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 이영은 순조임금과 순원왕후의 1남 3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런데, 이 세자의 자질이 남달랐나 보다. 안동김씨와 반남박씨의 세도에 무력했던 아버지 순조와 달리, 학문도 출중했고 무너져 가는 조선왕조를 재건해 보려는 개혁의지도 컸다.
또, 가족을 향한 애정도 신실했다. 어머니의 생신을 위해 궁중 무용극인 '정재'를 창작했는데, 그 가운데서 '춘앵전'이란 대표작품은 이른 봄날 아침에 노래하는 꾀꼬리의 자태를 무용화 한 것이다.
은유적 시적 언어를 서정적 몸적 언어로 치환한 이 국극은 예술성과 창조성을 동시에 이루어냈다는 평가다. 오늘날 효명세자가 태어났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연출가가 되었을 것이다.
효명세자는 효성뿐만 아니라 형제애도 남달랐다. 그의 문집인 경헌집에는 누이들에게 보낸 시들이 여럿 실려 있는데, 대게 시부모님을 공경하고 남편을 잘 섬기라는 유학적 테제들을 담고 있다.
유교국가인 조선왕조 왕실의 공식 문집이므로 효명세자의 시를 싣는데 있어, 의도적인 편집과 산삭이 있었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잘 알려진 시가 효명세자와 명온 공주가 주고받은 화답시이다. 전형적인 당나라의 시풍이다.
九秋霜夜長(구추상야장)
獨對燈火輕(독대등화경)
低頭遙想鄕(저두요상향)
隔窓聽雁聲(격창청안성)
가을의 서리 내리는 밤은 길기도 한데
홀로 등잔불의 가벼움을 대하였습니다.
머리 조아려 멀리 고향을 생각하옵는데
창 밖에는 기러기 우는 소리만 들립니다.
-명온공주(明溫公主)-
답명온(答明溫) 명온에게 답함 - 효명세자
山窓落木響 (산창낙목향)
幾疊詩人愁 (기첩시인수)
瘦月夢邊苦 (수월몽변고)
殘燈爲誰留 (잔등위수류)
산창(山窓)에 나무 잎 떨어지는 소리
시인의 시름은 몇겹이나 될꼬.
파리한 달은 꿈결에 괴로운데
쇠잔한 등잔은 눌 위하여 머무르는가.
모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효명세자와 명온공주는 정신적으로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맞동생이라 나이 차도 그리 나지 않고, 문예도 출중하여 지음(知音)으로 서로를 인정한 듯하다.
명온공주는 14살에 동갑내기인 김현근에게 하가하였는데, 이는 순원왕후 김씨와 영안부원군 김조순의 뜻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부마 간택이 김현근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는 증거가 실록과 승정원 일기에 뚜렷이 나타나 있다.
동녕위 김현근은 선원 김상용의 8대손으로 청음 김상헌(김상용의 친동생)의 9대 외손인 명온공주와는 이성 친족이다. 조선시대에 이성친족 간의 혼인은 아주 흔했기 때문에 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난의 여지가 있다면, '왜 굳이 왕가 사위를 김조순의 안동김씨 집안에서 구했는가.'라는 점이다. 차녀인 복온공주 역시 안동김씨 집안인 창녕위 김병주에게 시집을 갔다.
이쯤되면, 왕실과의 족적 결합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안동김문의 의도가 읽혀진다. 조선팔도 전역에 안동김씨 세상이 되었다는 풍문이 도는 것은 당연했을 터이다.
안동김씨 후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동녕위 김현근은 발작증세로 표현되는 정신질환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어린 나이에 부마가 되어 서울로 올라와, 새로운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듯하다.
승정원 일기엔, 그가 부모를 뵈기 위해 여러 번 청을 내어 고향인 충청도 홍양으로 내려간 사실이 있다.
동녕위의 정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왕실과 안동김문에서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허사였고 마지막으로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했다고 전한다.
이때, 대나무 칼 치는 소리가 요란해 인근 백성들에게 민폐가 되어, 동녕위궁을 죽도궁이라 불렀다. 현재,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근이다.
명온 공주가 혼인하고 궁을 나간 지 이틀째 되는 날, 별안간 세자가 공주가 사는 동녕위궁을 직접 방문한다. 아마도, 명온공주의 형편이 궁금했을 터이다.
2년후, 순조임금이 효명세자와 함께 다시 명온공주의 집으로 거동한다. 대소신료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국조의 전례가 있었다는 사실을 들어 강행했다. 게다가 승지와 사관까지 물리쳐 대화 내용을 비공개화 했다.
다음날 승정원 일기에는 임금의 용안에 미소가 가득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짐작컨데, 순조가 살펴본 공주의 결혼 생활이 원만했음을 알 수 있다.
몇달 후, 동녕위 김현근은 명예직이긴 하지만 오위도총부 도총관이 되어 부임한다. 그에게 정신병이 있었다면 치유가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사이에 대리청정을 하던 효명세자가 갑자기 피를 토하며 세상을 떠난다. 낙망한 명온공주 역시, 2년 후 세자를 따라 하세한다. 순조임금이 세자를 대신해 국정에 복귀하지만, 극심한 무력감에 시달리며 몇년 후 승하한다.
한편, 동녕위 김현근은 연행사신단의 대표가 되어 청나라를 두번이나 방문했고, 사자관이 되어 임금의 옥책문을 쓰기도 했다.
고종 임금대엔 종친의 정치참여가 완화되면서 판의금부사라는 종일품의 실직을 맡는 등 승승장구하며 출세가도를 달린다.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면 절대로 맡을 수 없는 직위들이다.
역사의 행간을 읽기는 어렵다. 하지만, 짐작은 할 수 있다. 정사와 야사가 공존하는 현실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는 오로지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6살난 효명세자가 외삼촌인 김유근(김조순의 큰아들)에게 보낸 친필편지 (황산 김유근 종가 소장, 현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에 기증)
내구 승지 개탁/ 즉승심 야간기후만중 불승희행/ 이봉당과 식지심미/ 후일우위멱송 망망/ 불비
"외백부이신 승지께선 열어보십시오.
편지를 보고 (승지께서) 밤사이 평안히 보내셨다니 다행함을 이기지 못합니다.
두 봉지의 청나라 과자를 먹어보니 너무나 맛있었어요!
나중에 또 보내주세요.
바라고 또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효명세자.
오예 1빠
추천
글 읽으며 왠 무당? 이랬는데 정말 치료해줄 줄이야 ㅋㅋㅋ
선추천후 정독
신기하네요 ㄷㄷ
맨날 한국사에서 대충 훑고 지나가는 부분이었는데 이런 비하인드가 있군요. 신기하네요.
정신질환이 있다가 나아졌다는 것도 신기하고...내리기 전까지는 흔한 뻘짓인 줄 알았더니;;
이래서무당안믿습니다..
추천하려고 급히 로그인했네요
정말 동티가 나서 그랬을까요? ㅜㅜ
감상후 추천
역시 추천.. !
추천합니다!!!
마지막 간찰이 정말 인상적이군요.
세자가 직접 쓴 글이겠지요??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한화송창식//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육식주의// 감사합니다.
초연하게// 저도 신기해요~ 초자연적 현상이 있긴 하나봐요...
비나리// 감사합니다.
물고기버거//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치킨맨// 개인적인 일화가 담긴 미시사가 재밌죠! 감사합니다.
한조만해요// 저도요! 감사합니다.
냄비의 요정~// 저도 궁금합니다. 역사의 미스테리인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모요바돌// 감사합니다.
골글정호// 네. 친필편지이고, 외삼촌인 김유근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던 예찰(세자가 쓴 편지)이라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한량도령// 감사합니다!
박보검의 수려한 얼굴과 그 통통하니 귀여웠던 공주역할 배우의 모습을 떠올리며 잘 읽었습니다.
이렇게 안타까운 이야기가 있는 줄은 몰랐군요. 늘 감사합니다.
항상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박남 박씨가 아니라 반남 박씨입니다.. ^^
나는나대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훈남김차장// 정말 감사합니다.
붉은꽃바리// 아이고!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갑자기 피를토하고 죽었다고? 암살이구만
조선시대를 막연히 유교국가로 알고 있어서 친족간 혼인이 어떻게 가능했지? 했는데 이성친족은 터부가 아니었군요. 저 기준이면 지금은 오히려 불가능한 혼인이죠?
개미할끼// 사실은 효명세자가 어릴적부터 담배를 좋아했답니다. 최근에 발견된 외삼촌 김유근에게 보낸 세자의 편지를 보면, 담배를 무척 좋아했던 거 같습니다. 아마도 폐질환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작년인가 그전인가 박보검 나온 드라마가 모티브로 땄던 시대지요?
박보검이 효명세자 이영 역할이고 명온공주도 나왔던거 같네요.
잘 봤습니다
[리플수정]폭풍디스// 옛날 시골에 가면 이종사촌(이모의 딸)이랑 혼인하는 경우도 가끔 있고, 숙모의 조카랑 결혼 하는 경우는 상당히 흔했는데 오늘날엔 오히려 불가능할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익명6464// 네 맞습니다. 엠비씨 '구르미 그리 달빛'이란 드라마가 효명세자 이야기 였죠. 감사해요!
오늘도 덕분에 하나 알아 갑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잘 봤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무속인을 가까이 하면 안되는 건가 봅니다...
오늘도 재밌게 보고 추천누르고 갑니다 ㅎㅎㅎ
오너캐는 이번에 처음 등장하는것 같군요?
매우 재밌는데 만화에 오타가 있네요.
굳은 일 X, 궂은 일 O.
올해도 재미난 역사툰 기대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와 어지간한 웹툰급 퀄인데 네이버같은데 도전 안하시나요? 할만할거같은데
익명6464// 정혜성이 명온공주였죠.
선감상 후추천
오방색 우주 기운 박씨와 최씨가 생각나네요 ㅎㄷㄷ
늘 잘 보고 있습니다!!
과자맛나용 또 보내주세요 ㅋㅋ넘 귀엽네요 ㅋㅋ
이로서 배우는 교훈, 과자는 맛있다. 두번 먹어도 맛있다. 계속 먹고 싶어진다.
역시 미친데는 매가 약인건가...
불펜에서 많은 분들이 순조를 조선시대 최악의 군주로 꼽으시길래 며칠전에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효명세자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이 역사툰이 딱 올라오다니 ㅎㅎ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기다렸습니다 재미있게 잘 보고갑니다!!
아 직접 그리신 거군요. 잘 봤어요#
채색까지.. 진짜 프로의 솜씨네요
이정도면 출판해도 손색이 없을듯 합니다.
갑자기 각혈하면 폐렴 아닌이상 암살일듯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 추천! 후! 읽기!!
넘나 재밌게 보고있어요. 책 내시면 칼구매 할겁니다 껄껄껄
좋은글엔 추천!!
추천 후 정독...
이 그림체 맹꽁이 서당 그 그림체랑 비슷하네요 잘 봤습니다
친중 매국노들이 망친 조선이 안타깝기만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