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군은 조총이 기병을 상대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기병이 근접하기 전에 사격을 통해 기병의 돌격을 저지할 수 있었고, 다단 사격(三段撃ち) 전술을 활용하여 지속적인 화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일본군이 쓰는 창인 야리는 대기병전에 불리한데다가 대기병 전술이 발달하지 못해서 조선군과 명군의 스웜 전술에 쉽게 박살나 섬멸당할 위험이 컸죠.
3. 기병 양성보다 조총병 양성이 쉽다는 점입니다.
기병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군마를 기르고 기사술에 능한 병사나 무사를 데려와야 하는데, 전국시대 내내 기병전술이 쇠퇴한 일본 입장에서는 이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특히나 일본은 산악지대가 많아서 다케다 신겐이나 다테 마사무네 등 극일부의 다이묘를 빼면 기병을 대량 운용조차 못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조총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병사들에게 쥐어준 후 마방책이나 창병, 다케타바(대나무 묶음) 같은 것으로 기병을 저지한 후 화망을 펼치는 게 나았습니다.
다만 이러한 전술은 일본군이 벽제관 전투나 탄금대 전투 등 미리 잘 준비하고 기병 대책을 마련한 후의 대회전애서는 매우 잘 먹혔지만, 문제는 기습이나 기동전에서는 매우 불리했습니다.
더구나 조선군과 명군도 이러한 일본의 전술을 잘 알아서 대비를 못하게 기습하거나, 적절한 시기에 기병을 보내 일본군 대열을 박살내거나, 로켓과 화포를 이용한 화력전으로 밀고나갔죠.
그럼에도 이 조총 중심 전술은 나름 효과가 있는지라 나중에 명나라와 조선도 적극 연구한 바 있는데, 문제는 만주족과 청나라의 기병대도 진작에 이런 문제를 알아서 강력한 기병 전술과 홍이포 등의 최신 무기를 동원하는 등의 대응을 해서 사르후 전투와 병자호란에서 많은 피해를 보아야 했죠.
테르시오 전술이나 선형진 같은 좀 더 근대화된 전술이 도입되었다면 아마 이런 기병에 대한 약점은 극복되었을 것이기에 수많은 대체역사 소설가들이 이 시기 동아시아의 왕이나 장군을 주인공으로 삼는다면 반드시 스페인이나 네덜란드, 스웨덴의 대기병 전술을 도입한다고 설정하는 경우가 많죠.
요약 : 일본의 대기병 보병진과 장창은 약했고, 기병으로 맞대응하자니 말도 기사도 없어 조총을 늘려 대응함.
결국 돌고 돌아 팔랑크스를 연상케하는 테르시오 전술이 떠오르고, 그 테르시오 전술도 밀집대형의 한계 때문에 몰락하고 ㅋㅋㅋㅋ
역시 총 앞엔 장사 없죠. (워털루)
의외로 조선이 대패한 전투인 쌍령 전투도 여진 기병대가 조선 조총병에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청측 사료엔 기록되어있다.
토요토미원숭이에 왜놈들 아니었으면 조선이나 명이나 충분히 누루하치의여진족을 견제할수있었는데 저것들때문에 동아시아전체가 병란으로 휩싸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