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F.딘
2차 세계대전에도 연대장으로 참가한 베테랑
그의 연대는 포로가 적기로 유명한 부대였으며
그 역시 평소
"전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일은 바로 적에게 포로로 잡히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다니는 참 군인이었다.
그는 1950년 주일미군 미 육군 24사단장에 재임중이었으며 한국전쟁 발발후
인민군을 막기 위해 한반도로 급파되었다.
그의 미24사단은 금강방어선-대전지구 전투에 투입되었으며
국군이 전 전선에서 퇴각할때 그의 사단은 반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사단의 대전차 전력인 채피 경전차와 3.5인치 슈퍼바주카로는
인민군 T34-85전차를 막기엔 중과부적으로 24사단 역시 후퇴를 시작했다
후퇴하는 중에도 그는 최전방의 대전차반에서
직접 수퍼바주카를 쏘아 전차를 격파하는 등 몸을 사리지 않았으며
그의 대전차반은 12대의 인민군 전차를 격파했다
하지만 결국 미 24사단은 얼마가지 않아 부대가 와해되었다
이때 한국 철도기관사 김재현을 필두로 한 한국측 철도종사자와
미군 결사대가 딘 장군 구출작전을 펼쳤으나 실패하여 대부분 사망하였다
딘 장군은 소수의 병력과 후퇴하다가, 부상병에게 줄 물을 뜨러갔다가
절벽에서 부관과 함께 굴러떨어져 남은 병력과도 헤어지고 말았다
결국 그는 약 한달 후 전북 진안에서 주민 한두규의 밀고로 숨어있던 장소를 들켜
부관은 한두규에게 사살당하고 딘 장군 본인은 인민군에게 포로로 사로 잡혔다
평양으로 압송후 고문으로 인한 기밀 누설을 우려하여 자.살을 시도하였다가 실패하고
1953년 10월에 풀려났다
. 한두규는 9.28 수복 후 경찰에 체포되어 1954년 9월 23일에 “불법체포죄”로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으나 그는 무죄를 주장하였다. 복역 중에 딘 소장이 그의 감형을 탄원하여 1957년 좌익수전향자로 감형되어 출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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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총 든 빨갱이였나보지
진정한 빨갱이 십새기네
음 본인도 위기의 상황에서 직접 앞에 나서 싸웠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마지막에 잡히기전엔 부관도 사살 당한거보나 끝꺼지 저항하다 잡힌것같아..
한두규는 어떻게됬냐
. 한두규는 9.28 수복 후 경찰에 체포되어 1954년 9월 23일에 “불법체포죄”로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으나 그는 무죄를 주장하였다. 복역 중에 딘 소장이 그의 감형을 탄원하여 1957년 좌익수전향자로 감형되어 출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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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밀고인데...그 주민이 사살했다고?
주민이 총 든 빨갱이였나보지
진정한 빨갱이 십새기네
결론은 한두규 쉽샤끼?
"전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일은 바로 적에게 포로로 잡히는 것이다."
이거 굉장히 위험한 발언인데... 전쟁포로들 단체능욕...
잡히느니 싸우다 죽으라는건데 정작 본인이..
음 본인도 위기의 상황에서 직접 앞에 나서 싸웠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마지막에 잡히기전엔 부관도 사살 당한거보나 끝꺼지 저항하다 잡힌것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