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시에 자리한
웅진백제 시대의 왕실 무덤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이곳에 있는 무덤 중
한 곳에서 발견된
어금니를 토대로
국가유산청에서
무덤의 주인을 특정했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에는
왕릉급 고분이 여럿 있지만
도굴되지 않은 무령왕릉을 제외한
그 위쪽의 무덤 4기는
일제강점기에 모두 도굴당해
무덤의 크기와 위치로 보아
왕릉으로 추정은 했지만
정확히 어떤 왕의 무덤인지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1930년대에 도굴된 이후
거의 100년이 지난 2023년부터
국가유산청이 이 무덤들에 대한
재발굴 및 재조사에 착수했는데
그 중 2호분에서 발굴된
어금니 2개를 대상으로
법의학 분석에 착수,
2호분의 무덤 주인을
백제의 제23대 임금
삼근왕으로 특정했다.
사람의 치아를 토대로
치아 주인의 연령을 판단할 때
치아에 도드라진 교두가
마모된 정도인 교모도를 보는데,
법의학 분석 결과
2호분의 어금니 2개는
오른쪽 위턱에 있던
둘째 작은 어금니와
첫째 큰 어금니로
둘째 작은 어금니의
교모도는 아주 적었고
첫째 큰 어금니의
교모도는 약간 있었기에
20대가 되기 전인
10대 중후반 연령으로
추정되었다.
웅진백제 시대에 재위한
백제의 임금은
제22대 문주왕(재위 : 475~477),
제23대 삼근왕(재위 : 477~479),
제24대 동성왕(재위 : 479~501),
제25대 무령왕(재위 : 501~523)인데
이들 중 문주왕이
재위 3년 만에 암살당하자
13세에 즉위했다가
2년 만에 승하한 삼근왕이
법의학 분석 결과와 들어맞았기 때문에
국가유산청은 2호분의 주인을
삼근왕으로 특정할 수 있었다.
아울러 삼근왕릉으로 특정된
2호분 주변의 다른 무덤들도
삼근왕과 혈연관계가 있는
임금의 왕릉일 가능성이 큰데,
가령 2호분과 인접한 1호분의 경우
2호분과 규모와 구조가
거의 비슷한 점 및
문주왕과 삼근왕이
각각 개로왕의 아들과 손자로
개로왕의 직계 혈통인 점과
승하 시기가 2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1호분을 문주왕릉으로 추정했다.
이번 재조사를 통해
2호분과 3호분에서
새로 발굴된 유물 중
황색과 녹색 유리구슬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것과 동일하게
태국산으로 밝혀졌는데,
국가유산청은 백제가
고구려에 밀려
한강 유역을 상실하고
웅진으로 남하한 후
국가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중국, 일본은 물론
멀리는 동남아시아까지
광범위한 교역망을
가동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태국산이라니
중국과 교역과정에서 흘러흘러 온걸수도있겠지만 고대의 무역인데도 의외로 광범위한게 재밌음
태국산이라니
중국과 교역과정에서 흘러흘러 온걸수도있겠지만 고대의 무역인데도 의외로 광범위한게 재밌음
육두구 무역을 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