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박종철열사 31주기 입니다.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열사는 국가의 권력 기관에 의해 불법 연행되어 남영동에서 물고문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늘 문재인 정부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은 민주화 이후 국가권력은 국민 편이 아니었다며 국정원 검찰의 개편안을 발표했습니다. 국정원 민주화, 검찰 민주화 조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지만 더이상 민주주의를 위해 잡혀가고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은 없어야 합니다. 원래 민주주의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2500년 전 그리스 아테네 민주주의는 역사상 최초의 실험이었고 다시 민주주의가 출현하는 데는 그 후 2000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엊그제 뉴스를 보니 보수적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여성에게 축구장 출입을 허용했다며 국제뉴스를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사우디여성들이 히잡을 쓰고 축구장에서 스마트 폰으로 경지장면을 찍는 방면이 뉴스가 되는 나라가 사우디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우디는 3년 전인 2005년에서야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이것이 비단 사우디만의 일은 아닐 것입니다. 눈을 돌려 우리나라에 적용시켜보면 불과 30년 전의 대한민국도 그와 흡사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무 감각 없이 대통령 선거를 하지만 30년 전만해도 대통령 투표권을 국민에게 달라고 말하면 잡혀가고 고문당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친북 빨갱이로 몰렸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식으로 납득이 갑니까?
우리가 사는 오늘은 선배 열사들이 그토록 열망했던 미래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124년 전 1894년에 동학농민들이 “인간은 평등하다. 민심이 천심이다.”라며 봉기했습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이지만 124년에는 이것은 역모였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1894년 동학 농민들로부터 시작되었고 민주주의를 하자고 주장했던 수많은 대한의 민중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의 유해진이 고문폭행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저는 이 장면에서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채 어느 방향에서 날라올지도 모르는 발길질과 주먹질로 두려움과 공포심에 가득찬 저 정청래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저렇게 내가 당한 것과 똑같이 당했을까?
1988년 6월 2일 오후 2시. 스물네살의 청년이었던 저 정청래는 건국대 조통특위장으로 사회과학관 앞 광장에서 도루코 면도칼로 혈서를 쓰고 있었습니다. “미제축출 조국통일” 조국통일 특별위원장으로 소위 동을 뜨던 날 저는 수배되었습니다. 구속을 각오하고 학우들 앞에서 한민족 한핏줄을 가진 남과 북이 언제까지 서로 반목하고 싸우며 지낼 것인가? 이별이 너무 길다고 슬픔이 너무 길다고 우리는 만나야 한다고 목에 힘주어 말하던 그날이후 저는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낮에는 가발을 쓰고 안경을 쓰고 경찰의 눈을 피해 활동하고 밤에는 총학생회실 소파에서 책상위에서 쪽잠을 잤습니다. 두세달 그렇게 못 먹고 못자니 허리도 아프고 온돌방이 그리웠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동부지구 연합집회가 우리 학교에서 열리고 3천여명의 학생들이 집결했습니다.
몸을 숨기기 좋다고 생각한 나는 군종 속에 몸을 의탁해 후문을 빠져나가 후배 자취방에서 1박을 하기로 했습니다. 후배 자취방에서 오랜만에 라면도 끓여먹고 온기를 느끼며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뿔싸~학내 프락치도 군종 속에 몸을 숨겨 나를 미행하기에 좋은 조건이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학내 프락치에 뒤를 밟히고 말았습니다.
“야~이xx들. 꼼짝 마. 파바박~” 일이 터졌다. 십여명의 건장한 안기부 요원들이 좁은 방을 이리저리 날라치기하며 같이 잡을 자던 후배 세병을 제압하고 이불을 씌웠다. “고개 쳐들면 뒈질줄 알아. 너 이 xx 일어나. 퍽퍽퍽...”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곤히 잠을 자다가 새벽 2시에 벌어진 일이라 도무지 영문을 모르고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우악스런 주먹이 내 얼굴을 때리고 발길질에 복부를 맞고 쓰러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몸은 어느새 안기부 봉고차에 태워졌고 두 팔은 뒤로 꺽여 수갑이 채워졌다. 차가 내 몸을 실고 어디론가 가고 있어 궁금해 고개를 쳐들자...“어디 고개를 쳐들어. 이새깍~으으윽” 당수로 내 고개를 쳤다. 그 순간 힘이 쭉 빠지고 고개가 늘어진 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나를 실은 봉고차는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잠시후 그들은 내 허리띠를 풀고 뒷춤을 잡은 채 내리라고 했다. “고개 쳐들면 죽을 줄 알라. 앞으로 가...” 네명이 나를 에워싸고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호텔인지 모텔인지 분간이 안 갔다. 을지로 어이쯤으로 어렴풋이 기억을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장소가 어디인지 모르고 나를 연행한 안기부 요원들 얼굴을 보지 못해 기억이 없다.
내가 그들에 에워싸여 방에 도착하니 옷을 벗겼다. 팬티만 남긴채 발가벗겨 졌다. 그리곤 수돗물을 크게 틀었다. 수돗물이 콸콸콸 쏟아졌다. “너 배후가 누구야? 조혁이 어딨어?” “모릅니다.” “이 xx 봐라” 퍽퍽퍽~~~집단폭행과 고문이 시작되었다.
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어디서 날라 올지도 모르는 주먹질과 발길질을 피할 곳은 없었다. 초라한 내 몸으로 온몸으로 그 폭행을 감당할 수밖에. 눈을 뜨고 맞으면 움찔 움찔 충격을 줄일 수도 있었건만 나는 어디서 날라 올지도 모르는 폭력 앞에 그저 그 반대 방향대로 나동그라져 ㅅㅇ할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뒤에서 발길로 뒤통수를 차면 이마와 코를 박도 앞쪽으로 날라가 떨러지고 주먹질로 앞이마를 때리면 뒤통수를 방바닥에 찧으며 쭉 밀려 나가떨어지는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에서 때리면 왼쪽으로 쓰러지고 왼쪽에서 때리면 오른쪽으로 넘어지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들에게 지지 않은 길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아무리 아파도 울지 않는 것, 아무리 두려워도 쓰러지고 널부러져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때리라고...넘어지고 쓰러졌어도 다시 일어나 정좌제로 앉아 있는 것. 그러면 또 때리고 또 쓰러지고...또 일어나 앉으면 또 때리고...나는 지지 않으려고 참으로 공초스런 밤을 지새웠다.
서너시간을 그렇게 맞았을까. 수돗물은 계속 쏟아지는데 얼굴과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만신창이가 되었건만 귀속의 고막은 파열되지 않았나 보다. 어떤 안기부 놈이 한마디 했다.
“야! 이 새x야. 조국통일도 좋지만 좀 쳐 먹으면서 해라. 몸이 이게 뭐냐?”
당시 가뜩이나 깡마른 체격에 수배 생할이라 예민하고 못 먹고 못 자서 몸이 말이 아니었다. 지금 정상 체중 175cm에 72kg에 턱없이 모자라는 52kg이었다. 허리둘레 26인치. 이들이 보기에도 좀 안 돼 보였을까. 깡마른 청년을 사정없이 죽지 않을 만큼 때리더니 그들은 폭행을 멈추었다.
눈물을 꾹 참으며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그들은 다시 수갑을 채웠다. 이 곳에 꿀고 올때처럼 그들은 허리띠를 뺏고 네명이 나를 에워싼 채 봉고차에 태웠다. 차가 시동을 걸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온 몸이 피멍 투성이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데도 힘이 들었다. 물어 보는 것도 자존심이 상했다. 이 새벽에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 느낌으로 새벽이긴 한데 이 새벽에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한참을 달렸을까. 봉고차 안에 쳐졌던 커텐이 잠시 살랑하고 걷어졌을 때 무거운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다.
동부경찰서. 우리 학교를 담당하던 동부경찰서 정문 푯말이 보였다. 차가 덜컹 하더니 동부경찰서 정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나를 동부경찰서에 이첩하러 온 것이다. 아~이제 살았다. 경찰 조사는 받겠지만 죽음과도 같은 폭행은 이제 없겠구나. 아~이제 살았다.(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1빠?
역시 1987을 직접 겪은 글들은 참 비통하네요..
[리플수정]3빠 오오오
정청래님 응원합니다
ㅠㅠ
아..고초를 많이 당하셨군요..
잘 읽었습니다.덕분에 좋은 시절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래형 다음편은 내일인가요?
미제축출....
NL 출신이 지금은 왜 문재인한테 붙어서 기웃거리는지...
[리플수정]오 청래형 그 시대를 글로 읽으니 헐...
저는 1987 몇년 후에 대학들어갔지만...
그 시기에 갔으면 과연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못했을 듯.
저 역시 시대에 큰 빛을 지고 살고 있습니다.
흠..
청래형 늘 응원합니다.
1987보면서 무겁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수많은.. 알려지지 않은 박종철,이한열 열사와 같은 분들이 계시겠죠.. 고맙습니다.
같은 경험을 하고서도, 변절해서 저편에 서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더 놀랍습니다.
안타깝고 화나는 마음이 공존하기도 하고요.
다음편 빨리 올려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ㅠ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는 지금이 얼마나 좋은지......
감사합니다
추천합니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