라면 넘나 안타까운 그 여주 말씀하시는거 같네요..
    어데서 나오나 함 집중해서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긴장감도 있는 영화였군요...전 그냥 파격적인 에로물이면서 뭔가 공포스럽고 기괴한 이런 영화인줄 알았거든요!!
    지금은 제 주특기인 보고 그 느낌이 좋으면 계속 보는..
    그래서 제 3의 사나이 또 보고 있는 중이네요
    아이즈 와이드 샷 거의 스포도 잘 몰라서 과연 어떤식으로 큐브릭이 풀어나갈지..
    기대하면서 봐야될 거 같아요
    항상 좋은 영화 추천들...그리고 이렇게 예전 영화들 리뷰도 넘나넘나 사랑합니다!!
    남은 시간 진짜 굿밤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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