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황교익 씨의 관련 기사를 보다가 황교익씨가 한문 자료를 인용하면서 최남선의 주장을 통렬히 비판하더군요. 최남선이 친일파로 까인다고 해서 한문 실력으로 까일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해서 한번 들어가 봤죠. 역시 육당이 인용한 자료를 잘못 이해하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댓글로 몇 가지 지적을 했었는데, 반응이 없더군요. 오늘 새벽에 다시 제가 단 댓글 읽고서도 같은 입장인지 답변을 부탁드린다고 했더니만, 자기가 불고기에 대해 주장했던 그간의 블로그 글을 전부 비공개로 돌려버렸더군요
불고기의 기원이 ‘맥적’이라는 최남선의 주장이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주장하면서 최남선을 국수주의자 내지는 국 뽕에 가득찬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매도하고, 자기 주장을 반영하지 않은 기사를 작성했다고 인턴기자를 기레기라고 그렇게 극딜을 하더니 말이죠. 정작 최남선의 주장이 합당하고 당신이 인용한 의 번역에 문제가 있다고 했더니, 무대응으로 일관하다가 슬그머니 관련 블로그글을 지우는 건 무슨 경우랍니까? 불고기의 기원에 대해 시리즈로 3편인가 쓴 글이었는데, 제가 댓글 단 부분만 지운게 아니라, 그 시리즈글 전체를 다 지웠네요.ㅎㅎ
(((오전 9시 반경에 황교익씨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해당 부분을 공개로 돌려놨습니다. 9시경까지는 닫혀 있었던 것 같아요. 해당 블로그의 댓글을 달고 나서 제가 내용을 조금씩 수정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 아래에 제가 갈무리해서 올린 글(제가 황교익씨 블로그에 올리려고 한글파일에서 작성했던 최초글)과 해당 블로그에 지금 현재 달려 있는 댓글 내용이 조금 차이가 납니다만,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블로그 링크를 걸어둘게요.
https://foodi2.blog.me/30041421421
그리고 답변은 안 하셨지만 글을 다시 공개해 두셨으니, 제가 글 가렸다고 비난했던 내용은 취소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뭐라고 제 댓글에 답변 안 한거까지 비난할 순 없겠죠)))
최남선이 중국 진대의 간보라는 학자가 쓴 라는 책을 엉터리로 인용했다고 비판하더군요. 그러면서 자기는 연변에서 조선족 학자가 번역한 책을 근거로 들었더라구요. 해당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晋 干宝 《搜神记》卷七:“胡床、貊槃,翟之器也;羌煮、貊炙,翟之食也。自 太始 以来,中国尚之。贵人富室,必畜其器,吉享嘉宾,皆以为先。”
황씨의 글에서는 저 기록의 앞부분인 두 구절, 즉 “胡床、貊槃, 翟之器也; 羌煮、貊炙, 翟之食也.”를 “호상, 맥반이 적족의 그릇이고, 강저, 맥적이 적족의 음식”이라고 번역했더군요. 그런데 적족이라는 민족은 있지도 않고요. 적(翟)은 狄과 같은 글자로, 그냥 중국 한족들이 자기들 이외의 이민족을 통칭하는 말이죠. 남만, 북적할 때 그 적이죠. 그래서 아래와 같이 댓글을 달았었습니다.
---아래---
여기서 翟은 적족이 아니고, 그냥 북방 이민족을 총칭하는 말 아닐까요? 해당 부분의 해석은 "호상과 맥반은 오랑캐의 음식을 담는 용기를 말하고, 강저, 맥적은 오랑캐의 음식을 말한다." (胡床, 貊槃, 翟之器也; 羌煮、貊炙, 翟之食也) 정도로 하는 게 좀 더 그럴듯해 보입니다만...
翟=狄으로 중원의 한족이 당시 북방의 이민족을 약간 비하해서 부르던 단어라고 보입니다. 중국의 을 찾아보면, 翟이 민족명으로 쓰일 때는 狄과 같고, 狄은 진한대 이래 북방의 각 소수민족을 통칭해서 부르는 단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황선생님 주장처럼, 적족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청대 학자 손이양은, "翟者, 蠻夷閩貉戎狄之泛稱", 즉 "적이란 만이민맥융적을 통칭하는 글자"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翟之器也, 翟之食也 는 오랑캐의 그릇, 오랑캐의 음식을 뜻하는 걸로 해석하는 것이 무난합니다.
인용하신 부분에서 의 저자 간보는 위진남북조의 동진대(東晉代) 사람이라서 북방 오랑캐에 대한 격렬한 반감을 표현하고 있고, 오랑캐의 풍속을 숭상하는 당시의 현상을 약간 자조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동진이 5호16국의 발호에 의해 멸망했으니, 부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겠죠). 가 귀신과 설화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서, 인용하신 부분의 내용을 허구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황 선생님께서 인용하신 부분은 당시 중국의 세태를 자조적으로 반영한 내용이지, 황당무계한 귀신 얘기를 하는 부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맥적이 적족의 음식이라면, 적적이라고 하지 왜 맥적이라고 했을까요? 맥족이 먹는 음식이니, 맥적이라고 했겠지요. 따라서 맥적과 맥반을 '翟'의 그릇, '翟'의 음식이라고 했다면, 여기서 '翟'은 적족이 아니라, 그냥 한족이 보기에 오랑캐인 북방 이민족을 통칭해서 표현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사전에서 貊은 분명히 부여, 고구려를 뜻하는 글자라고 정사인 에도 기록하고 있습니니다.따라서 저 의 기록을 근거로 최남선이 맥적을 우리 전통음식이라고 했던 것을 부인하는 자료로는 쓸 수 없을 듯 합니다.
그리고 적족이라는 표현이 너무 생경해서 중국 사이트를 검색해 봤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翟族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고 있네요. 이런 점으로 볼 때도 적은 그냥 여러 이민족을 통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듯 합니다. 이 부분을 한번 더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羌煮、貊炙, 翟之食也이란 구절을 통해서도 적이 적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羌煮의 羌은 중국의 서부, 즉 오늘날의 중국 감숙성, 사천성, 청해 일대에 거주했던 민족을 말하고, 貊은 중국의 동북지역, 오늘날의 만주 일대에 거주했던 민족을 뜻합니다. 따라서 강저와 맥적을 통칭해서 翟의 음식이라고 했다면, 여기서 적은 당연히 여러 이민족을 총칭하는 의미이지, 절대 하나의 민족인 적족(?)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 그리고 인용하신 의 해당 부분은 남조 양대(梁代)의 심약(沈約, 441-513)이 쓴 역사책 에서 그 내용을 거의 그대로 재인용하고 있습니다. 는 중국의 이십사사에 포함되는 정사입니다. 즉, 황선생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의 기록이 사료로서 전혀 가치가 없는 책은 아니라는 거죠. 5세기부터 6세기 초반을 살았던 역사학자가 인용하여 정부에서 편찬하는 공식 관찬 역사서에 수록한 내용이니까요. 심약은 당시 문단의 영수로 꼽히던 남조의 대학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