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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Risk Zero Return 내부고발자들.

이문옥 감사관
이지문 중위
윤석양 이병
김용철 변호사
김영수 소령
.
.
.
이런 분들이 공익을 위해 내부 고발을 하셨고
구속, 파면 등의 고초를 겪고 외롭고 힘든 싸움과
그 뒤 지속적으로 힘든 삶을 영위할 때
우리 사회는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작금의 사태가 이러함에도 내부고발자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내부고발자가 되실 수 있겠습니까? 
소급입법을 해서라도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같이 댓글로  내부고발자 분들을 
기억해 봅시다. 

댓글
  • 세월호1,000일 2016/12/30 17:16

    1990년 5월, 감사원 이문옥 감사관 '재벌 비업무용부동산 감사비리폭로'
    <한겨레신문> 1990년 5월 11일자와 12일자에 재벌의 로비로 감사원의 감사가 중단된 사실과 23개 대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취득실태가 업계 로비에 밀려 감사가 중단됐으며, 이들 재벌 계열사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 비율이 은행감독원이 발표한 1.2%보다 훨씬 높은 43.3%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기사가 연속적으로 보도되었다.
    제보자는 감사원 이문옥 감사관!
    이로 인해 이 감사관은 파면당하고 검찰에 구속되는 고초를 겪었다. 그의 제보가 사회의 공익을 위한 정당한 것이었다는 판결을 받고 복직하기까지 6년간 법정투쟁이 이어졌다.
    그의 제보 이후 조직 내부의 비리나 부정을 고발하는 사람을 호칭하는‘내부고발자’‘공익제보자’라는 용어가 생겼다.

    (LbnqjI)

  • 세월호1,000일 2016/12/30 17:19

    이지문 중위
    14대 총선을 이틀 앞둔 1992년 3월 22일 밥 ROTC 29기 출신 24세의 육군 제9사단 28 연대 2대대 6중대 소대장 이지문 중위는 서울 종로6가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군부재자 공개기표, 중간검표 등의 부정을 폭로하였다.
    그는 "군부재자투표과정에서 간부들이 여당후보지지와 공개투표를 강요했다"고 주장 했다.
    그는 "장래에 대한 불안으로 적지 않은 갈등을 느끼고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료, 선배 장교들에게 돌아갈 불이익 때문에 가슴아프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양심선언'이나 '폭로'로 표현되는 것이 싫다고 하였다.
    "단지 제가 보고 들은 것에 조금도 보태거나 뺀 것이 없는 '사실 전달' 이며,이 땅의 한 청년장교의 증언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진실을 밝히는 행위가 있기까지 많은 망설임과 말 못할 심정적인 고민과 동요를 겪었고, 결국 군부재자 투표부정사실을 고발하게 되었지만, 그 대가로 그가 받은 것은 은빛의 중위계급장 대신 이등병 계급장이 전부였다. 또 근무 이탈로 인한 군형법과 명훼손죄의 적용을 받아 1992년 5월 4일 불명예 전역까지 당했다.
    이지문은 그후 4여년의 법정투쟁끝에 95년 8월 13일 대법원으로부터 파면처분 취소확정판결을 받았다. 또한 96년 4월에는 육국수도방위사령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확정판 결을 받았다.

    (LbnqjI)

  • 세월호1,000일 2016/12/30 17:31

    1990년10월4일,
    윤석양 이병`보안사 사찰`폭로
    1990년10월4일 보안사에 복무 중 탈영한 윤석양 이병(당시 이병, 24세,외대 러시아과4년 제적)이 서울 연지동 서울기독교회관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국군보안사령부가 정치인,종교인,언론인,교수,재야인사 등 민간인1,300명을 대상으로 정치사찰과 동향파악을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윤석양은 외대4학년2학기에 학생운동으로 제적당하고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신병교육 뒤1990년7월3일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연행되어 혁노맹(혁명적 노동자계급투쟁동맹)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보안사의 협박에 못이긴 윤석양은 혁노맹 간부1인의 소재지를 알려주었고,이 후 혁노맹 수사에 조금씩 협조했다.이 후,보안사 수사관들은 윤석양을 조금씩 신임하게 되었고,보안사에서는8월 22일,현역군인10명이 포함된'혁노맹'사건을 발표했다.
    이후 윤석양은 보안사 분석반에서 혁노맹에 대한 수사 보고서 작성과사노맹(남한사회중주의 노동자연맹)에 대한 자료 정리 업무를 하였다.그러던 중 이중스파이의 의심을 받게 되었고 결국9월24일 보안사 서빙고분실에 있던 자료를 가지고 탈영 후 은신해 있다가 이 날 폭로한 것이다.
    폭로한 내용은 군 정보수사기관인 보안사의 대민 사찰의 증거로 동향파악 대상자 색인표1,303매,노무현,이강철,문동환,박현채 등4명의 개인 신상카드,개인별 동향 파악 내용이 입력된 컴퓨터디스켓30장(447명 분량),학과ㆍ학번ㆍ활동내용 등이 기록된 서울대 출신 운동권387명의 신상카드 등이다.
    이러한 증거물을 통해 당시 보안사가 평민당 김대중 총재,민자당 김영삼 대표 등 각계각층을 사찰했고,각 동향파악 대상자에게는 담당관1명이 지정돼 있으며 이 담당관이 매달 말에1차례씩 감시대상자의 발언내용과 접촉인물 등 주요 활동내용을 파악해'문제인물 동향관찰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0월5일 국방부는 폭로 문건이 보안사에서 작성한 것임을 시인하면서"전시나 계엄령이 선포된 때에 대비해 적 또는 불순세력으로부터 대상자들을 보호 및 차단하기 위해 작성된 자료로 정치적 목적의 대민 사찰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10월 7일,평민당김대중총재는 내각제 개헌 포기,지방자치제 실시,보안사 해체,민생 안정을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고,다음 날인10월8일 노태우 대통령은 이상훈 국방부장관과 조남풍 보안사령관이 경질했지만 학생들과 야당(평민,민주,국민연합)은 노태우 정권의 퇴진을 주장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에 대해 노태우는 국민의 분노를 피해가기 위해10월13일"범죄와폭력에대한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즉 노태우의 범죄와의 전쟁은 실제 민생치안을 강화하려는 치밀한 계획을 기반으로 두고 나온 정책이라기보다는 집권4년 차를 앞두고 어지러운 정국과사회분위기를 진정시키고 주도권을 잡으려는 이벤트성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당시 국민들은 긍정적 반응을 보였고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조직폭력배1,923명을 검거하는 실적을 남기기도 했다.다만 거물급 조직폭력배는 이미 대부분 잠적하는 바람에 실질적인 효과에는 부정적이었다.
    그리고12.12군사쿠데타의 선봉에 있었고 언론 통폐합,삼청교육대사건 등 각종 정치 공작과 학원 사찰 등 정치 활동에 깊숙이 개입했던'국군보안사령부'는1991년1월1일부터'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편 사찰 대상자이던 노무현,한승헌,김승훈,문동환,강동규,이효재 등 각계의 주요인사148명은1991년6월27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국군보안사령부가 군과 관련된 첩보 수집,특정한 군사법원 관할 범죄의 수사 등 법령에 규정된 직무범위를 벗어나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평소의 동향을 감시,파악할 목적으로 지속적으로 개인의 집회,결사에 관한 활동이나 사생활에 관한 정보를 미행,망원 활용,탐문채집 등의 방법으로 비밀리에 수집,관리하였다면,이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서 불법행위"라고 규정했다.
    1998년7월24일 대법원은 보안사가 헌법상의 사생활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 점을 인정하여 국가는 원고들에게 각각200만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확정 판결했다.
    한편 윤석양은2년간의 도피생활 끝에1992년9월23일 대구에서 윤석양후원사업회 사무국장 양승균과 저녁 식사를 하던 중국군기무사령부와 대구 헌병대 요원 등7명에게 체포되었고 군형법상 군무 이탈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그리고1994년10월2년의 형기를 마치고 만기출소 하였다.

    (LbnqjI)

  • 세잎토끼풀 2016/12/30 17:33

    제로 리턴이 아니라 마이나쓰
    하지만 그들은 자신에게 무엇을 얻으려고 한 행동이 아니라 이건 아니니까 이러면 안된다 생각하니 고심끝에 하게되는 고발이라 생각합니다.
    보호도 중하지만 고쳐달라고 한 고발이니 그 고발이 허무하게 묻히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봅니다. 끝까지 잘 해결할 수 있도록.

    (LbnqjI)

  • 세월호1,000일 2016/12/30 17:33

    모바일로 하려니 힘드네요.
    도움 부탁 드립니다.

    (LbnqjI)

  • 다뎀벼 2016/12/30 17:34

    내부고발이라는 명칭에 사람들의 거부감이 없지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진실폭로라는 측면에서 고발이라는 말보다는
    보다 더 우아한 단어를 생각해서
    단어에서 오는 거부감을 없앴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LbnqjI)

  • 세월호1,000일 2016/12/30 17:40

    김영수 소령
    ◑ 현역 영관급 장교 한국군 역사상 최초로 양심선언!!
    현역 해군 장교인 김영수 소령이 MBC 'PD수첩'을 찾아왔다. 김소령은 'PD수첩'팀에 계룡대에서 일어 난 9억원 대의 군납 비리 의혹 문제를 고발하였다. 한국 군(軍) 사상 영관급 고위 장 교가 군 내부의 비리 의혹에 대해 양심선언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 계룡대에서 터진 9억원 대의 군납 비리 의혹!!
    김소령은 계룡대에서 일 어난 9억 4천만원대의 군납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 2003년에서 2005년 사이 계 룡대에서 일어난 만성적인 특정업체를 비공개 수의계약으로 9억4천만원의 국민 혈 세가 낭비됐다는 것. 이 과정에서 국가계약법상의 공개 경쟁 계약 규정을 피하기 위 해 소액으로 여러 차례 나눠서 계약하는 분할 수의 계약이 횡행하고 위조 견적서를 사용하는 등의 불법, 탈법들이 자행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리베이트 의혹이 수면 위 로 떠올랐다. 김영수 소령은 이러한 탈법 관행의 문제점을 고치고, 공개 경쟁 계약 을 통해 양질의 비품을 저렴하게 구입하려고 노력했다. 이로 인해 김 소령은 등급 외 근무 평정인 ‘E' 등급을 받았고 '업무적응 미숙'의 사유로 타부대로 전출 조치되 었다.
    ◑ 지난 4년간 계속된 군 수사기관의 감싸기 수사와 면죄부 수사!!
    김 소령 은 분할 수의 계약을 명하는 상부의 지시를 거부한 이후 탈법의 관행을 뽑기 위해 해 군 수사기관에 이 문제를 알렸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감싸기 수사와 면죄부 수사였 다. 김영수 소령의 고발 건에 대해서 2006년 해군 헌병 수사에서는 불법 사실확인 불 가능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나 이는 수의 계약을 체결했던 특정 업체들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도 하지 않은 면죄부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김영수 소령은 이에 굴 하지 않고, 국민권익위원회(당시 국가청렴위)에 제보하였고, 국민권익위원회는 불 법 탈법 사실을 확인하고 국방부 조사본부에 수사의뢰 하였으며, 이에 따라 국방부 조사본부는 9억 4천만원의 공공 예산을 낭비한 사실을 확인하였고, 이에 따라 불법 행위 관련자 16명을 징계하라고 해군에 통보하였다. 그러나 해군은 당시의 수의계 약 된 물건들과 동일한 물건들을 구할 수 없으므로 비교 견적이 불가능해 국고 손실 을 증명할 수 없다며 관련자들을 징계하지 않았다. 즉, 9억 4천만원의 국고 손실이 있었다는 국방부 조사본부의 결론을 정면으로 뒤집어 버린 것이다.
    이어서 계속된 관련 수사에서도 군 수사기관은 증거불충분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결국 김 소령이 제기한 군납비리 의혹은 9억원 대의 국고 손실이 국방부 조사본부의 수사에서 확인 되었지만 아무도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는 기이한 모순을 보이고 있다. 이는 해군의 수사 의지 부족, 온정주의식 수사, 면죄부 수사 방식 때문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 조직적 비호와 수사 방해 의혹!!
    국방부 검찰단은 지난해 12월부터 3차 수사에 들어갔다. 관련자 계좌추적 조사결과 8억원 대의 출처를 짐작하기 어려운 돈 이 입출금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혐의자들이 수사 도중 자살 소동을 일으키고 정신병원에 입원해 소환에 응하지 않는 등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국방부 검찰단은 PD수첩에 대한 공식 답변에서 참고인들이 철저한 말맞추기 후 동반 출석 하는 등 조직적, 체계적으로 수사에 대응하고 있다는 공식 답변을 보내왔다. 누군가 에 의해 조직적, 체계적 수사 방해와 비호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PD수첩 역시 취재 도중 이러한 점을 확인했다. 핵심 혐의자가 국방부 검찰단의 조사를 받고 있는 그 순간에 해군 법무실장이 서울까지 올라와 택시 기사의 휴대폰을 빌려서 국방부에 서 조사받고 있는 핵심 혐의자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해군 법무실장 김 모 대령 은 왜 심야에 수사 중인 비리 혐의자에게 전화를 건 것일까?
    ◑ 온정주의 수사로 군의 자정능력 상실!!
    PD수첩에서는 지금껏 관행이라 는 이름으로 국민 혈세를 낭비해온 해군 납품 비리 의혹을 짚어 본다. 이 과정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를 반복하는 군 수사기관의 수사 부실과 4년간 수사 종료와 재수사를 반복하는 군 사법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또한, 군의 투명성을 높여 서 국민 혈세를 아끼려는 공익 제보자 김 소령의 지적을 수용하는 대신, 문제점 덮기 로 일관하는 해군의 안일한 행태를 고발한다.
    정말 대단한 용기와 신념을 가진 이 엘리트 해군소령이 결국 해군조직에서는 "업무적응미숙" 이라는 최하위 평점을 받고 교관자격 박탈, 국군체육부대로 좌천, 왕따 당하다가 결국은 2010년 6월 전역

    (LbnqjI)

  • 세월호1,000일 2016/12/30 17:51

    김용철 변호사
    이건희 회장을 정점으로 뭉친 삼성 사장단은 비자금을 만들고 이를 정계법조계언론에 뿌리며 대한민국을 오염시켰다. 이를 보다 못한 김 변호사는 끝내 내부고발을 결심했다. 고발의 목적은 단지 삼성이란 재벌기업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내는데 국한되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이 회장 일가가 배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가 기업은 물론 한국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판단은 내부고발의 동기로 작용했다.
    용두사미로 매조지된 삼성특검
    김 변호사의 내부고발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2007년 11월 국회에서는 '삼성 비자금 의혹관련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이 통과됐고, 이에 근거해 삼성 비자금 의혹 관련 특별검사팀(삼성 특검)이 꾸려졌다.
    삼성특검은 당시 이재용 전무에게 탈법적으로 경영권 승계가 이뤄졌음을 밝히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김 변호사가 제기한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선 이 회장 개인 재산으로, 그리고 정관계 로비의혹에 대해선 '사실무근'으로 결론 내렸다.
    사실상 이 회장 일가에 면죄부를 준 꼴이나 다름없었다. 이후 삼성은 거침없이 폭주했고, 이 와중에 힘없는 노동자들은 하나 둘 목숨을 잃었다. 김 변호사는 내부고발을 결심하면서 삼성그룹과 한국 사회를 향해 이렇게 경고했다.
    "한국 사회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벌 그룹에서 한 사람이 독점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설령 권력의 정점에 있는 총수가 대단한 통찰력과 판단력을 지녔다고 해도 그렇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전자산업과 조선 산업, 병원, 보험, 증권 등 모든 산업 분야에 걸쳐 리더십을 행사할 수 없다. 게다가 총수의 지배권이 세습될 경우, 계속 뛰어난 사람이 물려받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런데 삼성의 한국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너무 큰 까닭에 우연히 무능한 사람이 삼성을 이끌게 되면 한국 사회 전체가 위험해진다. 이런 위험을 계속 방치해야 하나."
    불행하게도 한국 사회는 위험을 방치했다. 아니, 이른바 '대마불사'를 외치며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삼성에 가속을 붙여줬다. 일각에서는 김 변호사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삼성에서 호사를 누리다가 척을 지고 치부를 들춰 삼성을 부담스럽게 한다'는 게 비난의 주된 이유였다.
    그 이후에 빵집 운영.
    저 시점에서 편법 승계만 잡았어도
    작금의 국민연금 사태는 안일어났을지도...

    (LbnqjI)

  • 세월호1,000일 2016/12/30 17:52

    오유저 여러분께서 기억나는 분들 보충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LbnqjI)

  • 브라-_-우니 2016/12/30 18:17

    high...

    (LbnqjI)

  • 뭐시중헌디? 2016/12/30 18:25

    이완배 기자가 사용하신 용어"그대로"죠.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필받아 재밌는 말 만들었는데,그친구가 다른자리서
    천연덕스럽게 자기가 만든말인것처럼 사용하는걸 목격하면 기분이 좀 그렇죠..
    여튼, 내부고발자들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그들이 앞날의 생계걱정 없이 살아갈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일부터 서둘러야 깨끗한 사회가 빨리 도래할듯.

    (LbnqjI)

(Lbnq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