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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제나) 2차 창작 3번째, 마지막편

첫번째랑 두번째 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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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과하겠어, 함장."
"...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긴 합니다만, 역시 문책 따윈 없는 겁니까?"
작전실장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이 건은 없었던 일이 될 걸세. 없었던 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겠지."
"... 뭐, 규정대로 처리될 거라고는 기대안했습니다만, 이렇게 될 거라고도 예상 못했습니다."
"내 말이. 그 멍청이들, 이렇게 대놓고 사고를 쳐버린 탓에 오히려 대놓고 목을 치지도 못한다니."
분을 토하던 작전실장이 본인도 아찔한 듯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는다.
"하지만 그 머저리들에게 더 이상 미래는 없어. 정치적인 이유로 이번엔 불문에 붙이기로 했지만 녀석들의 추태는 다들 똑똑히 봤거든. 적어도 제국군복을 입고 있는 녀석이라면 누구도 녀석들을 신뢰하지 않겠지.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하나씩 팔 다리를 자를 거야. 근거는 차고 넘치거든. 그 놈들을 사지 멀쩡하게 놔뒀다가는 조만간 덮을 수도 없는 사고를 칠 거라는 근거가."
"..."
"자네의 전투 보고서를 읽었고, 부함장의 투서도 받았지. 아, 혹시 처음 듣나? 부함장이 투서를 던졌다는 거?"
"네. 그러고보니 승선했다 돌아온 후에 부함장이 많이 화가 나 있긴 했습니다."
"부함장이 정말로 화가 많이 났더군. 상관을 위해 그렇게 화를 낼 수 있다니, 충성스러운 부하를 둬서 부럽단 말일세."
"맞습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는 과분한 부함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소린가. 어깨를 펴게. 부하를 보면 상관을 알 수 있어. 그런 좋은 부하를 뒀다는 건 귀관도 좋은 상관이라는 증거야... 뭐, 물론 나이트메어 같은 예외도 있지만."
"감사합니다."
내 감사에 작전실장은 머쓱한지 잠시 시선을 외면한다. 하지만 그런 머쓱한 분위기를 오래 끌기 싫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자네의 전투 보고는 중요한 정보였고 귀중한 대응 지침이었네. 적의 어중간한 장갑이 대형 화기는 막아낼 수 없지만 소구경 화기는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라니. 접근을 허용한 시점에서 근접 방어 무기로는 격파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 심각하진 않지만 귀찮은 상황이긴 하지."
"정규 함대라면 귀찮음 정도일지도 모르겠지만 소형함이 주력인 변방 순찰함대에게는 위험한 상황입니다. 실제로 이번 전투에서 초계함급이 3척 격침 당했으니까요."
"위협을 무시하려는 말이 아니야, 함장. 그저 대응이 불가능한 상대가 아니었다는 이야기지. 실제로 귀관은 그걸 잘 넘겨냈잖나. 중거리 방공 미사일을 무유도 사격후 기폭시켜서 폭발로 함 주변을 둘러치는 방법 말이지. 대단치는 않아도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건 확실해. 귀띔하자면, 그거 지금 교범에 추가중이라더군."
 그렇게까지 대단한 아이디어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아마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금방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이겠지. 교범에 실리기까지 할 정도의 아이디어라고는 생각치 않는데 조금 놀랍다.
"사실, 이번의 전투도 제대로 지휘 체계가 유지되고 있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테지. 하지만 문제는 그 시간에 지휘를 맡은 머저리가 함교에 없었다는 거다."
정확한 내용은 나도 보고 받았다. 처음에는 함교가 피해를 입을 때 지휘부 역시 부상을 입고 지휘력을 상실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지휘부는 손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그저, 함교가 공격을 받았을 때 왜인지 함교에 있었던 작전팀 수습 요원이 중상을 입었고, 그 요원을 의무실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지휘부가 함께 의무실로 이동한 후 전투가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 진짜로 문제다. 이건 어떻게도 변호해 줄 수 없는 이야기다. 함장은, 설령 그것이 정식이 아닌 함장 대리라 할지라도 함에 승선한 모든 인원의 목숨을 책임지는 자다. 아무리 소중한 사람이 죽어간다 할지라도 그것을 핑계로 어깨위에 걸머진 수많은 목숨을 내려놓아서는 안된다. 애당초 그것을 모르는 자가 지휘관 휘장을 달고 있어서는 안되는 거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버렸다. 함선의 승조원들, 그리고 함내 도시의 주민들. 지금은 몇명인지 모르겠지만, 못해도 만단위는 넘어가겠지. 그 정도의 인원을 버린 거다. 단지 개인적으로 소중한 단 한사람 때문에.
나는 기억속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분명히 유능한 사람이랬다. 그렇기에 제국에서 공을 들여 스카웃해온 사람이라고 들었다. 실제로 나 역시 레노아 덕분에 한번 목숨을 건졌지. 그 때의 전후 사정과 판단은 지금 생각해보아도 옳았다. 그 상황에서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자가 무능한 자일리 없다.
'어쩌다 여기까지 떨어진 거냐, 레노아.'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눈을 감자 작전실장은 그것을 다른 의미로 이해한 것인지 이야기를 계속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상부에서는 공식적으로 그런 일 없었다, 로 넘어가기로 했다. 명예로운 제국군에 그런 덜떨어진 장교가 있어서는 안되니까. 게다가 나이트메어함은 도시선이기도 하기에 민간인도 대량으로 있지. 그런데 함의 지휘권자가 전투상황에서 사적인 이유로 지휘를 방기한 일이 알려진다면 정치적인 문제가 될 거야. 그러니 상부로선 목숨을 걸어서라도 숨겨야 할 추문이라는 거다. 장담하는데 이걸 떠들고 다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지도 몰라. 그러니 조심하게, 함장."
 그 놈의 정치적 문제. 일선에 죽어가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목숨보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싶다.
"그렇게까지 합니까? 무책임한 지휘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관련없이 죽음을 강요당한 병사들이 납득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지, 도무지 납득은 안가지. 솔직이 나도 설득할 자신은 없네, 함장."
 또다시 한숨.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나이트메어함이 얽힌 일에 대해서는 꽤나 자주 한숨을 쉬는 것 같다. 뭐 어쩔 수 없지. 내 입장에서는 까마득히 높은 작전실장도 결국 고급 톱니바퀴에 불과하다. 더 윗선의 판단을 뒤집는 걸 요구할 수는 없겠지.
"뭐, 그 대신 어느 정도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어. 어차피 상부의 결정사항을 뒤집을 수 없다면 최대한 빨아먹을 수 있는 걸 빨아먹는 수밖에 없겠지. 그러니 귀관도 뭔가 원하는 걸 생각해두는 게 좋아. 막상 기회가 왔을 때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서 날려버리기 십상이거든."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뭔가 불만이라도 있나 부함장?"
 내 질문에 부함장이 살짝 불쾌한 표정을 내비치며 대답했다.
"네, 역시 그 망할 여자의 면상을 한번 후려갈기고 퇴함할 것을 그랬나 싶습니다."
"안돼, 그래서는 귀관이 곤란해지잖나."
"어차피 제 나이로는 정년 퇴직이 머지 않았습니다. 그게 조금 빨리 왔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 하지만 연금을 못 받잖나."
"괜찮습니다. 그 정도 준비는 해 놓았으니까요. 그리고 뭣보다 함장님께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손써주시지 않겠습니까?"
"나라도 무리야, 그런 거."
 피식 웃으며 대답했지만 만약 진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상부에게 연금 지급을 요청했으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그렇고... 정말로 그렇게 끝나는 겁니까, 저 녀석들은?"
"공식적으로는."
"호오..."
 말해도 될까? 나는 잠시 고민했다. 내 고민을 침묵으로 생각한 것인지 부함장이 입을 열었다.
"뭐, 어차피 이런 사고를 쳤으니 저 자들에게 미래는 없을 겁니다. 당연하게도 임무에는 배제될 것이고, 귀중한 퍼스트를 다시 배속해주지도 않을 것이며 함장 경력을 망칠 각오가 아니라면 저들을 지휘하겠다는 자도 나오지 않겠죠. 그런 문제 투성이의 배에 민간인들을 계속 승함시키지도 않을 테고 그렇다면 저 배를 유지하는 인력도 굳이 필요없을 터, 해당 인원들도 필요한 곳으로 재배치될 겁니다. 그렇게 놀고 있는 배를 전방에 둘 이유도 없으니 후방의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재배치 될 게 뻔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하게도, 정보 차단을 위해서 저 머저리들은 하선도 허가되지 않을 것이고 퇴역이나 전속도 허가되지 않겠죠. 늙어서 죽을 때까지 저 배에 같혀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네, 사실상의 감금이고 감옥전함이 되겠습니다."
"부함장... 혹시 누구한테 들은 거 있었어?"
"그런 거 없습니다. 상식적인 범주의 추론의 결과입니다만, 혹시 함장님이야말로 뭔가 들으신 게 있습니까?"
"노 코멘트."
 내 긍정에 부함장이 피식 웃는다.
"뭔가 부족해보이긴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나?"
"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두들겨 패야 속이 좀 풀리겠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를 테면, 생존한 호위함대의 승조원들이 꽤나 살기 등등하더군요."
"아, 그 사람들이야 그럴 만하지.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호오? 함장님께서도 정도는 다르더라도 그만큼 고생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대충, 함장님이 저 망할 배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알 사람은 다들 압니다."

"뭐, 부정은 하지 않겠어. 하지만 말이야... 나는 퍼스트라고?"


 이번엔 내가 부함장에게 피식 웃어보일 차례다.
"카오스에는 몇번이고 들어갔었지. 그리고 나는 기억을 지울 수 없어. 그래서 그 곳에서 본 모든 것을 기억해. 그러니까 말할 수 있어. 육체의 죽음은 순식간에 끝나. 하지만 정신의 죽음은... 길고도... 고통스럽지. 지금 생각해보면 저 배에서 사람 때문에 겪었던 고통은 그렇게 대단치 않았어. 그저, 나 역시 카오스의 영향 때문에 피폐해진 상태라 그걸 버티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군."
 내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은 것을 느낀다. 그리고 부함장의 표정이 살짝 굳은 것도.
"당연하잖나. 그런 것을 본 인간은 마모될 수 밖에 없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나도, 그 녀석들도, 이미 어딘가에서 고장나 있을 가능성이 높아. 그 바보들이 어이없이 행동한 것도 그래서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째서 그런 것들이 인간을 흉내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 모방할 인간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야. 그런데 근처에 인간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흉내낼 무언가가 없다면 인간을 정의하는 것을 잊어버리게 되겠지! 어쩌면 내면의 무언가에게 잡아먹힐지도 몰라! 녀석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카오스에서 묻어나온 광기의 편린이 녀석들을 잠식할지도 모르지! 게다가 근처에 있는 것들은 똑같은 것들이기에 서로의 광기를 자가복제하며 악몽의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질 테지! 아마 그렇게 되지 않겠어?!"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물론 부함장과의 대화로 시작하긴 했지만 어느 시점부터 함교의 모두가 침묵한 상태로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 질문은 모두를 향한 질문이었다. 그럼에도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 왜 그래? 다들 듣고 있었잖아? 내가 뭘 묻는지 모르지 않잖아?
"예상이며 확신이야. 저 녀석들은 이제 안전장치 없이 광기의 우리에 갇힌 거야. 그래, 모두에게 버려진 거지. 직접적으로 목을 딴 게 아니야. 스스로 파멸해가도록 느리고 완만한 사형이 집행된 거야. 그 우리에서 저 녀석들의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하지 않아? 장담컨데, 저 배에서 새로운 카오스가 발생할지라도 나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할 거야. 위에서 그 가능성까지 고려하고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인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확실한 건 상부는 저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대비할 거란 거지."
 내가 그렇게 요청했으니까. 내 요청에 작전실장도 창백하게 질린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어딘가로 전문을 보냈었다. 그렇다는 건 누가 들어도 설득력이 있는 예상이라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부함장도 진지하게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은 건, 녀석들이 느리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며 그 끝에 도달하는 것을 기다리는 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지. 그리고 약간의 여흥을 찾자면 그 때 생겨날 카오스의 이름을 우리가 정하는 건 어떨까? 배 이름이 나이트메어고, 거기에서 생겨난 카오스니까, 카오스 나이트메어 어때? 아, 이렇게 하면 너무 재미가 없으니 뭔가 있어 보이는 수식어를 넣자. 카오스... 카오스 제로? 그래, 카오스 제로 나이트메어 어때? 딱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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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로 더는 무리. 이전 거 쓰던 거보다 시간이 3배는 더 걸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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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mw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