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천국 코하비닷컴
https://cohabe.com/sisa/57791

향수는 자주 바꿔도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때 부터 향에 관심이 많아서 중학생 때부터 거진 1년에 한번씩 향수를 바꿨어요.


지금도 제 침대 옆 탁자에는 반쯤 쓴 향수들이 되게 많이 진열되어 있어요.

가끔씩 아무거나 하나씩 집어서 뚜껑을 열고 킁킁 시향하곤 해요.



향수가 정말 좋은게 뭐냐면

향을 시향하는 순간 

그 향수를 썼을 때의 추억, 풋풋함, 울적한 그리움들이 주체할 수 없이 밀려온다는 거예요

그러면 저는 그 파도같이 떠밀려오는 감정들에 잠겨서 옛 생각 하며 추억에 젖는게 너무 좋아요.



제가 중학교 고학년때 처음 접한 향수(향수라고 하기도 그렇지만...)가 빅토리아 시크릿의 러브스펠이었어요. 

정말 매일 매일 뿌리고 다녔죠

지금도 러브스펠 뚜껑을 열고 시향하는 순간 기분이 좋아져요.


어느 선선한 가을 하루, 첫사랑과 처음으로 손 잡고 서로 얼굴 빨개져서 고개만 숙이고 말없이 걷던 기억

수학시간에 졸다가 코 콜아서 다른애들 앞에서 엄청 혼났던 기억. 옆에서 킥킥대던 아이들. 화끈거리던 내 두 볼.

시험지를 돌려 받던 날 옆에 앉아있던 짝꿍이 너 점수 어떻게 나왔어? 라고 물어볼때 ㅇ...응..?..잘쳤어. 하고 얼버무리며 숨기던 내 시험지.


당시 제가 그 향수를 썼을때의 기억들, 당시 느꼈던 감정들이 확 밀려오는데

정말 신기한건 가끔씩 향을 맡을 때 마다 새로운 추억들이 발굴된다는 거예요. 아마 향수가 없었더라면 까마득히 잊고 있었겠죠.




반대로 대학교 2학년때 제가 썼던 향수는 베르사체의 브라이트 크리스탈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이때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었거든요. 아직도 그걸 시향 할때마다 눈물이 나와요. 

계속 수업에 안나가서 학사경고 받고 집에와 깜깜한 방구석에서 혼자 숨죽이고 흐느껴서 울던 그 때.

친구조차 단 한명도 없어서

어느 춥던 겨울 혼자 시내에 나가 몇시간 동안 무작정 걷기만 했던 기억.

그냥 사라져도 좋겠다, 걱정할 사람 하나 없겠지 하고 생각이 들던 당시

뼛속까지 외롭고 비참했던 감정들이 북받쳐 오르거든요.






물론 지금은 모두를 뒤로 하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그게 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향으로 되살리며 추억할 수 있다는게 정말 좋은 거 같아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댓글
  • 촉촉한곰 2016/12/31 02:42

    글이 좋네요...
    저는 옷같은 경우가 그렇더라구요...

    (H26UxY)

  • 냐콩4 2016/12/31 02:42

    글이 너무 좋네요 ㅎ
    저 역시 그래서 썼던 향수들을 잊을만하면
    다시 사는지도요

    (H26UxY)

  • 그말은아파요 2016/12/31 02:51

    헤헤 가장 오래남는 기억이 후각이래요.
    저는 향알못이지만 비슷하게 노래들이 그렇네요 ㅎㅎ노래 하나 꽂히면 한동안 그거만 듣고다니는데 언젠가 스쳐들으면 옛날기억이 새록새록.... 다르지만 작성자님 이야기가 공감돼요!

    (H26UxY)

  • 생각하는남자 2016/12/31 02:51

    저는 노래가 그래요 ㅎㅎ
    한 노래만 질릴때까지 듣는성격인데
    하드안에 저장해놨던 노래를 우연히 듣게되었을때
    그 노래를 질리도록 들었던 과거의 시점이 떠올라요
    신기해요 ㅋ

    (H26UxY)

  • 뷔유러 2016/12/31 03:04

    연말에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듣게 되서 좋네요:)
    아직 향수를 사본 적이 없는데 향수가 후각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추억의 향수가 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H26UxY)

  • 어드벤처타임 2016/12/31 03:41

    어디서 봤는데
    여행 갈때 마음에 드는 향수를 하나 가지고 다니면서 뿌리고
    나중에 여행 갔을 때의 기억을 살리고 싶으면 또 뿌리면 된대요
    전 이거 나중에 꼭 해보려구요

    (H26UxY)

  • AMAlilith 2016/12/31 04:07

    저는 쓰는 향수는 정해져있고, 다른 사람들을 향으로 기억해요 ㅠ 그래서 헤어질때마다 드는 생각이 이제 이 사람 향기를 못맡겠구나 ㅜㅜ 이 생각이었어요.

    (H26UxY)

  • pinkpinkj 2016/12/31 04:39

    저는 노래가 ...
    그런데 모든 노래가 그런건 아니고
    특정 노래 몇 곡이 예전 알바할때를 생각나게 해요.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어서
    요새도 그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울적해져요.

    (H26UxY)

  • 삼겹살맛있어 2016/12/31 09:12

    좋네요. 저는 특정한 냄새가 그리울 때가 있더라구요. 예를 들면 할머니댁 갔을 때 고유의 냄새, 해외여행 갔을 때 그 지역의 특이한 냄새 등이요. 그런 냄새는 맡고 싶어도 못 맡는데 향수 뿌리는 습관이 들면 그리움이 그나마 옅어질거같아요.

    (H26UxY)

  • 짜장이좋아 2016/12/31 09:16

    맞아요 저도 기숙사 살때 방에서 애들이 방구뀔때 마다 더바디샵 오렌지를 뿌려 냄새를 중화시켰더니 지금도 그 오렌지 냄새만 맡으면 그때의 기억과 함께 방구냄새가 맡아져요.

    (H26UxY)

  • 스윗마카롱 2016/12/31 10:39

    저도 러브스펠을 너무 써보고싶어서 샀는데 전 향이 안맞아서 포기했던 ㅎㅎ 제가쓰면 정말 맥주향이 나더라고요 ㅎㅎ이참에 저도 향수한번봐야겠어요

    (H26UxY)

  • 유리스텔라 2016/12/31 10:39

    에 전 애초에 여러가지를 사서
    그날그날 기분이나 상황이나 계절에 따라 바꿔씁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향과 관련된 기억같은건 없군요....

    (H26UxY)

  • 보들레르★ 2016/12/31 10:40

    후각 자극에 의해 과거의 기억, 잠재되어 있는 기억을 재생해내는 현상을 '프루스트 현상'이라 한다고 합니다 :)

    (H26UxY)

(H26Ux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