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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가난한 줄 몰랐다.

나는 싸구려 음식을 먹고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못 켜고
아무리 추워도 난방을 못 때고
얇은 이불을 겹겹이 겹쳐
전기장판 하나에 의존해 겨울을 나야 했음에도
나는 가난한 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이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당연해서 이 가난이 안좋은 상태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항상 돈이 없다. 돈이 없어서 못한다.
이런 말을 달고 살았음에도.
내가 가난하다는 걸 몰랐다.
앞으로 더 나아질 선택권같은 건 생각하지도 못했다.
언제부턴가 가난하다는 내 상태를 지우고 내 멋대로 행동했다.
아마도
계속 반복되는 이 지독한 가난에
내가 너무 지쳐버린 것 같다.
너무 지쳐서 그냥 이 현실을 잊어버리고
숨만 쉬기로 작정한 인간같다.
날이 한번 더 밝으면 나는 더 늙어갈 뿐이라는
레미제라블 속 노래가 왜 이렇게 가슴에 박히는지 모르겠다.
한 때는 가난한 게 나에게 이득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나중에는 이런 시절을 다 딛고 일어선 나의 무용담을 장식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단단한 인간인지 시험해보는 거라고.
중요한 건 돈 그자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돈을 끌어들이는 한 인간의 능력이라고.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시험에서 탈락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사람을 버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나에게 없는 건 돈 외에도 많으니.
아마도 내가 너무 잠을 못자서 그런 거 같다.
생각보다 내가 가진 게 많은데
그것들은 무시하고 내가 없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글을 쓰니까 더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진다.
끝없는 수렁으로 나를 더 밀어넣는 느낌.
내가 가졌던 생각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한치 앞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까
잠시 좌절한 것 뿐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해나가면 된다.

댓글
  • 365샤브샤브ok 2017/12/07 10:08

    응원합니다. 아주 가끔은 나를 위한 시간을 낸다든지 작은 선물을 한다든지 그렇게 나를 응원해주세요.

    (CzBi6W)

  • 스톰레이지 2017/12/07 12:48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CzBi6W)

  • 아름다운비행 2017/12/07 12:51

    화이팅!!!
    몸 컨디션 안좋으면 부정적인 생각에 약해지기 마련이에요.
    그래도 가진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옳은 생각에 열렬히 응원보냅니다. ^^
    무언가를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인내'더라구요.
    님의 밝은 미래를 위해 화이팅!! ^o^/

    (CzBi6W)

  • 물중독자 2017/12/07 12:58

    저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돈, 건강, 사랑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서 앞으로 더이상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는 얻는 것만 있을 예정입니다.

    (CzBi6W)

  • 변신할망구 2017/12/07 13:03

    할 수 있는 일만 해나간다.  정말 공감하는 말입니다.  가난이 자존심과 정체성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꺾이는 것도 버티는 것도 나의 마음이니 고요와 평정과 평화와 강인함을 잃지 마세요

    (CzBi6W)

  • 다시민주주의 2017/12/07 13:07

    근데 글을 정말 잘쓰시는 것같아요.
    가진게 별로 없다고 하셨지만
    제가 항상 동경해 오던 능력을 가지고 계시네요.
    (저는 그냥 공감하는 능력밖에 없지만^^;;)
    힘내세요...응원할께요.

    (CzBi6W)

  • 이스투아르 2017/12/07 13:11

    저도 대학나오고선 취업을 포기하고 7년째 반백수로 잡일만 하다보니 몸도 마음도 많이 상하더군요. 재능도 그러려니 하고, 노력도 부족하고, 운도 없다고 골똘히 생각도 해봅니다. 물론 수렴하는 대답은 가난이 가난을 낳았구나 싶습니다.
    가급적 삶의 자취를 깊이 남기지 않고, 다만 선하게 살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보면 사람의 삶이 그리 대단한 건 못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라고 일본 통일의 위업을 이루고 조선침략까지 행한 인물이 있지요. 천한 신분에서 지존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누릴 거 다 누리고 천명을 다해 죽었는데, 그의 후손은 일본 내전에서 패해 소멸해버렸습니다. 현대에 와선 여러모로 폄하될 수밖에 없겠지요. 내 한 몸이 아무리 잘 나도, 운 마저 좋아도 이룰 수 있는 업적에는 한계가 있는 거 같기도 합니다.
    뭐, 도요토미보다 노력과 재능, 이룰 업적은 후달려도 쪼매 덜 나쁜 짓 하고 산다고 치면 덜 억울할지도요 ^^;

    (CzBi6W)

  • celine 2017/12/07 13:40

    장미와 가시 / 김승희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 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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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정한겨울 2017/12/07 13:49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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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단증상중 2017/12/07 14:01

    많은사람들이 비슷사게 살아가고있죠
    한번씩의 기분전환을 위한 호사도 누려보고
    식사와 잠 이 두가지가 무너지면 모든게 무너지니
    아무생각없이 푹자고 식사도 챙기려고 노력해보시고
    아직 시간이 많잖아요
    산을 오르는 길은 힘들고 좌절도하고 내려갈까라는 생각도 계속들지만
    꾹참고 오르면 상쾌함과 뿌듯함을 느끼듯이
    그냥 산이 조금더 높을 뿐이에요
    지금은 지워졌지만 예전에 올리셨던거
    이쁘시고 아직 창창하신걸요
    이제 주말이니 푹쉬시고 좋아하시는 음식도 드시고 다시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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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zzmania 2017/12/07 14:46

    어릴적 밤에 찹쌀떡소리 들리면 저건 부자들만 사먹는거라고 생갔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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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고고학자 2017/12/07 14:48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글솜씨를 가지셨네요. 그것만큼은 가난해 보이지 않습니다.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CzBi6W)

  • 양파맛푸딩 2017/12/07 15:03

    저도 가끔씩은 저처럼 사회적 영향력도 경제력도  없는 사람이 왜 사나 싶을 때가 있더라구요... 어차피 이 사회에서는 나같은 사람은 존중받지 못할텐데 왜 억지로 태어나게해서 살게할까...  참 그들은 이기적이구나... 지들은 편하게 살면서 지들의 편의를  위해 나같은 사람에게 출산과 희생을 강요하는구나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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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넝쿨맘 2017/12/07 15:09

    다들, 사람과 돈에 여유가 있도록 노력하며 살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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