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천국 코하비닷컴
https://cohabe.com/sisa/70937

[단편] 나는 정말 돈낭비가 싫다.

가난한 나는, 돈 낭비를 증오한다. 그래서 나는 이 상황이 못마땅했다. 

" 미안허이... 오늘이 우리 할멈 생일이야... 내가 꼭 선물을 해야 해서... "

눈앞의 노인이 정말 미안한 얼굴로 말했고, 그것은 먹힐 것 같았다. 녀석이 벌써부터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지 않은가?

" 아유~ 아니에요. 할아버지. 그냥 저희가 만원씩 더 내면 돼요. 그치? "

녀석은 노인을 안심시키는 듯 말하며 내게 물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 어..어어.. 그래.. "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여, 저 녀석과 마찬가지로 '바른 대학생'을 연기했다. 궁금하다. 저 녀석의 만원과 내 만원이 똑같을까?

나는 정말로, 이 상황이 못마땅하다.

.
.
.


처음 대학에 들어와 내가 느낀 건, 신입생의 두근거림이 아니었다. '무력감'이었다.
함께 입학한 동기 친구들을 보며 나와 다르단 생각을 했다.
비싼 헤어스타일, 어른의 옷차림, 손에 든 비싼 커피, 가방부터 액 세서리들까지-, 저들은 모두 다 대학생다웠다. 고3에서 그대로 고4로 진학한 듯한 나와는 너무 달랐다. 학식이 너무 싸다며 놀라워하는 그들이, 오히려 내겐 놀라웠다. 
나도 저들과 같아 보이고 싶었다. 내가 그들과 다름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가방에 몰래 넣은 공병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가난을 숨기기 위해, 가난하다 내 입으로 쉽게 말하고 다녔다. 그러니, 돈을 쓸 때는 써야 했고, 그것은 정말 힘들었다. 힘들었는데, 이 못마땅한 상황이 벌어졌다.

오늘 난 한 녀석과 학교에 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경사가 심한 언덕길에 폐지 리어카를 끌고 가는 한 노인을 보았다.
녀석은 노인의 모습에서 불쌍함을 본 듯했다. 나는 '무지'를 보았다. 내가 아무리 가난하여도 나는 저렇게 되지는 않겠지. 왜 저렇게 비효율적으로 시간을 낭비할까?

" 할아버지~! 도와드릴게요! "

녀석은 얼른 달려가 리어카를 뒤에서 밀었다. 녀석이 나섰으니, 나 역시 그랬다.

" 아이고~ 학생들 정말 고마워! "

할아버지는 이빨 듬성한 웃음으로 우리를 돌아보았다. 친구는 웃었고, 나 역시 그랬다. 언덕을 오르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방향을 틀기 전까지.

" 아! 저기! "

할아버지는 옆 길가의 박스를 발견해 급히 방향을 틀었고, 우리를 휘청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 자, 잠깐만 학생! "
" 앗! "

우리를 두고 리어카에서 벗어나 박스로 향했다. 균형을 잃은 리어카는 박스떼기를 흘렸고, 그것을 막으려던 녀석의 몸짓에 나도 균형을 잃었다. 곧 리어카는 빠르게 경사를 미끄러져 내려갔고, 차를 박고 말았다.

" 아아! "
" 아...! "

당황스러운 그 상황, 곧장 차 안에서 사람이 내렸다.

" 아~씨 뭐야?! "

자동차 사내의 얼굴은 험하게 일그러져있었고, 우린 어쩔 줄을 몰랐다. 뒤늦게 달려온 노인과 우리가 사과했지만, 그의 당연한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는 험악한 얼굴로 우리를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학생 둘에 페지 노인 하나. 인상을 찌푸린 그는 대충 말했다.

" 긴말 할 거 없고, 그냥 도색비용 6만원만 내세요. 셋이서 2만원씩 내면 되겠네. "
" 아, 네! 죄송합니다. "

녀석은 생각하지도 않고 빠르게 지갑에서 2만원을 꺼냈다. 나는 생각해야 했다. 내가 가진 돈은 3만원이 전부였고, 그것으로 남은 달을 버텨내야만 했다. 한데 거기서 2만원을 빼야 한다고? 왜? 도대체 내가 왜?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이 리어카가 차를 친 건, 그깟 폐지에 눈이 멀어 갑자기 뛰쳐나간 저 노인의 잘못이 아닌가?
근데 내가 왜 2만원을 뺏겨야 하지? 노인을 돕자고 나선 것도 저 녀석인데, 난 왜 2만원을 줘야 하지? 내 피 같은 2만원을!

이렇게 낭비한다고? 내 2만원을? 

쌀 사 먹을 돈도 아까워, 밀가루로 수제비만 떠먹으며 아껴낸 돈이다.
미용실 갈 돈도 아까워, 머리 한번 길러보지 않고 아껴낸 돈이다.
가방에 몰래 숨겨온 공병들 모아, 남들이 볼까 꼭두새벽에 바꿨던 돈이다.
학식 한 번 못 사 먹고, 밥 먹었다 핑계 대며 모아온 돈이다.

그런데 이렇게 낭비해야 한다고?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지갑에서 2만원을 꺼냈다. 나는 녀석과 같아야 하니까.

한데, 어물쩍 망설이고 있던 노인이-, 

" 저기... 내가 정말 3만원 밖에 없는데... 이 돈을 쓸 수가 없어... "
" ?? "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었나? 돈이 있는데, 쓸 수가 없다고?

" 미안허이... 오늘이 우리 할멈 생일이야... 내가 꼭 선물을 해야 해서... "

어이가 없었다. 돈을 낼 수가 없다고? 이 상황에, 노인이? 
나는 그걸 말이라고 하냐고, 그걸 지금 믿으라고 하는 말이냐고 따지고 싶었다. 한데 녀석은,

" 아유~ 아니에요. 할아버지. 그냥 저희가 만원씩 더 내면 돼요. 그치? "

손쉽게, 생각 없이 또 지갑을 벌렸다. 나는 생각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무수한 생각이 폭발했다.

억울하다. 짜증 난다. 어이없다. 왜 내가 돈을 내야 하지? 3만원 밖에 없다고? 그럼 나는? 전재산 3만원을 다 빼앗기면 남은 한 달을 뭘 로 살지 난? 차라리 돈을 잃어버렸으면 몰라, 저 뻔히 보이는 거짓말에 속아서 만원을 더 뜯겨야 한다고? 아니, 거짓말이 아니라고 해도, 생일 때문에 자신만 돈을 아끼겠다는 저 심보는 뭔가?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있지? 왜 저 녀석은 노인에게 괜찮다고 웃지? 폐지 줍는 노인만 불쌍한가? 며칠을 굶어야 할지 모를 내가 더 불쌍한데?? 

생각에, 생각에, 생각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녀석의 말에, 내가 뭐라고 대답할 수 있겠는가?

" 어..어어.. 그래.. "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여, 만원을 더 꺼냈다. 모아진 6만원은 그에게 향했고, 우린 리어카를 다시 밀었다. 그래. 이 기분으로, 나는 다시 노인의 리어카를 언덕 위까지 밀어주었다.

" 정말 미안허네... 정말, 내가 너무 미안해... "
" 아니에요~ 괜찮아요~ "
" ... "

녀석은 웃으며 괜찮다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가슴에 무언가가 걸린 것 같았다. 

" 할멈 선물 사러 가기 전에 이것만 갔다 놓을 생각이었는데..이렇게 참...정말 미안하네. "
" 아이, 괜찮다니까요~ "
" ... "

가슴에 무언가 걸린 게 분명했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뛴다. 이걸 어떻게 하지?

" 어휴... 정말 고맙네. 내, 할멈한테도 꼭 자네들 얘기를 할게... 정말 고마우이 "
" 아니에요~ "

노인은 연신 고맙다 인사하며, 갈림길로 사라졌다. 녀석은 노인이 사라지고 나서야,

" 야~ 씨, 좋은 일 하려다 3만원만 날렸네! 썅~! 아이고 아까운 내 돈~! "

짜증 난 척을 했다. 웃음까지 띤 얼굴로, 엄살을 피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게.. 아깝게 돈만 날렸네.. "

나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았다.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가슴에 걸린 이 느낌이 사라지질 않았다. 

" ...야, 나 집에 좀 갔다가 가야겠어. 먼저 가. "
" 응? "
" 그냥 머리가 좀... 아까 너무 긴장했나 봐.. 속도 좀 이상하고... "
" 그래? 야~ 나도 아까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니까! 알았어~ 이따 봐~ "

녀석이 떠나고, 나는 노인을 몰래 뒤쫓았다. 무슨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저 노인의 말이 거짓말이었는지만 보고 싶었다. 거짓말이란 걸 안다 해도, 무엇을 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저, 가슴에 걸린 이것을 내리고 싶을 뿐이었다.

.
.
.

그게 뭐라고, 노인의 뒤를 쫓은 지 1시간이 훌쩍 넘었다.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허비한 시간을 핑계로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탄식했다.

" 아-! "

노인이 케이크를 샀다. 나는 화가 났다.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왜 저 프렌차이즈 빵집에서 저 비싼 케이크를 사냐고! 
동네 빵집에 가면 반값도 안 되게 살 수 있을 텐데, 왜 저기서 사?! 모바일 할인은 알아?! 멤버십은 있어?! 도대체 왜 저기서 사냐고!! 그 돈이면 내가 며칠을 먹고 살 수 있는데!!

내 감정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내 피 같은 돈 3만원이, 노인의 손에서 멍청하게 쓰여진 듯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안된다. 환기해야 한다. 도움되지 않는 감정이다. 이 스트레스는 나만 손해다. 감정 낭비다.

그래, 노인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다는 걸 확인했지 않은가? 그걸로 됐다. 적어도 거짓말을 하진 않았으니까.

" ... "

모자랐다. 가슴에 걸린 이 느낌이 사라지질 않았다. 
그래, 노인과 할머니의 행복한 모습을 본다면, 그렇다면 괜찮아질 것 같았다. 할머니와 노인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다면, 괜찮아질지도 모른다. 내 3만원이 어떤 가치를 이뤄냈다면, 그 가치가 소중한 것이라면. 나는 괜찮아질 것이다.

나는 아직, 노인의 뒤를 쫓았다.

.
.
.

" ... "

3시간이 넘는 거리를 걷게 될 줄은 몰랐다. 폐지를 줍는 일이라는 것이, 이렇게 먼 곳까지 다녀야 하는 일이었단 말인가? 
3시간을 쫓으며 차분해진 내 마음은 이미, 괜찮아져 있었다.
이제는 그저 궁금했다. 노인은 그렇게 힘들게 모은 폐지로, 몇백원씩을 모아, 할머니를 위한 케이크를 샀다. 대단하다 생각했다. 그 대단한 사랑이 궁금했다.
리어카를 몰고 언덕을 올랐던 노인은, 집을 향해 위로 향하고 있었다. 힘들게 오르고 올라야 하는 저것이 노인의 인생일까?
나는 묵묵히 따라 올랐다. 산 아랫동네를 끝없이 올랐다. 
오르고, 오르고, 오르다가-, 아! 
노인은 동네를 지나쳤다. 노인의 목적지는 산이었다.

" ...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노인이 도착한 곳은, 산속 어느 무덤이었다. 

" 할멈~ 나 왔어~ "

노인이 무덤 앞에 케이크를 내려놓는 순간, 내 눈이 돌아갔다. 내 가슴은 다시 빠르게 뛰었다.

지금 죽은 사람 주려고 케이크를 샀다고? 3만원으로? 먹지도 못할 케이크를 샀다고? 고작 저 짓거리를 하려고, 돈을 쓸 수 없다며 내 돈을 쓰게 만들었다고? 내 소중한 돈을, 저따위로 낭비하기 위해 빼앗아갔다고?!

나는 참을 수 없었다. 뭐든지 해야 했다! 쌍욕을 퍼붓든, 저 케이크를 빼앗아가든, 당장 달려가 뭐든지 해야 했다!
내가 온몸을 던지려던 그 순간-, 노인이 상자를 열며 말했다.

" 할멈... 케이크 처음 먹어보지? "
" ! "

케이크를 처음 먹어 본다고??

" 할멈이 먹고 싶다던 케이크, 이제 내가 사 왔어.. 어떻게 평생 이거 하날 안 사줬을까... "

노인은 손으로 케이크를 떠서 무덤에 버렸다. 먹지도 못할 아까운 그 케이크를 버리며, 노인은 울었다.

" 할멈 미안해... 내가 정말 너무 미안해! 으허엉! 내가 이거 하나 못 사준 게 너무 후회돼서, 내가 이 가슴이! 끄허엉! 매일 후회돼서, 내가 너무 이 바보 같은 내가 멍청하고 미워서!! 으허엉! 미안해 할멈! 할멈! 미안해! "

노인은 가슴을 치며, 꺽꺽 울었다. 케이크를 버리며, 꺽꺽 울었다.

나는 노인을 보며, 뒤통수를 얻어맞는 충격에 빠졌다. 
나는, 깨달았다. 
그동안 내게서 정말로 낭비되고 있었던 무언가가 있었다는 걸. 
지금 막, 그 낭비가 멈춰졌다는 걸.
댓글
  • 복날은간다 2017/01/12 09:50

    정말 다양한 스타일로 해보자 싶어서 마구잡이로 써뒀다가.. 묵혀뒀던 것들을 용기내어 수정 후 올리는 중입니다~;

    (vhbl9d)

  • 얌얍 2017/01/12 09:53

    마음이 아프네요..

    (vhbl9d)

  • 논리왕김억지 2017/01/12 10:29

    재밌습니다~
    근데 이 학생이 김남우 학생인가요? ㅎ

    (vhbl9d)

  • LeaGue 2017/01/12 10:38

    많은생각이 드네요.
    팬으로써 좋은글 항상 감사합니다.

    (vhbl9d)

  • 내방구향기로와 2017/01/12 11:05

    아...뭐라해야하지.. 이 글을 읽고 생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멍..해지네요
    작가님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사람 마음에 기분에 영향을 주는 것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그 마음을 오래도록 지니게 만드는 것이래요
    작가님 글은 항상 마음에 어떤 것을 남기고 그게 저를 이루는 일부분이 되어 저라는 사람이 점점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언제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한층 성장한 기분이에요

    (vhbl9d)

  • 질풍의라빈 2017/01/12 11:25

    잘 봐습니다 복날님 ^^
    현실적인 주제도 많이 다뤄주시네요
    저도 저런 상황이 많이 있었죠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속으로 저런 생각들을 했을 거 같네요
    돈 많았으면 저런 걱정 안할라나 ㅜㅜ 에효

    (vhbl9d)

  • LeJazzHot 2017/01/12 11:41

    복날님의 소설중에서 이렇게 가슴을 찌르는 이야기들을 보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입니다.....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vhbl9d)

  • 죠르노_죠바나 2017/01/12 11:46

    죄송합니다.
    너무 당연하게 중간쯤 범죄가 일어날 거라 생각했네요.

    (vhbl9d)

  • 짐승용 2017/01/12 11:59

    책나오면 꼭 살게욤..(꼬릿말보고..)

    (vhbl9d)

  • 신이내린미모 2017/01/12 12:28

    복날님이 묵혔다가 꺼낸다는 요즘 글들이 저는 너무너무 좋네요 하나하나 넘나 취향이라는... 묵혀둔 것들 더 많았으면 좋겠다ㅜㅜ

    (vhbl9d)

  • 따봉따봉 2017/01/12 14:22

    뭐라 말할수 없는 느낌이 드네요
    처음으로 댓글 달아요~~
    항상 기다리며 보고 있어요~~^^
    매일 새로운 이야기 쓰는거 쉬운게 아닐텐데
    저같이 기대하며 읽고 있는 사람도 있으니 홧팅이에요~~

    (vhbl9d)

  • 그레이스톤 2017/01/12 14:48

    아 이거 진짜 엄청나네요...
    할아버지한테 이입했더니 할아버지의 모든 상황이 다 이해 가고
    학생한테 이입했더니 학생의 빡침이 다 이해 가고 (솔직히 저였으면 마지막까지도 원망했을 듯 ㅠ 내 생계유지비인데..)
    친구한테 이입했더니 또 친구가 도덕과 속물의 중간 그 어딘가에서 균형 있게 살고 있는 것 같고 진짜 대단해요 ㅠ

    (vhbl9d)

  • 불변인 2017/01/12 15:58

    이거 정말 뭔가 있네요!!!

    (vhbl9d)

  • 해삼v 2017/01/12 16:28

    이걸 지금 보는게 아니었는데..
    지하철에서 보다가 눈물나와서 혼났네요ㅠㅠㅠㅠ

    (vhbl9d)

(vhbl9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