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인권변호사로 부산 국민추도회를 이끌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30년 전 고(故) 박종철 열사의 부친댁을 자주 찾아갔던 일화가 뒤늦게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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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이들과 영화 상영에 앞서 30년 전 기억들을 소재로 짧은 대화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당시 부산민주시민협의회(부민협) 소속으로 '박종철군 국민추도회'의 준비위원으로 시국집회를 이끄는 등 영화 1987 속 실제 주인공과 인연이 깊다.
문 대통령은 1987년 5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의 시발점이 된 '부산 국본'을 결성해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 호헌철폐와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민주화 운동을 전개했다고 자서전 '운명'에서 밝히고 있다.
자서전에는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부민협 소속이었던 문 대통령이 1987년 2월7일 '박종철군 국민추도회'를 벌이다가 경찰에 연행됐던 일이 자세히 묘사된다.
부산 중심지 사찰인 다각사에서 추도회를 개최하려 했지만 경찰이 봉쇄한 탓에 남포동 부산극장 앞 도로로 장소를 옮긴 일, 노 전 대통령이 즉석 추도사를 하고 연좌농성을 벌이다 문 대통령과 함께 경찰에 연행된 일도 함께 서술돼 있다.
전날 환담에 참석했던 문성근씨는 문 대통령을 가리켜 "6월 항쟁 때 부산 국본에 계셨지 않느냐"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이에 문 대통령은 "(박종철 부친)댁으로 찾아뵙곤 했었다"고 말했다.
박 씨의 아버지는 당시 부산 영도의 한 양수장 관리직원으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옆에 있던 조 수석은 "영도 양수장 근처에 사택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에 박종부씨는 "네 그랬다. (문 대통령은) 그 당시에 노 전 대통령과 같이 찾아오고 그랬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참 그 때는 아버님이 공무원을 하셨기 때문에 굉장히 입장이 난처해 하는 등 안팎으로 걱정이 많으셨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경찰의 화장 강행 방침에 맞서 동의서에 서명하면 안된다고 설득하기 위해 부산 집을 찾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 속에서는 이 부분이 생략됐다.
영화 속 박 씨의 아버지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도 아무말 없이 빈소를 지키고 있던 것으로 그려진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입장의 난처함은 공무원 신분으로 군부독재 당시 경찰의 아들에 대한 화장 지시를 묵묵히 따를 수 밖에 없던 아버지의 상황을 말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 수석은 "(아버님은) 양수장 관리직원이었는데 직원분들이 아버님에 대한 감시도 하고 압박도 하는 이런 게 있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빨리 화장하라는"이라며 화장 동의를 요구받은 상황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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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v.media.daum.net/v/20180108180118656
현대사와 함께 했네요.
곳곳에 파파미 끝없이 나오네요.
일단 스크랩 선추천 드립니다...
진짜 달님의 파파미는 어디까지일지 놀라워요..
포레스트 문프
의인의 삶
그냥 살아온 삶이 파파미네요 ㅠ
[리플수정]미쳤네요 화장동의서에 서명하면 안된다고 찾아가셨다니... 현대사 그 자체네요
ㅠㅠ
진짜 포레스트문프
오 새로운 파파미네요.
그분은 언제나 중요한곳에서 묵묵히 하실일을 하셨다..
존경 또 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