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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색시






여러분들 친구 중에는 자기는 양반의 피를 타고 태어났네, 본관이 어디고 무슨 파의 몇 대 손이라느니... 하는 친구들 가끔씩 계신가요?


제 아주 친한 친구 놈 하나도 그런 말을 아주 입에 붙이고 사는 놈이 하나 있습니다.


뭐 그렇다고 하는 짓 자체가 딱히 양반스럽지도 않아서 그 누구도 그 놈의 혈통이 얼마나 특별한지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 놈의 할아버지댁을 가 본 사람이라면 


그 아무도 그 친구의 거들먹거림이 근거없는 빈소리만은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친구의 할아버님 댁은 그 장소 이름만 말해도 다들 잘 아실 "양반들이 모여산다"는 고장입니다.


거기에다 할아버님 댁 자체를 설명하자면.....한마디로 "민속촌" 이라고 하면 딱입니다.


집 건물도 한 채가 아닌 안 채, 바깥 채, 부엌, 곳간으로 쓰여졌다는 지금의 창고부터 시작해서...


건물이 몇 채씩 따로 지어져 있고 그 모두가 고풍스러운 기와 지붕을 이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담장들 마저 기왓장을 이고 돌려져 있지요. 




지금이야 그 친구와 제가 시간 맞춰 어디 놀러 간다는게 웬만해선 이루어지기 힘든 아주 대단한 행사가 되어 버렸지만 


몇년전만 하더라도 여름이 오면 꼭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항상 친구놈 할아버님 댁에 가서 부비대다 오곤 했습니다.


도시 생활이 익숙한 저와 친구에겐, 솔직히 거길 가도 특별히 신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둘 다 툇마루에 앉아 소나기 내리는 것만 보며 한 나절 시간을 보내도 하나도 안 지겨운 요상한 취향을 가진지라 


일년에 한번 가게 되는 할아버님 댁 방문은 그 집 자체가 저희의 놀이터였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올리는 얘기는 이 친구의 어머니께서 이 집에 시집 오셨을 때 일입니다.





친구 어머니께서는 시집오자마자 한 세달 동안을 주말 부부로 지내셨다고 합니다.


처음에 친구 아버님과 어머님께서는 결혼하시기 좀 전부터 신혼살림을 차릴 집을 보러 다니셨다고 합니다.


여기 저기 다녀봤지만 맘에 딱 드는 집은 겨우 하나뿐이었고 


그 집도 결혼식 날로부터 세 달은 지나야 당시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이사를 나가게 되어 있는 처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집이 이래저래 마음에 드신 친구의 부모님은 그 집을 계약하기로 하고 그 세 달 동안, 


친구의 아버님은 원래 계시던 하숙집에서 계속 직장을 다니시고, 


친구의 어머님께서는 시댁 법도도 배우고 할 겸 시댁으로 내려가서 시어른들과 함께 지내시기로 하셨답니다.


물론 주말이면 친구 아버님께서 기차를 타거나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 오셨구요.


그렇게 해서 시어른들과 함께하는 신혼 생활... 순조로운 두 달이 흘러갔습니다. 




그 큰 집에는 시어머님, 시아버님(즉, 제 친구의 할머님, 할아버님) 그리고 당시에 결혼할 나이가 안 된 친구의 작은 아버지가 사셨고 


집안 일을 도우시는 먼 친척 뻘 되시는 아주머니가 오래전부터 같이 사셨답니다. 


친구 아버님 위로는 누님 두분과 장남이신 큰 형님 한분이 계시지만 


그 당시엔 그 세 분 모두가 결혼하셔서 모두 다른 지역에 사시고 계신터라 


시골집은 그 큰 덩치와는 안어울리는 단촐한 가족 스타일이었답니다. 


그리고, 새 며느리라고는 하지만 집안일 하시는 분도 계시고 해서 


혼자 해야 하는 일거리가 너무 많다거나 


한겨울 살얼음을 깨고 냇가에서 빨래를 해야하는 시집살이 같은 그런 극적인 일들은 전혀 없으셨답니다. 



다만 어른들이 일찍 일어나시고 그에 따라 이른 아침을 드시기 때문에 그 시간 맞추어 일어나셔서,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아침 식사 상 차릴때 도와야 하는 대목이 그나마 신경을 써야하는 부분이셨다고 합니다. 


시계를 맞춰 놓고 주무셔도 새색시가 긴장한 탓이라 항상 일어날 시간 보다는 좀 더 일찍 눈이 떠지셨답니다. 



하지만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에 포근한 아침잠이 너무 달아서 '5분만 더, 5분만 더' 하는 날이 자주 있으셨는데 


그 날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딱 5분만 더 누워있자' 하고는 자명종시계를 붙잡고 잠이 살짝 들어 버리셨답니다.


그런데 잠결에 누군가가 "아씨~" 하고 부르는 소리에 얼른 일어나 보니 정말 딱 5분이 지났더랍니다.


너무 긴장한 탓에 그렇게 누가 깨운듯 눈이 떠졌나 하셨기에 


방금전 자기를 부르던 소리도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하셨답니다.



그리고 며칠후....


이번에는 그냥 새벽 잠에 푹 빠져 있는데, 또 다시 누군가 



"아씨~~" 



하고 부르는 소리에 눈이 확 떠졌답니다. 


시계를 보니 일어나려고 했던 시간보다 이십분 정도 더 흘렀고 


시계가 울렸었음에도 자신도 모르게 자명종 소리를 꺼버린듯 소리를 멈추게 하는 버튼이 눌러저 있더답니다. 



누군가 깨우는 그 소리가 아니었다면 아침부터 새며느리가 시어른들께 눈치 아닌 눈치를 보게 될 뻔 했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 소리가 처음도 아니고 해서 


너무나 이상한 맘에 문도 열어 바깥도 살펴보고 했는데 정말 아무도 없더라는군요. 


더구나 아무리 그때가 지금보다는 몇십년 전이지만 "아씨" 라는 호칭이 쓰이던 시절도 아니었기에 


너무 신기하고 이상해서 그 일을 집안일 하시는 친척 아주머니께 말씀드렸다는군요. 


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새댁이라 너무 긴장을 한탓에 새벽 잠이 얕아져서 그런가보네" 



하시더랍니다.


하지만 제 친구의 어머니께서는 그 이상한 기분을 도저히 떨칠 수가 없더랍니다. 


처음 듣지만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갓 시집온 자기가 늦잠을 자지 않도록 깨워 주는 그 목소리가 


신기하고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오싹하기까지 하셨답니다.



(그 정도까지만이었다면 아마 제가 이 얘기를 제 친구로 부터 전해 듣지도 않았거나 


친구로부터 그 얘길 들은 후 지금껏 제가 기억도 못했지 말입니다.)




처음도 아니고 두번째로 듣게된 그 "아씨~~" 라고 부르는 소리...


그 덕분에 들어온지 갓 두달 된 새 며느리의 실수는 모면했지만 


도대체 그 소리가 어디서 난건지, 정말 그 소리 자체가 있긴 했던건지, 


있다면 누가, 왜, 자기를 늦잠 자게 되는 실수를 할 때마다 구해주는건지... 


친구 어머님은 한동안 궁금하고 답답하고... 겁도 나고.. 머릿속이 아주 복잡하셨답니다.




시집온 지 얼마 안 된지라 마음 속에 있는 도깨비 방망이 얘기같은 걸 


시어른들께 꺼내놓고 얘기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고, 


집안 일 하시는 아주머니 말씀대로 자신이 항상 긴장을 해서 그런건가 하면서 속으로만 담아두고 며칠을 보내셨답니다.



그러고는 한 일주일 후에, 계획대로라면 제 친구 아버님이 주말을 맞아 시골집으로 내려오셔야 했지만 


한 달만 지나면 이사 들어갈 집에 도배하는 일이며, 계시던 하숙집 이삿짐 정리 등으로 그 주말은 내려오지 않으시기로 했답니다.


그 대신 새색시 되시는 제 친구 어머니께서 오랫만에 서울로 올라가서 주말을 보내시고 가신 김에 


벽지도 고르시고, 이사준비를 도와주시고 계시는 친정 어머니도 만나고 오시기로 하셨습니다.


시집가신 후 처음 가지는 나들이가 되는 셈이었습니다. 




목요일 늦은 밤, 


다음 날인 금요일 오전의 서울행 기차를 타려고 결정하신 친구 어머님은 


간단하게 짐을 챙기신 후 보통때 보다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드셨답니다.


단지 두달 정도였지만 떠나온 서울이 너무 그립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친정 부모님을 만난다는 생각에 그렇게 설레일수가 없으셨답니다.


한밤중에는 소풍 전날밤의 아이같은 설레임으로 


잠을 자는둥 마는둥 하시다가 새벽녘이 되서야 살짝 잠에 드셨는데..


갑자기 누우신 이부자리에 뭔가 느껴지는 듯한 기분에 눈을 뜨셨답니다.



조금씩 밝아오는 새벽, 방안의 모든 것이 푸른 빛으로 어슴프레 보이기 시작하는 때였고.방안은 여느때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눈을 감으려는 순간 갑자기 이불 끝 즈음에서부터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답니다. 


잠이 확 다 달아나시더라는군요.



갑자기 들리는 그 소리에 어떻게 할 바를 몰라 어머님께서는 자는 척 하며 주위를 살피셨답니다. 


하지만 잠시 난 사그락거림은 잘못 들었던 것처럼 


더이상 들리지 않아 몸을 살짝 돌려 옆으로 누우시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바로 자신의 어깨 아래 몇발치 떨어진 이불 귀퉁이로부터 조그마한 미동이 느껴지셨답니다. 


친구 어머님께서는 눈을 감은 척 실눈을 뜨신 채로 목만 살짝 굽혀 미동이 느껴지는 곳을 내려다 보셨답니다. 


미동이 느껴지는 그 곳에는 누군가 지금 손으로 눌렀다 땠다하듯 이부자리 끝이 살짝살짝 들어가더랍니다.


주무시던 이부자리는 솜을 두툼하게 넣어, 


면으로 된 이불 호청을 둘러 만든 옛날식 두꺼운 요였기 때문에 


어린아이라도 그 위를 밟고 지나간다면 어느정도 발자국처럼 폭폭 들어가는 두께였답니다.



그런데 그 요 가장자리부분이 누가 손으로 누르는 듯, 


아니면 작은 발로 걸어가는 듯 살짝살짝 들어가는 모양이 보이고... 


친구 어머님은 그 자리에서 목소리도 못 낼 정도로 얼어붙으셨다고 합니다. 


그 작은 움직임은 천천히 윗쪽으로 올라오다가 


어머님 얼굴과 세 네뼘 되는 곳에서 멈추고 더이상 계속되지가 않았답니다.




일 분도 채 안되는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너무나 가깝게, 너무나 선명하게 겪으신 이상한 일 때문에 이른 아침 내내, 


그리고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계속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으셨습니다. 


이제는 이상하기보다 더이상 그 방에서 혼자 잘 수 없을 것만 같이 겁이 나셨답니다.




서울에 도착하셨을 때는 남편되시는 제 친구 아버님의 퇴근시간이 아직 좀 남은 이른 오후였기에 


계획대로 친정집으로 먼저 가셨답니다. 


그제서야 기차를 타고오면서 생각하고 느낀 그 모든 묘한 기분을 다 잊고 


오랫만에 만난 친정 어머니와 대학다니고 있는 여동생에게 그간의 시댁 생활 얘기를 시작하셨답니다. 


그리고는...다시 떠오른 몇 가지 그 겪은 이상한 일들에 대해 망설이시듯 꺼내셨답니다. 


늦잠 잘 뻔 할 때마다 깨워주는 듯한 그 목소리와 


바로 오늘 겪은, 누군가 자기의 이부자리를 매만지는듯한 느낌...


그 얘기를 들으며 여동생은, 그러니까 제 친구의 이모님께서 농담처럼 



"언니야, 무당이라도 찾아가야 되는 거 아니야?" 



하시더랍니다. 


안그래도 찝찝하고 답답한 기분에 무당소리를 들으니, 


정말 생전 안 가 본 무당이라도 찾아가 보고싶단 생각이 드시더라는군요. 


하지만 무당을 찾는다는게 왠지 케케묶은 생각하시는 할머니들이나 하는 일 같아 막상 그렇게 하자는 소리도 못하셨다는군요.



그렇게 저녁이 되고 친정집으로 퇴근한 신랑을 만나고, 


오랫만에 친정 식구들과 가진 재미있는 시간에 밤 늦게까지 수다를 떨었고, 


그 다음날인 토요일 아침,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제 친구 어머니는 친정 어머님과 나가서 


벽지도 고르고, 도배 날도 정하고, 세간살이도 고르고... 그렇게 신혼 살림 준비를 하셨고...


그 동안은 시댁에서 겪은 모든 일을 까마득히 떠올리지 않으셨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월요일 아침이 왔고


친구 아버님은 장인어른 댁에서 곧바로 출근을 하시고.


친구 어머님의 계획대로라면 신랑이 출근하는 길에 같이 나서서 다시 시댁으로 내려오시기로 했는데....


어쩐일인지 친정 어머니께서 잠시만 더 있다 가라고 자꾸 잡으시는 바람에 남편부터 먼저 출근 시키고 뒤로 남으셨다는군요.


사위가 출근하자마자 친정 어머니는 제 친구 어머니께 어디 잠시만 들렀다 그 길로 내려가라면서 


다른 말씀도 안하시고 제 친구 어머니를 데리고 집을 나서셨고, 


제 친구 어머님은 어딜가려는데 이러시냐며 친정어머님께 물어도 가는 길에 얘기하자시면서 


그저 손목을 잡아 이끄시는데로 따라갔답니다.



택시를 잡아 타고 어딘가로 가시는 길에 


그제서야 친정 어머님은 오랫만에 집에 오자마자 당신 딸이 한 얘기가 


영 맘에 걸리고 걱정이 되셔서 도저히 이대로 보낼 수가 없으시다고 하셨다는군요.



친구 어머니는 그런 친정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리려고 뭐 그런 걸 다 신경 쓰시냐고, 


난생 처음 시댁이란 곳에서 남편도 없이 긴장해서 지내다보니 헛기분도 들고 하는 걸 꺼라는 말씀까지 드렸지만 


친정 어머니께서는 니가 괜찮다고 해도 내가 걱정이 되서 이렇게는 못 보낸다고 하시며 


결국은 어느 작은 절까지 딸을 데리고 가셨답니다. 




제 친구 어머님댁은 불교를 믿으십니다. 


특히 제 친구 외할머니가 그 쪽으로는 아주 정성이라십니다.


하지만 사실 점을 보고, 굿을 하고, 무조건 미신을 따르고 하는 건 불교의 본래 뜻 자체와 그리 맞지는 않다는군요. 


그래서인지 무당은 아니고 작은 절에 그런 쪽으로 아주 예민한 감각이 있으시다는, 


친정 어머님께서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스님을 찾아가신 거랍니다. 


제 친구 어머님께서는 기억날듯 말듯 어릴 때 한두번 만나뵌 적이 있는 스님이란 것만 생각이 나시더랍니다.


그 스님을 만난 제 친구 어머님과 친정 어머님께서는 


제 친구 어머니가 겪으신 얘기는 하지도 않고 그냥 안부 인사가 오가고, 


그 절에 오시는 다른 분들 얘기를 하고.....그렇게 한 시간이 넘도록 겉도는 얘기만 오갔답니다. 

댓글
  • [문지기]TOMMY 2017/11/30 08:13

    이전에 봤던 글이지만 다시 봐도
    반갑고 뭉클하네요
    몸종의 마음이 이쁘면서도 안타깝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NuiU8s)

  • 나옹이_D700 2017/11/30 13:54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친구분 어머님께서 옛날 그 아씨의 환생?)

    (NuiU8s)

  • 종이등불 2017/11/30 14:06

    글맛이 구수하고, 정겨우면서 따스합니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가엾은 애기몸종의 혼백은 이제 더 이상 구천을 떠돌지 않고,
    좋은 곳으로 갔기를 저도 가만히 빌어 봅니다.

    (NuiU8s)

  • 날아갈꼬야 2017/11/30 21:11

    이런 이야기도 너무 좋네요

    (NuiU8s)

  • 레낫찌 2017/12/01 03:02

    뒤주 열 때 시체 들어있는줄 알고
    긴장 했네 ㅠㅠㅠ 다행이다ㅠㅠ

    (NuiU8s)

  • kjhcanada 2017/12/01 03:34

    곱디고운 마음을 가진 친구분 어머니네요.
    실화라면 그 몸종분의 영혼도 편히 쉬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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