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마 군단병들 그거 생긴것만 멋있지 실제로는 다 자기 장비 사들고 가야했다더라!
그리스물이 덜 빠졌던 공화국 시절까지는 이말이 맞았다
시민들이 각자 가진 재산에 따라 장비를 챙겨갔을때니까
애초에 이 당시의 시민은 사비로 자기 장비를 가지고 전쟁에 참여할수있는 성인 남성이거든
그래서 이때 채용했던 제도가 마니풀라 대형인데
돈없고 가난한 무산층, 빈민층이 투창 경보병(벨리테스)
젊은 20대 청년층이 모루를 (하스타티)
노련한 중장년 중산층이 충격보병 및 주전력을 (프린키페스, 트리아리)
그리고 말을 가질수있을정도로 부유한 귀족들이 기병(에퀴테스) 를 맡았다
이렇듯 공화정까진 소득분위에 따라 병종이 결정되었지만
공화국 말기 마리우스의 군제개혁으로 모병제가 도입되면서
필룸은 엄연히 국가에서 지급하는 표준 물자가 되었다
Adrian Goldsworthy, The Complete Roman Army (2003)
필룸의 제작은 표준화되어 국가에서 직접 생산과 보급을 맡는 중앙화된 체계가 있었고, 대량 생산되어 단가를 낮추기까지했고
Yann Le Bohec, The Imperial Roman Army (1994)
또한 로마군은 개인 과실이 아닌 전투 중 장비 손실은 무상으로 재보급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공화국 시절이 아니고서야 일선 병사들이 돈 때문에 싫어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는것
비슷하게 다키아 원정때는 팔크스에 군단병들 팔목이 뚝뚝 잘려나가니
짤처럼 강철 팔보호대를 추가로 보급하기도 했다
??? : 필룸 다트화된게 사서 써야해서 비싸서 재활용 되는 다트로 바뀐거 아니었음?
필룸이 다트화가 이루어진 가장 큰 이유는 전장환경과 주적의 변화로 봐야한다.
공화국~제정까지의 전장인 카르타고, 그리스지방, 켈트계열의 히스파냐, 갈리아 지방부족과 게르만계열 부족들과의 정복전쟁에서는 보병 중심의 회전이 이루어졌지만
주전선이 동방 즉 소아시아로 넘어가서 페르시아나 파르티아와 같은 국가가 주적이 되었을 때는 기병전을 위시한 기동전 성격을 띄게되니
상대적으로 무거워서 휴대가 불편하고 재사용이 불가능한 필룸보다 가벼워서 여러발 들고다니며 던지고 주워서 재사용이 가능한 다트형태로 바뀌면서 화력강화를 꾀하게 변한것
요약 : 로마는 고대였지만 제국은 제국이라 장비 줄건 나라에 다 줬음
율리우스 시저 나오기 전에
개인 무장은 불가능 해져서
유력자들이 무장을 시켰고
그게 사병화게 되엇지
그게 황제 제도가 나오는 토대가 되엇고
율리우스 시저 나오기 전에
개인 무장은 불가능 해져서
유력자들이 무장을 시켰고
그게 사병화게 되엇지
그게 황제 제도가 나오는 토대가 되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